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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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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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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25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3.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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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묵향(墨香)

DUMMY

삼은 국물부터 음미하고 고명을 맛보고 나서 국수를 먹었다. 그러면서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고명도 맛있고 면발도 엄청 쫄깃하고 맛있네. 그리고 국물 맛은 다 다른데 각기 특유의 풍미가 있어.” 명희가 말을 꺼냈다.

“난 도미국수의 생강 맛이 좋다.” 삼이 국물을 마시고 말했다.

“생강 맛이 난다고? 난 모르겠는데.” 명희가 반신반의했다.

“향이 거의 안 날 정도로 넣었는데, 생선비린내도 잡아주고 연한 향이 풍미를 더해준다니까.”

“나도 생강 맛을 모르겠는데, 삼이가 넣었다면 맞을 거야.” 왕휘가 끼어들어 삼을 옹호했다.

“그런 맛을 알아낸다고? 역시 대단한 미각이야!” 명희가 삼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준은 국수를 먹으면서 ‘어버어버’거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삼촌, 우리 좀 나가서 돌아다니다 올게. 여기서 술 마시고 계셔.” 명희가 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왕휘에게 말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명희는 준에게 일어서서 나가자고 손짓했고, 준이 자리에서 일어서 명희를 따라 나갔다.

“안에서 말도 못하고 답답했지?” 명희가 밖으로 나와 소리를 낮춰 조선말을 했다.

“그러게. 삼만 없었어도 기회 봐서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서 너 바람 쐬라고 데리고 나온 거야.”

“고마워, 넌 역시 지기야. 야, 근데 국수 정말 맛있지 않았어?”

“그러게, 조선에서 먹던 메밀국수랑은 달리 면발을 밀가루로 반죽해서 그런지 쫄깃쫄깃하니 맛있더라고.”

“맞아, 끈기 없는 메밀국수랑은 다르지. 그리고 그 붉은 생선···”

“그거 도미야.”

“그래, 그 도미국수 국물 말이지, 연한 생강 향 때문에 더 시원하더라고.”

“뭐라고? 너 한어 알아듣는 거 아니야?”

“나도 이젠 조금씩 알아듣긴 하겠어.”

“그게 아니라, 너 국수집 안에서 삼이 한 말 알아들은 것 아니냐고?”

“야, 그걸 어떻게 알아들어? 그냥 간단한 ‘가자’ ‘먹자’ 뭐 이 정도는 알아듣겠다고.”

“대단한 인간들이야. 그 맛을 구별하다니. 아마 누구든 혼자만 말했다면 믿지 못 했을 거라고?”

“뭘 믿지 못 해?”

“삼촌이랑 나랑은 생강 맛을 몰랐거든, 근데 삼이 너랑 똑같은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너한테 국수집에서 한 얘기 알아들은 것 아니냐고 물은 거야?”

“그래? 넌 생강 맛 못 느꼈어?”

“그렇다니까. 넌 그림 그릴 때만 감각이 예민한 줄 알았는데, 미각도 예민하네.”

“그런가? 그래서 청나라에 와서는 혀가 행복한 느낌이 드는 건가?”

“푸흡, 혀가 행복한 느낌이라고?”

“그래! 조선에서는 맛있는 음식 거의 못 먹어봤다고.” 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야, 목소리 낮춰!”


명희와 준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방 뒤쪽의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여러 채의 인가를 발견했다.

“이 먹 냄새 너무 좋아.” 준이 냄새를 맡으며 말을 꺼냈다.

“어? 먹 냄새? 묵향(墨香) 말이야?”

“그래. 휘묵이야!”

“휘묵이라고? 휘주(徽州)에서 만든 묵? 너 휘묵을 써봤어?”

“그래. 송도에서 아버지 따라 사진 그리러 갔을 때, 그 상인 있잖아, 휘묵을 내놓고는 청나라에서 들여온 걸 비싸게 샀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그랬어? 휘묵이 귀하고 비싸긴 하지. 근데 지금, 무슨 묵향이 난다는 거야?”

“따라 와봐.” 준이 묵향을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너 개 코야? 미각에다 후각까지···” 명희가 준을 따라가며 말했다.

