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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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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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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1.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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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도강(渡江)

DUMMY

말이 사라진지 열흘 남짓 지난 후, 주막의 중노미가 승호를 찾았다.

말과 함께 사라졌던 한현은 말 없이 주막으로 돌아왔다. 봉놋방 안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승호가 방에 들어서 절을 올리고 고개 숙인 채 자리에 앉았다.

한현은 승호에게 고개를 들라고 했다. 그러고는 화가가 그릴 대상을 살피듯이 승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으음.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어. 닮은 사람이 있다고.”

승호는 한현의 혼잣말이 자신을 다그치는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한현은 골똘히 뭔가 되짚어 보다가 승호에게 다시 고개를 들라고 했다.

“그래, 희수 형 젊었을 때랑 같잖아?”

승호는 아버지 이름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현은 그런 승호의 표정을 포착하고는 말 대신 술잔을 들었다. 잔을 입술에 붙이고 술잔을 빨며 승호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네 성이 장이냐?”

승호는 대답도 할 수 없었고 놀란 표정도 감출 수 없었다.

“희수 형 아들이 맞구먼. 하하, 너도 술 한 잔 받아라.” 한현은 미리 준비해 놓은 빈 잔을 승호에게 내밀었다.

승호는 어쩔 줄을 몰라 고개를 숙였고, 한현은 재촉하며 술잔을 들라고 했다. 승호가 마지못해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들자 술을 채워주었다.

한현은 들라고 손짓하고는 자신의 술을 마셨다.

승호는 멍하니 그냥 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시라니까. 마시고 나서 술 한 잔 따라봐라.” 한현이 술을 들라고 재촉했다.

“예, 알겠습니다.” 승호는 술 한 잔 따르라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술잔을 비우고 한현에게 술을 따랐다.

“희수 형 핏줄이라··· 어쨌든 이렇게 술도 받고 좋구나.” 한현은 승호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마시고 말을 이었다. “희수 형은?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 희수 형 서울 떠난 게 스무 해가 지난 것 같은데··· 형님 살아계시긴 한 거냐?

“모르겠습니다.”

“응? 모르겠다고? 그런데 너 어떻게 양호 형네 살고 있었던 거냐?”


승호는 변양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한현에게 들려주었다.

한현은 승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떡이기도 했고 간단한 질문도 했다. 승호가 말을 마치자 술 한 잔을 마시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랬구나. 양호 형은 나한테 한 번도 그런 얘기 안 했는데, 휴우. 사역원에서 가장 촉망받던 생도셨는데 이제는 생사조차 모르다니.” 한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아버지 다시 뵐 수 있을까? 살아계시긴 한 걸까?’ 승호는 터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삼키다 자신도 모르게 술잔에 손이 갔다.

“그래, 한 잔 마셔라.”

승호는 놀라서 잡았던 술잔을 놓으며 한현을 보았다.

한현은 부드러운 눈길로 마셔도 된다고 했다.

“너 은자 좀 가진 것 있냐?” 한현은 질문을 하며 눈길을 피해 술잔을 들고 고개를 젖혔다.

“예?” 승호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놀랐다.

“은자 좀 있냐고?”

“예, 있습니다.”

“그래? 그럼 융통 좀 해줄 수 있냐?”

“예,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진 것은 없고 집에 있습니다.”

“그러면 한 잔 마시고 집에 갔다오너라.”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거기서 바로 드리겠습니다.”

“아니다. 너 혼자 갔다오너라.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 그리고 동희한테는 알리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승호는 남은 술도 마시지 않고 대답하며 일어섰다.


말과 함께 사라졌던 한현이 승호가 내준 은과 함께 사라졌다.


한현이 은과 함께 사라진 후 또 닷새가 지났다.


삼월 이십일, 아침부터 개성은 말발굽 소리로 들썩였다.

기병들이 개성 유수영 앞으로 모여들었다.

개성 유수 심공(沈珙)이 갑옷을 입고 사열하기 위해 유수영의 문루 위에 올랐다.

기병들은 모두 왼쪽 허리에는 칼과 활을 차고, 오른쪽 허리에는 전통(箭筒)을 차고, 왼손에는 창을 들고 있었다. 삼백 기의 군병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섰다.

심공은 사열을 마치고 출격을 명하였다.

기병들은 나루로 이동하였다.

