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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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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451
추천수 :
455
글자수 :
58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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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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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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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표류

DUMMY

돛단배는 밤새 표류했다.

북동풍이 불어 배는 서남쪽으로 떠밀려갔다.

배 안의 누구도 배를 다룰 줄 몰랐지만, 배는 바람덕분에 스스로 청나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바다의 새벽은 표류한 일행을 일찍 깨웠다.

일행은 난생처음 바다 끝에서 바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았다.

밤의 검은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가 파래지기 시작했다.


“죽은 어떻게 끓이지?” 명희가 대상을 정하지 않고 물었다.

“쌀을 조금 넣고 물을 많이 넣으면 되는 것 아냐?” 준이 되는 대로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어떻게든 해 봐야지. 오빠 어제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으니.” 명희가 대답하고 나서 쌀독에서 쌀을 퍼서 바가지에 담았다.

“아가씨, 제가 할게요.” 승호가 나섰다.

“아니, 이건 내가 할 테니까, 넌 화로에 불 좀 붙여봐.”

“예, 그러세요.” 승호가 대답하고 나서, 땔감과 부싯돌과 부싯깃을 들고 화로가 놓인 이물 쪽으로 걸어갔다.

승호가 불을 붙이는 동안, 명희는 바닷물을 퍼서 쌀을 씻었다.

“아가씨 안 돼요.”

“어? 왜?”

“바닷물은 먹으면 안 된다고요.”

“왜 안 되는데?”

“짠물이라서 먹으면 먹을수록 더 갈증이 난다고요.”

“그래?” 명희와 준이 모두 놀라서 물었다. 평생 바다에 나올 일이 없던 둘은 바다에 대한 지식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항아리에 식수를 따로 담아놓은 거야? 근데, 넌 어떻게 알았어?” 명희가 승호에게 물었다.

“뱃사람들한테 알아봤어요.”

“그래? 그럼, 물을 아껴 써야겠네.”

“그럼요, 비가 안 오면 저 항아리의 물이 우리가 마실 수 있는 것 다예요. 물론, 보름은 충분할거예요.”

“그렇군.” 명희가 대꾸하고 항아리에서 물을 퍼서 쌀을 씻었다.


동희는 뱃멀미를 그쳤지만,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기진맥진해서 누워 있었다.

명희는 죽을 끓여 오빠에게 먹였다.

동희는 죽을 먹으며 동생을 대견하게 여겼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엌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소녀였기 때문이다.

동희가 몇 술을 뜨고 나서 숟가락을 놓았다.

명희는 양을 조절하지 못해 죽이 많이 남자 승호와 준에게 먹으라고 했다.

차가운 떡만 먹은 승호와 준은 뜨거운 죽을 젓갈과 장아찌에다 맛있게 먹었다.

준은 이렇게 맛있는 죽은 처음 먹어본다며 먹는 내내 명희를 추어올렸다.


바다 위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승호가 봇짐을 풀었다. 맨 위에 있던 붓을 명희에게 건넸다.

“야, 이거 선물이야.” 명희는 승호가 건넨 붓을 준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근데 먹은 있어?” 준이 붓을 받아 챙기며 명희에게 물었다.

“먹은 없어요.” 승호가 명희 대신 대답했다.

“야, 이거 선물이야.” 준은 품에서 여자 사진 화첩을 꺼내 명희에게 건넸다.

“이 귀한 걸······” 명희는 선뜻 받을 수 없어 말을 끌었다.

“너 이 화첩 좋아하잖아? 너 가져.”

“그래, 고마워.” 명희는 거절하지 않고 건네받았다.

“도련님, 여기 책이요.” 승호는 《백가공안》 여섯 책을 꺼내 누워 있는 동희 앞에 놓아주었다.

“오빠, 나 이 책 봐도 돼?” 명희는 물으며 허락도 받지 않고 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래.” 동희가 명희에게 대답하고 승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승호야, 언제 육지에 닿을지 모르니, 너도 이 책 가져다 읽어.”

“예.” 승호가 대답하고 나서 봇짐에서 화선지 세 뭉치를 꺼내 명희에게 주었다.

명희는 그것을 받아 옆에 놓아두었다. 그것은 명희가 준과 함께 완성한 복제본과 원본의 모든 정보를 첨부한 문건이었다.

