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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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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9.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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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2쪽

발트 해의 결전

DUMMY

아직 전열함의 낭만이 살아있던 시기. 전드레노트조차 나오지 않은 철갑선들의 시대에. 두 강국의 함대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크림 전쟁에서 패했을 때부터인가.


솨악. 솨악.


러시아 함대의 기함으로부터 내려온 작은 보트가 노를 저어 영국 로열 네이비의 기함을 향해 오고 있었다. 평화를 뜻하는 새하얀 흰색의 작은 깃발을 든 보트는. 이 순간 발트 해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강철의 힘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존재였다.


"러시아의 차르께서 보내는 전령이오. 올려보내 주시오!"


"제독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올려보내 주게. 차르가 보냈다면야 읽어는 봐야겠지."


로열 네이비를 이끄는 제독은 흔쾌히 작은 보토를 끌어올려. 잔뜩 긴장한 러시아의 특사들을 들여보냈다. 그들의 품에 꼭 안겨있는 고풍스러운 양피지가 아마도 차르가 써낸 편지이리라.


그의 생각대로. 특사들은 러시아 억양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영어로 제독에게 인사를 하고. 품에 고이 모셔둔 양피지 문서를 꺼내 제독에게 건넸다.


양피지를 펼쳐 천천히 눈으로 살피고 읽은 제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피지를 다시 특사들에게 돌려주었다.


"제독 각하.... 대답은?"


"거절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물러가도록 하지요."


대체 무엇을 거절한다는 것일까. 대관절 차르의 편지에 무엇이 써져 있었길래 일개 제독인 그가 러시아의 차르씩이나 되는 자의 편지를 읽고 미사여구마저 다 쳐낸 거절이란 말을 저리 쉽게 담게 하였는가.


다만 수병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지휘관들이 전투 준비를 하라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는 것과. 보트로 돌아가는 특사들의 어깨가 너무나도 무거워보였다는 것뿐이었다.


*


"제독의 대답은?"


"거절이었습니다. 이제 최후의 방법을 써야겠지요."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가.."


러시아의 기함에 탄 러시아 발트 함대의 제독은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최후의 방법이란 뻔하다. 결국 물리력의 충돌이라는 이야기다. 어느쪽이 더 치열하게 싸우느냐의 문제가 아닌. 어느 쪽이 더 강한 배를 가지고 있느냐의 싸움이란 소리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발트 함대의 승산은 높게 잡아도 40% 정도일까. 원래 전장에서 확률은 별 쓸모가 없다지만. 상대가 세계 최강의 로열 네이비이니 확률의 신에 기대기라도 할 판이었다.


"전 함 전투준비. 15시 20분에 일제 공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제독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그가 충성하는 자. 즉 차르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그렇게.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두 제국은 서로에게 총구와 포구를 돌려. 포연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


콰앙!


쿠웅!


쏴아아아아-!


"젠장! 물이 들어온다! 수리반! 수리반!"


"보일러실에 물이 닿게 해선 안 돼! 그렇게 되면 우린 모두 삶은 연어 신세가 되고 말 거야!"


전투는 일방적인 로열 네이비의 우세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군함의 수와 질. 수병의 경험에서도 밀리고 있던 러시아의 발트 함대는 지리멸렬한 싸움이 시작되자 단조로운 공격만을 하며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반면 로열 네이비는 풍부한 함의 숫자와 수병의 경험을 앞세워 유기적으로 진형을 바꾸어가며 십자포화를 쏟아부었고. 파도가 쳐 흘수선 아래가 노출되었을 때를 집요하게 노려 안 그래도 적은 러시아 발트 함대의 함정 수를 차근차근 줄여가고 있었다.


촤악! 촤악!


땅! 땅! 땅! 땅!


