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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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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42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8.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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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DUMMY

"으아악! 미쳐버리겠네!"


증국번이 이끄는 병사 중 한 명이 결국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벌써 이게 며칠 째인가. 빙빙 돌고만 있지 진격도 돌격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전부 다 저 빌어먹을 사교도들. 스스로는 태평천국에 지도자는 하늘의 왕이라고 자칭해대는 적도들 때문이었다.


"아서라 임마. 그러다가 총 맞아서 골로 가면 고향에 있는 네 가족들은 어쩌려고 그러냐?"


"제기!"


마음 같아서는 이 빌어먹을 수풀을 전부 태워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밥 지어먹을 땔감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빌어먹을 숲 속에서 유령같은 전쟁을 한 지도 벌써 3개월. 단 1km도 진격하지 못했고. 병사들은 점점 죽어나가며. 사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지 오래였다.


게릴라 전술을 집중적으로 훈련받은 태평천국군은 집요하게 청군의 보급로와 지휘부를 노렸고. 보급품의 손실과 지휘부의 전멸로 이성을 잃은 청군이 무질서하게 돌격해오면 태평천국군은 미소를 지으면서 포격과 총격을 퍼부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적어도 전면전이 아닌 유격전에서는 고리타분한 청군이 유연하다 못해 치즈처럼 늘어나는 태평천국군의 지략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적어도 100년은 후에 베트남의 정글에서 겪어야 할 극한의 소모전과 심리전에. 19세기의 청군이 그대로 말려들어가버린 것이다.


"총사령관 각하. 이대로 가다가는 희망이 없습니다."


"북경 정부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한 모양입니다. 이번 년 내로 어떻게든 성과를 내지 않으면 북경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라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상제께서는 우리를 버리신 것인가."


증국번은 해탈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았다. 속이 쓰릴 정도로 맑았다. 지상의 인간은 어떻게든 안의 적과 밖의 적에게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생명을 불태우고 있건만. 저 하늘에는 그렇게 불태운 연기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전쟁이라고는 겪어본 적도 없는 북경의 정치인들이 현장의 처절한 광경을 알리도 없고. 이해할리도 없다. 차라리 아무런 명령도 없이 미친듯이 장강에서 적도들과 싸웠을 때가 나았다고. 증국번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저들은 우리를 살려보낼 생각이 없다. 50만이 오든 100만이 오든 마찬가지야. 이 숲을 불태우지 않으면 우리는 이 숲에서 죽을 것이다."


"그.. 그렇다면."


"숲을 불태워라. 하나도 남김없이. 유황과 인을 섞어서 불모지로 만들어버려."


스산한 눈빛을 발하는 총사령관의 광기어린 목소리에 지휘관들은 그저 숨을 쉬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병사들은 증오와 분노를 담아 횃불을 만들어. 자신들의 동료와 가족을 집어삼킨 거대한 숲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놈들이 숲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요!"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놈들과 전면전을 해야 할 겁니다!"


"산맥을 끼고 싸운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숲이 필요합니다!"


태평천국군이 지은 자그마한 산성. 그곳에는 태평천국군의 장교들과 대한제국의 자문단이 있었다.


이미 눈이 돌아버릴대로 돌아버린 청군이 숲을 불태우려 하고. 실제로 그러고 있자. 겁에 질린 장교들은 자문단에게 해답을 요구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기다리십시오."


"예?"


"기다리면 하늘이 답을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하늘이 답을 준다라. 다른 군대라면 무슨 개소리냐며 화를 냈겠지만. 잊지 말도록 하자. 이곳은 태평천국이다. 지도자부터가 하늘의 왕이랍시는데 하늘이 답을 준다면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장교들도 자문단에 의해 어느정도 군문에 발을 들인 자들. 막연하게 하늘이 답을 준다는 말만을 듣고 물러설 자들이 아니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 주십시오. 밑도 끝도 없이 하늘이 도와줄리가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병사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기우제."


"네?"


"저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엄청난 기세로 말이죠."


"그게 무슨..?"


"보통 기우제를 지낼 때는 대규모로 장작을 태우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나무나 석탄따위를 태워 생겨난 연기는 당연히 이산화탄소를 잔뜩 머금고 있다. 그 이산화탄소가 하늘로 올라가면 대기권에 모여있는 수분들의 응결핵 역할을 하면서 구름이 생성되게 되는데. 구름의 밀도가 짙어지면 높아진 밀도를 다시 낮추기 위해 비가 내리는 것이다.


즉. 청군이 지금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겠답시고 벌이는 방화 행각은 그저 비가 더 많이. 빨리 오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어렴풋이 일러주자 마침내 파악이 끝난 태평천국군 장교단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앞으로 청군에게는 힘든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쏴아아아아아-!


"이야~ 비 한 번 시원하게 오는구만. 이번 해는 농사가 잘 되겠어?"


"껄껄. 이렇게나 많은 비는 오랜만이네. 하도 비가 안 와서 농사 망쳐본 적은 있어도.."


시원하게 비가 오는 모습을 보며 산성 속의 태평천국군은 농담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고로 비가 올 때 먹는 파전과 막걸리야말로 인생의 진리인 법. 보급이야 대한제국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으니. 전쟁터에서는 비싸디 비싼 술과 밀가루를 아끼지 않고 가져다주는 대한제국의 부가 얼마나 막강할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이야. 막걸리 맛 한 번 죽여주네! 천왕께서 동맹을 잘 고르셨어!"


"파전 맛도 끝내준다! 어여 먹어봐!"


