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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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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69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7.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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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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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2쪽

황후가 될 자.

DUMMY

"황제를 끌어내린다니.. 어떻게 말입니까? 북경의 경비 수준은 청을 통틀어 최고가 아닙니까? 설마 아침 조회에서 거사를 벌이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황제를 끌어내리겠다는 일부 인사들의 소신발언이 나오자 대청유신회의 모임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아무리 지금 함풍제가 실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해도. 대청유신회의 회원들의 대다수는 감히 대청의 황제를 무력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발상 자체를 불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최선으로 여기는 것은 함풍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들끼리 짝짜꿍해 청을 개혁하는 것이었지. 황제의 죽음은 아예 계산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저희가 황제 폐하를 끌어내린다고 해도. 억조 신민들이 저희를 지지해 줄 것 같습니까? 수천년을 이어온 중화 문명을 스스로 끝장내겠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손으로 황제를 끌어내린다면 저희는 저 동이와 양이들과 뭐가 다른 겁니까? 황제를 보필하고 청을 개혁하는 것이 저희의 존재 의의 아닙니까?"


더 큰 문제는. 대청유신회 내에도 수많은 파벌이 산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눈에 띄는 파벌만 해도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함풍제를 위시한 황제의 실권을 없애고 국민통합의 상징으로만 남겨두자는 급진적 입헌군주제.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실권은 쥐여줘야 한다는 온건적 입헌군주제가 대립하고 있었고.


다 필요없고 일단 나라 살림부터 붙잡고 보자는 실리파. 대한제국에게 빼앗긴 만주를 재탈환하고 서양과 전쟁을 해 승전보를 울려 다시 천하의 주인임을 알리자는 전쟁파. 그리고 너무나 거대한 제국으로 남아있다가 멸망하느니 소국으로 살아남는 것이 옳다면서 각 성의 연방화 계획을 추진하려는 연방파.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일갈하며 청은 무조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연맹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나라가 이 꼴이 된 건 다 아이신기오로 씨가 잘못해서 그런 거니 아예 역성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역성파와 지금같은 시대에 제정이 왠 말이냐며 공화국을 이상향으로 삼는 공화파가 있었다.


딱 보아도 개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각 파벌들은 물과 기름같이 절대로 섞일 수 없는 존재였는데. 문제는 이 파벌들 간의 관계가 물과 기름 수준이 아니라 알칼리와 산성의 관계라는 것이다.


두 물질을 같은 컵에 부으면 섞이면서 중화되겠지만. 그 컵은 그들의 조국. 청나라였다. 과연 그들의 정쟁에서 발생되는 막대한 중화열을 그 컵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


그렇게 청이 또 다시 내부에서 썩어들어가고 있을 때 즈음. 대한제국의 수도 평양에서는 신하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토론인 즉슨 바로 만주족들이 드디어 추대한 황후감 때문이었는데. 확실히 미모도 빼어나고 지식도 많아 일국의 황후로서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하필이면 아이신기오로 가문이라니..."


그렇다. 그녀는 본디 청의 황족. 아무리 말단이라고 해도 황족으로 인정받는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여식이었던 것이다.


"이름은 뭐라고 하였습니까?"


"이미 자신은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대한에 몸을 의탁하였으니. 스스로를 '흩날리는 꽃'이라며 '난화'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였습니다."


"거 참..! 마음씨도 합격점인데!"


신하들은 애가 탔다. 설마하니 만주에 아직도 청의 황족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고. 또 만주족들이 그녀를 황후로 추대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녀를 내친다면 만주족들의 반발은 둘째치고서라도 또 황후 간택에만 몇 년을 지리멸렬하게 쏟아부어야 할 것인데. 가뜩이나 돈 나갈 구멍이 많은 신생국인 대한제국이 그런 수고를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이신기오로. 즉 청나라의 황족이라는 것이 너무나 큰 약점이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광영이라며 좋아라 했겠으나. 칭제건원으로 인해 청나라와의 관계가 파탄나고 만주 합병으로 인해 전시 상태로 전환된 와중이었으니 말이다.


"이걸 어찌하면 좋겠소? 참으로 참한 황후감인데.."


"그냥 폐하께 직언을 드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만주족 황후를 들이려 이 수고를 들인 것이니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이치에 맞을 듯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습니다. 일단 황제 폐하께서 출석하시면 이 여인에 대해 아뢰도록 합시다."


그렇게 신하들이 만장일치로 책임을 떠넘기자고 의기투합하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어느새 황제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 폐하! 기체후일향만강하시옵나이까!"""


"그렇다. 오늘은 왜인지 마음과 몸이 한결 더 편안하니. 국정을 더 이치에 맞게 살필 수 있을 듯 하구나."


"황상의 옥체가 이토록 건강하심은 참으로 제국의 홍복이옵나이다. 게다가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사오니. 드디어 만주족들이 황후를 추대하였나이다."


"오! 드디어 홀몸을 벗어나게 되었구나. 제국의 국모가 될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가?"


"그.. 그것이.."


"어허. 어서 말하지 못할까."


"아..아이신기오로 난화라 하옵나이다."


"아이신기오로?"


황제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이름이 여기서 대관절 왜 나온단 말인가? 그토록 만주에 적당한 여자가 없었단 말인가?


황제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자. 얼굴을 숙이고 있던 신하들은 불안해하며 곧 이어 나올 황제의 옥음을 기다렸다. 만약 황제가 거절의 뜻을 밝힌다면. 또 만주족과 지겨운 줄다리기를 해야 했기에.


