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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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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0:2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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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글자수 :
144,571

작성
24.09.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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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6화. 피난처(5)

DUMMY

분대장은 놈을 사냥해야 한다고까지 하지는 않았다. 일단 위험의 실체를 파악했으니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시에 따라 분대원들은 자연스럽게 원을 형성했다. 그 상태로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곳은 어두운 데다 구조가 대단히 복잡했으며, 우릴 안내한 남자는 심지어 도중에 길을 헤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긴장 속에서 코너를 서너 번 돌았을 때, 길을 잃은 것 같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저 앞쪽에 보이는 기계설비가 우리가 지나오면서 봤던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 듯, 병사들 중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씨발...!”


그때 어딘가에서 방금 전의 그 불길한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달각, 달각, 달각.


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컸다. 가까워졌단 뜻이겠지.


놈이 이해하고 하는 행동인지는 모르지만, 어둠 속에서 우리의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게 정말이지 악질적이었다.


“분대장님, 아무래도...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럼 뭐 방법이 있냐? 어쨌든 벽을 따라서 움직이는 게 최선이야. 언젠가는 문이 나올 거 아냐.”


그 전에 우리가 뒈지지 않는다면 말이지.


한편 적은 마침내 우리를 건드려 봐야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물론 다짜고짜 달려든 건 아니다. 놈은 가벼운 잽부터 시작했다.


“야, 너, 위험해...!”


갑자기 분대원 중 하나가 바로 옆 동료의 어깨를 힘껏 쳤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깨를 친 병사가 땅을 비추자 바닥에 떨어진 반투명한 유충이 보였다. 그는 단숨에 군홧발로 그걸 밟아 터뜨렸다.


잽은 바로 유충들이었다. 그것들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거나 벽과 땅을 타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사는 대열을 무너뜨리는 명령을 자기 스스로 내려야 했다.


“...뛰어! 벽 따라서, 문까지 가!”


순간 어둠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퀴이이이...!”


의도대로 됐다는 성취감의 표현인가? 아니면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


내 앞에 달리는 병사의 더플백에 유충 두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즉시 총을 휘둘러 놈들을 털어냈다. 곁의 병사가 내 가방도 털어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무언가가 옷 위를 빠르게 기어다니는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계속 마음 한구석을 찔렀다.


마침내 사달이 났다.


“으아아아악!! 옷 속에 들어갔어! 나 좀 도와줘, 제발...!”


병사 한 명이 미친 듯이 몸부림 쳤다. 마치 온몸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와 페어를 이룬 병사가 즉시 나섰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는 것 같았다.


...괴물 새끼가 노리던 건 바로 그때였다.


돌연 천장에서 소름 끼치게 긴 다리 두 개가 뻗어져 멈춰 선 병사를 낚아챘다.


“어? 어어...?”


그는 그 소리만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어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언가... 아마 피로 추정되는 것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병찬아, 안 돼!!”


분대장이 총을 겨눠 사격했다.


콰콰쾅! 콰콰콰콰쾅!!


그동안, 유충이 옷 속에 들어갔다는 병사 역시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든 총기에 달린 조명만이 어지러이 몸부림쳤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성을 잃고 총을 갈겨대는 하사에게 다가갔다.


“가야합니다!”

“이런, 개같은...!”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분대원들은 우리보다 훌쩍 앞서가 있었다.


“아아아아악!!”


이번에는 저 앞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조명이 다시 천장 쪽으로 끌려 올라가는 게 보였다. 놈이 새로운 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달리다 보니 전방에 한 병사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다행히, 벌레한테 당한 게 아니라 곳곳에 뱀처럼 뻗어진 배관에 걸려 넘어진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그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병사는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부쩍 어리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군인들은 이십대 초중반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때였다.


우리가 이 녀석에 정신이 팔렸다고 생각한 건지, 아무 전조도 없이 놈이 습격해 왔다. 다만 목표는 내가 아니라 곁에 있던 분대장이었다.


말뚝 같은 기다란 다리가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다른 다리는 더플백을 관통했다.


