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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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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624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1.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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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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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종이 가게

DUMMY

“아니, 이게 누구신가? 조선의 국수(國手) 아니야? 개성에는 웬일이셔?” 털보가 승호에게 물었다.

“예? 저를 어떻게 아세요?” 승호는 처음 보는 털보가 아는 채를 하자 놀라서 물었다.

“왜 몰라? 너 서울서 내기바둑 둘 때 매 번 너한테 걸었는데. 하하, 그래서 돈을 잃은 적이 없지. 그런데 배당이 적어서 별로 따지는 못했지만, 하하하. 이렇게 개성에서 보니 반갑구먼.”

“아, 예, 그럼 이만···” 승호는 당황스러워 자리를 피하려고 하였다.

“어딜 가셔? 술이나 한 잔 하면서 바둑도 한 판 두자고. 언제 조선의 국수랑 바둑 둘 기회가 있겠어?”

“아, 아니요, 나중에···”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어? 왜 자꾸 피하는 거야?” 털보가 미간을 좁히고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그러자 볼에 난 상처가 더욱 깊게 패이며 위압감을 풍겼다.

“아닙니다. 안쪽에서 물건 좀 봐야 해서요.” 승호가 말을 끌지 않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 하긴 나도 볼 일 있으니까, 나중에 두자고. 나중에 꼭 찾아가지.” 털보가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상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인장 여기 한 화원 그림 판다고 하던데, 그림 좀 볼 수 있나?”

“서울에서 오셨구먼. 서울에서는 몰라도 송도에서는 한 화원 그림이라면 꽤나 값이 나가죠. 도화서 출신인 데다 어진화사에 참여할 실력도 있었으니까.”

“그런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림이나 보여주쇼. 한 화원 출신 이력이라면 내가 더 잘 아니까.”

상인은 무안해서 아무 말 없이 일어서 벽장으로 향했다. 벽장에서 표구하지 않은 그림을 꺼내 털보에게 내밀었다.

동희와 승호는 그 틈을 이용해 책을 찾기 위해 전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털보는 그림을 건네받아 상인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그림을 한 장 한 장 바닥에 늘어놓았다. 험상궂은 인상을 찌푸리며 살펴보았다.

상인은 털보가 부담스러워 옆에서 떨어져 앉았다. 그림에 문외한일 것 같은 외모와는 달리 진지한 눈빛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솜씨는 괜찮은데, 원숙한 느낌이 없어. 젊을 때 그린 그림보다 노련해진 느낌이 있어야 하잖아?” 털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 형님, 무슨 문제 있습니까?” 털보와 같이 온 사내가 물었다.

“야, 정만아, 너 한 화원 그림 같이 봤잖아. 그게 스무 살 쯤 그린 건데, 이게 그것보다 원숙한 느낌이 없잖아?”

“예? 형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만이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손님 정말 그림 보는 눈이 있으시네. 그걸 구별해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대단하쇼. 다는 아니지만 작은 한 화원이 그린 그림도 섞여 있죠. 작은 한 화원이라도 웬만한 서울 화원들보다 훨씬 낫죠.” 상인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왈짜패 같은 털보가 내준 그림이 한현의 것이 아니라고 행패라도 부릴까봐 겁이 나서 사실을 실토했다.

“작은 한 화원?” 털보가 인상을 쓰며 상인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니까 한 화원의 아들이 있는데······ 그러니까 그 아들도 한 화원 솜씨 못지않죠. 근데 그걸 구별하다니 대단하쇼.” 상인이 털보의 눈길을 피하며 감식안을 칭찬했다.

“그랬구먼. 하하하, 그래서 풍격은 비슷한데 노련하기보다 천진했구먼. 작은 한 화원은 몇 살이오?”

“아마 열두 살일 거요.”

털보는 상인의 대답을 무시하고 다시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희와 승호는 책 더미를 뒤적이며 털보와 상인의 대화를 들었다. ‘한 화원’ 운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털보 뭐지? 서울에서 알고 있었어?” 동희가 승호에게 소리 낮춰 물었다.

“아뇨, 어디서 바둑 두는 거 봤나 봐요.” 승호도 소리 낮춰 대답했다.

“근데, 왜 개성까지 한 화원 그림 사러 온 거야?”

“모르죠.”

“그건 그렇고, 《천자문》은 없는 것 같아. 너 《천자문》 다 외울 수 있어?”

