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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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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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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96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4.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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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문지기

DUMMY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세 든 집에서 일어났다.

어제 계약을 마치고 저녁까지 먹고 들어온 터라 아침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은 나가서 사먹어야지. 그리고 돌아올 때는 음식 할 것도 좀 사오고.” 동희가 텅 빈 부엌을 보고 말했다.

“식재료 사온다고 누가 음식을 할 건데?” 명희가 대꾸했다.

“그것도 그러네. 그렇다고 매일 밖에서 사먹을 수도 없고···”

“배 타고 오면서 시간도 있었는데, 장삼한테 음식 만드는 것 좀 배워둘 걸 그랬어.”

“내가 밥은 할 줄 아니까 쌀 사다 밥은 해먹고, 찬은 밖에서 사다 먹어야지.” 세현이 끼어들었다.

“내가 삼이 음식 하는 것 봤으니, 한 번 해볼게.”

“야, 그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 동희가 명희에게 핀잔을 줬다.

“누가 쉽다고 했어? 한 번 해본다는 거지.”

“그만하고, 우선 안기의 저택부터 가보자고.” 세현이 남매의 말싸움을 끊었다.


그들은 동쪽 성벽 발치의 집에서 편익문까지 걸어왔다. 편익문 앞의 큰길을 따라 사 리 정도를 걸어 신지마교(臣止馬橋)를 지나자 안가항(安家巷)이 나왔다.

양주 사람들은 안기가 양주 최고의 부자라고 했다. 길 이름도 그의 성(姓)의 따서 안씨(安氏) 집안(家) 거리(巷)라고 했다. 광저문 뒤쪽의 공간의 거의 모두를 안기의 대저택과 원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안가항 말고는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없었다.

그들은 문을 찾기 위해 골목의 담을 따라 걷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집안에 산이 있는 건가, 산에다가 집을 지은 건가?” 명희는 담 밖으로 보이는 산 위의 누각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양주의 원림(園林)은 천하제일이라고 하지.” 세현이 명희의 말을 받았다.

“여기 와서 원림이란 말은 들어봤는데, 도대체 뭐야?” 명희가 물었다.

“인공으로 산도 만들고 숲도 만들고 연못도 만들어놓은 정원이지. 연못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그 파낸 흙으로 산을 만드는 거야. 거기에는 정자나 누각도 짓고 서재나 당(堂) 같은 건물도 만들지. 원래 원림에는 건물을 많이 짓지 않는데, 여기는 밖에서 보니 서쪽이 원림이고 동쪽에 저택이 따로 있는 것 같아.”

“안기 삼촌 원림을 보니 김흥방의 저택은 집도 아니야.”

“김흥방이 누구야?”

“조선의 재상.”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 동희가 말을 끊었다.

“앞으로 가면 문이 있을 거야. 거기로 한 번 가보자.”


거리 서남쪽으로 삼문(三門)이 있었는데, 정문의 높이는 한 길이 훌쩍 넘었다. 정문은 닫혀 있었고 동서 양쪽의 협문으로 사람들이 출입했다. 양쪽 협문 앞에는 문지기 몇 명이 긴 걸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들은 손짓발짓을 해가며 신이 나서 노닥거렸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세현은 일행에게 이르고는 문지기들에게 다가가서 굽실 인사를 건넸다.

“너 뭐야?” 문지기 중 하나가 고압적으로 물었다.

“저기, 말씀 좀 물읍시다.”

문지기들은 세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못들은 채 모두 고개를 돌렸다. 자기들끼리 또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에헴, 에헴, 으음.” 세현은 마른기침을 하며 시선을 끌었다.

“뭔데 여기서 이러는 거야?” 나이 많은 문지기가 세현에게 눈길을 주며 투덜댔다.

“아 예, 안대인(安大人)을 찾아뵈려고요. 말씀 좀 전해주셨으면 좋겠ㅅ.”

“얘 뭔 소릴 하는 거냐? 안대인을 찾아뵙고 싶단다. 하하.” 나이 많은 문지기가 비웃었다.

다른 문지기들도 일제히 세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비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노닥거렸다.

세현이 또 다시 마른기침을 했으나, 이제는 아무도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세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 앞에 계속 서있었다. 문지기들은 신경이 거슬렸는지 그에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세현은 그래도 계속 서있었다.

“명첩이라도 있어야 전해드릴 것 아니야? 다짜고짜 찾아와서 뭐 하는 거야?” 아까 말을 건 문지기가 세현을 흘겨보았다.

“명첩을 잃어버려서··· 그냥······” 세현은 말을 끌었다.

“아니, 지금은 명첩이 있어도 못 전해드리잖아요?” 다른 문지기가 끼어들어 동료들을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다.

동료들이 대답을 못 하고 어리둥절했다.

“어제 남경에 가셨으니 다음 달이나 돼야 돌아오실 거야. 지금은 빨리 가고 기다리려면 다음 달에 와서 기다려.” 그는 동료들이 말을 받지 못하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 그렇지. 잠시 깜빡했네.” 다른 문지기들도 그제야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셔? 고맙소. 그럼 이만 가보겠소.” 세현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조선인들은 세현과 문지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그들의 말은 들을 수 없었지만, 문지기들의 손짓을 보고 이미 거절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세현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뭐라고 그래?” 명희가 물었다.

“안 된다고 하지 뭘? 길거리에 서서 얘기하기도 그러니, 우선 뭘 좀 먹으러가자.”


그들은 광저문가 입구 건너편 거리로 향했다. 거기에는 고급 상점들이 즐비했다. 그 상점들을 지나 골목 끝 모퉁이에 있는 허름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출입구에 쳐진 발을 제치자 식탁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 전이라서 국수를 먹고 있는 손님은 둘밖에 없었다.

