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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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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43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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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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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2쪽

마지막 결단

DUMMY

"대장님... 언제까지 끌어들여야 합니까?"


"아직이다. 기다려... 충분히 끌어들여야 한다."


폐허가 된 옴스크. 불타다 남은 재들과 무너진 건물의 골조들이 흉하게 드러난 이곳에서. 수십만의 군대와 수백만의 군대는 싸움을 시작했다.


한쪽은 마지막 희망까지 뿌리뽑기 위해. 한쪽은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기 위해. 정 반대의 목적을 가진 두 군대는 폐허를 돌아다니며 죽일 적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선봉대가 러시아군이 설정한 사선을 넘는 순간. 폐허 속에서는 족히 30명이나 되는 소총병이 나타나 10명 남짓한 한국군을 애워쌌다.


"무. 무슨?!"


"Запуск!(발사!)"


타타타탕!


"크어억!"


30정의 머스킷에서 일제히 납탄이 쏟아지자. 10명에 불과한 선봉대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지금까지 러시아인을 학살해대었던 대한제국군의 최후라고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죽음.


그러나 겨우 10명 죽은 것 가지고는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뭐야!"


"저기서 총소리가 들렸어!"


"소대 집결! 소대장을 따르라!"


"""예!"""


총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리자 마치 전광석화처럼 반응하는 한국군을 피해. 옴스크의 러시아군은 잽싸게 달아나 몸을 숨겼다.


탁. 탁. 탁.


그리고 얼마간은 장전봉이 총구에 꽃히는 게 반복되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머스킷이라는 총기의 한계상. 전면전에서의 화력전은 무리. 그렇다면 최대한 폐허의 잔해들과 참호를 의지해가며 적들의 소모를 노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아직 제국으로 남아있었을 적. 머나먼 극동의 전선에서 한국군이 러시아군의 공세를 굳건히 버텨낼 수 있게 하였던 참호전 전술이 언제부턴가 러시아군에게까지 전수된 것이다.


"이제 모두 본부로 귀환한다. 소리내지 않게 조심하고. 총은 최대한 아래쪽으로 밀착해.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 모두 죽는 줄 알아."


"""예."""


쥐새끼처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30명의 소대는 다시 본부로 돌아갔다. 잘그락 잘그락 소리를 내는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을 피하고. 날카롭게 깎여진 공사용 자재에 긁히지 않도록 옷자락을 들쳐매면서 말이다.


한때 전 유럽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했던 나라의 군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처절함이었지만. 처절하기에 그들의 희생과 투쟁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


"한국을 어떻게든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수로 말이지요?"


러시아의 대사가 거의 비명에 가까운 구원 요청을 하고 난 뒤. 영국의 정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한국이 지금 러시아에게 가하고 있는 인종말살 정책을 인정하고 아예 유럽 대륙의 패권을 완전히 거머쥘 것을 주장하는 강경파.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 한국을 중재시키고 만신창이가 된 러시아를 압박해 이권을 뜯어내고. 만일을 대비해 동유럽의 신생 독립국들을 지원해 러시아의 재기를 막는 것으로 끝내자는 온건파였다.


"이건 기회요! 저 시건방진 루스 놈들을 완전히 멸절시키고 우리 위대한 앵글로색슨족이 세계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란 말이오! 아직도 그걸 모르겠소?"


"세계의 패권?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우리 영국은 이미 세계를 휘어잡고 있소이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영제국이 문명국의 으뜸으로 군림하는 것이지. 어엿한 백인 국가이자 문명국인 러시아가 야만적이고 제대로 된 문명도 갖추지 못한 동방의 소국에게 쥐어터지는 꼴을 보고만 있자는 게 아니외다!"


"문명국이라? 언제부터 문명국의 정의가 '야만인들에게 쥐어터지는 나라'가 되었소이까? 게다가 동방의 소국? 대한제국의 영토 크기나 보고 말하는게 어떻소? 이미 영토 크기만 본다면 대한제국은 그 인도보다도 거대하단 말이오!"


언뜻 본다면 우스운 광경이었지만. 영국으로서는 사실상 어느쪽을 택하던 상황이 어색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본질적으로 지금 러시아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거의 90%가 대한제국의 역량이었고. 영국의 역할은 약간의 보급과 발트 함대의 궤멸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냐 하면 그것은 이야기가 조금 복잡한데. 지금까지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유럽 대륙은 크게 프랑스. 프로이센. 러시아. 그리고 영국이라는 4강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러시아가 압도적인 패배로 인해 국가 자체가 붕괴되자. 자연스럽게 가장 동쪽에 있는 프로이센의 입김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엄청난 수가 갈려나가면서 국가의 노동력 자체가 크게 감소한 신흥 독립국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뼈가 빠질 지경인데 거기에다가 대한제국의 진군을 막느라 없는 자원까지 빼서 러시아를 지원해야 하니 만약 프로이센이 동진을 결정한다면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이 프로이센의 속국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즉. 지금 영국의 의회에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대한제국의 진군과 러시아의 붕괴로 인한 유럽 대륙의 파워 밸런스를 어느쪽으로 맞춰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우선 강경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이미 러시아는 붕괴했으니 내버려두고. 지금 신생아나 다름없는 동유럽의 신흥국들을 대한제국으로부터 딜을 해 지켜낸 다음 적극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해 친영국 정권을 집권시킨 다음. 느슨한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서 프로이센의 동진을 막는 방파제로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반면 온건파의 주장은 조금 달랐는데. 일단 같은 백인으로서 황인들에게 제노사이드를 당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으니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고 알래스카가 받아가라고 대한제국을 달래고. 나머지 러시아 부분을 건져내서 형태뿐인 회생을 시켜준 다음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보호령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강경파와 온건파의 주장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국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일은 막아야만 한다!-


이미 대한제국이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영국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한제국은 잠정적으로 1억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는 국가. 그 넘쳐나는 인구를 러시아로 방출시킨다면. 당장 동유럽까지 황인종이 진출하게 될 터.


