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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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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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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056

작성
22.03.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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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양주(揚州)

DUMMY

이틀 후, 새벽 일찍 출발한 왕휘의 배는 오전에 과주를 지나 양주에 들어섰다.

“삼촌, 저건 뭐야?” 명희가 왕휘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물었다.

“고민사(高旻寺)의 천중탑(天中塔).”

“저게 탑이라고? 팔각형으로 된 누각을 층층이 쌓아올린 것 같은데.” 명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맞아, 모두 칠 층으로 된 탑이야. 높이는 일백오십 자(尺) 정도 될 거야. 저 탑을 기준으로 양주성까지는 십 리 정도 남았으니, 거의 다 왔지.”

“일백오십 자라고? 저렇게 높은 건물은 처음이야! 저기 사람 들어갈 수 있어?”

“당연히 들어갈 수 있지. 강희제가 네 번째로 강남 순행(巡行) 왔을 때 저 탑 꼭대기에 올라서는 사방을 둘러보고 하늘에 오른 것 같다고 감탄하면서, ‘고민사’라는 절 이름을 하사했다더군.”

“그럼, 높을 고(高)에 하늘 민(旻)을 쓰는 거야?”

“맞아. 그리고 절 옆에는 행궁(行宮)도 있어.”

“황제가 북경에서 여기까지 순행을 왔다고?”

“그렇다니까. 지금의 옹정제는 한 번도 안 왔지만, 강희제는 여섯 번이나 왔었다고.”

“옹정이 낫네. 황제가 순행하면 막대한 비용도 문제지만 해당 지역 백성들도 고생이잖아? 그리고 행궁을 다른 용도로 쓰지 않고 비워두지?”

“그럼, 황제가 쓸 건물을 다른 용도로 어떻게 써?”

“그냥 비워놓지는 않을 거 아냐? 관리를 해줘야지. 이게 뭔 국고낭비야.”

“웬 나라 걱정이야?”

“어, 저것도 탑이야?” 명희는 대꾸하지 않고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맞아, 저건 문봉사(文峰寺)의 문봉탑(文峰塔)이야. 저기가 양주성 바로 남쪽이야, 저기가 보탑만(寶塔灣)인데 거기 나루에 우리 배를 댈 거야.”

“문봉사라고? 저기도 절이지? 성시(城市)에 뭔 절이 이렇게 많아?”

“절이 성시에 있어야지, 아니면 어디 있는데?”

“조선의 절은 산에 있어. 조선에서 불교는 사교(邪敎) 취급받고 중들은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

“으이그, 저거!” 동희는 ‘조선’이라는 말에 명희를 보며 한숨을 쉬고 이를 갈았다.


명희와 왕휘는 죽이 맞아 서로 조카 삼촌 했다.

명희는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혔고, 동희는 꾸짖었지만 명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휘는 명희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가슴 속의 비밀로 묻었다. 수중전에서 진 소녀에게 마음으로 승복했고, 말을 나누다보니 소녀가 좋아졌다.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장가가지 않은 것을, 명희 같은 딸 하나 낳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삼촌, 고민사랑 문봉사랑 다 가봤어?”

“문봉사는 가봤는데, 고민사는 자주 지나다녀도 한 번도 못 가봤어. 거긴 따로 배를 댈 일이 없으니까.”

“하긴 그렇겠네.”

“물건 싣고 하는 것 때문에 시간이 나면, 성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긴 했는데, 특별히 다른 곳은 가본 적이 없어.”

“운하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보지 않았어?”

“내 배는 장삿배라고, 여기서 이걸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그렇군, 하긴 이 배로 유람하러 운하 위를 돌아다니기는 그렇겠네.”

“맞아. 그런데 이번에 소금을 실으려면 한 이틀은 걸릴 거야. 명희야, 우리 홍교에 놀러갈까?”

“홍교가 어디야?”

“그래, 명희랑 준이 데리고 놀러갔다 오쇼.” 세현이 끼어들었다.

“너희들은 왜?” 왕휘가 세현에게 물었다.

“우리는 성에 들어가서 안기에 대해 알아보려고요.”

“그래, 우리끼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동희가 맞장구 치고 왕휘에게 말했다. “괜찮다면, 명희와 준이 데리고 놀다오쇼. 비용은 내가 대겠소.”

