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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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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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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7.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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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인민의 제국

DUMMY

1857년 10월 1일.


완연한 가을의 날씨와 더불어. 평범한 민초들에게는 누렇게 익은 논들을 보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려 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신민들은 들으라.-


대한제국의 모든 마을과 도시에 황제가 보낸 전령관이 근엄한 목소리로 신민들을 불러모았다. 황제가 전하는 말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령관의 앞에 모여 황제를 받들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짐이 만주 벌판을 넘어 고구려의 기상을 널리 떨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정하고 간악한 청의 침략군을 징벌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또한 짐이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이 낡은 나라의 대들보를 새로 세우니 4000만 신민들이 모두 만족하고 편안해하였다.


그런데. 짐이 어염집의 복식으로 환복하여 저잣거리를 둘러보니 민초들의 삶은 만족과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노라.


아비들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여 새벽별을 보고 퇴근하고 있었으며. 어미들은 살림을 꾸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돈을 가지고 배고프다 보채는 아이를 달랠 수밖에 없었노라.


천하의 곡식이 알맞게 익었음에도 아직도 많은 신민들이 피죽 하나 먹지 못하고 굶어 죽고 있으니. 어찌 짐이 대국을 이끄는 황제라 자칭할 수 있겠느냐?


따라서 내 신민들의 삶을 편안케 하고자하는 안민의 정신으로 이상의 칙령을 정한다.


하나.


그 어떤 직장에서 일하는 자이든. 앞으로는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수면의 원칙이 지켜질 것이니라.


둘.


앞으로 모든 일하는 자들은 최저한의 생계 유지가 가능한 임금을 받을 것이다.


셋.


앞으로 모든 15세 이하 아동들에게 매일 감자 세 덩이와 우유 한 컵을 주어 미래의 신민들을 양육하도록 할 것이다.


넷.


모든 노동자들은 저마다 연합하여 너희들을 착취하려는 자본가에 맞설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 지며 만약 악독한 자가 너희들을 탄압한다면 그대들의 뒤에 짐이 있음을 잊지 말라!


다섯.


앞으로 모든 농작물은 병작반수의 원리로 반절을 국가에서 회수할 것이며. 그에 따른 보상은 화폐나 동전으로 국가에서 지불할 것이다.


여섯.


앞으로 모든 가정에 배급관들이 찾아와 가족의 수를 조사하고. 그 수에 따라 1년을 생활할 수 있는 백미를 나누어줄 것이다. 이 배급은 지속될 것이며. 제국이 타락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일곱.


그대들은 대한의 신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함과 동시에 항상 타국 신민들의 모범이 되도록 하라.


피부로 사람의 귀천을 파악하지 말며. 약소국의 노력을 비웃지 말며. 배우지 못한 이들을 멸시하는 대신 손을 잡고 이끌어 지식의 참된 빛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문명인의 자세이다.


이상으로 짐이 제국 전역에 일곱가지 칙령을 내리노리. 대한의 신민들은 마땅히 칙령에 순종하여 대국의 미덕을 보일지어다.-


전령관의 말이 끝나자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4000만의 입에서는 우렁찬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다.


*




"황제 폐하 만세! 대한제국 만세! 이런 황제를 모시는 우리는 참으로 복된 민족이로다!"


"황제시여. 4000만 신민들이 그대에게 만세를 부르나이다!"


태황궁의 공사 현장 앞에서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태극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는지. 근처의 외국 공사관들이 '아니 벌써 황태자가 태어났나?'하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붉은 맛이 좀 많이 섞여들어간 포퓰리즘 성 복지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붉은 거라면 소세지도 싫어하는 유럽의 자본가들이 이끄는 이 시대에 있어서 대한제국 황제의 일곱가지 칙령은 말 그대로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한참 뒤에 나올 생디칼리슴의 대표 구호를 끌어들인 것도 그러하며. 최저임금과 노조 결성의 자유. 국가의 개입과 배급제라는 어딜 봐도 붉은 기운 가득한 칙령의 내용들은 이제 막 대한제국에 진출하려는 유럽의 사업가들이 빠른 손절을 하게끔 만들었다.


당장 노동자들이 머리에 띠 하나 두르고 저기에 나온 내용 하나만 언급해도 난리가 나는 것이 유럽이었는데. 머나먼 극동 제국의 황제가 직접 붉어졌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었다.


"에잉! 역시 아시아인들은.... 저렇게 하면 1년도 못 가서 망할게 뻔하지! 돈은 못 벌고 나가는 구석만 많으니... 마르크스 그 얼간이가 언제 저기로 갔담?"


"흥! 누구는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나? 세계를 호령하는 우리 영국도 엄두도 못내는 것들을 극동 원숭이 놈들이 어떻게 한다고..."


