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삐뉘

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0:2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6,251
추천수 :
379
글자수 :
144,571

작성
24.08.21 20:20
조회
532
추천
20
글자
11쪽

1화. 도래

DUMMY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다.


기숙사 생활관은 이미 환하게 밝았다. 눈부신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그러나 잠을 깬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맞은편 침대에서 내 사랑스런 룸메가 틀어놓은 유튜브 영상 소리였다.


“...지금 몇 시야?”

“10시 46분.”


10시 46분이라. 그래서 저렇게 소리를 미친 듯이 키워놓은 거였군.


“깨워줘서 고마워.”

“평소엔 잘만 일어나다가 뭐냐? 어제 긴장돼서 못 잤어? 소개팅에 너무 의미부여하지 말라니까. 10번 나가면 1번 성공한다는 마인드로 가야 돼.”

“그거 때문에 못 잔 건 아닌데... 어쨌든 전역하고 처음이잖아.”

“그래서 깨웠지. 아예 놓치는 것보다는 망하고 들어오는 걸 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더라고.”


난 녀석을 밉살스럽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깨워준 보답으로 욕설을 퍼붓지는 않기로 했다.


여튼, 서둘러 씻고 준비를 시작했다. 약속 시간은 1시였고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는 30분이면 가니 그렇게 촉박할 건 없다.


머리를 말리고 눈썹 정리하고 이것저것 좀 바르는 동안, 룸메는 계속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봤다.


그런데 녀석의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소식들은 이 설레고 희망찬 주말 오전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꿈자리가 뒤숭숭했나.


룸메 녀석이 말했다.


“에휴, 세상에 뭔 광신도가 이렇게 많냐? 이 새끼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지?”

“왜, 정확히 무슨 일인데?”

“미국인데, 어제 공항에 테러했댄다. 관광객 납치해서 지랄하다가 사살됐고.”

“공항에 테러를 해? 미친놈들 아냐. 며칠 전에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 있지 않았나.”

“그러니까. 요즘 따라 왜 이렇게 지랄인지 모르겠네. 이런 놈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을 거 아냐. 안 그래도 마약이니 뭐니 흉흉한데.”

“글쎄다...”


그다지 즐거운 주제는 아니어서 말을 뭉갰다. 소개팅 앞두고 부정 타게.


“간다. 행운을 빌어줘.”

“아, 이 새끼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그냥 아무렇게나 하고 오라니까. 망하면 술은 같이 마셔 줄게.”

“닥쳐.”


준비를 마치고 기숙사를 나서자, 그야말로 청명한 하늘이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난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약속 장소의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40분이었다.


출구 밖으로 나와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람이 정말 토 나오게 많다는 거였다. 거의 사람 반 공기 반이랄까.


미남미녀에 옷까지 잘 입은 사람들뿐이니 곳곳에서 생기와 화사함이 느껴졌다. 평소 이런 곳을 잘 오지 않는 나는 약간 어색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점점 더 거세게 뛰었다. 짧았을지언정 연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역시 군대라는 게 영향이 크긴 한가 보다.


스마트폰으로 괜스레 시간만 확인했다. 그러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근처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휴거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다들 눈을 뜨십시오! 이 세상은 지옥입니다. 이곳에서 허황된 부귀영화를 추구해봐야 내세에 겪을 시련이 더욱 혹독해질 뿐이오.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고 우리 주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건 나보다도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아저씨였다.


떡진 머리에 나이는 오륙십 쯤 먹은 것 같았고, 두 눈은 기이한 열기로 번들거렸다. 종교적 문구가 적힌 팻말 몇 개가 배낭에 꽂혀 있었는데 몇 개는 직접 들고 있기도 했다.


아저씨는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며 근처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시도했다. 때문에 그 주변은 작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괜히 신경 쓰이네. 안 그래도 기숙사에서 나오기 전에 광신도랑 연관된 뉴스를 들어가지고.


그 아저씨를 힐끔거리는데 순간 폰으로 연락이 왔다.


소개팅 상대가 보낸 거라 심장이 터질 뻔했지만, 내용을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재희 씨 진짜 죄송해요ㅠㅠㅠㅠ 갑자기 4호선에 지하철 사고가 났대요. 조금 늦을 것 같은데 혹시 먼저 식사하기로 한 곳에 들어가 계시면 제가 거기로...]


지하철 사고? 이게 무슨...


하지만 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조금 늦어도 되니 천천히 조심히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사고가 났다는데 어쩌겠어. 그리고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거나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때마침 저 멀리 서있던 미친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다.


그는 갑자기 씩, 웃었다. 뭐야, 진짜 기분 더럽네.



시간은 흘러 1시를 넘었다. 나는 강렬한 태양빛을 피해 빌딩의 그림자에 숨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경보음과 함께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몇의 스마트폰이 일시에 울렸다.


삑ㅡ 삑ㅡ 삑ㅡ



「안전안내문자」

[서울교통공사] 오늘(10일) 12시 51분경 삼각지역에서 발생한 탈선사고 조치 관계로 4호선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진짜 사고가 나긴 났나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몇 분쯤 지났을 때, 이번에는 주변의 좀 더 많은 사람들의 폰이 시끄럽게 울었다.


삑ㅡ 삑ㅡ 삑ㅡ



「긴급재난문자」

[서울특별시청] 오늘(10일) 12시 55분경 중구 예장동 일대에서 화학사고 발생. 피부노출 최소화 후 코입 막고 근처 건물로 대피한 뒤...