“비용은 됐어. 누가 너한테 비용 달랬어?” 왕휘가 못마땅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왜 화를 내셔? 오빠가 주면 내가 받을게.” 명희가 끼어들었다.

이때, 장사꾼 행색의 사내가 나루에서 왕휘를 부르며 팔을 저었다.

왕휘도 그에게 팔을 저으며 뱃사람들에게 나루에 배를 데라고 했다. 그러고는 나루에 내려 장사꾼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은 후 다시 배로 돌아왔다.

“이틀 후에 출발한다. 물건만 내려놓고 오늘은 마음껏 놀고, 내일 낮에 여기로 모여서 물건 싣자.” 왕휘는 말을 마치고 나서 뱃사람들에게 은자를 나누어주었다.

뱃사람들은 은자를 받아들고는 금세 건어물에 배에서 다 내리고 나서 흩어졌다.

“선주님, 같이 술 한 잔 안 하세요?” 삼이 뱃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고 물었다.

“어, 난 배를 빌려 홍교에 놀러갈 거야.”

“나 따라가면 안 돼요?”

“왜?”

“거기 털게(大閘蟹) 국수 맛있게 하는 데가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어서요.”

“털게는 가을에 먹어야지, 지금은 제철이 아니잖아? 그리고 성 안의 국수집에서 털게 국수 먹어봤잖아?”

“그건 그런데, 홍교에 취백원(翠白園)이라는 유명한 집이 있다고요. 그리고 홍교의 주루들은 성 안의 주루들이랑 다르니까 한 번 가봐야죠. 내가 홍교 쪽으로 가보자고 하면, 만날 음식이 거기서 거기니 그냥 성 안에서 먹자면서 안 가더니만, 오늘은 명희 데리고 거기 가면서 난 왜 안 데려가요?”

“알았어. 같이 가자.”

왕휘와 삼, 세현과 조선인들 모두 배에서 내렸다.

세현, 승호, 동희는 성안으로 들어갔고, 왕휘와 삼 그리고 명희와 준은 빌린 쾌속선을 탔다. 그들은 저녁 때 나루의 주루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양주의 물길은 초기에는 구 양주성의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수로인 시하(市河)가 주요 물길이었다. 후기에는 인구가 팽창하자 신 양주성을 개발하였는데, 이 때 신성시하(新城市河)라는 새로운 운하를 건설했다. 또한 양주성의 외곽을 흐르는 운하도 건설하여 성 전체를 감싸는 물길을 완성했다. 강희 말기에는 신성과 구성의 내외에 모든 수로가 개통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염업을 비롯하여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쾌속선은 구성의 서쪽의 물길로 길을 잡았다.

“얘들 다 가버리고, 이 배는 내가 저어야 하잖아?” 왕휘가 쾌속선에 올라타서 노를 잡으며 말했다.

“삼촌, 앉아계셔. 내가 저을게.” 명희가 왕휘가 잡은 노를 빼앗으며 말했다.

“수중전은 몰라도 뭔 노를 젓는다고, 쯧쯧.” 왕휘가 노를 내준 채 혀를 차며 앉았다.

“왼쪽 물길 따라 올라가면 되지?” 명희는 왕휘가 대답하기도 전에 노를 저었다.

“야, 이렇게 빨리 갈 필요 없어.”

“바다에서는 노를 저어도 표도 안 나더니만 여기선 힘 좀 쓰면 다르네.” 명희가 놀잇배 두 척을 단숨에 앞지르며 말했다.

“선주님, 쟤 뭡니까? 괴물이야?”

“아니, 내 조카!”

“쟤 때문에 장강 물을 드시더니만 이상해지신 거 아니에요?”

“맞아, 이상해진 것 같아. 쟤 보면 귀엽다니까.”


명희는 왕휘의 지시에 따라 양주성 서쪽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노를 저었다.

배는 양주성을 지나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붉은 난간을 두른 홍교가 양안을 연결하고 있었고, 제방에는 버드나무가 가득 심겨져 있었으며 술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은 원래 보장호(保障湖)라고 불리던 수서호(瘦西湖)란 지역이다. 물길 양쪽으로 원림(園林)들이 즐비했고, 양안을 연결하며 아래로 배가 다닐 수 있는 다리도 연이어 있었다.

