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삐뉘

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0:2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6,243
추천수 :
379
글자수 :
144,571

작성
24.08.24 20:20
조회
331
추천
17
글자
12쪽

4화. 도래(4)

DUMMY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간다니, 나가서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당신이 방금 전세계가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안전한 곳이 있단 말이에요? 군인, 군인이 있는 거죠...!”


그러나 흥분한 상태로 카퍼톤에게 접근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진압됐다.

군인이 냉소적인 표정으로 총을 겨눈 것이다. 어떤 엔진이 돌아가는 듯한 기계음이 총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잉ㅡ


“앉아. 시끄럽게 빽빽거리지 마. 그리고, 내 허락 없이 접근하지도 마. 머리에 구멍 난다?”

“......!”

“아, 알았어요. 진정하세요. 미안합니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살벌해졌다. 총은 그만큼이나 폭력적인 무기였다.


“말 몇 마디 섞어줬다고 선을 넘네. 얼마 남지 않은 동정심마저 고갈시키지 말라고.”

“네, 네.”

“뭐, 이 정도는 말해주지. 난 한강을 넘어 관악산 쪽으로 갈 거야. 근데 내가 알기로 거기에 당신들이 그렇게 목매는 군대가 집결 중이기도 하거든. 그러니 잘 고민해 봐. 지금이 다섯 시 정도니, 여섯 시에 출발하는 걸로 하지.”


회의는 해산됐고, 나는 구석 자리로 돌아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여기에 머물러야 할까? 아니면 저 군인을 따라가야 하나?

다른 사람들도 두셋씩 모여 수군거린다. 두 개의 선택지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우선 여기 머무르는 것, 상당히 유혹적이다.


일단 지금 당장 안전하다. 지금까지 별일 없었는데 몇 시간 내에 좀비들이 쳐들어 올 것 같진 않다.


게다가 밖을 돌아다니기엔 무기도 없으며, 계속 포성이 들렸던 걸 보면 군인들이ㅡ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일반적인’ 군인 말이다ㅡ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아까 아빠 운운하던 놈의 말까지 신경 쓰기 시작하면, 정말 금방이라도 구조대가 와줄 거라고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건 모든 걸 구조대에게 배팅한 선택지이다. 구조대가 오지 않으면 우린 서서히 말라죽어갈 거고 그때 되어 탈출을 시도해 봐야 카퍼톤은 이미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선택지, 카퍼톤을 따라 여기서 나가는 것. 이건 무척 높은 확률로 죽음의 위기를 겪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저 밖은 위험하다. 카퍼톤이 우리 목숨을 아주 열심히 지켜줄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저의도 의심스러운데, 안 좋은 상상이지만 괴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미끼 같은 걸로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이 잘 풀려서 관악산까지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 군대가 정말 있다면 상황은 여기 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카퍼톤은 이 모든 일과 관련이 있는 조직의 구성원이다.

그는 스스로 말단이라고 밝혔지만, 그럼에도 나 같은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정보와 지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들 중 일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긴 고민 끝에, 점차 어느 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결정과 그 논리 역시 궁금했다.


“형님, 형님은 정하셨나요?”

“그래.”

“어쩌실 생각이세요?”


진무 형님은 내 질문을 듣고서야 비로소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나는 여기 남을 거다. 여기서 죽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최소한 저 군인이랑은 안 갈 거야.”

“...혹시 이유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두 선택지 모두 그럴 듯하다고 본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에 있어.”

“카퍼톤이요?”

“저 남자를 믿을 수 없어. 정확히는, 총 말이다. 그건 말도 안 되는 힘이야. 누군가에게 그런 힘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난 잘 안다.”


저건 경험담 같은 걸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카퍼톤이 함께 데려가려는 사람들을 이용해 먹을지도 모른다고 보시는군요.”

“그러지 않는다면 좋겠지. 하지만 세상일은 한 번씩 엿같이 돌아가더라. 지금처럼 말이야.”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넌 나갈 생각이지. 안 그러냐?”


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저도 저 군인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태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생존 지식 같은 걸 조금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또... 가족이 인천에 있습니다.”

