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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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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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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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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1.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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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자상(刺傷)

DUMMY

기생 둘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나는 상을 들고, 다른 하나는 항아리를 들고 있었다.

상을 든 기생이 상을 내려놓자 숯불에 구운 소고기 냄새가 식욕을 북돋았다.

“이거 설야멱이야? 염통이구먼.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거냐?” 투전꾼이 호들갑을 떨었다.

“염통 먼저 드시고 계세요. 등심은 지금 굽고 있으니 좀 있다 올릴 게요.” 기생이 말을 받았다.

항아리를 들고 온 기생이 항아리를 내려놓고 화선지로 봉해놓은 봉인을 떼었다. 그러자 인삼주의 향기가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뭐야? 인삼주까지!” 투전꾼들 모두 놀라며 입맛을 다셨다.

“하하하, 내가 근사하게 한턱낸다고 하지 않았소? 하하하, 어서 드시오.” 진후가 자부하며 말했다.

기생이 항아리의 인삼주를 술병에 옮겨 따른 후 잔마다 술을 쳤다.

투전꾼들은 상으로 모여들어 인삼주를 마셨다.

“근데 이 염통 꼬치구이를 설야멱이라고 하오? 맛있구먼.” 진후가 술은 마시고 안주를 집어먹고 물었다.

“소고기 꼬치구이지, 고기뿐만 아니라 내장인 염통이나 양도 설야멱이라고 하지. 설야는 눈 오는 밤이고, 멱은 뭐냐? 찾다 혹은 구하다. 그러니까 설야멱은 눈 오는 날 찾는 음식이지.” 흰 수염이 한자 풀이를 하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숯불에 반쯤 익으면 찬물에 담갔다가 다시 굽기 때문에 이렇게 부드러운 거죠. 여기 서울에서 오신 손님 계시죠? 이게 원래 고려 때 서울 음식이라고요. 그 때는 여기 송도가 서울이었으니까요.” 기생 하나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어쨌든 맛있구먼. 이거 벌써 거의 다 먹었네. 안주 끊이지 않게 넉넉히 내오라고.” 진후가 기생에게 은자를 쥐어주며 말했다.

“그럼요. 지금 등심도 굽고 있다고요. 나가서 바로 올릴게요. 그리고 농어도 두 마리 찌고 있으니 그것도 다 되면 올릴게요. 호호호.” 기생이 눈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송도 인삼하면 최고 아니겠어요? 호호, 한 잔 드세요.” 다른 기생이 진후에게 술을 치며 눈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래. 인삼주도 아주 좋구먼. 술도 떨어지면 끊이지 않게 내오라고.” 진후가 그녀에게도 은자를 쥐어주며 말했다.

“그럼요. 손님 통도 크네요. 호호호, 이 비싼 술과 안주를 끊이지 않게 내오라고 하시는 걸 보니.”


모두들 게걸스럽게 먹고 마셨다.


승호는 인삼주 세 잔을 마시자 온몸에 열이 올랐다. 인삼주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기기 위해 집중력을 모두 쏟아 부은 탓이었다. 졸음이 밀려들었지만 눈을 비비며 참았다. 그러다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승호야, 저기 가서 누워 자!” 진후가 승호를 깨우며 말했다.

승호는 눈을 껌벅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진후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하품을 했다.

“그래, 승호야, 가서 눈 좀 붙여라.” 한현이 옆에서 거들었다.

승호는 사양하려다 술상을 정리하고 투전판을 벌이려는 것을 보고 방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노름꾼들은 술에 취해 달아올랐고, 투전판은 돈에 취해 달아올랐다.

진후가 빠르게 판돈을 올렸고, 노름꾼들도 뒤따랐다.

투전판에는 엽전꾸러미와 은괴가 수북이 깔려 있었다.


“잠깐, 이거 너무 심하잖아? 아까부터 눈치를 줬으면 그만 해야지. 이 새끼들 말을 안 했더니만 계속 뭐야? 엉!” 진후가 소리쳤다.

“갑자기 웬 지랄이야? 내가 뭘 어쨌다고? 엉!” 투전꾼 하나가 맞대응하며 소리쳤다.

“지랄하네, 이건 도둑놈이 큰 소리야. 엉!” 진후가 뺨의 상처를 진하게 만들며 인상을 썼다.

“이 왈짜 놈, 어디 외지에서 와서 지랄하나?” 다른 투전꾼이 끼어들며 소리쳤다.

