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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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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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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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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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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화. 피난처

DUMMY

새삼 세상에 큰일이 벌어지고 있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군인들의 경직된 태도가 그를 뒷받침한다.


“지금부터 어떤 행동도 하지 마십시오. 거동수상자는 즉시 발포해도 된다는 명령이 내려와 있습니다.”


그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닌 듯, 군인 두 명이 내게 총을 겨누었다. 다가온 한 명은 빠르게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뺏긴 건 총과 카퍼톤의 군용 대검이다. 군인이 물었다.


“이것들은 어디서 구한 겁니까?”

“오면서 주웠습니다. 군인들 시체에서요. 다만 오로지 제 몸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별로 문제가 되는 답변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군인도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 외에 내가 가진 거라고는 액정에 금이 간 스마트폰과 앰플을 담았던 금속제 케이스뿐이다. 그것들은 그대로 내게 남았다.


“따라오십시오.”


마치 자신들의 역할이라는 듯 병사 둘이 선뜻 나섰다. 그 뒤를 따라 검문소를 통과했다.


지나치면서 살펴보니 위장된 초소 안에 m60 같은 게 거치돼 있었다. 대기 중인 병사들도 많았다. 웬 전차 같은 것들도 보였다.


조금 더 들어갔을 때, 나는 군인들이 내게 이곳을 찾은 용건도 묻지 않고 자연스레 이끈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피난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인근의 사람들이 모두 이곳으로 대피한 게 아닌가 싶다.


일종의 구획이 정해진 것 같았는데, 큰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세워진 천막 아래 이삼십 명 정도씩 불편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 천막이 끝도 없이 많았다.


나 역시 그중 한 곳으로 안내됐다. 각 천막마다 총을 든 군인이 경계를 서는 중이었다. 그가 서슬 퍼런 분위기로 말했다.


“날 밝을 때까지 자리에 머무르십쇼. 지정된 위치에서 마음대로 움직이면 발포합니다.”


전체적으로 숨 막히는 냉엄함이 감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불과 나도 몇 달 전까지는 군인이었다. 저들이라고 이런 재난 상황을 겪어봤을까?


게다가 만약 좀비나 광신도가 이런 곳에 숨어든다면, 그래서 그들이 질병 혹은 광기를 퍼뜨린다면... 좀비 영화에서 그렇듯 일이 벌어지는 건 한 순간이다. 현실도 그리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얌전히 자리에 누웠다.


바닥에는 얇은 모포가 깔려있을 뿐이라 냉기가 솔솔 올라왔다. 몸이 멀쩡하고 옷을 잔뜩 껴입은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골병 들기 딱 좋은 환경이다.


어디선가 꼬마들이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래도...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건 정말이지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아쉬운 점은, 총은 몰라도 카퍼톤의 대검을 뺏긴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 밖, 나만 알 만한 비밀스런 장소에 숨겨둘걸. 이미 늦은 생각이지만.


또 다른 고민은 카퍼톤의 동료들에 대한 것이다.


앰플을 써버린 날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화장실도 가기 빡세 보이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에서 그들이 내게 접근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군인들의 통제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으려나.


만약 찾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카퍼톤은 분명 그런 경우에 대해서도 말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난 까무룩 잠들었다.



* * *



어수선한 분위기에 눈을 떴다. 누군가가 소리 치고 있었다.


“화장실 가실 분들 이쪽으로 줄 서십시오! 뛰거나 떠들지 마세요. 그 어떤 돌발행동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30분 뒤 배식 시작하겠습니다!”


어느새 아침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을 켰다. 몇 시간에 한 번씩만 통신이 복구되었는지 확인해보는 터라 배터리는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그러나 확인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시간뿐이다. 지금은 여덟 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고, 문자나 기타 메신저는 감감무소식이다. 문득 불어온 싸늘한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마 하늘이 조금 밝아 지난 새벽보다 주변 상황을 좀 더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했지만, 당연히 군부대는 아니다. 군인들은 군부대 밖에 차단선을 쳤고 이곳은 그나마 위험요소가 없다고 판단된 시내였다.


