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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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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9 20:2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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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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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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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1화. 피난(2)

DUMMY

내가 속한 분대의 분대장, 박규민 하사 역시 부사관용 관사에 살았다.


난 그곳에 가본 적 있다. 별 건 아니고, 이전 3일 간의 격리가 끝난 뒤 그의 숙소에서 미적지근한 맥주를 마셨다. 우린 전우애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순하다.


군인이라는 신분, 나와의 친분, 그리고 사람 자체.


군대는 많은 걸 엿볼 수 있는 장소다. 박규민 하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은 목숨을 걸고 책임을 다하려 한 벌레 사건 때 증명된 거나 다름없었다. 분대원들에게 평이 좋은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형님과 누님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진무 형님은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덤덤하게 물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냐?”

[병사 식당 쪽이요. 관사가 그 근처예요.]

“바로 출발해야겠군.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 모두 위험해질 거야.”


이동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곳과는 다르게 병사 식당 쪽은 이런 저런 건물이 주변에 많았다. 사람도 많을 것이다. 즉, 보다 위험할 게 분명했다.


이런 내 생각은 불과 몇 분도 지나기 전에 현실로 드러났다.


탕! 타타탕!


도로를 달리는 우리 차량으로 돌연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솔 누님은 내 다급한 신호에 몸을 바짝 숙였고, 진무 형님은 그냥 속도를 높였다. 총알이 날아오든 말든 자신은 맞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광란의 질주 덕에 목적지에는 금세 도착했다. 우린 모두 총을 가지고 내렸다.


“카아아악!”


차 소리를 들은 듯, 건물에서 세 사람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각기 식칼과 몽둥이 따위를 들고 있었다.


저들끼리도 싸우고 있던 것 같았는데, 한 순간 합심해 우리를 향해 뛰어오는 광기가 그야말로 섬뜩했다. 하지만 무서운 거랑은 별개로 우리에겐 총이 있지.


타아앙!


“으아악, 아아아아악!!”


탕! 타앙!


“끄아아아아...”


허벅지를 맞은 세 사람이 순식간에 무력화됐다. 고통을 이길 수는 없는지 다리를 부여잡고 땅을 굴렀다.


진무 형님은 그걸로 충분치 않다고 여겼는지 지나치면서 힘껏 걷어찼다. 턱을 얻어맞은 그들이 의식을 잃고 널브러졌다.


박규민 하사를 찾기 위해 집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복도에 진입했을 때, 이미 그는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정확히는, 한 손에 빠루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중이었다. 밖으로 나오는 이웃 주민을 노리는 것 같았다.


그에게까지 총을 쏠 수는 없었다. 진무 형님이 물었다.


“저 사람이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를 갖고 있어서 부드럽게 제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형님은 그렇게 말하며 전면에 나섰다. 직후 하사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아아아아악!!”


그의 손에 들린 빠루가 위협적인 기세로 휘둘러졌다. 어찌나 빠른지 형님도 연신 물러났다.


이거... 안전하게 제압하려다가 오히려 우리가 당하는 거 아냐? 특히 형님이 다치면 그건 막대한 손해다.


난 슬그머니 총을 들어올렸다. 정말 웬만해선 쏘고 싶지 않지만 상황의 득실을 잘 따져야 했다.


그러나 내 불안은 괜한 것이었다.


빠루가 힘껏 휘둘러진 순간, 형님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파고들었다. 멱살과 팔을 잡고 대치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한 순간 하사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후우웅!


그리고ㅡ


콰아앙!


“크허억...!”


완벽하고도 위력적인 업어치기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무 형님은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하사의 몸을 뒤집더니, 한 팔을 뒤로 꺾었다.


난 재빨리 다가가 귀에 이어플러그를 꽂았다. 천천히, 조금씩 그의 얼굴에서 광기가 빠져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나, 난ㅡ”


혼란에 빠진 그를 위해 다시 한 차례 노트를 통한 소통과 짧은 설명의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걱정한 건 만에 하나 박규민 하사가 분대원들을 구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광기에 잠식된 상황에서도 기억은 있다는 게 형님의 증언이었다.

