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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뉘

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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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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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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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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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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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화. 종단(3)

DUMMY

기이한 수류탄의 효과에서 멀쩡해지기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은 머릿속에 수류탄이 터질 때 났던 그 둥ㅡ하는 소리가 계속 떠다녔다. 뭔가를 말할 힘도 없어서, 그저 어두침침한 역사의 의자에 누워 멍하니 있었다.


카퍼톤은 옆에서 나름의 휴식을 취하거나 뭔지 모를 장비들을 꺼내 살펴보거나 했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지하 강당에서 깨어났을 때만 해도 마치 그와 그의 조직이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점차 사라졌고, 지금은 국민이 위급 상황에서 으레 군인에게 가지는 그런 든든함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그가 우리를 데리고 나온 것부터가 친절을 베푼 것이었다. 거친 언행 때문에 거북하게 느껴졌을 뿐.


다만 우리가 기운을 차렸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내뱉은 건 냉정한 질책이었다.


“너희 내가 분명, 무조건 승강장으로 내려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자 가장 먼저 엄호사격에 나섰던 이다영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 와 저걸 따지고 들 줄은 몰랐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린 지시를 어긴 셈이었다. 카퍼톤은 분명 엄호사격 같은 건 시키지 않았다.


김한수가 조심스럽게 항변했다.


“하지만 저희가 거기서 나서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아졌을 거라고 보는데요.”

“얼씨구, 너 상명하복이 뭔지 몰라? 만약 아까 그 광신도 새끼가 시선, 혹은 손짓만으로 니들 머리를 돌아버리게 할 수 있었다면 어쩔 건데? 그럼 너희도 끝이고, 너희가 총 들고 버티는 출구를 뚫어야 하는 나도 위험했어.”

“그건.”

“결과가 좋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 말하게? 괴이를 상대하는 일에서 그런 생각은 개인의 죽음이라는 가벼운 결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조직에서는 옳든 아니든 개인의 판단을 내세우면 안 되는 때가 있었다. 그게 지금처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우리 셋은 완전히 풀이 죽었다. 감사인사는 아니더라도 최소 잘했다는 칭찬이라도 들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피식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김한수나 이다영은 아니었으니 바이저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 카퍼톤이 분명했다.


“흠, 너무 진지했나?”

“......?”

“내가 한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거지. 일반인들이 어떻게 알고 행동하겠어. 안 그래?”


순간 살짝 짜증이 치밀었다. 김한수와 이다영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오, 표정들이 무서운데. 총으로 쏘겠다? 일단 아까 살려줘서 고마워. 사실 속으로는 너희가 도와주길 바랐거든. 근데 출발 전에 지시한 게 있어서 곤란했어. 말 바꾸면 가오 빠지잖아.”


...일단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했구나.


“그래도 지시에 철저히 따르라는 말은 진짜야. 아까는 상황이 생각보다 더 개같았던 게 문제지. 그 새끼... 그런 게 튀어나올 줄 몰랐거든.”


이다영이 용기를 냈다. 목소리에 무려 조금이지만 비꼬는 기색이 섞였다.


“알겠어요. 다음에는 무조건 지시에 따를게요.”

“허, 말투 뭐냐? 어이가 없네.”


어쨌든,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로 인한 혼란과 다급함은 한 시간 정도 누워있는 동안 어느 정도 사라졌다.


물론 총을 쏜 감각과 피를 흩뿌리며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불쑥불쑥 떠올랐다. 아마 잊는 데 긴 시간, 어쩌면 평생이 걸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의식적으로 생각을 돌리려 애썼다.


“그나저나 여긴 정말 조용하네요. 고작해야 몇 층 내려왔을 뿐인데, 광신도들이 지하철역을 이렇게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글쎄, 그건 내려가서 한 번 봐야겠지.”


그 말은 조금 불길했다.


이 아래에 뭔가 있단 뜻처럼 들리는데. 어쩌면 광신도들이 출입을 꺼릴 정도의 무언가가.


그러나 카퍼톤은 설명할 맘이 없는 것 같았다.


5호선이 보통 그렇지만 마포역은 유독 깊었다. 불이 모두 나간 상태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내려갈수록, 어떤 퀴퀴한 냄새가 났다. 지하 특유의 냄새와는 조금 달랐다.


잠시 후 우리는 승강장에 도착했다.


