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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뉘

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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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0:2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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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4,571

작성
24.08.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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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2쪽

9화. 종단(5)

DUMMY

깨어났을 때, 모든 게 꿈이었다...와 같은 전개는 없었다.


다만 시간은 카퍼톤이 고지했던 이른 아침을 훌쩍 넘어 거의 정오를 향해 가는 시점이었다. 나를 배려해준 것도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 김한수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하루 밤 만에 병색이 더욱 완연해졌다. 파리한 얼굴, 핏기 없는 입술, 짙게 내려온 눈 그늘. 무엇보다, 물에 뭐가 섞여 있었는지 환부가 심하게 곪았다.


“관악산에 가면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

“장담은 못 한다. 군대가 있다면 의사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도 어제 이후로 정보를 갱신 받지 못했어.”

“그, 혹시 재난과 분들끼리 사용하는 마법적인 소통망 같은 건 없나요?”

“원래라면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먹통이야. 특재과가 직접 나서서 끊어버렸다는 뜻이지.”

“왜, 왜요?”

“글쎄, 특재과 중 누군가 우리를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거나 괴이를 경계했거나. 전자는 안타까운 거고, 후자는... 괴이들 중에 인터넷 같은 전산망을 통해 사람들의 광기를 부추기는 것들이 있어. 놈들도 풀려났을 테니까.”


이제는 욕도 안 나온다.


핸드폰 데이터가 끊긴 데에는 그런 뒷사정이 있었던 건가? 놈들의 확산을 막으려고? 한강 다리를 끊는 거랑 비슷한 거였나.


“어쨌든 그건 관악산에 도착한 뒤 생각해도 될 문제야. 이동하자. 저 녀석은 네게 맡겨도 되겠지? 아마 못 걸을 정도는 아닐 건데.”

“네.”



마침내 여의나루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출구 밖으로 나오자 눈앞에 끔찍하게 조용한 세상이 펼쳐졌다. 지상에 벌어진 일은 관심 없다는 듯 청명한 하늘 아래 시체 여러 구가 군데군데 널려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마포대교였다.


유명한 영화 대사와는 다르게 마포대교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다리의 잔해들이 한강에 처박혀 있었다.


다음은 저 멀리 선 남산타워다. 날이 맑아 또렷하게 보였다. 지난밤의 그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는 풍경이다.


남산타워는 슬라임에 완전히 잡아먹혔다.


놈은 조금씩 꾸물거리며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멀어서 제대로 확인은 못했지만 점차 어떤 형태를 이루며 굳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말벌집을 연상시켰다.


나와 같은 걸 바라보던 카퍼톤이 말했다.


“...서울이 벌레 천지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군. 다른 괴이들이 멍청하게 두고 보지는 않겠지만.”


저게 진짜 벌레의 군락지 비슷한 건가? 굳이 묻지는 않았다. 물어봐야 기분만 더 나빠질 뿐이라.


어쨌든, 카퍼톤이 앞장서고 김한수가 뒤를 따르며 내가 총을 들고 후미를 맡았다.


김한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척거렸지만 분명 걸을 수는 있었다. 속도도 그렇게까지 느리지는 않았다.


강변을 따라 이동하던 우리의 우선 과제는 뭔가 먹을 걸 찾는 거였다. 전날 챙겼던 것들은 과자나 샌드위치 및 빵 정도였는데, 카퍼톤이 지난 밤 전투 후 대부분 먹어서 남은 게 거의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 주변 편의점은 이미 누군가가 두어 차례 털어간 상태였다.

그나마 마실 것들은 좀 있었다. 나는 이온음료를 뜯어 김한수의 입속에 흘려 넣었다.


“고맙습니다...”

“걷다가 목마르면 말씀하세요.”


다시 이동을 재개한 뒤, 일행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주변을 둘러보는 데 집중했다.


주변은 일견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약간의 관찰력을 발휘하면 무언가 이상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한강이다.


카퍼톤은 강가를 따라 이동하면서도 강물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난 밤 지하철 통로에서 마주친 그 꽃 같은 괴물들이 수면 아래에서 유영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놈들 때문에 수위가 올라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번째는 길바닥에 널브러진 온갖 작은 사체들이었다.