사람들이 머무는 텐트 옆의 도로를 통해서는 군인들을 잔뜩 태운 차량들이 바쁘게 오갔다. 지금껏 사람들이 없을 만한 곳들만 골라서 이동한 덕에 실제로 군인들이 활동하는 것도 처음 봤다.


이어진 인솔자의 외침에, 화장실 사용을 희망하는 줄에 다가가 섰다.


피난민용 화장실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근처 빈 건물의 공용 화장실에 차례대로 들어가 사용하고 나오는 것이다. 물이 끊겨 화장실 내부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다시 천막으로 돌아와 300밀리리터 물 한 병과 전투식량을 받았다. 물은 하루에 한 병만 나눠준다고 했다. 밥 먹는 내내 입술에 침 바르는 느낌으로 홀짝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전 동안에는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옆 사람과 대화도 못하고 뭔가를 알려주지도 않으며 이동도 금지되니 할 게 없었다. 다만 버스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피난민들을 어디론가 꾸준히 옮겼고 곧 내 차례가 왔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예상외의 장소였다.


군부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봤을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샤, 대충 샤문이라고 불리는 그것.


여길 이런 식으로 오게 되다니.


“내리십시오! 내려서 두 줄로 서시기 바랍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요새화 되어가고 있는 넓은 캠퍼스가 보였다. 군데군데 무장한 군인들과 줄지어 걸어가는 피난민들이 있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는 사람들이 머물기에 제법 괜찮은 장소다. 거의 작은 마을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니까. 하물며 이곳, 서울대학교는 내가 알기로 대학교 중에서도 압도적인 면적을 자랑한다.


우리는 어느 건물의 강의실 하나를 배정받았다. 이러고 보니 꼭 내무실 같은 느낌인데, 인솔한 군인은 “대기하십시오.”하고 짧게 말한 뒤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 모인 30명 정도의 사람들은 처음 10분 정도는 조용했다.

그러나 곧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에 동참했다.


내가 말을 건 건 옆자리에 앉은 어느 아주머니였다. 퀭한 얼굴이었는데, 다행히 대화도 나누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린 상태는 아닌 듯싶었다.


“저, 괜찮으시면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궁금한 것도 있고, 대화를 나누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아서요.”

“그러세요. 저도 그럴 것 같네요.”

“그럼... 어디서 오셨어요?”

“서초 쪽이요. 학생은요?”

“저는 명동 쪽이요. 혹시 서초는 어땠나요?”


그러자 아주머니의 얼굴에 한층 그늘이 졌다. 역시 민감한 질문이었나? 이런 상황에는 멀쩡한 곳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대답을 피하진 않았다. 서글프게 웃기까지 했다.


“하늘에서 좀비가 떨어졌어요. 지하철역에서는 사람보다 더 큰 이상한 벌레들이 튀어나왔고요. 거미랑 전갈을 섞어놓은 것 같았는데, 빌딩의 벽을 타고 올라 창문을 깨고 들어가더군요.”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그런데 벌레는 몰라도 좀비라면, 혹시 검은색 비행선인가요?”

“맞아요. 그걸 아시는 걸 보니, 그게 강북에서 넘어온 거였군요.”


아주머니는 자신의 탈출기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일이 벌어졌을 때, 그녀는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독서하는 중이었다.

탈출은 순전히 운이었다. 강남 서초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 중 하나였고, 좀비의 수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놈들과 거대 벌레들이 서로 적대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카퍼톤이 괴물들끼리도 사이가 좋진 않다고 했었지.


여기에 더해 군인들의 지원도 있었다. 포성은 그것들의 어그로를 끌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아직도 자신이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 우리 뒷줄의 아저씨가 냉큼 끼어들었다.


“전 안양 쪽에서 왔습니다. 안양 쪽에는... 안개가 꼈어요.”

“안개요?”

“대체 무슨 썩을 안개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5미터 바깥도 확인할 수 없도록 자욱한데, 주기적으로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시,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그의 눈은 거의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다.


“종소리 이후에는 안개 속에서 말발굽 소리 같은 게 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사람들의 비명이...!”

“진정하세요.”


