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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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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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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24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4.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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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그림 매매

DUMMY

명희와 준은 원탁으로 되돌아왔다.

“너희들 무얼 그렇게 속닥이는 거냐? 걔는 말문이 막혔다며?” 주인이 준을 가리키며 명희에게 물었다.

“얘는 저랑은 말이 통해요.” 명희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걔가 뭐라고 하더냐?”

“보고 그린 것처럼 여기저기 머뭇거린 흔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무어라고? 감히 묵연당에 걸린 그림이 위작이라고? 위작이 아니면 어쩔 것이냐?” 주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쩌긴요? 위작이 아니라도 사지는 않을 거예요. 별로 잘 그린 그림이 아니어서요.” 명희가 당돌하게 대꾸하자 준을 뺀 일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하하, 그렇지. 그림가게에서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사지 않으면 되지. 하하하.” 주인은 일그러졌던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기분 좋게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내실 안에 있던 일꾼도 주인의 웃음소리에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주인은 소매로 웃으며 눈물을 닦고 나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명희를 보았고, 그제야 일행들은 안도했다.

“북방에서 여기는 왜 왔느냐? 부모는 어디 있고?” 주인이 물었다.

명희와 일행은 그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숨기기가 힘들었고, 어색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저, 혹시 그림을 사시기도 합니까?” 승호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주인에게 물었다.

“아무 그림이나 사지는 않지.” 주인이 승호를 바라보지도 않고 내뱉었다.

“서문장(徐文長) 서위(徐謂)의 족자는 어떻습니까?”

“진품이라면 다른 데보다 값은 후하게 쳐줄 수 있지. 물론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을 아무렇게나 사지는 않지만 말이다.” 주인이 명희의 말을 흉내 내며 말했다.

“그 족자를 왜 팔아?” 명희가 승호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그림을 팔려면 한 번 가지고 와봐라.” 주인이 명희의 말을 무시하고 말한 후, 손가락으로 준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 아이도 다시 말을 하게 되면 데리고 와봐라.”

“예,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승호가 대화를 갈무리했다.

일행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족자는 왜 판다는 거야?” 명희가 묵연당에서 나와서 승호에게 물었다.

“아니, 좋은 그림을 팔면 안기 어르신이 직접 나오시지 않을까 해서요. 어차피 그림도 모르는 나한데 소중한 것도 아니고······” 승호는 말을 끌었다.

“안기 삼촌이 나오시면 좋기야 하지. 근데 그 족자 때문에 직접 나오실지는 모르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그 족자 거기 팔지 말고, 나한테 팔아.”

“뭐라고? 너 돈이 어디 있어?” 동희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있어!” 명희가 긍정했다가 말을 바꿨다. “아니, 없지만 나중에 갚으면 돼!”

“무슨 소리하는 거야? 좀 이상한데.”

“아니야, 아니야. 나중에 돈 있으면 내가 살 테니, 거기 팔지 말라는 거야.”

“알았어요. 아가씨께 드릴 테니 보관하세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야, 이건 그냥 빼앗는 거잖아!” 동희가 소리쳤다.

“아니야, 빼앗는 거. 그림 값은 조만간 줄 거라고. 나도 남의 것 함부로 원하는 사람 아니라고.” 명희가 항변했다.

“네가 돈이 어디서 나와서 그림 값을 준다는 거야? 으이그.”

“알았으니까 그만 해.” 명희가 말을 끊었다.

“준아, 이제부터는 조선말로 할 거야. 근데 옆에 사람들 있으면 조선말 하면 안 돼.” 동희가 준에게 다짐을 받았다.

“알았어.” 준이 짧게 대답했다.

“근데, 아까 그 〈계산행려도〉 보고 왜 그랬어?” 동희가 화제를 바꿨다.

“응? 그 그림이 〈계산행려도〉야?

“그래 맞아.”

“그건 그림 잘 그리는 큰 화원의 그림이야.”

“맞아, 그건 송나라 때 화원이 그렸지.”

“송나라?”

“그래, 육칠백년 전에 있었던 나라야.”

“어쨌든 그런 그림 아무나 못 그려.” 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 넌 괜찮았어?” 명희가 동희와 준의 대화에 끼어들어 물었다.

“아니, 나도 숨이 막혔지.”

“근데, 뭔 말 하려고 손짓발짓한 거야?”

“음, 거기 나뭇잎 사이에서 이런 글자를 봤어.” 준이 허공에 대고 글자를 그리며 말했다.

“뭐야, 범관이라고?”

“몰라. 그냥 그런 글자가 있었다니까.”

“내 손에다 다시 한 번 써봐.”

준이 동희의 손바닥 위에다 허공에 그렸던 글자를 다시 썼고, 명희도 그걸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정말인 것 같아. 제발에는 분명히 범관이 아닌 범중립(范中立)으로 써져 있었어. 범관이 그린 것도 모르는 준이 어떻게 범관이란 글자가 써져 있다고 하겠어?”

“맞아, 그러네.” 동희가 명희에게 동의하고 준에게 물었다. “준아, 정말 범관이란 글자를 봤어?”

“정말 봤다니까.”