“그래, 너희 두 놈 어디서 손장난을 쳐? 누굴 호구로 보냐?” 진후는 자신에게 소리친 두 명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 사람들 왜 이러나?” 흰 수염이 끼어들어 중재했다.

“그러게, 왜들 그래?” 한현도 옆에서 거들었다.

털보가 소리친 투전꾼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힘을 주어 팔목을 흔들었다. 소매에서 숨겨놓은 투전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네 팔목도 털어주렴? 이 새끼야!” 진후가 다른 투전꾼에게도 소리쳤다.

“이게 뭐야? 속임수잖아? 이러면 안 되지!” 한현이 떨어진 투전목을 집어 들고 흔들며 말했다.

“서울에서도 너희처럼 손장난하는 놈의 모가지 베고 여기로 도망쳐왔더니만, 여기서도 또? 이게 뭐냐? 하하하.” 진후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승호는 고함소리에 잠이 깨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방구석의 사내가 오늘은 진후의 돈 털어버리겠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 때 방구석에 누워 있던 사내 세 명 중 두 명이 투전판에 끼어 진후와 말다툼을 했고, 남은 한 명은 승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승호의 옆에 앉아 있던 그가 단검을 빼들었다.

승호는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다 칼에 어깨를 찔렸다. 비명을 질렀다.

그는 승호의 어깨에서 칼을 뽑아 진후에게 달려들었다.

승호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뒹굴었다.


투전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승호의 비명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 투전판에 앉아 있던 세 명이 칼을 뽑아들었다.

한현과 흰 수염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험악한 분위기에 겁에 질렸다.

“이 새끼들 아주 작정을 했군. 어디서 칼질까지, 엉!” 진후가 포효하며 일어서다 정만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정만아, 승호 챙겨라. 빨리 의원에 데려가.”

“형님, 혼자서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싸움엔 내가 국수야. 쟤 저렇게 피 흘리며 뒹굴고 있으면 신경 쓰여서 제대로 싸울 수 있겠냐? 빨리 가.” 진후가 정만에게 말하고 나서 칼을 든 투전꾼들에게 제안했다. “이 사람들 다 내보내고 한 판 붙자.

“그래 좋다. 어디 서울 왈짜 놈 싸움 실력 한 번 보자.” 투전꾼 중 하나가 동의하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피 보기 싫은 사람들은 빨리 나가쇼.”

정만은 승호에게 달려가 천으로 어깨를 묶어 지혈했다. 윗도리는 피로 젖어 있었고, 묶은 천으로도 피가 배어나왔다. 지혈이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아 걱정이 들었다. 반쯤 기절한 상태라 부축해서 데려가기도 힘들었다. 정만은 자기보다 한 뼘이나 큰 승호를 힘겹게 들쳐 업었다.

“형님, 조심하십쇼. 가보겠습니다.”

한현은 이미 나간 흰 수염과 하나를 뒤로 하고 피 흘리는 승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정만이 승호를 업고 나오자 정만의 뒤를 따라 방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서는 네 명의 개성 왈짜들이 모두 칼을 들고 홀로 남은 서울 왈짜를 둘러쌌다.

네 자루의 칼 중 하나는 이미 마신 피를 똑똑 흘리고 있었다.

진후는 피 흘리는 칼을 주시하며 속으로 웃었다.


하하하, ‘싸움엔 내가 국수야.’ 다시 생각해봐도 멋진 말이다. 승호랑 바둑을 두지 않았더라면 떠오르지 않았을 말이다.

그래, 난 싸움의 국수다.

바둑도 그렇듯 공격만 잘한다고 국수가 될 수는 없다. 아까의 승호처럼 승부의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국수라는 칭호를 들을 수 있다.

난 싸움의 국수가 되기 위해 칼을 맞았다. 아니, 칼을 맞으면서 국수가 되어갔다. 칼 한 번 맞아보지 않고 국수가 될 수는 없는 거다.

옷을 벗으면 찔린 상처 두 방 베인 상처 다섯 방이 내 몸에 각인되어 있다. 큰 상처인 이것 말고도 작은 상처들은 셀 수 없다.

어쨌든, 칼을 든 여덟 명에게 둘러싸여 맨손으로 그들 모두를 때려눕히며 얼굴에 칼을 맞았다. 이것뿐만 아니라 내 몸에 각인된 상처 두 방도 그 때의 것이다.

그 때 이후, 난 칼이 두렵지 않았다.

그 날 뒤로, 난 다시는 칼을 맞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상처 입을 일은 없다.