“오래 돼서 끝까지 외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마 아가씨는 다 외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까? 그럼 《소학》이 있나 한 번 찾아보자.”


“이것 말고도 또 있소?” 털보는 펼쳐놓은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우선은 그게 다요. 하지만 주문을 넣으면 대엿새 안에는 받아 보실 수 있을 거요.”

털보는 상인의 말을 무시하고 그림에 집중했다.

상인은 자신을 무시하고 그림에 몰두한 털보를 바라보았다.

“으음, 좋아. 아직은 완성되지 못한 솜씨지만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군. 하하하, 서울에서 거들먹거리는 화원나부랭이들보다 훨씬 좋다니까.”

“어떻소? 모두 좋죠. 한 화원 하면 송도에서는 최고죠.” 상인이 털보의 혼잣말을 받아 대꾸했다.

“어떤 한 화원?” 털보가 비웃으며 물었다.

“도화서 출신 한 화원이지, 아니면 누구겠소?”

“뭔 개소리야? 다 아들이 그린 것이구먼.”

“아니오, 다 작은 한 화원이 그린 건 아니오. 이거, 그리고 이것은 한 화원이 직접 그린 거요.” 상인이 바닥에 늘어놓은 그림 중 두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닌데···” 털보는 말을 끌며 상인이 가리킨 그림을 다시 살폈다.

상인은 당황스러웠다. 모두 한현의 그림이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다 한준의 그림이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두 점만이라도 한현이란 이름값으로 흥정을 하려고 했는데, 이건 물 건너 간 듯했다. 어쨌든 왈짜 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전문가의 감식안에 놀랐다.

“이 두 점도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큰 한 화원이든 작은 한 화원이든 상관없소. 이 그림들 모두 사겠소.”

“그러면 표구는 어떻게 하시겠소?”

“표구? 그런 건 필요 없소 그림만 주쇼.”

“아니, 그러면 안 팔겠소.” 상인은 표구를 넘기고 구문을 먹으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몽니를 부렸다.

“표구 맡기고 구문이라도 먹으려고?” 털보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오.” 상인이 마음을 읽히자 말을 더듬었다.

“정만아, 그림 챙겨.”

“예, 형님” 정만이 털보의 명령에 짧게 답하고 그림을 챙겼다.

상인은 자기 앞에 놓인 그림을 손으로 짚으며 저지하자, 정만이 상인의 손목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으악! 으으, 뭐 하는 거요?” 상인이 손목을 부여잡고 소리를 내질렀다.

“이놈아, 사람 잡겠다.”

“죄송합니다. 형님.”

“됐다. 마저 챙겨라. 미안하오. 하하하, 좀 참으쇼. 그리고 구문 같은 건 내가 넉넉히 챙겨줄 테니 걱정 마쇼. 그림 값도 후하게 드리겠소.”

“예? 꼭 그것 때문이 아니었는데··· 어쨌든 고맙소.” 상인은 뜻밖의 횡재에 화를 가라앉히며 대꾸했다. 그러면서 과장스럽게 손목을 문지르며 무언의 항의를 했다.

“형님, 다 챙겼습니다.” 정만이 챙긴 그림을 털보에게 건넸다.

“모두 이백 냥이면 되겠소?” 털보가 그림을 받아들며 상인에게 물었다.

“예? 아예, 그럼 충분하죠.” 상인이 놀란 마음을 감추며 대답했다. 흥정하려고 했던 값보다 훨씬 높은 값을 제안 받았기에 바로 응낙했다.

“이게 이백 냥 보다 더 나갈 거요. 하하하.” 털보가 품속에서 은덩이 꺼내서 상인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예, 예, 고맙소. 한 화원에게 그림 주문도 넣어드릴까요? 못 그리는 그림이 없으니, 원하시는 그림 말씀만 하쇼.” 상인이 은덩이의 값을 가늠하며 말했다.

“그건 됐소.” 털보가 거절하며 일어섰다.

정만도 털보를 따라 일어섰다.

“국수님, 하하하, 나중에 꼭 바둑 한 판 둡시다.” 털보가 전방 안쪽에다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승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방을 나섰다.


승호와 동희는 털보와 마주치기 싫어 거기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털보의 말을 듣고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전방을 나가는 털보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리도 가자.” 동희가 말을 꺼냈다.

둘은 퇴청으로 나와 상인을 바라보았고, 상인도 안쪽에서 책을 들고 나오는 둘을 바라보았다. 동희는 상인이 손에 든 은덩이를 바라보았다.