나루에는 조운선으로 쓰는 평저선이 늘어서 있었다.

조운선 위에는 세곡 대신 말들이 올라탔다.

무장한 삼백 기의 기병들은 그렇게 임진강을 건넜다.


승호, 동희와 명희, 준은 정자 위에서 기병들이 조운선을 타고 임진강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빠, 전쟁 난 거야?”

“몰라.”

“형, 서울에서 저런 기병 본 적 있어? 형 서울 사람이잖아?”

“없어.”

“그럼 넌 개성에 삼백 기나 되는 기병이 있는지 알고 있었어? 너 개성 사람이잖아?” 명희가 끼어들었다.

“아니, 몰랐지. 저 말들이 다 어디서 나온 거야? 우리 아버지 데려가신 말도 저기 있으려나?”

“말 얘기 하지 마!” 명희가 소리쳤다.

“나도 말 타고 싶다고. 화 좀 내지 말라고.”

“명희야, 너 조용히 해.”

“왜 나한테만 뭐라 하는 거야?”

“가만 있어봐. 저 기병들 어디로 가는 걸까?”

“임진강을 건넜으니 남으로 가겠지.” 명희가 말했다.

“남쪽이란 것, 누가 몰라. 남쪽 어디로 가는 건지 말이야.”

“우선 서울로 가지 않겠어? 근데 오빠, 아버지께선 별일 없으려나?”

“그러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제가 서울 한 번 갔다 올게요.” 승호가 나섰다.

“음, 지금 위험하지 않을까? 게다가 넌······”

“그래도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상황을 좀 파악해야죠.” 승호는 말을 끄는 동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따라 갈래. 위험하면 내가 도와주면 되잖아?” 준이 끼어들었다.

“애들 장난하니? 따라가면 도움이 아니라 짐이 될 거라고.” 명희가 핀잔을 줬다.

“아니라고, 도움 된다고. 난 지금까지 서울 한 번도 못 가봤다고. 가보고 싶어.”

“준아, 이번엔 안 돼!” 동희가 단호하게 잘라 말하고 덧붙였다. “다음에는 형이 꼭 데려갈게.”

“정말 가고 싶은데··· 알았어, 나중에 꼭 데려가야 돼.”

“그래, 꼭 데려갈게.” 동희는 준에게 다짐하고, 승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 출발할 거야?”

“오늘 오후에 출발할게요. 조운선이 철수해야 나룻배도 있을 거예요. 지금 당장은 나루에 가봤자 배도 없을 거예요. 그동안 갈 준비 좀 할게요.” 승호는 말을 마치고 정자에서 일어섰다.

“그래, 알았어. 먼저 가서 준비해.” 동희가 자리에서 일어선 승호의 말을 받았다.


승호는 조운선이 철수한 나루에서 배를 탔다.

“오늘은 공쳤구먼. 이게 뭔 난리야?” 사공은 손님 없이 배를 띄우며 투덜댔다.

“뱃삯은 넉넉히 드린다고 하지 않았소.” 승호가 사공을 달래고 물었다. “근데, 기병들은 어디로 간다고 하오?”

“청주가 역적들한테 함락됐다나? 그래서 서울 외곽 방어하라는 어명을 받았다던데. 나야 뭘 알겠소? 근데, 이 난리에 어딜 가시오?”

“파주요.”

“파주 사람이요?”

“여기 뱃삯을 먼저 드리겠소. 한 명 당 한 냥이니, 열 냥 드리겠소.” 승호는 더 이상 말 섞기가 싫어 봇짐에서 열 냥을 꺼내 사공에게 주었다.

“뭐 이렇게 많이······”

승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건너편 나루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배를 기다리는 손님이 있었다.


승호가 배에서 내렸다.

“건너가실 거요?” 사공이 나룻가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뒤에 올 사람 기다리고 있소. 난리 때문에 언제 올지 모르니, 이제 여기서는 그만 기다리고 앞쪽 주막에서 기다려야겠소. 참나, 나중에 그가 오면 배 타러 오리라.” 그는 사공에게 말하고 일어서 몸을 돌려 나루를 떠났다.

“조심해 가쇼.” 사공이 그와 승호에게 말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들었고, 승호는 넙죽 인사를 했다.


승호는 앞서가는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나루에서 멀어졌다.