분대장 역시, 마치 승천하는 것처럼 끌려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실로 놀라운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이... 개새끼야!!”


허공에 매달린 그가 총을 갈겼다. 조명에 의해 처음으로 벌레의 모습 일부가 비춰졌다.


콰콰쾅! 콰콰콰쾅!


“퀴이익, 끼에에에에...!!”

“뒤져어어!!”


나도 어떻게든 지원사격을 하려는 찰나였다.


벌레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분대장을 포기한 것이다. 아마 사냥감의 격렬한 저항에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위치가 문제였다. 놈은 최소 3에서 4미터 정도 되는 천장에 붙어있었고, 거기서 떨어지던 분대장이 바로 아래의 시설물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쾅!


“억...!”


털썩.


바닥에 엎어진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불과 1초 만에 온갖 욕설과 고뇌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두 가지 충동이 팽팽하게 맞섰다


내 고개는 엎어진 하사를 향해 있었다. 그를 구해야 한다. 이건 내 마음의 소리였다.


그러나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 정신을 잃은 사람이랑 어둠 속에 남겨진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건 내 이성의 판단이다.


괘씸하게도, 내가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운 병사 새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는 중이다.


“씨발.”


그리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하사를 향해.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심장이 더욱 거세게 뛴다. 지금이라도 뒤돌아서 뛸까? 왜 이딴 짓을 하는 거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염병.”


분대장의 한 팔을 어깨에 걸어 일으켜 세웠다. 완전히 힘이 빠진 그 몸은 대단히 무거웠다. 이게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를 옮겨 벽에 기대놓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 차라리 미쳤으면 좋겠네. 공포라도 못 느끼게.


어둠 속을 쏘아보며 총을 들어올렸다. 그나마 괴물과 싸운 게 처음이 아니다 보니 혼란은 그럭저럭 가라앉고 있었다.


문득 나도 헷갈렸던, 하사를 구하기로 한 이유가 보다 분명해졌다.

거창한 건 아니다. 단지 이 대형마트에 들어와서 그가 보인 태도와 책임감이 멋있다고 느꼈다. 그런 사람이 사라지는 건 어쩐지 막고 싶었다.


어쨌든, 결정은 내려졌고 지금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벌레 새끼를 죽이기. 그게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청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달각, 달각, 달각...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놈이 근처를 맴돌고 있다.


그걸 ASMR 삼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의외로,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벌레는 분대장의 총에 제대로 맞은 게 분명했다. 그게 놈이 저렇게 눈치를 보는 이유다.

놈의 진화 단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 당장은 소총으로도 충분히 조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내게도 무기가 있다.


총과 재생력.


스스로를 세뇌하기 시작한다.


재생력은 그 붉은 망토의 광신도를 죽이고 얻은 힘이다. 놈이 끔찍한 몰골을 하고도 움직이던 걸 봤을 때 아마 즉사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머리는 방탄모를 쓰고 있다. 놈의 다리가 방탄모까지 뚫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심장? 심장은 꽤 작다. 단숨에 꿰뚫릴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지.


머리와 심장만 당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든 살 수 있다. 그렇다고 믿는다. 근데 유충이 밀려오면 어떡하지?


씹, 그건 나도 몰라.


“후우.”


긴장감이 고조된다. 어디냐, 빨리 끝내자. 배때기에 구멍 몇 개 나는 건 각오했으니까.


마침내 적이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놈은 신중하고 간교했다. 벌레에게도 전술이란 게 있었다.


무언가가 천장에서 확 떨어져 내렸다.


그걸 정확하게 살필 틈 같은 건 없었다. 난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콰콰쾅!


직후 그게 아까 머리가 박살난 거수자의 시체라는 걸 깨달았다. 벌레 새끼의 집게다리가 시체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런 미친...!”


놈이 그걸 내게 집어던졌다.


아무리 거수자가 깡말랐다고 해도, 성인 남성의 몸뚱이가 덮쳐들자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쿠당탕!


