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688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3.24 16:00
조회
168
추천
4
글자
11쪽

포구

DUMMY

가마가 돛단배를 세워놓은 곳에서 멈춰 섰다.

남매와 준은 멀리 떨어져 가마에서 내려 돛단배에 오르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현이 가마에서 내린 주인과 뛰어온 하인을 정박한 배 위로 안내했다.

주인이 배를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나서 손으로 배 이곳저곳을 만져가며 꼼꼼히 살폈다.

세현과 주인이 몇 마디 나누더니, 하인이 보따리를 펼쳐 세현에게 보여주었다.

세현이 고개를 끄떡이자, 하인이 돈주머니를 세현에게 건넸고, 주인은 품에서 종이쪼가리를 꺼내 세현에게 건넸다.

하인은 배에 남고, 주인은 가마를 타고 떠났다.


“어디 가서 밥부터 먹자.” 세현이 말했다.

“종이쪼가리 주던데 그건 뭐야?” 명희가 물었다.

“은표. 배가 마음에 들었나봐. 그래서 내가 흥정하면서 다른 데 알아보겠다고 했더니, 은표까지 꺼내주던데.”

“어? 은표가 뭐야?”

“흥정하려고 가져온 은자도 다 받았고, 은표도 받았다고.”

“그러니까 은표가 뭐냐고?”

“은표가 뭐냐고? 이거 몰라?” 세현이 은표를 꺼내 보여줬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정말 몰라? 조선에 이런 거 없어?” 세현이 고개를 흔들고 말을 이었다. “이걸 갖고 전장(錢莊)에 가면 은으로 바꿀 수 있다고.”

“뭐라는 거야?” 준이 못 알아듣고 답답해서 물었다.

동희가 통역했다.

“그런 거 상인들이 쓰는 거 아냐? 엽전을 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장사할 때마다 그때그때 돈은 주냐? 돈 주라는 증서 써주면 엽전을 수레에 싣고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잖아? 개성상인들은 그렇게 장사하는데.”

“준이 뭐라고 하는 거야?” 세현이 준을 보고 웃으며 명희에게 물었다.

명희가 통역했다.

“준이 말이 맞아. 너희는 몰랐어?”

“몰랐어. 근데 들어보니 그렇군.”

“이제 그만하고, 할 말 있으면 뭐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세현이 말을 접고 앞장섰다.

일행은 세현을 따라 포구 쪽으로 걸어갔다.


포구는 이미 정박한 배들로 붐볐고, 들어오는 배는 거의 없었다.

포구의 앞마당에 펼쳐졌던 난전(亂廛)은 파장 분위기였다.

어떤 상인들은 팔다 남은 생선을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놓고 좌판을 걷었다. 어떤 상인들은 염장을 하며 생선을 켜켜이 쌓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생선을 말리기 위해 내장을 땄다.

갈매기들은 떨어진 생선에 눈독을 들이며 포구를 선회했다.

포구 뒤쪽에는 술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일을 마친 어부들로 붐볐다.

세현이 술집 쪽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일행은 세현을 뒤따르며 살면서 처음 본 바닷가 어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동희가 좌판 앞을 지나며 엄지와 검지로 코를 움켜쥐었다.

“왜 비린내 때문에?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식욕이 돋는 것 같아.” 명희가 주위에 들리지 않게 소리를 낮춰 말했다.

“야, 사람들은 있는 데서는 조선말 쓰지 마.” 세현도 소리를 낮춰 말했다.

“알았어.” 명희가 한어로 대답했다.

“아참, 그리고 준이한테도 조선말 쓰지 말라고 말해줘.”

“알았어.” 명희가 대답하고 나서 준의 귀에 대고 세현의 말을 전했다.

준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은 가학루(駕鶴樓)라는 술집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방 한 칸을 골라 자리를 정하고, 일행들에게 앉으라고 했다.

곧이어 술집 심부름꾼이 따라 올라왔다.

