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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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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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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93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1.17 14:00
조회
179
추천
6
글자
11쪽

체포

DUMMY

“야, 바보냐? 칼 든 놈한테 달려들면 어떡해? 팔목을 때리거나 비틀어서 칼을 떨어뜨렸어야지. 아니면, 싸움을 못하면 도망치든지, 쯧쯧.” 진후는 의원에 누워있는 승호에게 핀잔을 줬다. 보기에 별 문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승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씩 웃다가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승호 옆에 앉아 있던 한현은 진후의 등장이 불편하여 허공만 쳐다보았다.

“한 화원님, 그 자들이 속임수를 쓰는데 어떻게 돈을 따겠소? 그리고 내가 보니 노름도 제대로 못 하시던데, 웬만하면 이제 노름은 그만두쇼.”

한현은 여전히 허공을 쳐다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정만아, 가져온 판돈에서 한 화원님 본전 챙겨드려라.”

“예, 형님.”

한현은 본전을 챙겨준다는 말에 고개를 돌려 진후를 바라보았다.

진후는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떡였다.


“돌아가서 쉬쇼. 승호는 우리가 챙기겠소.” 진후가 한현과의 어색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럼, 잘 좀 보살펴주게.” 한현도 자리가 불편했던 참에 진후의 말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해서 가쇼.” 진후가 일어선 한현에게 말했다.

한현은 대꾸 없이 고개를 끄떡이고 방을 나섰다.


“승호야, 너 나한테 바둑 좀 가르쳐줘라. 싸움은 내가 가르쳐줄게. 너 싸움 좀 배워야겠더라. 키는 남산만한 놈이 상대방을 한 대도 때리지도 못하고 칼을 맞아! 어쨌든, 나도 국수에게 바둑 좀 배워보자. 싸움은 나한테 배우라고. 싸움엔 내가 국수야! 하하하.” 진후는 ‘싸움의 국수’라는 말을 하고 기분이 좋아져 웃음을 터뜨렸다.

정만도 ‘싸움의 국수“라는 말에 기분좋아하는 진후를 보며 말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넌 칼을 맞아본 것만으로도 싸움의 기초를 다진 거야. 칼 한 번 맞아보지 않고 싸움꾼이 될 수는 없으니까. 찔려보고 베여보고 해야 칼의 맛을 알 수 있다고.”

“칼 맛!” 승호는 진후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 칼 맛. 어땠어?”

‘금속이 살을 파고들었을 땐 아프긴 했지만, 짜릿한 쾌감도 느꼈던 것 같아.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자 비몽사몽. 그렇게 쓰러지고 나서 난 내 몸을 떠나서 몸 밖에서 피 흘리는 날 본 것 같아. 이게 칼 맛인가?’

“뭔 생각해? 칼 맛?”

승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탕약 올리겠습니다.” 문밖에서 의원 집 하인이 소리쳤다.

“들어오쇼.” 진후가 소리치고 나서 정만에게 말했다. “모두 챙겨. 저거 먹이고 여기서 나가자.”

“예, 형님.”

“나 돌아가야 하는데······” 승호가 기다리고 있을 남매와 준 때문에 걱정스럽게 말했다.

“오늘은 됐고, 내일 가. 정만이가 약이랑 챙겨서 데려다줄 거야.”


한현은 집으로 돌아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술을 마시고 나서 긴장된 상황을 겪고 나니 온 몸에 진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승호는 다음 날 돌아왔다.


승호가 돌아오고 나흘이 지났다.

한현은 나흘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잠만 잤다.

승호는 중노미가 달여 온 탕약을 먹으며, 방 안에 누워 요양했다.

동희는 준에게 《소학》을 가르치며, 소일거리로 《백가공안》을 읽었다.

준은 《소학》을 배우며, 모사한 그림의 제발(題跋)을 베껴 그렸다. 한자는 따라 쓴 게 아니라 따라 그렸다. 그리고 낙관도 붉은 색으로 베껴 그렸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제발과 낙관까지 거의 똑같이 모사한 완벽한 복제본이 되었다.