“다섯 그릇 다 드려요?” 점원이 자리를 잡고 앉자 다가와 물었다.

“점소이, 여기 무슨 국수 있어?” 세현이 물었다.

“양고기쌀국수(羊肉粉) 하나뿐이에요. 아, 그리고 양 곱창이나 내장은 추가할 수 있죠.”

“그래? 그럼 다섯 그릇 주고, 내장도 추가.”

“예,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세현은 국수가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조선인들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잠시 후, 점원이 국수 다섯 그릇을 내려놓고 갔다.

국수그릇에는 엷게 썬 양고기가 펼쳐져 있었고 가운데는 양 내장은 얹어져 있었다. 그 위에는 산초가루, 잘게 썬 실파와 고수가 얹어져 있었다. 고명 때문에 아래의 쌀국수는 보이지 않았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양고기 육수가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으이그, 또 고수야!” 동희가 인상을 쓰며 고수를 골라내 명희와 준에게 건져주었다.

“난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던데. 여기서 이걸 골라내면 음식을 어떻게 먹어?” 명희가 핀잔을 줬다.

“맛있으면 너나 많이 드셔.” 동희가 비꼬았다.

“알았어, 많이 먹을게.” 명희가 담백하게 대꾸하고 말을 이었다. “양고기도 처음이고 쌀국수도 처음이야.”

“맛있어!” 준이 한어로 말했다.

다들 깜짝 놀라 준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맛있다고, 먹어봐.” 준이 시선을 받으며 또 한어로 말했다.

명희가 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젓가락을 들었다.

“쌀국수가 이런 맛이구먼. 준이 말대로 맛있어. 양고기랑 내장도 맛있고.” 명희가 감탄했다.

“그러게. 여기가 다른 데보다 맛있게 하네.” 세현이 명희를 거들었다.

동희는 그들의 의견에 반대라도 하는 듯 젓가락을 놓았다.

“아침도 안 먹었는데, 더 드세요.” 승호가 동희에게 권했다.

동희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만 먹을 거면, 더 먹을 사람 줘.” 명희가 말한 후, 화제를 바꿔 세현에게 물었다. “아참, 아까는 어땠어? 들어가기 힘들지?”

“그런 ‘대가(大家)에 드나들자면 용궁에 드나드는 것처럼 어렵다’는 속담도 있어. 원래 문지기 하나 알지도 못하면서 가봤자 별 소용없는 일이었어.” 세현은 대꾸하고 국수를 먹었다.

“그럼 앞으로 어떡해? 은자를 쥐어주면 어떨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아는 문지기가 있을 때나 통하지. 아니면 안에는 기별도 안 하고 은자만 먹어치우기도 해. 앞으로 뭔 기회가 있겠지?”

“근데 문지기들은 뭐래? 아까 뭐라고 서로 대화하더구먼.”

“그 놈들 안기가 남경에 갔다는 헛소리를 하더군. 한 달 후에나 온대나. 문고리권력밖에 안 되는 놈들이 그것도 권력이라고 자기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니까. 다 패버리고 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고······”

“우리 얘기를 해보면 안 될까?”

“참나, 이 아가씨야. 후우.” 세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웬 한숨이야?”

“표류한 사람들은 원래 그 지역의 해당 관아에 신고하게 되어 있어. 그런 후에 절차를 밟아 본국으로 송환하게 되지. 그런데, 문지기 놈들에게 너희들이 조선에서 왔다고 얘기하라고. 아마도 돈을 뜯어내려고 관아에 고발하겠다고 협박이나 당할 거야. 너희들은 지금 불법체류자들이라고. 어쨌든 안기가 너희 아버지 친구라고 하셨다니 그를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 어떻게 만날지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너희들도 생각해봐.”

세현의 말에 남매와 승호는 생각에 잠겼고, 준은 젓가락으로 남은 국물에서 국수를 찾고 있었다.

“형, 나 먹어 이거?” 준이 어색한 한어로 동희의 국수그릇을 가리켰다.

동희는 대꾸 없이 자신의 국수그릇을 준 앞으로 밀어주었다.

“고마워, 형.” 준은 한어로 말했다.

“준아 너 그렇게 한어 쓰는 게 더 어색해. 웬만하면 쓰지 마.” 세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명희가 국수를 먹고 있는 준의 귀에 대고 통역을 해주었고, 준은 세현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승호는 국수를 휘휘 저으며 몇 젓가락 뜬 후에 그릇을 앞으로 밀어놓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잃어버린 편지 때문에 입맛이 없었다. 오늘 문지기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세현을 보며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앞으로 어떡해야할지 걱정이었다.

동희도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고, 명희도 반쯤 먹던 국수그릇 위에 젓가락을 얹어놓았다.

“기죽을 거 없어. 죽은 사람도 아니고 산 사람인데 못 만나겠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세현이 풀이 죽은 남매와 승호를 달랬다.

“내가 편지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승호가 가슴을 쳤다.

“제발 그 얘기 좀 그만해. 제발이야.” 명희가 이를 갈며 말했다.

“더 안 먹을 거야? 그만 갈까?” 세현이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동희가 고개를 끄떡이며 따라 일어섰다.

“가게?” 준이 동희가 남긴 국수를 먹다 고개를 들어 물었다.

“천천히 마저 먹어.” 세현이 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계산하자.” 동희가 세현에게 말했다.

“먹고 있어. 계산하고 올게.” 세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준에게 말했다.

세현은 점원을 부르지 않고, 동희를 데리고 주방에 있는 주인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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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3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7 5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0 4 11쪽
» 문지기 22.04.05 168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3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2 4 10쪽
37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2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29 체포 22.01.17 180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5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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