"뭐. 상관없겠지.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신하들에게는 다행으로. 황제는 신하들에게 일갈하는 대신 아이신기오로 난화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


딱딱딱딱딱.....


산만한 소리가 집중을 깨뜨렸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집중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만 떨도록 하세요 샹얀.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면 괜히 소문만 나돌게 됩니다. 이제 곧 황후가 되실 분이 몸가짐을 바로 하셔야죠."


늙은 유모가 주의를 주자. 젊다 못해 어려보이는 여자는 그제서야 딱딱거리는 손가락질을 멈추었다.


"유모. 나 정말로 황후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


"그럼요. 샹얀처럼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무엇보다 당신은 만주족들의 추대를 받아 이곳으로 왔습니다. 황제도 샹얀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해요."


샹얀. 만주어로 '백색'을 뜻하는 단어는 난화의 본래 이름이었다. 그 이름대로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13세였고. 남자를 알기에도. 세상을 알기에도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그저 눈에 띄지 않으려고 꼭꼭 숨어다녔지만. 황후 찾기의 광풍은 피해가지 못했고. 결국 아이신기오로라는 성과 가문의 후광을 믿고 있는 만주족들의 추대를 받아. 이곳 한성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치만... 그렇게나 사람들을 죽인 자인데... 나도 죽일 수 있다는 거잖아."


유모가 해준 말은 그녀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만주족이었고. 청의 황족이었으며. 중화사상을 믿어 의심치 않아왔었다.


그런데 작금의 천하가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여 그녀가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 아직 월경조차 하지 않은 어린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인 사건들에 불과했다.


조선이 칭제건원을 하고 만주로 쳐들어온 것.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아껴주었던 자들이 단지 조선의 지배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총살당한 것.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유모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도망친 자신.


성인이었을지라도 어딘가 망가졌을 게 분명한 사건을 겪고도 그녀는 사지 멀쩡히. 정신 또렷히 살아있었지만. 그것이 그녀를 더욱 더 미치게 했다. 죽을 길을 피해 죽을 곳으로 왔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똑똑!


"!"


"누구십니까?"


"황제 폐하께서 오고 계십니다. 준비하십시오."


방문 밖에서 무심하게 울린 목소리가 그렇게 공포스러울수가 없었다. 이미 옷가짐과 화장은 끝난 상태였지만. 정작 샹얀 그녀 자신이 고개를 들지 못해서야 의미가 없다. 화려한 옷도 화사한 화장도 결국 사람 위에 덧입히는 것 아니던가.


"샹얀. 이 유모를 보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웃음을 지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만주로 돌아가실 겁니까?"


"하지만.. 나는... 나는.."


"당신은 약하지 않아요 샹얀. 당신을 키운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샹얀은 황족입니다. 대국의 황족이란 말입니다! 소국의 황제에게 기죽지 않아도 될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겠지요?"


샹얀은 달달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유모는 안심한듯 옅게 웃음을 짓고. 투레질을 하느라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


저벅. 저벅. 저벅.


"황제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


"..."


"처..처음 뵙겠습니다 대한의 황제이시여. 소녀는 아이신기오로 샹..아니. 난화라고 하옵나이다."


"아이신기오로라. 지금 전쟁 중인 나라의 황족이 어찌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아이신기오로는 만주족의 황조고. 저는 만주족의 추대를 받아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만주족 황후를 들이고 싶다고 하신 것은 폐하가 아니셨는지요?"


"그렇지. 하지만 짐은 소녀가 아니라 여인을 원하였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괜찮다. 그거야 네 탓이 아니니까. 네 나이가 올해로 몇이더냐?"


"소녀는 올해로 13세가 되옵니다."


"어리구나. 참으로 어려...."


황제는 지긋하게 난화를 바라보면서 말문을 닫았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난화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동족 수십만을 학살하고. 고향을 빼앗은 찬탈자이자. 대한제국의 창업군주인 자가 바로 그녀의 앞에 있었다.


지배자로서의 위엄을 아낌없이 뽐내는 그는. 대국의 황족에서 나오는 기품따위는 하찮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 없이 노려본 황제는 시선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로부터 한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유모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황족과 같은 방에 있는 것을 보면 평범한 노파는 아닐진대..."


"이 늙은이의 이름은 '무단'이라 하옵니다. 그저 하찮은 유모일 뿐이니. 대한의 황제께서는 성총을 거두소서."


"그렇군."


애초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황제는 순순히 눈빛을 거두고 다시 난화를 바라보았다.


"너는 진정 나의 아내이자 대한의 황후가 될 자격이 있다 생각하느냐?"


"..그렇사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황제가 담담히 그녀에게 물었다. 미모와 인성은 별개고. 지식과 지혜는 별개인 것. 그것을 알고도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자신의 의지거나. 아니면 저항할 수 없는 외압이거나.


하지만 난화에게는 외압으로 인한 축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곧은 소녀의 기운뿐. 황제는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자아. 대답해보거라. 어째서 네가 대한의 황후로서 어울리는 여인인지를 말이다."


그렇게 묻는다면야. 대답할 말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스스로와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그 자리에 서 있던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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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마지막 결단 +2 20.09.29 952 19 12쪽
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4 20 12쪽
56 타타르의 멍에 +7 20.09.23 1,119 21 12쪽
55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61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80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0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0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39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8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1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5 17 12쪽
44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4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6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1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5 25 12쪽
39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4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5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09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4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7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4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5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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