명희는 준이 완성한 복제본 옆에 종이를 붙이고, 원본의 크기와 지질(紙質), 보관 상태, 표구의 방식과 상태, 작품 내력을 모두 적어놓았다.


삼월 이십팔일, 승호가 돌아온 지 닷새째였다.

한현은 아침부터 집에 있기 답답해서 닷새 만에 밖으로 나갔다.

승호는 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진후를 만나러 성 안으로 들어갔다.

동희와 명희는 고려 궁궐의 터만 남은 만월대를 보러갔다.

준은 집에 남아 아직 완성하지 못한 몇 점 남은 복제본을 완성하기로 했다.


준은 문밖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승호를 바라보았다.

승호는 준이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려놓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구인지 알지?”

“예.” 준이 그린 인물이 손돌이라서 짧게 대답하고 물었다. “왜 밖에 나와 계세요? 아버지는 돌아오셨어요?”

“아니, 아직.” 준은 뒤의 질문에만 대답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손돌 있잖아? 좀 아까 찾아왔었어.”

“예? 근데, 지금 어디 있어요?”

“아버지도 어디 가신지 모르고, 동희 형이랑 명희 만월대 갔다고 했더니 찾아 나선 모양이야.”

“얼마나 됐어요?”

“얼마 안 됐어.”

“도련님, 잠깐 계세요. 찾아보고 올게요.” 승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방금 왔던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안 좋은 예감이 엄습했다. 서울 상황이 안 좋아졌을 것이 확실했다.

승호는 마음이 급해져서 달리는 속도를 올렸다. 자상을 입은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승호는 남대문에 들어서서 미친 듯이 달리다, 앞서서 힘겹게 달리는 손돌을 발견하였다.

“아저씨!” 뒤에서 손돌의 어깨를 잡고 외쳤다.

손돌은 놀라서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승호는 먼지를 뒤집어쓴 초췌한 손돌의 몰골에 놀랐다.

“아저씨, 돌아가 계세요. 도련님이랑 아가씨 제가 모시고 올게요.”

“아니다! 우선 어디 가서 얘기 좀 하자.”


손돌은 행인들을 볼 수 있는 주막을 찾아 들어갔다. 동희와 명희가 지나가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손돌이 평상에 앉아 국밥을 시켰다.

승호는 지쳐버린 손돌의 얼굴에서 깊은 절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손돌은 국밥을 허겁지겁 퍼먹으며 행인들을 살펴보았다.

“천천히 드세요.” 승호는 체할까봐 걱정스러워 권유했다.

“다 먹었다.” 손돌은 국밥그릇을 들고 국물까지 다 마셔버리고 물었다. “근데 배는 알아봤어?”

“예, 이미 구했어요.”

“그래? 어떻게 구했어. 다행이네, 걱정했는데.”

승호는 진후가 이미 처리했다고 한 말을 손돌에게 옮겼다.

“그랬구나. 그건 그렇고, 어제 역관님 체포당하셨어.”

“예?” 승호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서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아침에 의금부 관원들이 들이닥쳐 체포해갔어. 서울은 지금 난리가 났다, 검거 열풍으로.”

“그렇군요. 다시 나오실 수 있을까요?”

“그게 되겠냐? 관군이 나흘 전 안성과 죽산의 반군을 소탕하고 이인좌까지 생포해서 서울로 압송했지. 임금은 그제 이인좌를 직접 공초하고 어제 아침에 처형했어. 우두머리의 처형과 안성과 죽산에서의 패보는 반군들에게 큰 타격일 수밖에 없지. 아마도 이제 반군들은 지리멸렬할 거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손돌은 잠시 말을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반군이 승리해서 나중에 서울을 점령한다고 해도, 이미 체포된 사람들은 누구라도 목숨 부지하기 힘들 거야. 임금은 지금 광기에 휩싸여 살육의 난장을 벌이고 있거든.”