투명한 피와 역겨운 냄새가 쏟아졌다. 나는 어떻게든 그걸 치워내고 총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적은 어느새 내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못생긴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훅 밀려오는 새로운 악취, 머리에 박힌 여러 개의 홑눈, 분대장의 사격에 당한 듯한, 투명한 피를 질질 흘리는 가슴께.


푸욱! 푸욱!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드는 날카로운 고통이 어깨와 배, 허벅지에서 동시에 느껴졌다. 놈의 다리가 파고든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안도했다. 머리와 심장을 당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죽지 않는다. 최소한 지금 당장은.


콰콰콰쾅!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놈의 머리와 가슴, 다리, 어디든지.


“퀴에에에엑!”


좀 죽어라, 죽어, 죽어.


콰콰쾅!


“끼이이이...!”

“왜 안 죽냐? 뒤지라고!”


안 좋은 소식이다. 탄이 다 떨어졌는데 탄창을 갈 수가 없다.


또 다른 불행은 눈앞의 벌레가 머리 절반이 터진 상태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거다.


“그르륵.”


무차별적인 사격 속에서 놈의 집게발 하나는 박살났다. 그러나 아직 남은 하나가 쇄도했다.


콰아악!


목이 잘릴 판이라 다급하게 총으로 막았다. 전갈 같은 꼬리는 방탄모를 긁어댔다. 목뼈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았다.


“키이이이.”

“으으윽, 끄으으으윽...!”


우리는 기이한 대치에 들어갔다.


이제 누가 더 오래 버티냐의 싸움이었다.


난 몸에 파고든 다리들이 유발하는 고통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한편 벌레는 나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놈에게서 힘이 점차 빠져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끗이 부족하다.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놈이 반파된 머리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곤충이라기보다는 웬 맹수의 그것 같은 입이 보인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어떻게든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그럴수록 다리에 꿰뚫린 배만 더 아파왔다.


뭔가... 뭔가 없을까? 놈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릴 만한 무언가. 정말 뭐라도 좋아, 이렇게 죽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진짜 거의 다 잡았는데.


바로 그때였다.


내 질문에 스스로 답한 것처럼, 불현듯 머릿속에 카퍼톤의 군용 대검이 떠올랐다.


“......?”


뭐야? 갑자기.


나도 왜 이게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검문소에서 군인에게 낸 게 엄청나게 아쉽긴 했지. 근데 뭐 어쩌라고? 그건 지금 내게 없는데.


분명한 건 이 상(像)이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점점 더 선명해져서, 도저히 눈앞의 벌레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나는... 나도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 힘들었고, 침착함을 발휘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어렴풋하게, 그래, 잡힐 듯 생생한 카퍼톤의 대검이 내 손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무심코 바랐을 뿐이다.


직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파지직.


돌연 전기가 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이건 몹시 독특한 감각이어서 이 느낌을 언제 받았는지 똑똑히 기억했다. 바로, 붉은 망토의 광신도를 죽이고 카퍼톤의 대검을 주워들었을 때 찾아왔던 그 감각이다.


홀린 듯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카퍼톤의 대검이 정말로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무슨 마법처럼, 허공에서 나타난 것이다.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네...!”


그렇다고 이 기적 같은 기회를 저버리겠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난 힘껏 휘둘렀다.


수류탄 폭발에 휘말렸을 때도 조금의 손상도 없던 대검은 경로 상에 위치한 걸 손쉽게 갈라버렸다.


서걱.


벌레의 못생긴 대가리가 허공을 날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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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물의 세계 NEW 13시간 전 68 9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99 14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23 12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39 10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57 12 14쪽
20 19화. 피난처(8) +1 24.09.11 163 14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66 14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182 12 13쪽
» 16화. 피난처(5) +2 24.09.07 198 16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00 11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07 15 14쪽
14 13화. 피난처(2) +2 24.09.04 220 16 14쪽
13 12화. 피난처 +2 24.09.03 226 15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35 16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35 17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56 16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60 18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59 15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277 15 12쪽
6 5화. 종단 24.08.26 316 15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31 17 12쪽
4 3화. 도래(3) 24.08.23 367 18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04 18 13쪽
2 1화. 도래 24.08.21 532 20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16 2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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