내심 긴장했지만 승강장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괴물뿐만 아니라 수상쩍은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고 판단할 흔적 자체가 드물었다. 그냥, 깨끗하고 조용했다.


승강장을 대충 둘러본 카퍼톤이 말했다.


“저기 스크린도어가 열려있어. 누가 우리처럼 이동한 모양이야.”


딱히 그런 소식이 반갑거나 하지는 않았다. 굳이 선로를 따라 이동했다면 일반인일 가능성이 크지만, 광신도들 때문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다.


카퍼톤은 여의나루역 방향 통로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 손에는 나침반인지 회중시계인지 모를 어떤 이상한 기기가 들려있었다. 무언가를 측정하는 것 같았다. 이후 소화전에서 소화 호스를 꺼내더니 그걸 밧줄처럼 써서 우리 허리를 서로 묶게 했다.


“이건 왜요?”

“통로 안에는 빛이 없으니까.”

“저기 휴대용 비상조명등 있는데요.”

“나도 눈 달려 있다. 저걸 쓰지 않을 거니까 그렇지.”


...선로 안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준비를 마친 뒤 카퍼톤은 선로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소리가 났다.


풍덩, 철퍽!


어두워서 미처 몰랐지만, 선로에 물이 차있었다. 그것도 무려 허벅지 정도까지.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맡은 이상한 냄새는 바로 물 비린내였던 것이다.


김한수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 위가 한강이잖아요. 물이 샌다는 건.”

“그걸 알면 서둘러야겠지? 잔말 말고 내려와.”


어쩔 수 없다.


철퍽, 철퍽!


물은 정말 시리게 차가웠다. 허벅지 아래로 아예 감각이 사라진 것 같다.


우리는 1자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대열은 카퍼톤 > 나 > 김한수 > 이다영의 순이다.


카퍼톤을 제외하면 아무도 어둠을 꿰뚫어볼 수 없었기에 의지할 건 허리에 묶은, 앞사람과 연결된 소화 호스뿐이었다.


철퍽, 철퍽.


조용한 가운데 물소리가 퍼져나갔다. 우리로선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통로에선 시간의 흐름을 알기가 정말 힘들었다.


앞도 보이지 않고 한 마디 말도 없으며, 물 때문에 움직임은 굼떴다. 다행인 건 허벅지 부근에서 물이 더 차오르지는 않고 있다는 거였다.


카퍼톤이 말하기로 마포역과 여의나루역 사이의 거리는 2킬로미터 정도라고 했다. 상당한 거리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30분은 걸릴 거리. 지금이라면 그보다 지체될 것이다. 40분? 50분?


지금 우리는 몇 분이나 왔을까. 휴대폰은 전원을 끈 뒤 가방 깊은 곳에 처박아 놓은 상태라 그저 머릿속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때였다.


갑자기 후방에서 거의 흐느끼는 듯한 경악성과 함께 격렬하게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흐읍...!”


소리의 주인은 이다영이었다. 어떻게든 비명이 터지려는 걸 참은 결과 괴상한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김한수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바, 방금 뭔가가 다리를 건드렸어. 뱀 같은 거였어! 뱀이 있다고!”


등골이 싸늘해졌다.


카퍼톤은 비명을 지르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았다. 뱀과 접촉한 게 이다영이 아니라 나였더라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카퍼톤 역시 그걸 감안한 것 같았다.


“진정해. 그게 뭐였든지 이미 사라졌어. 게다가 뱀이라고 생각해 봐야 두려움만 커질 뿐이잖아. 차라리 쥐 같은 거라고 생각해.”

“쥐도 너무 싫은데요...!”

“네 취향은 관심 없으니 가기나 하자.”


이동이 재개됐다.


그런데 한 번 뱀이라는 존재를 의식하고 나니 모든 신경이 하반신에 집중됐다. 조금이라도 다리에 무언가가 걸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나 역시 매끈거리는 무언가가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김한수도 다르지 않았다. 이상한 신음성과, 연결된 허리끈이 때때로 발작적으로 흔들리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앞서 나아가는 카퍼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침착하고 꾸준하게 전진할 뿐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돌연 허리의 소방 호스가 뒤쪽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겨졌다.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풍덩, 첨벙!


“꺄아아아악...!!”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살려줘, 도와줘! 지금 뭔가가 내 다리를 잡았어!”

“뭐? 안 돼, 어디 있는 거지? 맞다, 허, 허리끈.”