“다른 냄새는 몰라도 먹 냄새는 틀림없지.” 준이 대꾸하고 나서, 문이 열린 집 앞에 멈춰서 말했다. “여기야!”

준은 거기에 서서 고개를 들어 코를 세우고 눈을 감고 묵향을 음미했고, 명희도 묵향을 음미하려고 준의 동작을 따라했다.

“너희들 뭐하냐?” 집안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아니에요. 묵향 때문에···” 명희가 놀라서 눈을 뜨고는 엉겁결에 대꾸했다.

“허허, 묵향이라고? 얘들아, 이리 들어와 봐라!”

“들어가 보자.” 명희가 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준은 들어가자는 말에 놀랐지만 명희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중년사내가 방문을 열어놓고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 화구를 늘어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명희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준도 명희를 따라 한어로 인사를 했다.

“너희들 북방에서 온 것 같은데, 애들끼리 여기는 왜 왔어?” 중년사내는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얘가 휘묵 냄새가 난다고 하더니 그 묵향을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명희가 대답한 후 먹을 갈아놓은 벼루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휘묵 맞지요?”

“그래 휘묵 맞아. 그런데 이 묵향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예, 맞아요.”

“어어 어?” 준이 그려놓은 그림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쟤 왜 저래? 갑자기 벙어리가 된 거야?”

“그건 아닌데, 한어를 못 해요.”

“아까는 한어로 인사까지 했잖아? 너희들 어디서 왔어?”

“조선에서 왔어요.”

“조선에서 왔다고? 조선 사람이 표류했다 북경을 통해 귀환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양주를 이렇게 돌아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말이 안 되긴 하죠.”

“그래, 말이 안 된다니까! 게다가 조선 사람은 변발을 하지 않잖아?”

“얘 머리카락 자른 지는 열흘도 안 됐어요.”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중년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다 말을 이었다. “쟤 아까 그림 보고 싶다고 손짓한 것 아냐? 봐도 된다고 해.”

“그림 봐도 된다고 했어.” 명희가 대화의 일부만 조선말로 통역했다.

“우리말 써도 돼?” 준이 놀라며 물었다.

“그럴 것 같아.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잖아? 게다가 화가치고 나쁜 사람은 거의 없더라고, 성격 괴팍한 사람들은 많지만 말이야.” 명희가 흰소리를 하다가 못 알아듣는 중년사내를 보며 웃었다.

“여기 우리가 지나온 덴가?” 준이 먹이 아직 덜 마른 풍경화를 보며 물었다.

“모르겠는데.”

“얘야, 너희들끼리만 말하지 말고 나한테도 통역해줘.”

“예.” 명희가 대답하고 한어로 통역했다.

“양주를 머리에 그려놓고 그린 그림이지만, 실경(實景)은 아니야.” 중년사내가 통역을 듣고 준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붓질이 산뜻하면서도 우아해요. 그리고 먹빛도 윤이 나고 농담도 자연스러워요.” 준이 명희의 통역을 듣고 말했다.

“좋은 평가군. 쟤 그림 그릴 줄 알지?”

“그림만 그릴 줄 알아요. 다른 건 잘 못하고··· 물론, 그림은 잘 그리죠.” 명희가 대답하고 나서 낙관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 성함이 고상(高翔)이세요?”

“야, 어른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부르면 되나? 자가 봉강(鳳岡)이니 봉강 아저씨라고 불러.”

“예, 봉강 아저씨. 그림이 성기기는 하지만 담담하면서도 맑은 느낌이 들어요.” 명희가 공손히 말하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먹을 금처럼 아끼시네요.”

“허허, 몇 년 전에 김농(金農)이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허허허. 너도 그림 그릴 줄 아니?”

“아뇨, 베껴 그린 적은 많지만, 그건 그림 그리는 거랑은 다르죠.”

“그래도 그림을 볼 줄은 아는구나. 조선에서 온 그림을 아는 소년과 소녀라? 허허.”

“저는 앞으로 그림을 모을 거예요. 아저씨 그림도 모을 거고요.”

“야, 뭔 얘길 그렇게 계속하는 거야?” 준은 명희가 통역도 안 해주고 대화하자 끼어들었다.

명희가 대략적인 통역을 해주자 준이 고개를 끄떡였다.