“거길 가려고? 이 상황에?”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관악산이면 분명 여기보다 인천에 가깝고, 거기 정말 군대도 있다면 인천에 대한 소식이라도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말하면서도 내가 상당히 구구절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형님 역시 그 이유를 눈치 챈 것 같았다.


“내가 널 구해준 것 때문에 여길 떠나는 게 걸리는 거냐? 은혜를 갚아야 하니까? 전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

“기절한 널 데려오긴 했지만, 사실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한때의 변덕, 혼란 속에서 잠시 머리가 돌아버린 거라고 생각해라.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야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진무 형님에게 너무나 감사하긴 했지만, 난 분명 가족들에 대한 염려가 더 컸다.

그렇다고 지금 달리 보은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형님은 마음을 정했고, 나도 그랬으니까.


그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절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젠가... 꼭 갚겠습니다.”

“그래,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무사해라.”

“형님도요.”




시간이 흘렀다. 구석에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카퍼톤이 옷을 고쳐 입고 장비를 주섬주섬 착용하기 시작했다.


때가 거의 다 됐다. 12명의 사람들은 다시 방 중앙에 모였다. 자연스럽게, 머물겠다는 쪽과 나간다는 쪽으로 나눠 섰다.


예상보다 더 여기 남겠다는 사람의 수가 많았다. 무려 9명이다.


아까 보니 카퍼톤의 병기가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 때문인가? 좀비를 뚫고 간다는 게 말이 안 될 것 같았나 보다. 아니면 구조대가 와줄 거라는 희망이 너무 매혹적이었든지.


특히 한 명,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간호사 누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죠.”

“그런데 왜 남으시려고...?”


누나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이런 말은 조금 부끄러운데, 여기 환자들이 더 많잖아요.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제가 더 필요한 쪽은 여기일 테니까요.”


그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적 소명의식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구나.


“...꼭 구조대가 오길 빌게요.”

“그쪽도요. 뇌진탕은 두통이 없다고 해서 완전히 나은 게 아니니, 가능하면 무리하지 말고 쉴 수 있을 때마다 쉬세요.”

“노력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카퍼톤이 다가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장비들과 미래적 디자인의 바이저까지 쓴 그는 마치 외계인 같았다.


“나갈 사람은 셋인가? 이거 너무 적으니 오기가 드는데... 최선을 다해 살려주고 싶어지잖아. 어쨌든 가기 전에, 한 가지 미리 말해 두지.”

“뭡니까?”


그렇게 물은 건 나를 제외한 탈출조 두 명 중 하나였다. 그 둘은 젊은 커플이었는데, 여성 쪽이 눈을 다쳐 여기에 남을 수 없겠다고 판단한 듯싶었다.


“저 문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무조건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 기회는 여러 번 주지 않아. 지시를 따르다가 위험에 처하면 구해줄 여지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직접 머리에 바람구멍을 낼 거야.”


저 군인의 인명에 대한 태도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저렇게 간단히 죽일 거란 말을 하면서도 왜 굳이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건지. 설마 진짜 미끼 같은 걸로 써먹을 참인가.


어쨌든, 우리 셋은 순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자고.”



카퍼톤은 문 근처의 벽에 귀를 가져다 댔다. 바이저에 청력을 증폭시키는 기능이라도 있나 보다.


잠시 후 그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쌓아둔 책상과 의자 등을 치우기 시작했고 우리도 그걸 도왔다.


문은 우리 4인조가 빠져나온 뒤 금세 닫혔다.


눈앞에는 어두침침하고 적막에 잠긴 통로가 펼쳐져 있었다. 여기 발을 내딛은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쭉 난다. 위험 요소는 없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카퍼톤이 조금 깨는 말을 내뱉었다.


“아, 잠시 화장실 좀 쓰자. 다들 어때? 몇 시간 동안이나 못 갔잖아. 여성분이 계시니 화장실이 안전한지 한 번 봐주도록 하지. 아니면 그냥 남자 화장실 같이 쓰든가. 좀비가 그런 걸 따지진 않거든.”

“그, 그럼 남자 화장실 좀.”


그렇게 화장실로 향했는데, 코팅되어 반투명한 유리문에 검붉은 액체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군인은 문을 확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 몸이 기괴하게 뒤틀린 좀비가 튀어나왔다.


