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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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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729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1.21 14:00
조회
172
추천
5
글자
11쪽

생선 요리

DUMMY

표류 나흘 째, 바다 위에는 섬조차 보이지 않았다.

“바다가 원래 이렇게 넓은 거야?” 준이 지겹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게, 어떻게 이렇게 물밖에 없을까?” 명희가 맞장구를 쳤다.

“육지에서 한참 멀어진 것 같아.” 동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엉?” 명희와 준이 동시에 의문을 표하며 동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물새도 없잖아?”

“새는 왜?” 준이 물었다.

“새도 앉아서 쉴 데가 있어야 할 것 아냐? 육지에서 얼마나 멀어졌으면, 게다가 섬도 없으니 새도 안 날아다니잖아.”

“듣고 보니, 그럴 듯한데. 오빠, 무슨 책에서 읽었어?”

“아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랬구나! 근데, 우리 청나라 쪽으로 가는 건 맞아?”

“맞는 것 같아요. 계속 북동풍이 불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남서쪽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승호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산동 반도 아래쪽으로 가고 있는 거잖아?”

“그런 것 같은데, 바람이 하는 일을 어찌 알겠어요?”

“그럼, 바람에 모든 걸 맡겨야 되는 거야?” 명희가 되묻다가 노를 잡고 승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승호야, 이거 어떻게 젓는 거야?”

“저도 잘 몰라요.”

“노라도 저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갈 수 있잖아?”

명희가 노를 잡고 수부들이 했던 것처럼 노를 저었다.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젓지 못하고 묵직한 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힘주어 노를 잡고 다시 수부들의 동작을 따라했다. 동작은 어색했지만 노를 저을 수 있었다.

준이 그걸 보고 명희의 반대쪽에 있는 노를 잡고 명희가 한 것처럼 노를 저었다.

“힘들어. 이거 엄청나게 무겁네.” 준은 몇 번 노를 젓다 힘들어 그만두었다.

“야, 계속 저어봐. 그래야 빨리 가지.” 명희가 준을 다그치며 계속 노를 저었다.

준은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승호야, 서쪽으로 가게 키 좀 잡아봐.”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승호는 말을 끌며 고물로 가서 키를 잡고 이리저리 조종해보았다.


이 날부터 일행은 배를 바람에게만 맡겨두지 않았다. 하루에 두세 시간은 동희와 준이 키를 잡았고, 명희와 승호는 좌우를 번갈아 가며 노를 저었다. 이제 배는 바람이 없어도 서쪽으로 나아갔다.


표류 열이틀 째,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차 있던 물이 거의 바닥을 보였다.

떡과 과일은 이미 다 먹었고, 쌀과 젓갈과 장아찌는 남아 있었지만 물이 거의 떨어져 밥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육포만 먹다보니 오히려 물만 더 켜게 되었다.

명희는 식칼을 작대기에 묶어 들고, 허리에 밧줄을 묶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제는 물속에 들어가 이백을 셀 때까지 숨을 참을 수 있었다. 무술 연습과 노 젓기로 단련된 근육은 좀 더 빠르게 헤엄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두려움 없이 바다에 몸을 맡기면, 바다는 언제나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명희는 숨을 참고 눈을 감고 아래로 떨어졌다. 느리게 물속으로 가라앉는 게 심연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 나쁘지는 않았다.

명희는 눈을 떴다.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명희는 승호에게 배운 주먹 지르기를 하듯 작대기를 질렀다.

일발필중(一發必中)!

물고기 한 마리가 식칼에 찍혀 몸통을 비틀어댔다.

명희는 무릎을 굽혔다 펴서 바닷물을 차고 올랐다. 동작을 몇 번 반복하자 물 밖으로 떠올랐다. 참았던 숨을 휘파람처럼 내쉬었다.

동희와 승호와 준이 명희의 숨비소리를 듣고 어디로 떠올랐는지 사방을 둘러보았다.

“명희야!” 준이 이물 쪽으로 떠오른 명희를 발견하고 그 쪽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야, 이거 받아.” 명희는 물속에서 작대를 준에게 뻗으며 말했다.

“와, 이거 네가 잡은 거야?” 준이 놀라서 물었다.

“그럼. 야, 이거 뽑아봐.”

“올라와. 뭐하게?”

“몇 마리 더 잡아 올게. 빨리 뽑아.”

“또 들어간다고?” 준이 물으며 칼에 찍힌 물고기를 뽑았다.

“그래, 다시 들어갔다 올게.”