공포감을 떨쳐내지 못하면 움직임이 둔해지지만, 그걸 이겨내면 움직임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자각하진 않더라도 어떤 동작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기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조선의 국수 승호의 바둑처럼 그렇게······

내 싸움도 그러하니 난 조선의 국수임을 자부한다. 하하하.


대치상황에 네 명은 초조해졌고 진후는 자유로워졌다.


진후가 심호흡을 하며 발을 살짝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대치상황의 긴장을 이기지 못한 둘이 칼을 내찔렀다.

진후는 상체를 숙여 칼을 피한 후 양쪽 팔꿈치로 둘의 턱을 가격했다. 둘 다 뒤로 나가 떨어졌다. 겁먹고 칼을 내지르는 하수들이라 하나의 동작으로 둘을 처리했다.

“야, 이게 다야? 뭐야? 이러려고 칼까지 들고 덤빈 거야?”

나머지 둘이 진후가 말하는 틈을 노려 공격했다. 하나는 가슴을 하나는 하반신의 급소를 동시에 찔렀다.

진후는 다른 방향으로 다가오는 아까처럼 한 번에 제압할 수 없었다. 허공으로 뛰어올라 가슴을 찌르는 놈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가 뒤로 날아가자 급소를 공격하던 놈의 등을 밟아버렸다.

한 방에 한 놈, 이걸로 끝이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 판돈이나 챙겨 가져와!” 진후는 챙기라던 투전판 위의 판돈을 발로 걷어찼다.

엽전꾸러미는 끈이 끊어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후는 칼을 들고 덤비던 그들이 서로 모여 다시 덤비지 못하게 일부러 그랬다.

한 방씩 얻어맞은 네 명은 사방으로 흩어진 판돈을 흩어져 챙겼다.

“서울에선 그런 속임수 쓰다 걸리면 손모가지 잘려. 개성에서는 어떤지 모르니 오늘은 그냥 판돈만 가져간다. 알아보고 나서 개성에서도 손모가지 자르면 그 땐 그거 가지러 올게.”

네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흩어진 판돈을 챙겼다.

“감히 칼 들고 설친 건 그냥 봐줄게. 이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규칙이니까. 하지만 내 동생 어떻게 되면 그건 목숨으로 받는다.”

진후의 이 말에, 승호를 찔렀던 자가 아무 말도 못하고 공포에 치를 떨었다.


“뭘 그렇게 뛰어왔냐?” 진후가 숨을 헐떡이는 정만을 보며 물었다.

“형님, 헉헉··· 승호는 괜찮습니다. 헉···”

“정만아, 헉헉대지 말고 숨 좀 돌리고 얘기해. 지금 이 말에 대답하지도 말고.”

정만은 숨을 고르며 방 안의 상황을 살폈다.

“야, 바둑도 잘 모르는 놈이 나 말고 조선의 국수한테 돈을 걸더니만, 싸움의 국수인 날 못 믿어서 그렇게 뛰어왔어?”

“아닙니다, 형님.”

“됐어.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넌 친한 걸 뒤로 하고 진정한 고수 알아볼 줄 아는 놈이야. 뭘 자꾸 아니라고 해? 내가 너 같은 참을성이 있었으면 얼굴에 칼도 안 맞았을 거야?”

“누구나 자신의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시대든 그 시대에 자신이 방식으로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자가 그 시대의 국수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 맞아. 자신의 방식으로 싸워야 가장 잘 싸울 수 있지. 하하하, 이 말 내가 너한테 해준 거야?”

“아닙니다. 형님.”

“그래? 하하하.”

“형님, 그건 그렇고, 승호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의원 말로는 피는 많이 흘렸는데 이미 지혈도 했고, 기골이 장대한 소년이라 요양만 잘하면 별 문제 없을 것 같답니다.”

“그래? 저기 챙겨놓은 돈 가지고 와라.” 진후는 공격하던 네 명이 챙겨놓은 돈을 가리킨 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다시 올 일 없으니, 저 놈들 개평이나 좀 챙겨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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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문지기 22.04.05 167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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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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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변발 22.03.23 174 4 11쪽
35 탈출 22.03.22 168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8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1 5 11쪽
32 표류 22.01.20 177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69 6 11쪽
30 출항 22.01.18 177 4 11쪽
29 체포 22.01.17 178 6 11쪽
» 자상(刺傷) 22.01.16 198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2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3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3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8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5 5 12쪽
22 문맹 22.01.10 27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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