“오, 안 그래도 이 분도 여성분이시네. 급하셨나 봐요?”

“갸르르르르...!!”


저 군인, 미친 게 아닐까? 그는 좀비를 상대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총은 들어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좀비는 그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다. 카퍼톤은 좀비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더니, 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괴물의 뒤통수를 잡고 벽에다 처박았다.


콰지직.


놀라운 건... 그걸로 화장실 벽타일이 박살나고 좀비의 머리는 아예 터져 버렸다는 거다.


“안에 더 있나? 냄새가 나는데.”


그가 뚜벅뚜벅 들어갔다. 이어 안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캬오오오!”

“반갑고.”


콰아앙!


“들어와도 좋습니다.”


5초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화장실 내부는 그 소리만큼이나 처참해졌다.


카퍼톤은 안에 있던 좀비의 다리를 잡고 좌변기 칸에다가 내동댕이친 것 같았는데,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아예 칸막이들이 무너지고 좀비의 잔해는 완전히 형체를 잃은 채 젤리 같은 무언가가 되어 눌어붙어 있었다.


“우웁, 우웨엑.”


커플답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분이 참지 못하고 바닥에 토를 했다.


난 억지로 참아냈다. 어쩐지 눈앞의 군인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좀비 쪽은 보지 않으려 애쓰며 볼 일을 봤다. 그러면서 주제를 돌렸다.


“...혹시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아이, 그럼. 설마 관악산까지 가는 동안 한 마디도 안 하려고 그랬어? 물어봐, 물어봐.”

“당신은 강화 인간 같은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 거라도 없으면 이 일은 못 해먹거든.”


...그렇구나. 강화 인간도 있구나. 놀라야 하나? 이 정돈 당연한 건가.


“그게 질문이야?”

“네.”

“싱겁긴. 그럼 세수 한 번씩 하고 나가자고. 아, 잠깐. 물이 오염됐는지 먼저 살필게.”


우리는 계단을 올라, 난장판이 된 1층의 로비를 가로질러,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왔다.


“...허.”


그 순간 난 무슨 이세계 같은 곳에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전쟁터의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아니,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으니 전쟁터라고 할 수 있겠구나.


거리는 조용하고, 음산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정말이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이상하다.

군데군데 사람의 파편이 널브러져 있고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전부 깨졌으며 가로등이나 가로수, 차량은 개박살난 상태다.


빌딩 역시 무사하지 않았다. 거대한... 엄청나게 거대한 무언가 어루만지고 지나간 것 같았는데, 수십 미터 높이의 빌딩 표면 군데군데가 움푹 파여 있었다.


무엇보다 하늘이 피처럼 붉었다. 태양빛으로 저런 색이 날 수 있을까? 노을이 그나마 가깝긴 하지만 저럴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카퍼톤이 중얼거렸다.


“나글파르는 사라졌군. 개같은 새끼.”

“나글파르요?”

“요 근방에 떠있던 미친 비행선 말이야. 그나저나 ‘저런 색’일 때는 하늘을 너무 뚫어지게, 오랫동안 보지 마. 좋지 않을 수도 있어.”


그는 구체적으로 뭐가 좋지 않다는 건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초토화된 거리에 진입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2 ab******
    작성일
    24.09.05 22:23
    No. 1

    오… 그 뭐였지 괴이 관리하는 그런 조직들 관련된 세계관인가보네요.
    흥미진진해집니다

    찬성: 1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 월~토 20시 20분 24.08.23 134 0 -
25 24화. 물의 세계 NEW 13시간 전 68 9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99 14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23 12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39 10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58 12 14쪽
20 19화. 피난처(8) +1 24.09.11 164 14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66 14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182 12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198 16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00 11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07 15 14쪽
14 13화. 피난처(2) +2 24.09.04 220 16 14쪽
13 12화. 피난처 +2 24.09.03 226 15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35 16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35 17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56 16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60 18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59 15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277 15 12쪽
6 5화. 종단 24.08.26 316 15 14쪽
» 4화. 도래(4) +1 24.08.24 332 17 12쪽
4 3화. 도래(3) 24.08.23 367 18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04 18 13쪽
2 1화. 도래 24.08.21 532 20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16 24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