“아저씨!” 승호는 사공이 보이지 않자 앞서가는 사내를 불렀다.

“그래, 승호야. 너 어떻게···” 그가 승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손돌이었다.

“오늘 기병들 도강하는 걸 보고, 서울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랬구나. 앞으로는 내가 올 테니, 넌 도련님이랑 아가씨 잘 챙겨. 다들 잘 계시지? 한 화원님과 그 집 도련님도 잘 계시고?”

“예. 근데···” 승호는 말을 끌며 한현이 끌고 간 말 얘기를 꺼낼까 고민했다.

“근데는 뭐야? 서울 상황도 복잡하니 숨기지 말고 말해봐.”

“아니, 그러니까··· 한 화원님이 말을 끌고 가셔서······”

“그래, 천천히 다 얘기해봐.”

승호는 도박 이야기와 말 끌고 간 이야기를 모두 옮겼다. 하지만 자신이 돈을 빌려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아, 어쩌나?” 손돌은 승호의 이야기에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 서울은 어떤데요?”

“닷새 전에 성문을 닫았다가 민심이 불안해하니 그 다음 날 성문을 열었지. 그렇지만 파수를 강화해서 통행하려면 힘들어. 어떨 때는 아무나 잡아들이더라. 그런 놈들도 뇌물 먹이면 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넌 잘 모르겠지만, 최 포도군관님이라고 계시는데, 그 분이 서대문은 관할이라서 어제 문제없이 나왔지.”

“예.” 승호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손돌이 수다스럽게 얘기하자 잠시라도 말을 끊으려고 짧게 말했다.

승호에게 손돌은 너무 불안해 보였다.

“그래, 어제 연풍에서 자고 오늘 나루에 나왔는데, 아침부터 기병들이, 그러니까 삼백 기나 되는 기병들이 도강을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

“예.”

“반군들이 청주를 점령했다고 하는데, 서울에서는 어제 밀풍군이 체포됐고, 사흘 전에는 김일경 아들과 목호룡 형을 처형했고··· 반군이 이겨서 서울을 점령해도 그전에 서울은 피바다가 될 거야. 자기들 망하기 전에 세상을 망치고 죽을 거라고. 이미 대규모 검거 작전이 펼쳐진 것 같기도 해. 어찌 될지 모르겠다, 승호야.”

“예. 근데,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승호는 곁말만 하는 손돌에게 핵심을 물었다.

“말 없어서 어쩌지?”

“예?”

“청나라로 망명하는 거말이야. 상황 안 좋아지면 떠나야 할지 모른다고.”

“월경(越境)하려면 우선 의주까지는 말이 있어야 하겠죠. 근데, 여기서 말을 어떻게 사야할지 모르겠네요.”

“지금 말을 어떻게 사? 말보다 배는 어떨까? 내가 가서 알아봐주면 좋으련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어쩌나?”

“제가 가서 알아볼게요.”

“그래, 네가 한 번 알아봐라. 청나라랑 밀무역하는 배들 있을 거야. 말 구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어. 경비가 삼엄한 국경을 몰래 넘는 것보다 뱃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물론 해난사고의 위험은 있지만. 어쨌든 한 번 알아봐라. 그리고 돌아가서 나 올 때까지는 서울로 오지 마. 일이 생기면 내가 올 테니까.”

“예, 알겠어요. 배는 가서 알아볼게요.”

“그래, 그리고 이것 가져가.” 손돌은 자기가 메고 있던 봇짐을 승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남들에게 부탁할 것 있으면, 은자는 아끼지 말고 써야 된다.”

“예.”

“잠깐!” 손돌은 소매와 품안을 뒤지며 말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엽전을 꺼냈다. “이것도 가져가.”

“돈 한 푼 없이 다 털어주면 어떡해요?” 승호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다 가져가.” 손돌은 손사래를 치는 손을 잡아 엽전을 쥐어주었다.

“그래도, 이건 가져가세요.”

“됐어, 연풍리 가면 마을사람들이 칙사 대접해준다니까.”

승호는 남매가 성묘하던 때를 떠올리며 손돌이 쥐어준 엽전을 품에 넣었다.

손돌과 승호는 자기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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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3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7 5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0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7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3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2 4 10쪽
37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2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29 체포 22.01.17 180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 도강(渡江) 22.01.13 245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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