“뭐야, 이거 대체 뭐야!!”


순간 내 정면에서 물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카퍼톤이 움직인 것이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이다영의 비명, 김한수의 당혹성이 복잡하게 얽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카퍼톤의 지시를 통해 어렴풋 짐작할 뿐이었다.


“얌전히, 가만히 있어! 이걸 잘라낼 테니까!”


직후 이다영이 있는 방향에서 생소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퀴이이익.”


...저게 뭔 소리지? 뭘 잘라낸 거야? 최소한 쥐는 아닌 것 같은데.


이다영은 거의 정신이 나간 것처럼 흐느꼈다.


“아으윽, 다리가, 다리가 너무 아파요. 제, 제 다리,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다리 어떻게 됐어?”

“카퍼톤, 불 킬 거예요. 키게 해주세요!”

“안 돼, 켜지 마. 내 지시에 따라.”

“내 다리...! 너무 아파. 흐으윽.”


김한수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그가 카퍼톤에게 소리쳤다.


“씨발, 걔는 내 여자친구라고!”


직후 어둠 속에서 불이 켜졌다. 마포역에서 챙겨 온 휴대용 비상조명등이었다.


비로소 어지러이 빛을 반사하는 검은 물결과, 카퍼톤이 들어올린 이다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다리 역시도.


“이, 이게 대체.”

“윽...”


김한수와 나 모두 침음을 삼켰다.


이다영의 다리는 어둠 속에서 멋대로 상상한 것처럼 잘려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표면이 작디작은 칼날 파편으로 뒤덮인 촉수가 그 다리를 감싸고 쥐어 짠 듯한 모습이었다.


직후 어둠 저편에서 들려온 소리들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어쩐지... 수면이 거칠어진 것 같았다.


“퀴이익...”

“끼이이이...!”


카퍼톤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등신 같은 새끼. 넌 나가서 보자. 네 여자친구는 네가 책임져. 네가 그렇게 바란 거니까.”


직후 그는 바이저의 어느 부분을 건드렸다. 그러자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명이 밝혀졌다. 더 이상 조심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듯싶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가 나아가던 앞쪽에 어느새 ‘그것들’ 여러 마리가 서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원래부터 저렇게 있던 걸 스쳐 지나왔던 건가.


놈들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문어? 불가사리? 식물? 그 모든 게 뒤섞인 것처럼 생겼는데, 거대한 불가사리 같은 게 꽃처럼 펼쳐졌고 그 아래 문어다리 같은 촉수의 다발이 줄기를 이루었다. 키는 2미터쯤 될 것 같다.


직감했다. 물속에서 우리 근처를 스치고 돌아다니고, 이다영의 다리를 저렇게 만든 게 저 촉수구나.


카퍼톤이 내게 말했다.


“가능하면 놈들의 머리, 저 불가사리처럼 생긴 부분을 쏴. 다른 부위는 의미 없어.”


퍼버버벅.


그의 총에서 섬광이 번쩍이자 저 앞에 있던 놈들의 머리가 순식간에 터졌다.


그러나 나는 이제 시작임을 알았다.


놈들이 죽으면서 공기 중으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그게 그것들을 자극한 것 같았다.


“끼이이이이.”

“퀘에에에에에엑!!”


아득한 곳에서 터져 나온 괴성과 함께 수면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카퍼톤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라는 지시는 필요 없었다. 내 몸 역시 이미 뛰고 있었다. 그 상태로, 총을 들어올렸다.


콰콰쾅!


통로여서 그런지 총성은 몇 배로 시끄러웠다. 거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괴물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온다.


이 통로는 얼마나 남았을까? 어쩌면, 다시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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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물의 세계 NEW 13시간 전 68 9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99 14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23 12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39 10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58 12 14쪽
20 19화. 피난처(8) +1 24.09.11 164 14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66 14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182 12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198 16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00 11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07 15 14쪽
14 13화. 피난처(2) +2 24.09.04 220 16 14쪽
13 12화. 피난처 +2 24.09.03 226 15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35 16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35 17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56 16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60 18 14쪽
» 7화. 종단(3) +1 24.08.28 260 15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277 15 12쪽
6 5화. 종단 24.08.26 316 15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32 17 12쪽
4 3화. 도래(3) 24.08.23 367 18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04 18 13쪽
2 1화. 도래 24.08.21 532 20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16 2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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