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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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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698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4.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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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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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묵연당(墨緣堂)

DUMMY

국수집 주인은 손님이 없어서 주방에 앉아 있었다.

“여기는 다른 데보다 훨씬 맛있었소.” 세현이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 손님, 맛을 아시는구먼. 양고기쌀국수 원조가 어딘지 아쇼?” 주인이 세현의 칭찬에 우쭐하며 물었다.

“귀주(貴州) 아니면 어디겠소? 근데 주인장 말하는 것 들어보니 거기 사람 아니오?”

“하하하, 손님 보는 눈이 있으시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바로 귀주 준의(遵義) 출신이요.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이게 가업이었소. 아버지와 형은 귀주에서 장사하시고, 난 여기 와서 장사한지 벌써 십 년이 넘었소.”

“어쩐지 다르다했더니, 정통 귀주의 맛이구먼.” 세현이 또 주인을 치켜세우고 나서 물었다. “근데 뭔가 빠진 것 같다고 했더니, 이 고추기름이구먼. 이건 왜 안 줬소?”

“이건 달라고 하면 주는 건데, 점소이가 안 물어봤소?”

“양 내장 추가할 거냐고 물어봐서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고추기름은 물어보지도 않았소.”

“야, 이놈아, 처음 오신 손님한테는 고추기름 물어보라고 했잖아?” 주인이 점원에게 소리치며 꾸짖었다.

“내가 안 물어봤나?” 점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우물거렸다.

“우리 고향에서는 무조건 고추기름을 넣어주는데, 여기 양주 사람들은 매운 것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따로 넣어주죠.”

“다음엔 점소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넣어달라고 하겠소. 그건 그렇고 이 골목은 뭐라고 부르오?” 세현이 화제를 바꿔 물었다.

“안가점항(安家店巷)이라고 하죠.”

“안가점항이요? 이 골목의 상점들이 모두 안기라는 분의 가게라는 말이요?”

“맞소. 골목입구의 가게들은 전부 그분이 운영하는 거요. 그 가게들에서도 많은 돈을 벌지만, 소금 장사로 버는 돈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할 거요. 양주에선 아마도 안대인이 가장 부자일 거요. 게다가 씀씀이도 장난이 아니죠.”

“이쪽 가게에는 가끔 나오시나요?”

“다른 가게들은 몰라도 묵연당(墨緣堂)이라는 그림가게에는 가끔 들르시죠. 안대인은 좋은 그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라고 하더군요. 또 그림이 마음에 들면 천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가끔 가다 그림 때문에 가게에 나오시는 것 같아요.”

“아 그래요. 고맙고, 다음에 또 오겠소. 여기 국수가 정말 맛있었소.”

세현은 국수 값을 물었고 동희가 돈을 지불했다. 그러고는 일행을 데리고 국수집을 나왔다.


“묵연당이라는 데에 가보자.” 세현이 국수집을 나서며 말했다.

“그래.” 세현에게 데면데면하던 동희가 세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묵연당이라고? 나 아까 여기 올 때, 골목입구 쪽에서 그 편액 봤어. 거기가 뭐하는 덴데, 왜 가려고?” 명희가 끼어들어 물었다.

“가면서 얘기해줄게. 우선 따라와.” 동희가 앞장섰다. 그러면서 국수집 주인이 해준 얘기를 전해주었다.

“그럼, 묵연당이란 데가 그림가게란 말이야? 이름이 ‘먹(墨)의 인연(緣)’이니 그림가게에는 잘 어울리네. 근데, 그 큰 건물이 가게라고? 조선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야.” 명희가 동희의 이야기를 듣고 혼잣말을 했다.

“왜, 조선은 어떤데?” 세현이 명희의 혼잣말을 받아 궁금한 듯 물었다.

“조선에서는 장사꾼이라면 아주 천하게 보거든요. 가게를 이렇게 지어놓고 장사를 한다면 나라에서도 난리가 날 거예요. 가게가 관청보다 크고 화려하잖아?”

“여기도 장사라면 천하게 여기지만, 돈 버는 것도 부끄러워하지는 않고 돈 쓰는 것도 거리끼지 않아. 그리고 명나라 유민들은 청나라에서 벼슬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장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군.” 명희가 고개를 끄떡였다.

“저기야.” 동희가 ‘묵연당(墨緣堂)’의 편액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편액은 높이 걸려 있었고 거대한 건물은 위압감을 주었다.

“손님을 오지 말라는 거야?” 명희가 위압감을 주는 그림가게를 논평했다.

“그렇긴 하네. 어쨌든 한 번 들어가 보자.” 동희가 명희의 말에 동의하면서 앞장섰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방 벽에는 고급스럽게 표구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림이 내뿜는 묵향이 그윽하게 풍겨왔다. 실내 중앙에는 원형탁자가 놓여있었고, 거기에는 비단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자금은 안기가 댔지만 이 중년남자가 묵연당을 운영하는 주인이었다. 주인은 일어서려다가 손님들의 행색을 보고 다시 앉았다.

“여기는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야.” 그는 다짜고짜 거만하게 내뱉으며 마시던 차를 들이켰다.

“그림 좀 보러왔소.” 세현은 이런 그림가게에는 처음 들어왔기에 당황했지만 당당한 어투로 말했다.

세현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천하게 컸지만, 비굴한 태도를 내면화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에게도 비굴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을 능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승호는 세현이 안기의 집 문지기들에게 굽실거렸던 걸 생각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림을 볼 줄은 아나?” 주인는 세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물었다.