“점소이(店小二), 술은 소흥주(紹興酒) 한 근을 데워 오고, 생선은 신선한 게 뭐 있어?” 세현이 술을 먼저 시켰다.

“생선이야 다 신선하죠. 새우랑 꽃게도 좋고요.”

“새우랑 꽃게는 쪄서 가져오고, 생선은 조기튀김, 병어조림, 홍소(紅燒)갈치, 무명조개야채볶음 그리고 가자미탕. 이것 말고 고기도 있으면 가져와.”

“예, 손님. 마침 동파육(東坡肉)이 방금 나왔으니 그것부터 내올게요.”

“그래, 그리고 술도 빨리 데워 와.” 세현이 문을 닫고 나가는 점소이의 등 뒤에다 소리쳤다.

“예,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점소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명희는 방문에서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포구가 한눈에 들어왔고, 그 뒤로는 고생 끝에 건너온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층으로 된 주루(酒樓)가 이렇게 생겼군.” 동희가 말을 꺼냈다.

“조선에는 이런 데 없어?” 세현이 물었다.

“없어. 소설에서만 봤어.” 동희가 대꾸했다.

“맞아, 사자교 아래 주루도 그랬어. 무송이 서문경을 이층에서 아래쪽 길거리로 던져서 형 무대의 복수를 했지. 이층이 아니었으면 길거리로 던져버렸다고 죽지는 않았겠지?” 명희가 맞장구를 쳤다.

“또 《수호전》 얘기군. 그 무송이 우리 동네 사람이지, 하하. 근데, 그게 사자교 아래 주루라고?” 세현이 물었다.

“내 기억엔 그런데··· 맞을 거야!”

“그래? 하긴 이야기꾼들마다 그 주루 이름이 다르긴 하지. 그러니까 소설에는 사자교 아래 주루라고 되어 있구먼.”

“그건 됐고, 이 술집 이름이 ‘가학루’던데, 학을 타고 왔다는 거야?” 명희가 물었다.

“맞아, 여동빈(呂洞賓)이 학을 타고 이곳에 네 번 왔다는 전설이 있어. 그래서 여기 지명도 여동빈의 ‘여(呂)’와 네 번의 ‘사(四)’를 따서 ‘여사(呂四)’라고 부르는 거야.”

“그렇군.” 동희와 명희가 동시에 대꾸했다.

승호는 준의 귀에 대고 세현과 남매의 대화를 통역해주었다.


점소이가 음식을 쟁반에 받쳐 들고 돌아왔다. 접시와 술잔 그리고 젓가락을 각자 앞에 놓아주고, 소흥주와 동파육은 가운데에 놓았다. 그러고는 문을 닫고 뛰어나갔다.

일행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돼지고기 조림에 군침을 흘렸다.

세현은 일어서 동파육을 집어 일행들의 접시에 덜어주고 나서 한 점을 자신의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김이 오르는 소흥주도 한 잔씩 따라주었다.

“자, 건배.” 세현이 두 손으로 잔을 감싸들고 외친 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상대가 볼 수 있도록 잔을 기울여 앞으로 내밀었다.

일행들도 얼떨결에 세현은 따라 술을 마셨다.

“나 술 처음 마셔보는데 맛있네. 이게 소흥주라고?” 명희가 물었다.

“그래, 소흥의 특산주야. 근데, 너 술 처음 마신다고? 그러면 조금만 마셔.” 세현이 대답했다.

준이 술잔을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여러 번 치켜세웠다.

“크크, 원숭이 같아!” 명희가 한어로 놀렸다.

승호가 귀에 대고 통역해주자, 준이 팔을 들어 올리며 눈을 부라렸다. 그런 준의 모습이 원숭이를 닮아서 모두들 크게 웃었다.

“이거 소고기랑은 완전 다른 맛이야. 기름지긴 한데,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너무 맛있어. 이거 돼지고기야?” 명희가 동파육을 한 입 베어 물고 나서 물었다.