“그런데, 그 그림은 범관이란 화원이 그린 게 맞아. 하지만, 그림에다 자기 이름을 적는 화원이 어디 있어?” 동희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왜 없어. 다 모르는 데다 적는 거지. 나도 아버지 따라 사진 그리는 것 도와주다가 수염에다 서명한 적도 있고, 옷 주름에다 서명한 적도 있다고. 하하하.” 준이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 그 때 글자 몰랐잖아? 근데 어떻게 서명한 거야?” 명희가 물었다.

“당연히 문맹이었지. 그래도 자기 이름은 쓸 줄 알았어.”

“그랬구나.” 명희가 수긍하고 동희에게 말했다. “준은 처음부터 〈계산행려도〉도 모르고 이걸 누가 그린지도 몰랐어. 이런 애가 못 본 걸 봤다고 하겠어?”

“그래. 우리 다시 거기 가보자. 안기 삼촌 당장 만나 뵙는 건 힘들 테고. 어쨌든 만나는 건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거기 주인이 범관이 서명한 걸 모른다면 이건 좋은 기회야.”

“그래, 맞아. 안기 삼촌도 그림 좋아하신다니까, 서명이 있다고 말하면 틀림없이 관심을 가지실 거야.” 명희가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시장에서 쌀과 땔감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명희는 동희 몰래 승호를 밖으로 불러냈다.

“아가씨, 족자 때문에 그러세요?” 승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 명희가 되물었다.

“아니오, 그냥···”

“자, 이거 집어넣어.” 명희는 은자를 꺼내 승호에게 주며 말했다.

“아니, 이거 어디서 났어요?” 승호는 받지 않고 깜짝 놀라 물었다.

“삼촌이 줬어.” 명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삼촌이요? 혹시 선주 말이에요?”

“그래. 아까는 오빠 있어서 말 안 했어. 그리고 앞으로도 오빠한테는 말하지 마.”

“아니 됐어요. 족자는 그냥 드릴게요.”

“오빠 말처럼 나를 약탈자 만들려고? 빨리 넣어둬.”

“아니··· 알았어요. 족자는 아가씨가 보관하시고, 은자도 조만간 돌려드릴게요.” 승호가 거절하려다 은자를 집어넣었다.

“은자를 왜 돌려줘? 그건 필요 없고, 그 족자는 내가 가질게.”

“예, 그러세요.”


승호가 일행들 몰래 세현을 밖으로 불러냈다.

“무슨 일이기에 밖으로 불러?” 세현이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으음··· 여기 혹시 내기바둑 두는 곳 있어?” 승호가 말을 끌다 물었다.

“그럼, 있지. 그건 왜? 너 바둑 둘 줄 알아?”

“둘 줄 알아.” 승호가 담백하게 대꾸했다.

“그럼 뭐해? 판돈이 없잖아?”

“아니, 있어.”

“그래, 있으면 가보자.” 세현은 돈의 출처를 묻지 않고 대꾸했다.

“지금 바로 가자고. 잠간만 여기서 기다려줘. 안에 가서 얘기 좀 하고 올게.” 승호는 말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세현은 밖에서 기다리다 승호가 나오자 그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해질녘 세현과 승호는 집으로 돌아왔다. 둘의 양손에는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세현이 탁자 위에 싸온 음식을 풀어놓았고, 승호는 남매와 준에게 비단옷을 내밀었다.

“맞는지 모르겠다. 만들어놓은 것 사왔거든. 어쨌든 양주에서 최고로 비싼 옷이야.” 세현이 승호 대신 말을 꺼냈다.

“이건 어디서 났어?” 동희가 승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샀어요.” 승호가 대답했다.

“돈이 어디서 나서 샀냐고?”

“훔친 것 아니야.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세현이 승호 대신 대꾸했다.

“어디서 났냐고?” 동희가 목소리를 높여 되물었다.

“소리는 왜 질러? 내기바둑 둬서 땄어.” 세현이 또 다시 승호 대신 대꾸했다.

동희는 입을 다물었다.

“이거 나 먹어?” 준이 사온 음식을 가리키며 한어로 물었다.

“그럼, 먹으라고 사온 건데. 많이 먹어.” 세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준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남매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너희들도 빨리 먹어.” 세현이 남매에게 권유했다.

“나 이 옷 안 입어.” 명희가 승호가 사준 옷을 앞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왜? 조선에서는 돈 있어도 양반이 아니면 좋은 옷 못 입는다며? 양주에서는 돈 있는데 이런 옷도 안 사 입으면 그게 이상한 거야. 아침에 봤지? 이 옷 입고 오늘 간 데 그러니까 묵연당에 다시 가봐. 대접이 다를 거야.” 세현이 대꾸했다.

“안 입는다고, 아버지께서 어떻게 계신지도 모르는데, 나는 비단옷이나 입고 다니라고?” 명희가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오늘 묵연당에서 너희들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주인에게 무시당하는 것 보고 승호가 꼭 사주고 싶다고 했어. 사양하지 말고 입어. 평소에는 안 입어도 묵연당에 가려면 입고 가.” 세현이 달래 듯 말했다.

“몰라.” 명희는 한 마디 내뱉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들은 자리에 남아 가버린 소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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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아버지 사진 22.04.13 165 5 11쪽
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3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 그림 매매 22.04.07 178 5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1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8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1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81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4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1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3 4 10쪽
37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2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29 체포 22.01.17 180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5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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