“그럼 장님도 아닌데 못 볼 게 뭐가 있소?” 세현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럼 보거라.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함부로 만지지는 말고.” 주인는 세현의 당당한 태도에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두 그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빠, 이 그림 현재(玄宰)란 인장까지 찍혀 있는데, 모작인 것 같지 않아?” 명희가 긴 족자로 된 산수화를 살펴보다 물었다.

“현재가 동기창(董其昌)의 호였던가?” 동희가 물었다.

“아니, 동기창의 자야. 호는 사백(思白)과 향광거사(香光居士)로 쓰지.” 명희가 대꾸했다.

“그렇군.”

“근데, 절벽과 나무 모두 붓질이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것 같잖아?” 명희는 동의를 구하며 동희를 쳐다봤다.

“잘 모르겠는데··· 설마 이런 데서 모작을 걸어놓았겠어?”

주인는 차를 마시다 남매의 대화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 추레한 옷차림 때문에 관심도 없었던 남매를 주시했다.

“이런 데라도 모르면 걸어놓을 수도 있는 거지 뭐. 준이한테 물어봐야겠어.”

주인는 명희의 말을 듣고 인생을 찌푸렸지만, 남매는 그가 자신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걸 몰랐다.

명희는 준을 찾다가 반대편 벽에 걸린 그림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세현, 승호, 준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옮겨 그들이 바라보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돌산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고 있는 데도 숨이 막혔다.

그림은 길이가 칠 척 가량 되었고, 너비는 삼 척 정도로 컸다. 긴 족자로 표구되어 있었는데 그것까지 합치면 십 척이나 되는 대형 그림이었다. 맨 아랫부분이 바닥에서 삼 척 정도 높이에 있어서 그림은 한참 올려다보아야 했다. 그림 앞에 넋을 놓고 선 준은 말할 것도 없고 승호와 세현도 난쟁이 같았다. 그림은 그들 모두를 압도했다.

주인는 그림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처음 그 그림을 보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다 기절한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명희는 뒤에서 그림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동희도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명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닦아냈다.

“오빠, 말로만 듣던 범관(范寬)의 〈계산행려도〉 진본이야.” 명희는 족자의 상단의 오른쪽에 적힌 제발(題跋)을 보며 입을 열었다가 그것을 읽었다. “북송 범중립 계산행려도(北宋范中立溪山行旅圖) 동기창 관(董其昌款).”

동희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 하고 또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의 말은 듣지도 못한 것 같았다.

‘이 계집애 뭐야? 동기창 그림은 가짜라고 하지 않나, 또 〈계산행려도〉는 어떻게 아는 거야?’ 주인는 명희를 힐긋 보고는 앞에 선 세 사내에게 소리를 쳤다. “그만 봐!”

명희와 동희는 주인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지만 앞의 세 명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야, 너희가 가서 그만 보라고 해라.”

남매가 그들에게 가서 그만 보라고 하자 준은 고개를 돌렸고, 세현과 승호는 반응이 없자 몸을 흔들었다.

세현과 승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남매를 쳐다보았다.

준은 그림에 취해있지 않았다. 명희에게 그림을 가리키며 손짓발짓을 했다.

명희는 준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저 아이는 벙어리야? 그림에 대해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주인가 준에게 관심을 보이며 명희에게 물었다.

명희는 주인를 바라보았고 준은 여전히 그림을 가리키며 손짓발짓을 하고 있었다.

“걔 왜 그래? 그림이 왜 어때서?”

“얘가 요즘 놀란 일이 있어서 그런지 말문이 막혔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명희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너희들 이리 와봐라.” 주인가 외쳤다.

그들은 주인가 앉아 있는 원탁으로 다가갔다.

“서 있지 말고, 앉아라.” 주인가 그들에게 말하고 나서 내실(內室)에 대고 소리쳤다. “여기 차 좀 내와라.”

“예!” 일꾼이 대답을 하고 내실에서 잔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잔을 내려놓고 차를 손님들에게 따랐다. 손님들의 차림새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들어가 봐라.”

“예.” 일꾼이 대답하고 내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인가 손님들에게 손짓으로 차를 들라고 했다.

“넌 저 그림 보고 웬 손짓을 그렇게 한 거냐?” 주인는 준을 보며 물었다.

준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못 알아듣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계산행려도〉를 어떻게 아느냐?” 그는 준을 보며 고개를 내저으며 명희에게 물었다.

“저 그림을 축소해서 모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명희가 대답했다.

“저 그림은 축소 모본이 여러 점 있을 거야. 저건 진짜냐 가짜냐?”

“예?” 동희는 그의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해서 되물었다.

“네 동생이 아까 저쪽에 걸린 동기창 그림은 위작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는 명희를 가리키며 동희에게 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남매가 보았던 그림을 가리켰고, 일행은 모두 그의 손가락을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고개를 되돌려 마주한 그의 눈빛을 날카로웠다.

동희는 그 눈빛을 피해 머리를 조아렸고, 명희는 당돌한 눈빛으로 그의 눈빛을 받았다.

세현과 승호는 왜 이런 얘기가 오가는지 몰라 당혹스러워 그와 남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준은 아예 무슨 말인지 몰라 중년사내가 가리켰던 그림을 바라보았다.

“가짜 맞는 것 같아요.” 명희는 거리낌 없이 말하다 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올게요.”

명희는 준을 데리고 그림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준은 그림을 살펴보고 손짓을 하다가 명희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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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아버지 사진 22.04.13 165 5 11쪽
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3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7 5 10쪽
» 묵연당(墨緣堂) 22.04.06 171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8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3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2 4 10쪽
37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2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29 체포 22.01.17 180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5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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