고양이나 쥐부터 지렁이와 개미까지, 누가 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쓰러져 죽어 있었다. 대체 뭐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세 번째는 저 먼 빌딩의 고층 주변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새들이다.


놈들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에는 원근감에 문제가 생긴 듯한 작은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놈들이 날개를 펼치면 그 폭이 거의 빌딩 한 면의 절반 정도에 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런 것들은 사람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헬기랑도 좋은 승부를 벌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확인해 보고 싶지는 않다.


도중에 김한수를 배려해 한 차례 쉬고, 몇몇 편의점을 더 들렀다.


그렇게 여의나루역을 떠난 지 두 시간 반 정도 흘렀을 때, 마침내 현충원에 도착했다.


저 너머 관악산이 보였다. 아득한 멀리서 포성이 들려왔다.


희망이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조금만 있으면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더니 걸음이 가벼워졌다.




주차장과 분수대를 지나 현충문을 넘어선 우리 앞에 너른 묘역이 펼쳐졌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저, 질문 있는데요.”

“뭔데.”

“괴이라는 건... 대충 인간의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괴물들의 원형인가요?”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 예컨대 아까 말한 전산망을 통해 광기를 퍼뜨린다는 괴이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거야.”

“그 말은, 괴이가 새롭게 만들어진다고요?”

“그래, 어떻게 만들어지냐고? 다양해. 인간의 사념이나 초월적 의지가 원인일 수도 있고 미친 마법사나 병신 같은 광신도 새끼들의 소행일 수도 있겠지.”


그렇구나. 그보다 이런 걸 물은 건, 사실 현충원에 오기가 조금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좀비가 있는 마당에 스켈레톤이나 유령은 없을까 싶어서. 현충원 만큼 그것들이 어울리는 장소가 또 있을까.


결과적으로는 염려가 무색했다. 그저 잘 나눠진 구획의 묘지가 보일 뿐이다. 저 밖에 이상한 것들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오히려 여긴 평화롭게까지 느껴졌다.


그때 김한수가 물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방법 같은 건 없습니까?”


카퍼톤이 뒤를 돌아 김한수를 살핀 뒤 짧게 한숨 지었다.


“아주 유구한 질문이군. 세상의 이면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통과의례지. 가장 많은 인원이 빠져드는 경로기도 하고 말이야.”

“......”

“딱 잘라 말하자면, 되살릴 순 있다. 하지만 그건 네가 아는 사람이 아니야.”

“무슨 뜻이죠.”

“한 번이라도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영구적이고 비가역적인 변화를 겪는다. 부활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는 걸 명심해.”


서릿발 같은 기세였다.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됐을 것을 저렇게 말하니 오히려 더욱 진실처럼 느껴졌다.


김한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줄곧 현충원을 관통하는 작은 천을 따라 걸었다. 우습지만 날이 정말 좋아서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묘지의 대략 절반 정도를 통과해 왔을 때였다. 문득 조금 이상한 걸 발견했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에는 하얀 묘비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곳, 도저히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위치의 묘비 앞에 어떤 사람이 이쪽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


내가 이상하다고 한 이유는 바로 지금의 상황적 배경 때문이다.


우리야 그렇다 쳐도, 그 누가 지금 같은 상황에 현충원에서 홀로 추모를 한단 말인가?

그건 저 사람이 최소 카퍼톤 만큼 비범한 신분이라는 뜻이었다. 아니면 정신이 나갔거나.


곧 카퍼톤이 보인 격렬한 반응이 내 추측이 맞다는 걸 증명했다.


“...이런 빌어처먹을 썩을 놈의 새끼 같으니.”


기이이이잉.


군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조준했다.


우리는 자연스레 멈춰 섰다. 평화롭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경직됐다.


그 순간, 묘비 너머에 웅크리고 있던 거대한 존재가 몸을 일으켰다. 그걸 보니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놈은 어깨 높이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짐승이었다. 털 없이 매끈한 피부에 체형은 경주견과 같다. 그러나 머리통은 개가 아니라 흑발이 치렁치렁 자라난 인간이었다.


괴물이 묘비 앞의 남자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마치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개나 고양이 같았다.