하사는 그 기억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대 내부의 상황,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우리에 대한 감사함을 무시하지 않았다. 순순히 부대 탈출에 동의한 것이다.


“...다만 탈출 전에 물자를 좀 더 챙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이나 식량, 그리고 무기도요.”


그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위험을 덜 감수해야 할 장소를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부대 외곽에 있는 경비 소대 두 곳의 무기고를 털었다. 얼마간의 식량도 챙겼다. 그 모든 것들을 실은 채 마침내 영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부대 내에도 한 차례 변화가 일어났다. 이 혼란을 일으킨 당사자는 이제 피가 흐를 만큼 흘렀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부대 내의 모든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던, 광기를 부추기는 쇳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대신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잘했어. 잘했어. 이 정도면 충분해.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구.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대연병장으로 집합해. 좀 더 본격적이고 짜릿한 걸 해볼 참이니까.]


그러자 사람들은 지금까지 목숨을 빼앗으며 싸운 게 거짓말인 것처럼 모든 분쟁 행위를 멈추었다. 이어 환희와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린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그 모습을 엿보았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 마디 말도 없이 줄지어 걸어갔다.


저들이 대연병장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저 목소리가 무엇을 계획 중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길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초병 두 명이 쓰러져 있는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나를 줄곧 괴롭히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는 부대에서 약 10분 정도를 더 달려 어느 길가에 차를 댔다. 그제야 이어플러그를 빼게 했다.


차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각자 생각이 많을 것이다. 나도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더하겠지.

한참 후에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내 설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궁금한 거 있으면 그냥 물어보세요. 다만,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어렴풋하게 추측할 뿐이에요.”


박규민 하사가 즉답했다.


“추측이라도 좋습니다. 제겐 뭐라도 이유가 필요합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심지어 저는 사람을 해쳤습니다. 재희 씨가 절 도우러 오기 전... 그 감각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어요. 내가 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왜? 단체로 돌아버리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는 거의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그건 하사님 잘못이 아니에요. 부대에 혼란이 퍼지기 전, 어떤 꼬마의 목소리를 들으셨을 거예요. 모든 게 그놈의 짓일 겁니다.”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말씀드렸듯 저도 잘 몰라요. 저 밖에 득실거리는 벌레나 좀비들 있잖아요. 그런 괴물들 중 하나라는 것만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진무 형님 차례였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 소리를 듣고도 멀쩡했던 거냐?”


난 고민 끝에 일부만 털어놓기로 했다.


정수나 특성 획득에 대한 건 사람들과 좀 더 신뢰가 쌓이고, 그들이 이 세상의 이상한 일들에 익숙해진 뒤 공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만약 공개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말이다.


“저도 멀쩡하진 않았어요. 듣는 내내 두통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았거든요.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관악산 피난처로 오는 동안, 일이 있어서 카퍼톤이 제게 어떤 약 같은 걸 먹였거든요. 그때 그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형님과 누님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박규민 하사는 카퍼톤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거기서 또 가지를 치듯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 밖에 돌아다니는 괴물들을 전담하는 비밀 조직이 있었다고요? 재희 씨가 관악산 피난처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 조직의 군인 덕분이었고?”

“예. 하지만 도착 직전에 헤어졌어요. 괴물들 때문에.”

“...상황이 이러니 믿을 수밖에 없군요. 제가 믿든 말든 아무 의미가 없기도 하고요.”


거기까지 말한 뒤, 박규민 하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늦었습니다만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이나 도움을 받았네요. 이걸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형님과 누님도 고개를 숙였다.


“나도 고맙다, 재희야.”

“정말 감사해요. 재희 씨.”

“전 그냥 전에 도움 받은 걸 갚았을 뿐이에요. 누님, 말씀 편히 하세요. 그리고 우리끼리 소개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래봐야 이름을 밝히는 것 정도겠지만, 어쨌든 통성명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관계를 다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한 배를 탄 셈이었다.


“임진무입니다. 뭘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전에 운동을 좀 했었고 나이는 스물아홉입니다.”