“아가씨, 이 족자도 보시겠어요?” 승호는 봇짐 바닥에서 서위의 족자를 꺼내 명희에게 주었다.

명희는 말없이 그걸 받아들어 화선지 뭉치 옆에 놓았다.

“준아, 너 《소학》은 안 가져왔어?” 동희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물었다.

“그건 중노미한테 줬어.”

“야, 그거 가져와서 공부했어야 하는데.” 명희가 끼어들었다.

“걔가 날 도와줬는데 달리 줄 게 없어서 그랬어. 그리고 동희 형한테 《소학》을 배우다보니, 아는 글자는 많은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오빠, 내가 전에 말했지, 얘가 글자는 하나의 그림처럼 통째로 외워버리는데, 문장은 잘 모른다고.”

“알고 있어. 가르쳐보니까 그렇더라. 그래도 《소학》은 떼야하는데.”

“스승이 별로라서 그런 거 아니야?” 명희는 오빠가 기운을 좀 차린 것 같아 농담을 건넸다.

“그래, 맞아.”

“알았어. 다른 책은 안 봐도 《소학》은 형한테 끝까지 배울게. 그 책도 통째로 외워버리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그 봇짐에 더 남은 거 없지?” 동희가 승호에게 물었다.

“예, 여긴 다른 건 없고, 저 봇짐은 다 은괴에요. 아니, 금괴도 두 덩이 들어있어요.” 승호가 다른 봇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굉장하군. 근데, 청나라에 가지 못하면 쓸모없는 재물이잖아?” 동희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바다 위의 시간은 느리고 느리게 흘렀다.


“나 밧줄 좀 묶어줘”

“아가씨, 왜요?”

“바다에 갔다 올게.”

“예? 아직까지 물이 찰 거예요.”

“한낮에 해가 이렇게 따가운데 뭘!”

“그래도요···”

“급해, 빨리 묶어!” 명희가 짜증을 냈다.

승호가 밧줄을 묶자 명희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밧줄을 잡고 있다가 그걸 돛대에 묶어 고정시켰다.

명희는 짠물을 꼴깍꼴깍 삼켰고, 바다는 그녀를 발버둥치는 만큼 삼켰다. 명희가 기절하자 바다는 저항 없는 그녀를 물 밖으로 내뱉었다.

승호는 이런 상황을 보지 못했다. 물에 젖은 명희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명희는 정신이 들자 물 위에 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발버둥을 치자 아래로 가라앉으며 짠물을 마셨다. 또 다시 기절하기 싫어 숨을 참았다. 몸에 묶인 밧줄을 가볍게 붙잡고 발버둥도 멈췄다. 그러고는 온 몸을 바다에 맡겼다. 그러자 몸이 물 위로 떠올랐다.

승호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명희를 힐끔 바라보았다.

명희는 손을 흔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승호는 깜짝 놀라 밧줄을 잡아당겼다.

명희는 물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밧줄에 끌려 돛단배로 올라왔다.

“뭐 하는 거야?”

물에 빠진 명희를 보고 급한 마음에 건져 올렸던 남자 셋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명희는 그들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움집 뒤쪽으로 걸어갔다.


바다 위의 시간은 참을 수 없이 느리게 흘렀다.


“오빠, 이거 망주석 재판이랑 똑 같은 얘기 아냐?” 명희가 《백가공안》 첫 번째 책을 읽다가 물었다.

“어, 맞아. 그러니까··· 십일 회 맞지?” 동희가 《백가공안》 다섯 번째 책 읽다가 대답했다.

“그래, 십일 회 맞아. 읽은 지 얼마 안 되서 몇 회인지 기억하고 있구먼.”

“망주석 재판, 나도 아는 얘긴데, 그게 그 책에 있어?” 준이 빈둥거리며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끼어들었다.

“똑 같은 얘긴 아니고, 포공이 기지를 발휘해 해결한 사건인데, 내용이 거의 비슷해.”

“포공이 누구야? 망주석 재판에서는 원님이 다 해결하는데.”

“그러니까, 이름은 포증인데··· 포청천도 몰라? 그럼, 포용도는 알아?”

“몰라, 포씨는 다 모르겠다고.” 준이 짜증을 냈다.

“포청천도 모른다고? 어쨌든 이게 《수호전》보다 재미없어.”