과호흡을 일으킬 것만 같은 아저씨를 진정시키고 있으려니 사람들을 이렇게 몰아놔도 괜찮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대로라면 좀비나 광신도가 침투하지 않더라도 금방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군인들이 이 모든 일을 신경 쓰기엔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아주머니에게 전해 듣기로 군인들은 현재 강남 서초를 감싼 커다란 방어선을 구축하고 좀비와 거대 벌레들의 확산을 막는 중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닐 테니 이런 상황에서 피난민 개개인의 멘탈까지 챙기는 건 말도 안 되겠지.


나는 아저씨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줄곧 궁금하던 걸 물었다.


“혹시 인천에 대한 소문은 들으신 거 없나요?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데.”

“인천이요? 인천 쪽은 잘... 아시다시피 뉴스든 뭐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막혔잖아요. 인천에도 무슨 일이 생겼나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안개가 낀 직후 곧장 산으로 숨었어요. 다른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이곳이 처음입니다.”


나보다도 더 모르는 것 같았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입맛이 썼다.


“그렇군요. 하긴, 인천에서 굳이 서울 쪽을 목표 삼아 올 이유가 없긴 하죠.”


뭔가를 눈치 챈 듯, 아주머니가 애써 위로했다.


“기다려 보세요. 그래도 군인들끼리는 뭔가 통신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흐르고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면, 틀림없이 정보도 들어올 거예요. 그리고 미국이 이런 걸 두고 볼 리가 없어요. 그, 그게 아니더라도 UN이라거나ㅡ”


그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발언이었다. 굳이 반박할 필요도 의욕도 없어서, 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 * *



사흘이 지났다.


안 좋은 소식이다. 카퍼톤의 동료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역시 내가 앰플을 사용한 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어서?


한편 우리가 머무는 캠퍼스에, 군용 버스들은 매일 같이 피난민들을 실어 날랐다. 이제 이곳에 있는 사람이 적게 잡아도 몇 만 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서울 전체의 인구를 생각하면 턱없이 적은 수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심적으로 위로가 되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군인들의 통제도 알게 모르게 약해졌다.


우리는 여전히 이삼십 명 단위로 묶여서 정해진 장소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래도 자유 시간이랄 만한 게 주어졌다. 점심과 저녁 식사 이후의 한두 시간 정도 산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가장 먼저 생겨난 건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었다. 누군가 거대한 게시판을 각 건물 1층에 옮겨왔고, 그곳은 순식간에 질문이 담긴 쪽지로 가득 찼다.


나 역시 인천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구했다.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으니, 누군가 하나쯤은 알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성과는 그다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쌓이는 건 각지에 나타난 다양하고 기괴한 괴이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그렇게 나흘 차가 되었을 때였다.


아침부터 무언가가 좀 달랐다. 군인들이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성들을 차례대로 선별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에 속했다.


대충 20대에서 30대 사이로 보이는 수천의 사람들이 강당에 모였다.


잠시 후, 무궁화를 단 중년 남자가 올라왔다. 나는 어쩐지 용건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과연 불길한 예감은 틀린 법이 없었다. 그가 짧은 인사말 후에 말했다.


“...공식적으로 선포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국가비상사태입니다. 부대 사령관이신 진형우 중장님께서는 예비군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여기 계신 분들께서는 예비군법 제2조에 따라 상비군으로 편성됩니다.”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순식간에 술렁임이 퍼져나갔고, 누군가는 욕설을 퍼붓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우린 제 발로 군부대에 들어왔고, 법이든 뭐든 명분은 저쪽에 있었다.


나는 받아들였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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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물의 세계 NEW 13시간 전 68 9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99 14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23 12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39 10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58 12 14쪽
20 19화. 피난처(8) +1 24.09.11 164 14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66 14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182 12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198 16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01 11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08 15 14쪽
14 13화. 피난처(2) +2 24.09.04 220 16 14쪽
» 12화. 피난처 +2 24.09.03 227 15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35 16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35 17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56 16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60 18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60 15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278 15 12쪽
6 5화. 종단 24.08.26 316 15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32 17 12쪽
4 3화. 도래(3) 24.08.23 367 18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05 18 13쪽
2 1화. 도래 24.08.21 532 20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16 2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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