“야, 그만 나와. 위험하잖아?” 이물로 걸어온 동희가 명희에게 말했다.

“아니야, 더 잡아 올게. 아래 물고기 엄청 많다고.” 명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승호는 화로에 불을 피웠다.

준은 물고기 비늘을 긁어냈고, 동희는 그걸 꼬치에 꿰었다.

명희는 고물 쪽의 움집 뒤에서 햇볕에 옷을 말렸다.

사내 셋은 화로를 둘러싸고 모여 앉았다. 꼬치에 꿴 물고기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합쳐서 여섯 마리를 동시에 굽기 시작했다. 생선 굽는 냄새에 육포만 씹던 사내들은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명희는 옷을 말리고 이물 쪽으로 걸어왔다. 세 사내가 옹기종기 둘러앉아 생선을 굽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세 사내는 모두 웃음소리에 명희를 바라보았다.

“야, 어서 와서 너도 구워.” 준이 턱으로 꿰어놓은 생선을 가리키며 명희에게 말했다.

“열두 마리 다 꿰어놨어?” 명희는 꿰어놓은 생선 하나를 집어 들며 물었다.

“어, 다 꿰어놨어. 어서 와서 구워.”

명희는 대꾸하지 않고 칼을 들고 꿰어놓은 생선의 껍질을 벗겼다. 배를 갈라내고 내장을 긁어내고 가시도 발라냈다. 그러고는 날 생선을 썰지도 않고 통째로 씹어 먹었다.

“야, 날 생선을 그냥 먹어?” 준이 놀라서 물었다.

“넌 회도 안 먹어봤어?”

“회가 뭐야?”

“어? 너 안 먹어봤구나.” 명희가 준에게 대답하지 않고, “오빠, 이거 농어회보다 맛있어. 무슨 물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동희에게 말했다.

“그래? 나도 좀 줘봐.” 동희가 대꾸하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다. “썰어서 줘.”

명희는 세 마리를 썰어 접시에 담아 세 사내에게 갖다 주었다.

동희는 자신이 구운 생선 한 꼬치를 명희에게 건넸다.

“생선구이는 나중에 먹고 회부터 먹어봐.” 명희가 말하고 나서 세 명의 구운 생선꼬치를 모두 받아들었다.

세 사내는 손으로 회를 집어먹으면서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명희는 왼손에 꼬치 다섯 개를 들고, 오른손에 든 생선구이를 뜯어먹었다. 그 사이에 세 명이 생선회를 다 먹자 왼손에 뜬 꼬치를 건넸다.

“육지가 가까워진 것 같아.” 명희가 말을 꺼냈다.

세 사내는 생선구이를 먹다가 놀라서 명희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젠 바닥도 보이고, 점점 물이 얕아지고 있어.” 명희가 설명했다.

“정말?” 세 사내가 모두 생선꼬치를 입에서 떼고 물었다.

“정말이라니까, 바다에 들어가 봐.”

“나도 임진강에서 자맥질 좀 해봤는데, 바다는 무서워!” 준이 대꾸했다.

“야, 뭐가 무서워? 난 이 배 타기 전까지 헤엄칠 줄 몰랐는데, 오늘은 물고기까지 잡아왔잖아?”

“어쨌든 난 바다는 무섭다고. 아마 넌 용왕의 딸일 거야? 그러니까 용왕의 부하들이 너한테 물고기를 갖다 바친 거라고.”

“풋, 헛소리는. 어쨌든, 마실 물도 다 떨어져 가는데 다행이야.”


표류 열사흘 째, 서풍이 불어 배는 육지에서 멀어졌다.

일행은 아예 돛을 접고 표류했다.

마실 물이 떨어졌다.


표류 열나흘 째, 동풍이 불자 배는 돛을 펼쳤다.

동희와 준이 키를 잡고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명희와 승호는 노를 저었다.

명희와 승호는 금세 지쳐 노를 놓았다.

일행은 배가 고파도 갈증을 유발하는 육포, 젓갈과 장아찌를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쌀을 씹었다.

모두 자포자기하고 뱃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고개를 젖혔다.

그 때, 물새 한 마리가 날아와 돛대 꼭대기에 앉았다.

“형의 말한 새야! 새라고, 물새가 날아왔다고!” 준이 소리쳤다.

“그러게, 육지가 안 보이면 어디 섬이라도 있을 거야?” 동희가 대꾸했다.

“저기 보이는 거 섬 아니야?” 명희가 주위를 살피다 소리쳤다.

“어디, 어디? 어딘데?” 준이 호들갑을 떨었다.