“야, 너 《수호전》도 읽어봤어?” 준이 놀란 눈으로 명희를 바라보며 묻고 나서, “《수호전》 이야기는 나도 알아. 무송이 경양강에서 맨손으로 호랑이 때려잡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지.” 마치 책을 읽어 본 것처럼 말했다.

“그건 누구한테 들었어?”

“전기수가 사람들 모아놓고 얘기할 때 들었지. 그건 그렇고, 너 그 책 읽다가 재미있는 이야기 있으면 나한데 해줘.”

“그러니까 글을 배워야 한다고. 글을 알면 너 혼자 읽으면 될 거 아니야?” 명희가 핀잔을 주었다.

“알았어. 그럼, 네가 가르쳐줄 거야?”

“아니, 오빠한테 배워.”

“책이 있어야지 가르쳐주지. 이런 《백가공안》같은 소설로는 글을 배우긴 힘들 텐데.” 동희가 끼어들어 말했다.

“아니, 글을 꼭 《소학》부터 배워야 돼? 소설로 배우면 재미있어서 더 잘 배울 수도 있잖아? 《백가공안》으로 가르쳐줘봐. 다른 책은 없잖아?” 명희가 제안했다.

“뭐, 《백가공안》으로 글을 배운다고? 안 될 건 없긴 한데······”


바다 위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승호는 고물의 빈 공간에서 발차기 연습을 했다.

“승호야, 뭐하는 거야?” 명희가 승호의 동작을 관찰하다 물었다.

“어, 아니에요.” 승호는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계속 해봐. 나도 좀 배우게.”

“예?”

“그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어, 아니에요.”

“그 털보한테 배운 거야?”

“예.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배워놓으려고 했어요.” 승호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거 잘 됐다. 나한테도 좀 가르쳐 줘! 그 털보 놈, 내가 반드시 복수하고 말거야.” 명희는 어금니를 깨물며 다짐했다.

“아가씨··· 무슨 복수를···” 승호는 진후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말을 끌었다.

“털보 놈이 가르쳐준 걸 알아야 그 놈이 어떻게 싸우는지 알지. 아니, 아예 그 놈이 싸우는 방식으로 싸워서 내가 이기면 털보 놈 기분이 어떨까? 하하하, 그래, 바로 이게 제대로 된 복수지!”

승호는 명희의 황당한 생각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승호야, 배운 거 다 가르쳐줘. 이제부터 나랑 같이 연습하는 거야!”


바다 위의 시간은 느리지만 흐르긴 흘렀다.


동희는 《백가공안》을 읽고 준에게도 가르쳤다.

준은 《백가공안》을 통해 동희에게 글도 배우고, 바닷물을 붓에 찍어 그림도 그렸다.

승호는 《백가공안》을 읽고, 명희에게 자신도 잘 못하는 무술도 가르쳤다.

명희는 《백가공안》을 읽고, 무술도 배우고 하루에 서너 번 수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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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22.04.12 167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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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악몽 22.04.08 157 4 11쪽
47 그림 매매 22.04.07 176 4 10쪽
46 묵연당(墨緣堂) 22.04.06 169 3 11쪽
45 문지기 22.04.05 166 3 11쪽
44 의심 22.04.02 161 3 12쪽
43 삼촌 22.04.01 169 3 11쪽
42 묵향(墨香) 22.03.31 159 2 11쪽
41 양주(揚州) 22.03.30 177 3 11쪽
40 수중전 22.03.29 162 2 11쪽
39 상선(商船) 22.03.26 169 2 10쪽
38 결의(結義) 22.03.25 169 3 10쪽
37 포구 22.03.24 166 3 11쪽
36 변발 22.03.23 171 3 11쪽
35 탈출 22.03.22 167 4 10쪽
34 무인도 22.01.22 166 4 12쪽
33 생선 요리 22.01.21 170 4 11쪽
» 표류 22.01.20 176 4 10쪽
31 돛단배 22.01.19 168 5 11쪽
30 출항 22.01.18 176 3 11쪽
29 체포 22.01.17 177 5 11쪽
28 자상(刺傷) 22.01.16 196 4 12쪽
27 무승부 22.01.15 221 4 11쪽
26 싸움꾼 +1 22.01.14 232 4 12쪽
25 도강(渡江) 22.01.13 242 4 12쪽
24 사라진 말 22.01.12 257 2 12쪽
23 종이 가게 22.01.11 253 4 12쪽
22 문맹 22.01.10 27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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