흘수선이란 약점을 핀포인트로 얻어맞은 러시아 제국의 선원들은 혼비백산하며 물을 퍼내고. 나무판자를 덧대려 노력하고. 어떻게든 지금도 석탄을 미친듯이 태우고 있는 보일러실에 해수가 들어차지 않도록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만약 해수가 들어차는 순간. 배는 기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고. 그 근처에 있는 선원들은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열기와 수증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삶은 연어 꼴이 날 테니 말이다.


쾅! 쾅!


아래의 선원들이 쏟아져들어오는 물과 사투를 해야 했다면. 위쪽의 선원들은 쏟아지는 십자포화속에서도 어떻게든 적을 맞추기 위해 대포와의 사투를 해야했다.


아직 후장식 대포도 암스트롱 포로 대표되는 전장식 대포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던 만큼 장전도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웠는데. 흔들리는 배에다가. 쏟아지는 포격의 이중고에 시달리며 빠른 속도로 장전하고 적 함선을 맞춘다는 것은 숙련된 포병도 하기 어려운 기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러시아 함대가 로열 네이비를 이길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제독 각하! 아군 함대의 피해가 극심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뭔가 대책을..!"


"이익... 바다에서만큼은 저 영국 놈들을 이길 수 없단 것인가! 하는 수 없군! 충각 돌격이다!"


"추..충각 돌격 말씀이십니까?"


충각 돌격. 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효했던 몸통박치기 전술은 대포라는 걸출한 물건이 나타나면서 사장된 것이었으나. 여전히 엄청난 질량을 가진 배라는 물체가 어느 한 물체를 들이받으면 성치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 있는 자들이라면 쉬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전 함선! 전 속력으로 충각 돌격하라! 돌격한다면 대포들도 쉬이 쏘지 못할 테지! 우리는 여기서 죽겠지만! 죽더라도 어머니 러시아의 위대함을 저들에게 보여주고 갈 것이다! 러시아 제국 만세!"


"""러시아 제국 만세!"""


"기관 전속력!"


그렇게 아마도 역사상 최후로 남을 잔존 러시아 함대의 충각 돌격이 시작되자. 지금까지 충각 돌격이라는 전술을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로열 네이비는 크게 당황하여 대포의 사거리를 수정하고 배를 뒤로 빼느라 큰 혼란이 일어났다.


"젠장! 저 보르시 놈들 미친 거 아니야?! 이 시대에 충각 돌격이라니. 열등에도 정도가 있지!"


"잔말 말고 대포나 조절해! 어어.. 온다!"


쿠웅!


우지끈!


수천톤에 달하는 군함이 서로 충돌하자. 굉음과 함께 선체가 찢겨나가고 찢겨나간 부분에 순식간에 해수가 차올랐다.


너무 가까워서 대포도 함부로 쓸 수 없고. 오히려 자신들도 칼을 빼들고 선원들을 죽이려 달려오는 러시아 수병들을 막는 것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


"영국 놈들을 죽여라! 차르를 위하여!"


"러시아 놈들을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려라 대영제국의 수병들이여!"


탕! 타앙!


미리 준비해놓은 총이 발사되고. 각 진영의 1열에 나와있던 자들이 우수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전원 발검! 쓸어버려!"


"막아! 갑판 아래로 내려오게 하지마!"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백병전의 시작이었다. 아직까지 전장식 총기가 지배하는 전장에서 좁은 선내에서 재장전을 할 시간따위는 없었고. 어떻게든 장전을 한다 해도 바다라는 특성상 불발이 나기 일쑤였기 때문에 수병들은 짧은 커틀라스를 들고 서로 엉켜서 칼을 휘두르고 찔러 어떻게든 더 많은 적을 죽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포대들은 포격을 계속하고. 배는 가라앉고. 수많은 배들이 뒤엉킨 발트 해에서의 결전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저.. 저 미친 것들!"


"좌현 전타! 서둘러!"


"이미 늦었습니다!"


"젠장! 충격에 대비하라!"


쿵!


그리고 마침내 양 진영의 기함과 기함이 부딫쳐 선수가 산산조각나고 총성과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양 진영의 말단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뭔가 심각하게 일이 잘못되었노라고 말이다.


