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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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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4.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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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심

DUMMY

“삼촌, 뱃사람들은 안 와?” 명희가 물었다.

“걔들 어디 청루(靑樓)에서 밤새도록 마치고 내일이나 올 거야.” 왕휘가 대답했다.

“우린 광저문이나 편익문 근처에 집을 구할 것 같아.”

“광저문 있는 데는 세도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 거야. 편익문 근처가 나을 텐데.”

“그래? 그건 나도 모르겠고, 나중에 찾아오셔. 아니, 무작정 찾아오긴 힘들겠지?”

“내가 알아서 찾아볼게.”

“숙주랑 공심채를 볶았으니 좀 드세요.” 삼이 야채볶음을 내왔다.

“공심채, 이거 못 먹어본 야챈데 맛있다니까.” 명희가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양주에 국수집 내는 거 알아볼 거야. 배 처분하고 가게 알아보고 하면, 몇 달은 걸리겠지만 말이야.”

“선주님, 배 두 척 다 처분하시고 아예 양주에 정착하시게요?” 삼이 국수집 얘기가 나오자 눈빛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삼촌, 이 배 말고 배가 또 있어?”

“그래. 고깃배 한 척이 더 있지. 그것만 처분하고 이 배는 믿을만한 놈에게 맡길 거야. 바닷고기 도매도 하고 가게 내서 그걸 쓰면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거야.”

“오호, 삼촌은 다 계획이 있구나!”

“맞아요, 아까 국수집도 그렇고 장볼 때도 그렇고, 우리가 넘긴 생선을 몇 배씩 받고 판다니까요.” 삼이 또 끼어들었다.

“야, 넌 뭐가 그렇게 신났어?” 왕휘가 삼에게 핀잔을 주고 나서 명희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준비해 가지고 와서, 가게도 알아보고 며칠 머물 거야. 그때 오늘 못 간 홍교도 가보고 여기저기 놀러가자고.”

“그러면 나야 좋지.”

“명희야, 이제 일어나. 데려다줄게.”

“더 있다 가고 싶은데.”

“너, 오빠한테 또 욕먹어. 아니, 나까지 욕먹는다고. 빨리 일어나.” 왕휘가 명희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알았다고요.” 명희는 끌려 일어서며 삼에게 말했다. “삼아, 잘 있어라. 조만간 또 보자고.”

왕휘는 명희를 데리고 배를 떠났다.


“넌 또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동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명희에게 소리쳤다.

“바람 좀 쐬고 왔어.”

“함부로 나돌아 다니지 좀 말라고!”

“또 혼나고 있었어?” 세현이 방문을 열며 말했다.

“혼나기는 뭘? 우리 오빠가 네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명희는 비꼬는 말투를 숨겼다.

“집 구하는 건 거간꾼을 찾아서 말해놓기는 했는데, 내일 가서 직접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아.” 세현은 화제를 바꿨다.

“광저문 있는 데는 구하기 힘들지? 편익문 있는 데가 나을 거야.” 명희가 왕휘에게 들은 말을 늘어놓았다.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동희와 세현이 동시에 물었다.

“다 아는 수가 있지, 흐흠.”

“어쨌든 명희 말이 맞아. 거간꾼 말이 광저문 안쪽은 안기의 저택과 원림이 붙어 있는데 그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뭐가 없다더군. 그런데 편익문 있는 데 두세 채 정도가 매물로 나와 있다고 하더라고.”

“하하, 내 말이 맞지?” 명희가 자부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건 그렇고, 내일 아침에 안기의 저택도 가보고 집도 구하러 가보자고.” 세현이 말을 끝내고자 했다.

“그래, 수고했어. 오늘은 쉬자고.” 동희가 세현의 말을 받아 갈무리 지었다.


다음 날, 일행은 객잔에서 아침을 먹고 성으로 들어갔다.

세현은 조선인들을 데리고 편익문 근처의 찻집을 찾았다.

찻집은 건물 밖으로 내놓은 탁자까지 한량들로 붐볐다. 그들은 개완(盖碗)으로 차를 우려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세현은 건물 밖의 손님들을 둘러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잠시 후 거들먹거리는 사내와 건물 밖으로 나와 조선인들에게 데려왔다.

“얘들 다 따라오는 거야?” 거간꾼이 조선인들을 훑어보며 세현에게 물었다.

“돈은 얘들이 낼 거요.” 세현은 돈 얘기로 불평을 막으려고 했다.

“그래? 그럼 가자.” 거간꾼은 거부하진 않았지만 못마땅함을 말투로 내뱉었다.