황제의 예상대로 유럽의 열강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당장 붉은 기운이 폭발하면 잃는 것이 많은 것은 그들이었을 뿐더러. 당장 몇 년 전인 1848년에는 정말로 혁명이 일어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혁명은 실패했고. 유럽에서는 아직도 자본주의가 열강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럽의 자본가들과 높으신 분들은 하나같이 대한제국의 붉은 개혁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중앙집권에 미친 국가였는지.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후손인 대한제국의 황제가 얼마나 국민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




"협조 감사합니다 강중옥 씨. 당신이 낸 곡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겁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나으리. 나랏님이 옳은 일을 하시는데 신민된 도리는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삼남 지방에서 쌀 농사를 짓고 있는 강중옥은 흔쾌히 병작반수의 원리를 받아들였다. 나쁜 일에 쓰는 것도 아니고. 굶어죽고 있는 다른 동포를 구한다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당장 자신도 젊은 아들을 세 명이나 만주로 보냈다. 춥고 가혹한 만주에서 밥을 굶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들들을 생각하면 농작물 수확량의 반절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다른 한반도 지역의 농부들도 전부 비슷하였다. 근대화가 실시되면서 화려한 문물에 넋이 나간 젊은이들은 꾸역꾸역 미친듯이 한성과 평양으로 몰려들었고. 막차를 타지 못한 이들은 만주로 향하였다.


그 과정에서 도시에는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대부분이 공장의 하류 노동자로 전락한 젊은이들은 오히려 시골에서 살 때보다 영양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애환은 편지에서 드러나기 마련이었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밥도 제대로 먹고 다니지 못하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먹을 것을 도시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대한제국이 실시하려 하는 배급제는 이러한 배달제를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 하나가 '내가 피땀 흘려 만든 건데 왜 공짜로 남에게 줘야 하는데!?'가 '가족애'라는 명목으로 해결되자. 먹을 것이 풍부하게 공급되기 시작한 도시는 공장의 소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수면이라는 3대 1의 황금 비율은 사업가에게 하여금 적은 인원을 쥐어짜서 효율을 늘릴 수 없다는 결론을 주었고. 사업가들은 결국 임금을 더 주는 한이 있어도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 공장을 최대한 가동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기서 최저임금제는 또 다른 부수효과를 가져왔는데. 바로 경제의 성장이었다.


현대에서는 영 메롱이었던 소득 주도 성장론이 천명했던 바와 같이 최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뛰어오르자 당연히 그만큼 소비도 늘어났는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노동자들은 더 좋은 옷이나 가구들. 그러니까 경공업으로 만들 수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을 월급이나 주급. 혹은 일급을 털어 구매하기 시작했다.


구매한다는 것은 곧 수요가 있다는 것이고. 수요가 있다면 공급도 있어야 하기에 사업가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더 많은 공장을 짓고 더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했으며. 노동자들은 더 많은 소비와 수요로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11월 16일.


홍콩의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876명의 용사들이 돌아오자. 들뜬 국민들은 헌화나 축하 선물 명목으로 더 많은 소비를 시작했고. 이렇게 증폭된 소비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경기 전체를 위로 이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호황기'가 시작된 것이다.


"폐하께서 이러한 결과를 예측하시고 그렇게 행동하셨다니... 참으로 부끄럽구나! 신하로서 폐하를 믿었어야 했건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은 경공업의 발전을 미루더라도 중공업 육성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황제를 설득하던 신하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그것이 제국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황제가 옳은 것이 문제였다.


중공업에 최소한의 투자만을 하며 경공업을 육성한 결과는 수요를 따라가는 공급으로 증명되었고. 만약 경공업의 발전이 미미했다면 경기가 좋아졌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좋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이 경제학자들의 정설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호황으로 벌어들은 돈과 자원을 다시 중공업에 투자하고 있었으니. 중공업 우선 육성을 천명했던 신하들은 말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




대한제국의 급격한 성공은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라 국외로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지금까지 공상이라고만 생각했던 사회주의식 경제 체제가 성공하고. 유지되는 것을 본 자본가들이 개거품을 물어댔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이건 우연일 뿐이야... 그래! 언젠가는 무너질 허점 많은 체제란 말이야!"


"이런 젠장.. 안 그래도 요즘 아랫 것들이 못 살겠다고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런 뉴스라니..!"


세뇌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의 정보를 차단하거나 곡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세뇌의 대상이 자신이 있는 곳이 가장 나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영국의 노동 계급은 대부분이 문맹인 상황. 실질적으로 영국의 자본가 계급들이 어르고 달래려고 하는 것은 돈은 없는데 머리에 든 것은 쓸데없이 많은 지식인 계급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혁명이나 내란은 배운 사람의 두뇌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무지한 자들이 신념에 빠지면 무섭다는 말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대한제국의 소식을 접한 영국과 유럽의 지식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다시 한 번 부르짖으며 자본가들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가! 형제들이여 일어나세! 일어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투쟁하는 거네!"


"사회주의 혁명 만세! 프롤레타리아 혁명 만세!"


물론. 그 대부분은 얼치기 혁명가들의 공상으로 시작해 형장의 이슬로 끝났지만. 아시아에서 일어난 붉은 혁명을 보고 들은 혁명가 중에는 그런 얼치기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자도 있었다.


"대한제국이라... 한 번 가봐야겠어.."


그 혁명가의 이름은 카를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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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한(韓) 에포크(완) +3 20.10.05 1,115 20 12쪽
59 사후정리 +4 20.09.30 1,021 20 12쪽
58 마지막 결단 +2 20.09.29 951 19 12쪽
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4 20 12쪽
56 타타르의 멍에 +7 20.09.23 1,119 21 12쪽
55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60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79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0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0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39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8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0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5 17 12쪽
44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3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5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0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4 25 12쪽
39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3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5 18 12쪽
» 인민의 제국 +6 20.07.21 1,709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3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7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3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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