유럽 대륙을 백인들의 총본산으로 여기는 다른 열강들이 그걸 순순히 용날할리도 없겠지만. 만약 그것이 실현된다면 영국으로서는 다른 의미로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된다.


당장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대한제국과 겨뤄야 할테고. 알래스카가 넘어간다면 당장 캐나다에는 징병령을 내려야 할 판이다.


그렇게 영국의 의회가 서로 씨름을 하고 있을 무렵. 대한제국으로부터 한 전보가 도착하게 된다.


*


"마음 같아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불태우고 싶었지만...뭐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겠군. 옴스크 공방전이 끝나면 병사들을 귀환시키게. 이 전쟁은 끝났어."


"폐하.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알래스카만 뜯어내고 자유롭게 풀어둘 걸세."


태황궁의 황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2000만이 넘는 러시아인을 학살한 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신하들은 황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래스카야 당연한 전쟁의 전리품이지만. 남은 러시아의 광할한 영토는 그냥 그대로 러시아의 것으로 두다니?


만약 러시아가 재기해서 넓은 국토에서 나오는 자원으로 대한제국에 복수를 하려 한다면 어쩔 것이란 말인가?


그런 신하들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황제는 신하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러시아는 100년이 지나도 우리 대한제국을 위협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너져내린 제국은 탓할 대상조차 찾을 수 없으니까. 그들은 황제를 잃었고.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제 전쟁이 끝나면 누가 정권을 잡을 것인지를 두고 싸울 것이고.. 그 싸움이 끝나면.."


"다시 유럽으로 눈을 돌리겠군요."


이하응이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만약 러시아가 재기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국력을 자랑하는 대한제국보다야 인구도 적고 국력도 약한 동유럽의 신흥국들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원래부터 자신의 땅이었으니. 명분도 적당하고 말이다.


"짐이 영국에게 이만 전쟁을 끝내고 알래스카를 받아가겠다고 말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제국은 이제 그만 쉴 때가 되었어. 태어날 때부터 전쟁을 위해 태어난 나라라니 너무 불쌍하지 않나. 이제 군사들을 물리고. 새로이 얻은 땅에 대한의 이념을 퍼트릴 시간이네."


"""황상의 뜻대로 하오소서."""


신하들은 넙죽 엎드려 황제에게 절을 바쳤다. 자신들의 정당한 주인이자. 자신들의 구세주를 향해서.


*


"철수한다. 전쟁은 끝났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천막 안에 가득 찼다. 딱히 실망도 환희도 느껴지지 않는 지독하리만치 사무적인 목소리에. 결국 몇몇 지휘관들은 헛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났다니.. 황제께서 종전을 명하셨단 말입니까?"


"그래. 옴스크를 끝내 차지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더 이상 영국에 손을 벌리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루스 놈들의 절반을 죽였으니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네."


"하하...하하하핫!"


한 지휘관의 웃음을 시작으로 막사 전체에 웃음이 퍼졌다. 드디어. 드디어 이 지독한 전쟁이 끝난 것이다.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훗날 절멸전쟁으로 이름붙여질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가 마침내 지나간 것이다.


"적들에게 사절을 보내라. 저들의 끈기만큼은 인정해줘야겠지. 저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불태우고 있었을 텐데.. 쯧!"


총사령관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그 정도로 옴스크 방위군은 처절하게 항전했고. 한국군도 총력을 기울여 전투에 임했다. 피륙이 난자하고. 불길이 치솟았다.


그들은 자그마한 전쟁을 벌였다. 수천만이 죽은 전쟁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전쟁을.


하지만 그들의 전쟁은 끝났고. 죽기 전까지 싸웠던 그들은 마침내 정당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을 승리자의 자비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제국 만세!"


"""대한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이윽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 지휘관들로부터 내려오자 병사들은 병기를 패대기치고 태극기를 치켜들며 소리높여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내와 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딸과 아들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옴스크 공방전은 겨우 1달만에 끝났지만. 그것만으로도 30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었다. 절멸을 각오하고 옥쇄한 것치는 싱거운 결말이었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러시아군은 전쟁을 끝낸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군의 감시 아래 무장을 해제하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대한제국도 마지막 말살 작업을 마무리하고는 단계적으로 철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1865년 8월 27일.


악몽과도 같은 전쟁이 끝났다.


한 제국이 무너지고. 한 제국이 솟아올랐으며. 앞으로 영원히 강대국으로 날아오르지 못할 잿더미가 되버린 땅과 죽어버린 2000만명의 러시아인들을 뒤로 한 채. 절멸전쟁은 그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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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한(韓) 에포크(완) +3 20.10.05 1,114 20 12쪽
59 사후정리 +4 20.09.30 1,021 20 12쪽
» 마지막 결단 +2 20.09.29 951 19 12쪽
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3 20 12쪽
56 타타르의 멍에 +7 20.09.23 1,119 21 12쪽
55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60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79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0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0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39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8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0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5 17 12쪽
44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3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5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0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4 25 12쪽
39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3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4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08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2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6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3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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