어느새 총은 전부 고장나버리고. 남은 것은 칼과 자신의 몸뚱아리인 시기가 도래했다. 문명의 상징인 화약을 버리고 야만의 상징을 든 소위 문명인이라 자부하는 자들은. 스스로 야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챙! 챙! 챙!


"젠장! 항복해 이 자식들아!"


"항복해 망할 놈들아!"


영어를 말하는 자와 러시아어를 말하는 자들은 서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뜻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영국군은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러시아군은 자신들이 이제 역전의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물리력을 이용해 상대방의 생각을 고쳐주는 것이 전쟁의 기본. 그러나 전쟁의 기본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투에서의 승리가 필요했다.


끼기기기긱! 끼이이익!


"젠장! 용골이 휘고 있어!"


"모두 탈출해! 여기 있다가는 모두 죽어!"


포탄에 얹어맞고 충각에 타격을 입은 군함들은 하나같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급속도로 침몰하는 군함들은 대개 용골이 박살난 함선들이었다. 배의 뼈대를 유지하는 용골이 맛이 가버렸으니. 설령 뭍으로 끌어와도 스크랩 처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에이! 제길! 일단 살고 보자!"


배가 하나 둘씩 기울어지자. 치열했던 전투는 어느새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대체되었다. 시체가 널부러진 갑판은 어느새 같이 친구를 먹은 영국군과 러시아군이 비상 보트를 내리려 힘을 합쳐 로프를 자르는 만남의 광장이 되어 있었고. 발트 해는 떨어진 생존자들이 열심히 헤엄을 치며 보트를 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구 대항해시대부터 내려온 선원들 특유의 동족 의식은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하였고. 이미 지휘관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된지 오래인 전장에서 상급자들에 의해 주입된 적의는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그렇게. 발트해의 결전은 어느쪽도 승리하지 못한. 상호확증파괴만을 남기고 끝이 났다.


*


"그들은 모두 영웅들이다. 간악한 영국의 졸개들을 물리치고 하느님의 인도를 받아 천국으로 승천하였으니"


알렉산드르 2세는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발트 함대의 소멸은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그 대가로 발트 해의 해방을 얻어냈으니 발트 함대는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발트 해가 해방되었으니 당장 영국의 눈치만 보던 북유럽이나 중부 유럽의 기업들은 다시 물자를 들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몰려올 것이고. 기근에 허덕이던 제국의 수도는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전쟁은 한국과 러시아의 전쟁이다. 대영제국이 그놈의 중립을 지키느라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이상. 대영제국은 섣불리 러시아와의 일전을 각오하지는 않을 터.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정상화된다는 것은 각 지방에 내려진 공출 명령 또한 철회된다는 것이기에. 지금까지 러시아 제국군을 괴롭혀왔던 보급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


지금 파죽지세로 진군하고 있는 한국군을 막기에 급급한 러시아 제국군에 제대로 된 보급이 전해진다면. 나약한 황인종의 군대인 대한제국군을 몰아내는 것은 물론. 전쟁의 승리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렉산드르 2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우리의 앞에는 승리만이 남아있다! 4000만 신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 저 열등한 것들 쳐부수고. 부동항을 손에 넣어 태평양을 우리 러시아의 내해로 만드는 것이다!"


"""러시아 만세!"""


승리를 예감한 차르와 귀족들은 열의에 가득 차 만세 소리로 궁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예감하고 있던 승리가 러시아군이 아닌 대한제국에게 돌아갔을 때. 그들은 다시 한 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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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사후정리 +4 20.09.30 1,020 20 12쪽
58 마지막 결단 +2 20.09.29 950 19 12쪽
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3 20 12쪽
56 타타르의 멍에 +7 20.09.23 1,119 21 12쪽
»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60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79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0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0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38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8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0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5 17 12쪽
44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2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5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0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3 25 12쪽
39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3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4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08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2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6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3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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