“여기 양주에도 그림 좋아하는 조선인이 있지.” 고상이 명희가 통역을 마치자 말을 꺼냈다.

“예? 조선 사람이요?”

“그래, 안기라는 소금장사가 국보급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다니까.”

“예? 안기요?”

“아마도 할아버지가 청나라로 넘어왔다지. 이름이 안삼(安三)일 거야? 그가 당시 권력자였던 명주의 가인(家人)으로 천진에서 염상을 했고, 그게 삼 대째 이어지다가 몇 년 전에 손자인 안기가 천진에서 여기 양주로 이주해왔어. 그의 소장품을 보지만 못 했지만, 소장품에다 ‘조선인(朝鮮人)’이란 소장인(所藏印)을 찍는다고 하더라고. 황실 다음으로 많은 그림을 수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분명히 안기 맞지요? 안기, 안의주, 안녹촌, 안 총상이 분명하죠?” 명희는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너 어떻게 그 사람 자랑 호도 알아? 얼마 전에 조선에서 왔다며?”

“얘기하자면 길어요. 아저씨, 꼭 다시 찾아뵐게요.”

“왜 지금 가게?”

“예.” 명희는 짧게 대답하고 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기가 양주로 이주한 것이 확실하자 오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가게?”

“안기 아저씨 여기 있는 게 확실해. 오빠 찾아가야겠어.”

“왜? 무슨 소릴 들은 거야?”

“가면서 얘기해줄게.”

“안녕히 계세요.” 준이 서두르는 명희보다 앞서 한어로 인사를 했다.

“그래. 또 보자.” 고상이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안녕히 계세요.” 명희도 인사를 하고 준과 함께 고상의 집을 떠났다.


명희는 국수집으로 돌아오면서 준에게 고상과 나눈 대화를 설명해줬다.


“삼촌, 우리 가자.” 명희가 국수집에 들어서자마자 왕휘에게 말했다.

“야, 어디 갔다 왔어? 요 앞에 찾아봤는데 없던데.” 왕휘가 걱정의 긴장이 풀린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 편히 술 드시고 계시면 되지, 뭘 앞에까지 나가보고 하셨어? 어린애도 아니고 여기도 못 찾아올까봐?”

“으이그, 너 같은 딸 있었으면 내 속이 다 썩었을 거야?”

“그럴까? 우리 아버지도 속 다 썩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왕휘는 침울해지려는 명희를 달래려고 부정했다.

“아가씨, 선주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셨는데요.” 삼이 끼어들었다.

“뭔 아가씨야?” 명희는 호칭을 달리하는 삼에게 따지 듯 물었다.

“선주님께서 밖에 나가 걱정하시다 앞으로는 아가씨라고 부르라던데요.” 삼은 왕휘를 비꼬며 말했다.

“삼아, 도미국수 생강 맛은 너만 느낀 게 아냐?” 명희는 아버지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화제를 바꿨다.

“그래, 내가 생강 맛 난다고 했잖아? 어어, 근데 저 벙어리가 생강 맛 난다고 했어? 어떻게 말했어?” 삼이 준을 가리키며 말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맞아, 쟤가 그랬어. 쟤가 준이야. 그리고 쟤는 벙어리가 아니라 조선 사람이야. 앞으로는 쟤라고 하지 말고 준이라고 불러.” 명희가 엄숙하게 말했다.

“예, 아가씨.” 삼이 기가 꺾여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명희야, 왜 그래? 화났어?”

“아니, 그냥 아빠 보고 싶어서···” 명희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말을 끌었다.

“이거 마시고 가자.” 왕휘가 술을 마시고 일어섰다.

“삼촌, 남은 술 있으면 다 드시고 가셔.”

“그래? 방금 또 시켰는데 다 먹고 갈까?” 왕휘가 명희의 누그러진 말투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삼촌, 술 남은 거 가져가도 돼지?”

“어.”

“그럼 술 남은 거 가지고 돌아가자. 배에서 마시면 되잖아? 갈 때도 내가 노를 저을게.”

“그래.” 왕휘는 명희에게 대답하고 점소이를 불러 계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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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3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8 5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1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8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 묵향(墨香) 22.03.31 162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81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4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1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3 4 10쪽
37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2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29 체포 22.01.17 180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5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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