“저기요.” 승호가 아주 멀리 보이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멀긴 하지만, 거기 가면 물을 구할 수 있겠지?” 동희가 희망을 질문으로 표현했다.

“그럴 거야? 노라도 저어야 하는데, 힘이 하나도 없네.” 명희가 대꾸했다.

“서풍이 부니까 바람에 맡겨서 그냥 가자. 지금 힘을 아껴놔야 섬 부근에 가서 노를 저어 갈 수 있잖아?” 동희가 노 젓기를 만류했다.

“그래, 그게 좋겠어.” 명희가 동의했다.

“그래, 쉬고 있어. 가는 동안 내가 그림 그려줄게.” 준이 말했다.


준은 붓에 바닷물을 찍어 뱃바닥에 자신이 탄 돛단배를 그렸다. 마지막으로 이미 날아가 버린 돛대 위의 물새를 그렸다.

준의 묘사는 정확했다.

물은 금세 증발했지만, 뇌리에 그림은 매력적이었다.

“오빠, 얘 진짜 천재 아니야?” 명희가 증발해버린 준의 배 그림에 감탄하며 물었다.

“왜? 준이 원래 그림 잘 그리잖아?” 동희가 되물었다.

“얘는 이 배를 밖에서 본 적이 없잖아?”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야 벽란도에서부터 이 배를 사견선에서 봤지만, 얘는 아니잖아? 한 번도 이 배를 밖에서 본 적이 없다고. 밧줄사다리 타고 내려올 때도 제대로 못 봤을 거라고. 오빠가 만약에 밖에서 이 배를 본 적이 없으면, 이 배에 지냈다고 밖에서 본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그러네. 대충 짐작할 수는 있지만, 준이처럼 정확하게 그릴 수는 없을 것 같아.”

“와, 정말 그러네요.” 승호도 명희의 말을 이해하고 감탄했다.

“그게 뭐가 대단한 거야? 이 배에서 열흘이 넘도록 지냈는데, 밖에서 본 모습을 모른다고?” 준은 셋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넌 아마 솔거의 환생일 거야? 이걸 먹으로 그렸다면 아까 그 물새도 뱃바닥에 머리를 처박았을 거라고.”

“뭔 헛소릴 하는 거야?” 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동희와 승호는 명희의 말뜻을 알아듣고 웃었다.


섬은 의외로 멀었다. 배는 돛에 바람을 품고 다가가고 있었지만, 섬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먹구름이 밀려왔다. 금세 비가 내렸다. 배가 비에 젖었다. 하지만 바다는 비에 젖지 않았다.

모두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승호는 고개를 젖히고 목을 축이다 항아리로 달려가 뚜껑을 열어놓았다.

동희와 준은 그걸 보고 움집으로 달려가 그릇을 들고 나와 뱃바닥에 펼쳐놓았다.

사내 셋은 뱃바닥에 누워 비를 마셨다.

명희는 밧줄을 허리에 묶고 머리를 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잠수를 하지 않고 바다 위에 누워 비를 맞았다. 머리를 만질 때마다 서걱거리던 소금을 씻어내고 싶었다.


난 바다가 왜 이렇게 좋지?

비가 와도 비에 젖지 않는 바다. 너무 마음에 들어.

나 용왕의 딸이 맞나?

아니지, 아버지 괜찮으실까?

눈물이 난다.

울어도 비오는 바다 위에선 아무도 모를 거야.


명희는 바다 위에 누워 울며 비로 머리를 감았다.

비는 명희가 마음껏 울 수 있을 만큼 많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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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9 6 12쪽
49 고의 패배 22.04.09 164 4 13쪽
48 악몽 22.04.08 159 5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8 5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1 4 11쪽
45 문지기 22.04.05 168 4 11쪽
44 의심 22.04.02 162 4 12쪽
43 삼촌 22.04.01 170 4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63 3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81 4 11쪽
40 수중전 22.03.29 164 3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71 3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73 4 10쪽
37 포구 22.03.24 169 4 11쪽
36 변발 22.03.23 176 4 11쪽
35 탈출 22.03.22 169 5 10쪽
34 무인도 22.01.22 169 5 12쪽
» 생선 요리 22.01.21 173 5 11쪽
32 표류 22.01.20 178 5 10쪽
31 돛단배 22.01.19 170 6 11쪽
30 출항 22.01.18 179 4 11쪽
29 체포 22.01.17 180 6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9 5 12쪽
27 무승부 22.01.15 224 5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5 5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5 5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9 3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7 5 12쪽
22 문맹 22.01.10 27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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