찻집이 있던 편익문 서쪽 거리는 번화했지만, 동쪽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누추했다.

거간꾼은 동쪽의 성벽 발치에 있는 골목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은 뽕나무들이 많았고, 민가에서 닭과 개를 키우는 모습이 한적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시골 마을 같은 골목이 번화한 양주성의 안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거간꾼은 초라한 집들 중 한 채로 데리고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좁은 앞마당이 있었고, 그 안쪽의 건물은 가운데에 몸채인 당옥(堂屋)이 있었으며, 그 양옆으로는 방으로 쓰는 곁채가 있었다. 당옥에는 원형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고, 곁채는 문이 닫혀 있었으며, 당옥 뒤쪽으로 부엌이 있었다.

이어서 거간꾼은 근처에 있는 두 번째 집을 보여줬는데, 그 구조는 첫 번째와 거의 같았다.

“둘 중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거간꾼이 두 번째 집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우선 상의 좀 해봐야겠소.” 세현이 대꾸했다.

“마음에 들면 빨리 결정해.”

“집문서부터 보여주쇼.” 동희가 끼어들었다.

“무슨 집문서? 집문서를 보여준다고 너 글이나 읽을 줄 알아?” 거간꾼은 동희를 비웃었다.

“글이라고? 우리 오빠는 당연하고, 나도 너보단 많이 알 거야?” 명희가 발끈하며 끼어들었다.

“됐어.” 동희가 명희의 말을 자르고 거간꾼에게 말했다. “집을 사는 게 아니니까 집문서는 됐고, 세를 내는 문서는 관아에서 공증을 받아야지.”

“세 들면서 뭔 관아의 공증까지 받아?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 했어. 북방에서는 그러냐?” 거간꾼이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하쇼. 우선 우리끼리 상의 좀 한 다음에 결정할게요. 그리고 구문은 넉넉히 챙겨드리겠소.”

“난 먼저 갈 테니, 상의는 마음껏 하시고 계약할 마음 있으면 찻집으로 찾아와.” 거간꾼은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떴다.

“오빠, 관아에 공증 받는 거 맞아?” 명희가 거간꾼이 자리를 뜨자 동희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그래도 괜히 속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렇게 말해 놓았으니 저 거간꾼도 우릴 만만히 보지는 못하겠지.”

“세현 오빠, 관아에 공증 받는 거 맞아?”

“집문서는 있긴 한데, 세 들면서 문서를 만드는 건 모르겠다. 만약에 문서를 만들려면 관아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서명 받는 방법이 있긴 하지. 나도 글을 모르니 그런 문서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래? 주변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그럼 그런 문서라도 만들어야겠어.” 동희가 말했다.

“그래, 넌 글을 아니까 문서를 만들어봐. 보증인은 아까 그 찻집 주인이 가장 좋은데 쉽게 해줄지는 모르겠네. 해준다고 해도 돈이 좀 필요할 거야.”

“비용이 들더라도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돈 쓸 생각이 있으면 문서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그럼, 그렇게 하자.”

“오빠, 그런 문서 쓰는 법 알아? 게다가 조선과도 다를 텐데.”

“몰라, 알아봐서 만들면 되지. 사기 당하는 것보다 낫잖아?”


일행은 찻집 근처로 돌아와 주루에 자리를 잡았다.

“문서 쓰는 거 알아봐야지?” 세현이 자리에 앉아 동희에게 물었다.

“그래. 문서가 마련되면 두 번째 본 집으로 계약하자.”

“알았어. 너희들 여기서 밥 먹고 있어. 승호랑 둘이 알아보고 올게.” 세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갈 땐 가더라도 밥 먹고 가.” 명희가 만류했다.

“난 괜찮아.”

“아가씨, 저도 괜찮아요. 둘이 같이 갔다 올게요.”

명희가 다시 만류하기도 전에 세현과 승호는 주루를 나섰다.


한참이 지나서 승호만 돌아왔다.

“왜 혼자 왔어?” 동희가 물었다.

“세현이 사라진 것 같아.”

“뭔 소리야? 사라지긴 왜 사라져?” 명희가 물었다.

“문서 써줄 사람도 만났고, 찻집 주인도 보증을 서준다고 해서 거간꾼을 찾아 나섰어요. 근데, 어떤 할머니가 짐을 지고 지나가더라고요. 세현이 그걸 보고 짐을 들어주고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볼일 좀 보고 올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봇짐을 맡기고 볼일 보고 왔는데 사라졌다고요. 그래서 기다렸는데 안 와서 지금 혼자 왔어요. 우선 기다릴까봐 말해놓고 다시 가서 기다리려고 왔어요.”