얼굴을 몇 차례 어루만져 준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우리 쪽을 향해 돌아서면서, 마치 두건을 뒤집어쓰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실제로 허공에서 나타난 피처럼 붉은 망토가 덧씌워졌다.


두건 때문에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우리를 훑고 있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았다. 온몸의 피부에 다족류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한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두건 아래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널 놓아줄 거라고 생각했나? 재단의 개야. 세상만사 쉽지 않다는 걸 알잖아. 기껏 힘들게 모집한 신도들을 망가뜨렸으니 값을 치러야지.”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 벌레가 말을 걸다니 말이야. 이래서 생활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하는 건데.”


놈은 바로 마포역에서 만났던 진홍의 손 교단의 광신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쫓아온 거지? 어떻게 한강을 건너온 거야?


어느새 십수 명의 광신도들이 더 나타나 놈의 뒤에 섰다. 각자 철퇴, 도끼, 채찍, 두꺼운 책 따위를 든 이들이었다. 그들로부터 무기를 받아든 붉은 망토의 남자가 짐승의 등에 올랐다.


한편, 광신도가 나타난 이래 김한수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윽, 그으으윽, 으아아.”


나도 간질거림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는 아예 전신을 벅벅 긁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상처까지 말이다.


제지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전신이 피범벅이 되었다. 그에게서는 광기가 느껴졌다.


“카퍼톤, 한수 씨가...!”


그러나 카퍼톤은 신경을 돌릴 여유가 없는 듯했다.


“귀 막고 엎드려.”


나지막한 경고와 함께, 그가 총을 내리고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허공에 떠오른 건 전에 한 번 봤던 구슬이었다.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김한수를 밀치면서 귀를 막고 엎어지자, 즉시 둥ㅡ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육체로부터 정신이 박리되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그러나 어쨌든 운신할 정도는 되었다.


무심코 광신도 쪽을 바라본 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광신도들이 몸을 날려 붉은 기수의 앞에 인간 장벽을 세웠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발광했지만, 그 덕으로 괴물 개를 탄 적의 우두머리는 완전히 멀쩡했다.


직후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벌였다.


푸욱!


“......!!”


돌연 들고 있던 창을 뻗어 자신을 보호한 신도들의 몸통을 꿰뚫은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주의해야 했던 건 거기서 이어지는 적의 공격이었다.


신도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기수의 거센 창질과 함께 우리 쪽으로 쏘아졌다. 그건 실로 빛살 같은 속도였다.


“피해...!”


카퍼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조금 억울하다. 저런 걸 어떻게 피하냐고. 강화 인간은 가능할지 몰라도 일반인은 산탄총을 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저 피의 세례도 그러했다.


촤아악!


콰지직, 콰아앙!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앞이 새하앴고, 전신은 으스러지는 것 같다.


“커헉.”


나는 어느새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정신을 잃지 않은 이유는 아마 내 정면에 서있던 묘비가 피의 탄환의 충격을 경감해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통 속에서 간신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카퍼톤이 총을 갈기는 중이었다. 그의 사격이 붉은 기수의 전진을 막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콱 움켜쥐었다.


김한수였다. 어느새 다가온 그의 눈을 빙글빙글 돌고 코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흘렀다. 그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헐떡이며 말했다.


“목소리, 목소리가 들려요. 목이 말라, 피가 필요해, 네 피를 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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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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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 : 월~토 20시 20분 24.08.23 135 0 -
25 24화. 물의 세계 NEW 13시간 전 68 9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99 14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23 12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39 10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58 12 14쪽
20 19화. 피난처(8) +1 24.09.11 164 14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67 14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183 12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198 16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01 11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08 15 14쪽
14 13화. 피난처(2) +2 24.09.04 221 16 14쪽
13 12화. 피난처 +2 24.09.03 227 15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36 16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37 17 13쪽
» 9화. 종단(5) 24.08.30 258 16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61 18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60 15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278 15 12쪽
6 5화. 종단 24.08.26 317 15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32 17 12쪽
4 3화. 도래(3) 24.08.23 368 18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05 18 13쪽
2 1화. 도래 24.08.21 533 20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17 2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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