“책은 골랐소?” 상인이 손목을 주무르며 묻고 나서, “서울 왈짜패 저놈들 성질 참 고약하네.”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까 그 붓하고 종이랑 이것까지 합쳐서 얼마요?” 동희가 들고 나온 책을 건네며 물었다.

“《소학》이랑 《백가공안(百家公案)》 여섯 책? 이런 책도 있었나? 이건 죽지(竹紙)로 된 걸 보니 청나라에서 들어온 책이구먼.” 상인이 책을 살피며 혼잣말을 하다가, “청나라 책은 좀 비싸죠.” 동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이백 냥이면 되겠소?” 동희가 상인에게 물었다.

“예? 아예, 그럼 충분하죠.” 상인이 이번에도 놀란 마음을 감추며 대답했다. 흥정하려고 했던 값보다 또 다시 훨씬 높은 값을 제안 받았기에 바로 응낙했다.

“이게 이백 냥 정도는 나갈 거요.” 승호가 품에서 은덩이를 꺼내 상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예, 예, 이 정도면 충분하죠. 제가 종이랑 붓은 좀 더 챙겨드리겠소.” 상인이 은덩이를 살피며 말했다.

“아까 얼핏 들었는데, 여기 그림도 파쇼? 한 화원 그림이 그렇게 값이 나가오?” 동희가 상인에게 물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파는 건 아니고, 한 화원이 그림들을 팔아달라고 맡겨놓고 가면 대신 팔아주죠. 어찌 됐든 한 화원 그림은 송도에서는 최고죠. 그림도 사시려고? 그러면 주문을 넣어드릴 수도 있죠.”

“아니요, 그건 됐소.” 동희는 사양하며 물건을 챙기는 상인에게 말했다.

동희와 승호는 상인이 챙겨준 물건을 들고 전방을 나섰다.


명희는 준과 함께 말에서 내려 집 앞 나무에 말을 매어 놓았다. 그 때 동희와 승호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빠, 무슨 책 사온 거야?” 명희가 사립문을 들어서는 동희에게 물었다.

“너 《천자문》 다 외울 수 있어?” 동희가 대답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왜? 《천자문》 책 없어? 다 외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써볼게. 그건 그렇고 그 책은 뭐야?”

“《소학》이랑 《백가공안》.” 동희는 짧게 대답하며 책 한 권을 골랐다. “자, 이거 받아. 명희가 《천자문》 써주면 다 외운 다음에 이 책 봐.” 동희는 《소학》을 준에게 건넸다.

“나 한문 몰라도 되는데. 이거 어려울 것 같아. 《천자문》 외운다고 볼 수 있겠어? 모르면 형이 가르쳐줄 거야?” 준이 책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가르쳐줄게. 《천자문》이나 빨리 외워.”

“알았어, 다 합쳐서 일천 자 맞지? 그러면 금방 외울 것 같아.” 준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어쨌든 이름난 화원이 까막눈이면 되겠냐?”

“응? 이름난 화원이라니?” 명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준아, 너 앵계 시장에 그림 파는 전방 있어?” 동희가 명희의 질문을 무시하고 준에게 물었다.

“응,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이 책 거기서 샀어?”

“응, 근데 그림 값은 얼마나 받아?”

“한 장 당 한 냥이나 두 냥 정도 받는데, 그건 왜?”

“아니, 어쨌든 이번에는 가면 최소한 일백 냥은 달라고 해.”

“열 몇 장밖에 안 되는데, 스무 냥도 못 받을 거야.”

“스무 냥도 못 받는다고? 송도 최고의 화원 그림을 그런 똥값에 판다고? 어쨌든 그 그림 한꺼번에 이백 냥이 넘는 값을 받고 팔았으니, 일백 냥은 달라고 해도 돼!”

“그래? 그럼 나중에 가볼게.”

“그럼 그래라.” 동희는 준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심드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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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0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7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0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9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3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0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1 4 10쪽
37 포구 22.03.24 167 4 11쪽
36 변발 22.03.23 174 4 11쪽
35 탈출 22.03.22 168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8 5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1 5 11쪽
32 표류 22.01.20 177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69 6 11쪽
30 출항 22.01.18 177 4 11쪽
29 체포 22.01.17 178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7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2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3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3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8 3 12쪽
» 종이 가게 22.01.11 255 5 12쪽
22 문맹 22.01.10 27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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