“오한솔이라고 합니다. 간호사고, 스물일곱이에요.”

“천재희입니다. 전역 후에 막 복학한 대학생이고, 스물다섯입니다.”

“어... 제가 제일 어리네요. 전 박규민입니다. 보시다시피 군인이고요. 스물넷입니다. 저한테도 반말하십쇼.”


누님의 성씨가 오라는 건 처음 알았다. 규민이의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는 것도.


이런 생각은 규민이도 한 것 같았다.


“재희 형, 저보다 나이 많았네요. 전 동갑 아니면 제가 형일 줄 알았는데.”

“네가 형이라고 하니까 되게 어색하네.”

“전 재희 씨라고 하는 게 더 입에 안 맞아요. 그나저나...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예요?”


형누님도 내게 시선을 보냈다. 마치 내 의견에 따르겠다는 것처럼.


물론, 내겐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틀림없이 위험을 동반할 것이었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와 함께 가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었다.


“다른 분들은 어쩌는 게 좋을 것 같으세요? 뭔가 개인적인 목적 같은 거 있나요? 어디를 꼭 가봐야 한다거나.”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일이면 아마 가족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내 경우, 부양해야 할 가족은 없다. 원래 혼자 살았어.”


형님의 대답에 한솔이 누님이 덧붙였다.


“나도 비슷해.”


짧게 답한 그녀는 입가에 쓴웃음이 맺혀 있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은 규민이 차례였다.


“저는 고향이 제주도라. 부모님이랑 동생이랑 다 거기 있습니다. 뭐, 걱정이야 되지만 거길 지금 갈 수는 없잖습니까.”


다시 진무 형님이 말했다.


“나는 널 도울 거야.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전에 널 구해줬다지만, 솔직히 내가 널 도운 것보다 오늘 네가 날 도운 게 훨씬 크다고 본다.”


한솔 누님과 규민이도 비슷한 답을 했다.


형님 말처럼, 사실 이런 상황에선 무언가 뚜렷한 목표를 가지기가 힘들었다. 따지자면 생존을 이어나가는 것 정도인데, 어디가 안전한지도 알 수 없고 뭘 하든 단체로 움직이는 게 나을 테니.


난 그간 망설였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전 가족이 인천에 있어요. 원래 관악산 피난처로 온 것도 인천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보려는 생각 때문이었고요.”


그러나 부대에 머물고, 병사로 차출되면서 조금 흐지부지된 감이 있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겁에 질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에 대한 염려는 분명 있지만 마음 한구석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을지도.


그러나 상황이 등을 떠밀었다. 군부대가 박살나는 꼴을 직접 목격한 지금, 더 이상 가족들이 어느 군인들의 비호 아래 안전하게 있을 거란 자기 위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전 인천으로 갈 겁니다. 거기도 틀림없이 뭔가 문제가 있을 거예요. 절 돕겠다고 하셨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셔도 당연히 이해합니다. 그런 걸 바라고 도와드린 게 아니니까요.”


돌아온 답변은 칼 같았다.


“그러냐? 그럼 당장 출발하자.”

“오빠 조금 쉬는 게 어때? 내가 운전할게.”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가장 늦게 합류한 게 저 아닙니까. 나머지 분들은 좀 쉬십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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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화. 물의 세계(3) NEW 7시간 전 42 7 12쪽
26 25화. 물의 세계(2) 24.09.18 86 11 14쪽
25 24화. 물의 세계 24.09.17 122 13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144 16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60 14 12쪽
» 21화. 피난(2) 24.09.13 171 12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91 14 14쪽
20 19화. 피난처(8) +2 24.09.11 191 15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97 15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213 14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229 18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32 13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37 17 14쪽
14 13화. 피난처(2) +3 24.09.04 256 17 14쪽
13 12화. 피난처 +3 24.09.03 259 17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72 18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65 19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87 17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88 19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90 16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308 16 12쪽
6 5화. 종단 24.08.26 348 16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69 18 12쪽
4 3화. 도래(3) 24.08.23 405 19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48 19 13쪽
2 1화. 도래 24.08.21 586 22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82 2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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