“그럼, 어떻게 하죠?” 승호는 절망감을 감추며 물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 당장은 개성까지 신경 쓰지 못할 거야. 조만간 배를 타라.”

“예?” 승호는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난감했다.

“도련님하고 아가씨한테는 구체적으로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한 화원님께는 네가 말씀 드려라. 그리고 은자는 충분하지?”

“예, 청나라에 들어가면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그래, 이것도 가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은자는 아끼지 말고 써야 한다. 이것까지 합치면 청나라의 웬만한 부자 못지않을 거야.” 손돌은 자기가 메고 있던 봇짐을 승호에게 건네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도 역관님 따라 청나라에 가봤거든.”

“서울로 다시 가실 거죠?”

“그래, 숨어서 상황을 살펴봐야지.”

“집으로 돌아가실 수는 없잖아요?”

“그래, 이번에 가면 집에 갈 수는 없지.”

“아주머니는요?”

“모르겠다. 나리 체포당하실 때 난 도망쳤거든. 어쨌든 가봐야지.”

“아저씨, 꼭 살아계셔야 해요.” 승호는 평상에서 일어나 흙바닥에 엎디어 손돌에게 절을 했다.

“이게 다 뭐냐? 빨리 일어나.” 손돌은 승호의 팔을 끌어 일으켰다.

“아가씨!” 승호는 손돌에게 끌려 일어나다가 지나가는 명희를 보고 외쳤다.

“도련님!” 손돌이 승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동희를 발견하고 외쳤다.

남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주막에 있는 손돌과 승호를 발견했다. 그래서 몸을 돌려 주막으로 들어갔다.

손돌은 서 있다가 동희와 명희를 평상에 앉히고, 흙바닥에 엎디어 절을 했다.

“뭐해? 빨리 일어나.” 동희가 손돌의 팔을 끌어 일으켰다.

“꼴이 이게 뭐야? 밥은 먹고 다니는 거야?” 명희가 초췌한 손돌이 불쌍해서 핀잔을 줬다.

“예, 밥 먹었어요.” 손돌이 대답하다 울컥했다.

“아버지는?” 명희는 개성에 초췌한 몰골로 찾아온 손돌 때문에 불안해져 물었다.

“흐흑···” 울음을 삼키던 손돌은 명희의 물음에 변양호가 떠올랐지만 입술을 씹으며 겨우 울음을 참았다.

“잡혀가셨어?” 동희가 대략적인 상황을 판단하고 물었다.

“예!” 손돌은 대답하고 나서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승호에게 구체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막상 남매를 보자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누구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만 울어.” 명희가 울만큼 운 손돌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아가씨, 우선 청나라에 가계세요.” 손돌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 동희도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해 묻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상황은 승호와 대화를 나눈 이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련님, 아가씨, 제가 서울 가서 아버지 꼭 챙길게요.” 손돌이 남매에게 다짐하며 자신에게도 다짐했다.

“밥은 먹고 다녀.” 명희가 손돌이 안쓰러워 다시 한 번 밥 얘기를 꺼냈다.

“도련님, 아가씨, 꼭 살아계셔야 해요.” 손돌이 평상에서 일어나 흙바닥에 엎디어 다시 절을 했다.

“빨리 일어나! 뭔 절을 또 해?” 명희가 슬픔을 감추기 위해 핀잔을 줬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손돌은 대답하고 일어섰다.

손돌은 눈물을 훔치며 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희와 명희는 손돌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했다.

승호는 변양호와 손돌 처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리고 남매와 승호는 모두 손돌의 무사를 빌었다.

셋은 모두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박한 희망을 접어야 했다. 작은 희망도 이젠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아직 떠나지도 않은 개성이 벌써 그리웠고, 이미 떠나온 서울은 그리움에 치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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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아버지 사진 22.04.13 165 5 11쪽
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3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7 5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0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7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3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2 4 10쪽
37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2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 체포 22.01.17 180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4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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