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르륵...”
쿠우웅.
키는 3미터 정도에, 마치 풍선에 자라다 만 팔다리를 덕지덕지 붙여 놓은 듯한 살덩이 괴물이 쓰러졌다.
나는 한숨을 돌리며 놈이 완전히 죽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곤 다가가 가슴 부근을 헤집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발견한 건 괴물의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맑고 서늘한 빛의 구슬이었다.
손을 뻗자 구슬이 스며든다. 놀라운 광경이지만, 세상에 닥친 많은 일들 때문에 내게는 그 신비함을 잃은 지 오래였다.
허공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정수를 흡수했습니다.]
[다음 특성 중 하나를 골라 얻을 수 있습니다.]
1. 경직된 피부 : 피부가 조금 단단해집니다.
2. 카니발라이즈 : 동족을 포식해 체력을 회복합니다.
...특성 꼬라지 보소. 좀비 사촌쯤 되는 놈이라 그런지 가관이네.
고민은 짧았다. 식량은 늘 부족하지만, 아직 인간을 사냥하고 다닐 정도는 아니다. 그때가 온다면 깔끔하게 자살할까 싶기도 하고.
‘경직된 피부’를 선택하자 순간 몸속에서 모종의 힘이 솟아나 피부에 고르게 퍼지는 느낌이 든다.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한 뒤,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스으읍ㅡ
음울함이 감도는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여긴 높이가 있어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피처럼 붉은 하늘 아래 서있는 황폐한 도시의 모습이.
군데군데 파손된 건물들은 간신히 뼈대만 유지한 상태고, 한때 저 거리를 가득 채웠던 차들과 사람들 대신 온갖 이형의 존재들이 살금살금 돌아다닌다.
이 지경이 되고서야 깨달은 게 있다.
누군가 세상이 망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뭐냐 물으면, 난 주저 않고 저 끔찍한 적막이라고 답할 거다.
몸을 돌렸다. 발소리를 죽여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둠에 잠긴 계단은 마치 나락으로 통하는 것 같았다.
종종 의문이 든다.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지는 길이 있었을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있다.
그날, 그토록 갑작스럽고, 모질고,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종말이 닥쳐왔을 때부터, 난 줄곧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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