왕휘는 홍교에 가려던 계획을 바꿔 평산당(平山堂)에 가기로 했고, 그래서 명희는 더 북쪽으로 노를 저었다.

송나라 구양수(歐陽修)가 양주 태수로 부임하여 양주의 서북쪽에 있는 촉강(蜀岡)의 구릉지에 평산당을 건축했다. 이후 몇 차례나 무너졌다가 재건했는데, 강희 연간에 다시 세웠고 딸린 건물들도 새로 지었다. 이곳은 주위의 호수를 비롯한 경관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장소이다.

평산당 아래쪽의 나루에는 운하의 제방을 따라 술집들이 즐비했고 유람 온 손님들로 붐볐다.

명희는 나루에 배를 댔고, 일행은 배에서 내려 평산당으로 향했다.

평산당의 대문 안에는 오래된 계수나무 일백여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일행은 돌을 쪼아 만든 계단을 따라 행춘대(行春臺)에 올랐다. 또 평산당 뒤쪽에 세워진 진상루(眞賞樓)도 둘러보았는데, 누대 위에는 송나라 인사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일행은 평산당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나루 쪽으로 다시 내려왔다.

삼은 일행을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여기저기 물어보고는 일행에게 돌아와 주루로 안내했다.

“평산어면관(平山魚麵館)이라, 생선 국수만 파는 데야?” 명희가 편액을 읽으며 물었다.

“야, 너 글 읽을 줄 알아?” 삼이 물었다.

“간단한 술안주도 팔 걸.” 왕휘가 명희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행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꽃게국수, 대합국수, 도미국수, 청어국수를 시켰고, 왕휘는 술과 안주로는 송화단(松花蛋), 건두부 냉채, 오이 무침을 시켰다.

“시킨 국수는 나누어서 전부 먹어보자고요.” 삼이 국수도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 다들 한 젓가락씩 먹어보자고. 근데 민물고기가 아니라 다 바닷고기네.” 왕휘가 삼의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우리가 가져다 도매로 파는 걸로 만들었을 거예요.”

“맞아, 근데 우린 싸게 파는데 국수 한 그릇이 뭐 이렇게 비싸?”

“맛있으니까 비싸겠죠?”

그 사이, 점소이가 안주와 술을 내왔다. 안주는 간단한 전채요리라 금세 나왔다.

왕휘가 술을 한 잔씩 따라주고, 일행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이 몇 순 돌자 점소이가 국수를 내왔고, 삼은 작은 국그릇 아홉 개와 국자를 달라고 했다.

꽃게국수에는 꽃게 한 마리가 통째로 얹어져 있었고, 대합국수는 대합이 푸짐하게 얹어져 있었고, 도미국수는 가시를 발라낸 도미 한 마리가 얹어져 있었고, 청어국수는 가시를 발라내고 간장에 조린 청어 한 마리가 얹어져 있었다. 국수 위에는 야채를 비롯한 일체의 다른 고명들은 하나도 없었고, 해당 해산물만 얹어져 있었다.

“냄새도 좋고 푸짐하네요. 비싼 만큼 값은 하네요.” 삼이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보기에 푸짐하니 그건 좋네. 맛도 좋겠지?” 왕휘가 말을 받았다.

“당연하지요. 꼭 먹어봐야 압니까? 냄새와 모양만으로도 최고인데요.”

그 사이, 점소이가 작은 국그릇을 가져와 삼 앞에 놓아두고 갔다.

삼은 국그릇마다 네 가지 국수를 나누어 담았다. 대합, 도미, 청어는 사등분을 하고, 꽃게도 게딱지도 뜯어내고 사등분을 해서 국수 위에 올렸다.

왕휘와 명희 그리고 준은 입맛을 다시다 젓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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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악몽 22.04.08 15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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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0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7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3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0 4 10쪽
37 포구 22.03.24 167 4 11쪽
36 변발 22.03.23 174 4 11쪽
35 탈출 22.03.22 168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8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1 5 11쪽
32 표류 22.01.20 177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69 6 11쪽
30 출항 22.01.18 177 4 11쪽
29 체포 22.01.17 178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7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2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3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3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8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4 5 12쪽
22 문맹 22.01.10 27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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