“돼지고기 처음 먹어봐?” 세현이 되물었다.

“그건 아닌데, 조선에선 돼지 거의 안 키워.”

“그래?” 세현이 되묻다가 말을 이었다. “맞아, 여기서도 돼지는 습한 남방에서만 많이 키운다.”

준이 빈 접시를 가리키며, 또 다시 엄지손가락을 여러 번 치켜세웠다.

세현은 빙그레 웃으며 일어나 준의 접시에 동파육 한 점을 다시 덜어주었다.

준도 웃으며 고마움을 표하고, 검지로 빈 잔도 가리켰다.

세현은 빈 잔을 채워주고 준에게 술을 권했다.

준은 아까 세현이 하던 대로 두 손으로 잔을 감싸들고 술을 들이켠 후 잔을 기울여 앞으로 내밀었다.

“하하하, 형제,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하는군.” 세현이 건배를 하고 나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하하하!” 준이 승호의 통역을 듣고 나서 호쾌하며 웃으며 빈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하하!” 세현도 웃으며 잔을 채워주고 다시 건배를 했다.

그 때, 점소이 두 명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새우찜, 꽃게찜, 조기튀김, 병어조림, 홍소갈치, 무명조개야채볶음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여기 소흥주도 두 근 더 데워줘.” 세현이 푸짐하게 차려진 해물요리를 보며 술을 시켰다.

“예, 예. 금방 데워 드릴게요.” 점소이 하나가 대답하고 나서, 둘이 문을 닫고 나갔다.

“이런 음식들은 처음이야.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시켰어?” 명희가 푸짐한 음식을 보며 말했다.

“삼일을 굶더라도 먹을 땐 마음껏 먹어야지. 많이들 먹어라. 보름이 넘도록 따뜻한 음식 못 먹었을 텐데.” 세현이 대꾸했다.

“조기를 튀겨 먹어도 맛있네.” 동희가 말했다.

“갈치 조리법은 동파육이랑 비슷한 것 같아.” 명희가 한 마디 거들었다.

“조개도 이렇게 볶아 먹을 수 있군.” 동희가 덧붙였다.

준은 새우와 꽃게를 손으로 발라먹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승호는 해물요리를 맛보며 남매와 준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세현은 그런 승호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둘은 말없이 건배를 하고 술을 마셨고, 셋은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그 때, 점소이가 새로 시킨 술을 가져와서 놓고 나갔다.

“가자미탕은 있다 내려가서 달라고 할게. 이젠 올라올 필요 없어.” 세현이 되돌아가는 점소이의 등 뒤에 외쳤다.

“예, 예.” 점소이가 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탕은 왜 나중에 시켜?” 명희가 점소이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물었다.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탕을 마시지, 처음부터 탕을 마셔?” 세현이 되물었다.

“소설에 그런 것까지는 안 나온다고.” 명희가 볼멘소리를 했다.

“아버지께서 청나라에서는 탕은 맨 마지막에 먹는다고 말씀하셨잖아?” 동희가 끼어들었다.

“그래? 난 못 들었는데··· 오빠한테만 말씀하셨나보지?”

“그런가?”

“너희 아버지 역관이라고 했지? 우리나라 오신 적 있어?” 세현이 끼어들었다.

“우리 아버지, 몇 번이나 오셨었다고.” 명희가 자랑스럽게 대꾸하다가 갑자기 침울해졌다.

“너 갑자기 왜 그래?”

명희는 세현의 물음에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은 네 명의 남자들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명희는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술잔을 들었다.

남자 넷은 모두 술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명희는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을 흘렸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술을 마셨다.

남자들은 우는 소녀가 무서워 술을 마셨다.

술 두 근을 금세 마셔버렸다.

“점소이, 술 더 줘!” 세현이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위층 전체가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림과 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아버지 사진 22.04.13 165 5 11쪽
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3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7 5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0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7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3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2 4 10쪽
»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2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29 체포 22.01.17 179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4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