화학사고라, 많은 알림문자가 있지만 이런 걸 받아본 적은 처음인데.


중구 예장동이 어딘지는 몰라도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보니 하늘 저편에 검은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래도 이 정도 거리면 뭐,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지...?


직후 앞선 두 차례보다 훨씬 더 많은 스마트폰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건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이 보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징조였다.


삐익ㅡ 삐익ㅡ 삐익ㅡ



「긴급재난문자」

[서울특별시청] 오늘(10일) 12시 58분경 서울 시 상공에 정체불명의 비행물체 다수 식별. 실제 경계경보 발령, 낙하물 유의, 야외 활동 자제 바랍니다...



연달아 뭐야? 게다가 실제 경계경보에, 비행체라고? 정체불명의 비행물체?


그건 대단히 이상한 풍경이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 스마트폰을 살핀 뒤,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말이다.


한순간 누군가가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몇 명인가 군중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저게... 뭐지? 방금 재난문자로 날아온 게 저건가?”


빌딩에 닿을 정도의 아슬아슬한 고도로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그건, 거대한 흑색 비행선이었다. 비행기가 아니라 기낭의 부력으로 날아다니는 그거 말이다.


요즘에도 저런 걸 띄우나? 그 외에 조금 특별한 점이라면, 기낭의 생김새다.

그건 꼭 생물의 가죽 비슷한 걸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거기다 마치 심장처럼 주기적으로 박동했다.


어쩐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표현하자면 꼭 저 비행선이 우리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만 같다.


비행선이 마침내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초입의 상공에 진입할 때까지도, 기묘한 분위기에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비행선 아랫면이 입을 쩍 벌렸다. 이어 거기서 무언가가 투하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덩어리들이.


쾅! 쾅! 콰지직, 쨍그랑!


내 위치에선 그것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으니까.


낙하물들은 빌딩의 표면을 긁으며 주차된 차나 가로수, 그리고 맨바닥에 무작위로 떨어졌다. 그 근처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삑ㅡ 삑ㅡ 삐익ㅡ


또 한 차례, 손에 든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었다. 새로운 안내문자인가 보다. 하지만 그걸 확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순간 어떤 불길한 호기심이 군중을 조종하고 있었다. 저 낙하물이 뭔지 확인해야 한다는 충동이 치밀었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곧, 반발에 부딪혔다.


저 앞쪽에서 일어난 소란이 점점 거세지는 중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고, 무언가에 겁먹은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쳐!”

“살려줘, 크에엑...”


도망치라니, 왜? 살려달라는 건 또 무슨 말이고?


불안감의 전염은 대단히 빨랐다.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그 뒤에 있던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했다.


내가 ‘그걸’ 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안 돼... 안 돼, 오지 마!”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너머로, 바닥에 넘어진 한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를 향해 다가가는 한 사람.


그 존재는 어딘지 이상했다. 온몸의 뼈가 박살난 것처럼 몸을 기이하게 뒤튼 채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피칠갑을 한 데다 곳곳이 심각한 상처로 깊이 파여 있었고, 배 부근에서 늘어진 벨트 같은 무언가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정정하겠다. 그건 벨트가 아니었다. 그건... 내장이었다.


남자와 충분히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몸을 경련하며 거리를 좁혀가던 괴인이, 갑자기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힘껏 도리질 쳤다. 거짓말처럼 선혈이 터져 나왔다.


“끄어어억.”


씨발,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저게 지금 사람의 목을 물어뜯은 거야?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온몸이 싸늘하게 굳었다. 머릿속으로는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남은 모든 생명을 끌어 모아 발버둥 쳤다. 그러나 괴인은 아랑곳 않고 사냥감을 계속 물어뜯는 데에만 집중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또 떨어진다, 피해!!”


아까보다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흑색 비행선에서 두 번째 낙하물이 떨어졌다. 각종 파열음이 보다 분명하게 들렸다.


콰지직, 쨍그랑! 퍼억!


이제 그 낙하물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비행선에서 투하한 그건 바로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 형체의 무언가라고 하는 게 낫겠다.


잘못 떨어져 머리가 박살난 것들은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땅에 처박힌 뒤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방금 남자를 습격한 괴인과 같았다. 새하얀 막에 뒤덮인 생기 없는 눈이 도망치는 사냥감들의 뒤를 쫓았다.


위이이이이이잉ㅡ


귀를 찌르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온 게 아닌,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발동한 경계경보였다. 오금이 저렸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뭔데...!”


혼돈은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뛰기 전, 앞서 괴인에게 정신없이 물어뜯긴 남자가 똑같이 기괴한 포즈로 몸을 일으키는 걸 보았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분명한 사실들이 있었다.


일단 이건 영화 촬영이나 몰카, 그딴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건 좀비라고 지칭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 평화롭던 도시에... 서울에 좀비가 나타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 월~토 20시 20분 24.08.23 135 0 -
25 24화. 물의 세계 NEW 13시간 전 68 9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99 14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23 12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39 10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58 12 14쪽
20 19화. 피난처(8) +1 24.09.11 164 14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66 14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182 12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198 16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01 11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08 15 14쪽
14 13화. 피난처(2) +2 24.09.04 220 16 14쪽
13 12화. 피난처 +2 24.09.03 227 15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35 16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35 17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56 16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60 18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60 15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278 15 12쪽
6 5화. 종단 24.08.26 316 15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32 17 12쪽
4 3화. 도래(3) 24.08.23 367 18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05 18 13쪽
» 1화. 도래 24.08.21 533 20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17 24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