"끌끌. 토벌군 쓰애끼들. 지금쯤이면 밥도 못해먹고 있겠지?"


"으음! 역시 파전은 연탄불에 구워야 제맛이 난다니까!"


서로 옹기종기 모여 파전과 막걸리를 진탕 마시면서 노는 병사들의 모습은 군기가 빠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장교단들과 자문단은 그것이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것을 알았기에 구태여 터치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도 힘든 일이며.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도 힘든 일일지며 울창한 숲 속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고 보듬어주지 않았다면. 이 자그마한 산성은 벌써 정신이 나간 병사의 폭주로 함락되거나. 불에 타 버려졌을 것이다.


"크으~! 기우제 한 번 확실하게 보내네! 술 맛 좋고~!"


"야! 누가 노래 좀 해봐라! 이런 날에는 노래를 들어야지!"


"좋아쓰~! 그럼 내가 한 번 나서볼까!"


"""노래해! 노래해! 노래해!"""


그렇게 빗발치는 비 속에서 태평천국군은 태평한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청군과는 다르게 말이다.


*


"누가! 누가 총사령관 각하를 안으로 모셔라!"


탕!


"흐어억!"


청군 사령부. 그곳에서는 습격을 당한 것도 아닌데 난데없는 총성이 비를 뚫고 울리고 있었다.


"왜애애애ㅐ!!!!!!!!!! 왜 비가 오느느거야ㅐ !! ㅓ우러ㅝ어어!! 어어! 나무도 자르고 불로도 태우고 유황도 던지고 다 했는데! 어대져 냐 즁귝벼니는 햄보칼 수가 업써어어!!!"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 미리 장전해 놓은 총을 마구잡이로 난사하는 증국번. 그리고 그 광경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장교들과 병사들. 그들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증국번이라는 사령관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그러나 하늘은 노력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일거리를 쥐여준다는 식으로 엄청난 양의 비를 내려주셨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지만 비는 물러가지 않았다. 마치 네가 우릴르 불렀으니 평생 함께 있어주마라고 비구름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증국번의 실성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술에 취하고 바깥에 나가서 총을 난사하고. 옷가지는 다 젖어 진흙에 절었는데 증국번은 어지간히 취했는지 미친듯이 웃기만 할뿐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이미 50이 넘는 나이에 저런 짓을 하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터. 결국 용감한 병사들이 총사령관에게로 달려가 무기를 빼앗고는 서둘러 근처의 천막으로 데려갔다.


"어서 옷가지를 벗기고 몸을 말려야 한다! 난로에 장작을 더 넣거라!"


"예!"


"수건을 가져오고 마른 옷을 가져오거라! 혹시 모르니 의무병들은 천막 안에서 대기하라! 총사령관께 변고가 생겨선 아니 된다!"


그렇게 증국번은 실신한채 옷가지가 벗겨지고. 앙상하게 마른 몸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수건에 말려졌다. 장교들의 극진한 호위 끝에 사령부의 천막에 도착한 증국번은 난로와 가장 가까운 침대에 뉘여졌다.


"이걸 드시게 하시지요."


"이게 무엇이냐?"


"홍삼을 달인 물입니다. 열을 돋구게 하는 약재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어서 내놓거라."


꿀꺽.꿀꺽.


의식을 잃은 증국번의 입으로 홍삼을 달인 물이 조심스럽게 흘러들어갔다. 행여나 기도로 물이 흘러들어갈까봐 장교들은 발마저 구르지 못하였다.


"이제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고령이신데다 근심도 심하셨고. 게다가 그 난리를 치셨으니.."


의원의 침통한 말에 천막에 모인 장교들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이 전쟁에서 증국번이 없다면 과연 그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


청국 정부의 예상 외로. 1년이 넘었는데도 러시아는 언제쯤 최후통첩을 할 것이냐고 재촉하지 않았다.


대청유신회는 식은땀을 훔칠 수 있었지만. 그 뒤에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바로 러시아 내에서도 정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흑해가 있는데. 어째서 머나먼 극동의 부동항을 빼앗자는 겁니까!? 러시아인들은 아직 크림의 복수를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국적인 판단을 해야할 때요! 과연 우리 러시아가 다시 크림에 눈독을 들인다면 저 서유럽의 들개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극동의 부동항을 차지한들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거요! 게다가 그깟 미개한 황인들의 나라쯤. 한 달이면 무너트릴 수 있소!"


"대한제국을 한 달 내에 쓰러트릴 수 있다는 근거! 그것이 듣고 싶습니다!"


쉽게 말해. 제2차 크림 전쟁을 원하는 세력과. 태평양으로의 확장을 꾀하는 세력이 치열하게 승부를 벌였던 것이다.


둘 다 어느정도의 신빙성과 근거가 있었기에 정쟁은 쉬이 끝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행방은 동방파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차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차르가 이 전쟁을 계획하였으니 말이다.


차르가 말했듯이 시베리아 넘어 300만명 남짓한 수밖에 살지 않는다는 것은 러시아의 인구가 4500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 많이 심각한 것이었고. 극동파들은 이 기회에 낙후된 극동 지방에 부동항을 확보하여 동방의 경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일갈하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크림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았던 현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크림 전쟁의 악몽이 다시 재현되거나 반복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고. 그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전선인 극동 전선에 러시아의 국운을 걸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국운이 휴짓조각으로 변해버리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이다.


작가의말

증국번의 절망감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타를 수정하지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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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3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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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60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79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0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0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39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8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0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5 17 12쪽
»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3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5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0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4 25 12쪽
39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3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4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08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2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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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3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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