“봇짐을 가지고 사라진 거야?” 동희가 물었다.

“예.” 승호가 고개를 숙였다.

“봇짐에 뭐 대단한 게 있다고, 사람을 도둑 취급해? 은자는 오빠가 다 가지고 있잖아?”

“내 책이랑 승호 족자도 있고, 거기 너 아끼는 화첩도 있잖아?”

“겨우 그 따위 책이랑 화첩 때문에 사람을 의심해? 내가 아무리 아끼더라도 사람을 의심해야 할 만큼 소중한 물건은 아니야.”

동희가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형, 사람 함부로 의심하면 안 돼.” 준이 목소리를 낮춰 조선말을 꺼냈다.

“맞아! 바다에서부터 여기까지 데려다준 은인인데 고마워하지 못 할망정 뭘 그렇게 의심하는 건지?” 명희도 목소리를 낮춰 조선말로 맞장구를 쳤다.

“난 아버지가 싫어서 형을 따라 조선을 떠났는데, 형, 이게 도대체 뭐야?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의 것은 원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고, 난 지금껏 한 번도 남의 것을 원한 적이 없어.”

“그래, 그래야 사람이 당당하다니까. 그래서 내가 준이 너 좋아한다고.”

“의심받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지 알아? 그러니까, 아버지와 함께 부잣집에 사진을 그리러 갔을 때, 주인이 뭐가 없어졌다며 아버지께 묻더라. 사람들이 날 의심하는 거였고, 아버지는 날 때렸어. 아팠지만 난 울음을 삼키며 울지 않았어. 사람들은 구경만 했고, 아버지는 죽도록 나를 때렸고 난 죽어도 하지 않을 걸 했다고 할 수가 없었어. 그 때 밖에서 없어진 물건을 그 집 손자 놈이 장난으로 숨겨놨다는 얘기가 들렸어. 난 장난으로 매를 맞은 거야? 그들은 모른 척 지나가길 원했고, 아버진 그걸 대가로 돈을 받았을 거야. 근데, 난 왜 매만 맞고 사과 한 마디 못 들은 거야?”

“준아, 됐어. 기분 좀 가라앉혀.” 명희가 준을 달래며 말했다.

“동희 형, 사람 그렇게 함부로 의심하는 게 아니야.”

“으이그, 저 둘이서 그냥······” 동희는 무엇이든 조심하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서운해 말을 접었다.


한참이 지나서 세현이 돌아왔다.

“할머니 집까지 모셔다드렸어?” 명희가 세현에게 물었다.

“그래.”

“서역까진 안 모셔드렸어?” 명희가 세현이 전에 말한 ‘사람을 도우려면 끝까지 도와야하고, 부처님을 배웅하려면 서역까지 배웅해야 한다(幫人幫到底, 送佛送到西)’는 속담을 떠올리며 물었다.

“부처가 아니니, 서역까진 갈 필요가 없었지. 야, 진짜···” 세현은 대꾸하다 말을 접었다.

“밥은 먹었어?” 명희가 물었다.

“아니. 근데 오다가 거간꾼 만났는데, 자기가 문서까지 만들어놓고 서명만 하면 된다고 하던데. 동희야, 너 어쩔 거야? 난 글을 모르니까 네가 승호랑 같이 가서 봐봐. 방금 봤으니 지금도 그 찻집에 있을 거야.”

“그래? 그럼 여기 있어. 지금 당장 갔다 올게.” 동희가 일어서자 승호도 따라 일어섰다.


“오빠, 밥 안 먹었으면 뭣 좀 먹어”

“됐어. 한 끼 굶는다고 죽지 않아. 아니, 어렸을 땐 굶는 걸 밥 먹듯이 했다.”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 돈 많아.” 명희가 왕휘에게 받은 은자를 보여주며 말했다.

“야, 그 정도면 나한테 밥 살 만큼이 아니라 아까 그 집도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마음껏 먹어. 삼촌이 다음에 또 준다고 했어.”

“선주가 준 거야?”

“응.”

“삼촌 잘 만났네. 그럼, 나 고기 먹는다.”

“그래, 비싼 걸로 많이 먹어. 소고기 열 근 시킬까?”

“열 근을 어떻게 다 먹어? 우선 두 근이면 돼. 근데, 준이 왜 이렇게 시무룩해?”

“준도 아픈 소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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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7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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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 22.04.02 16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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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양주(揚州) 22.03.30 18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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