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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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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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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타타르의 멍에

DUMMY

러시아의 동쪽 평야.


그곳에서는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평야에 모여 있던 러시아군의 병력은 약 20만.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유럽에서라면 한 전쟁을 멱살잡고 끝내버릴 수 있는 대군이었다.


"모든 대한의 군세가 네놈들의 앞에 와 있다! 모든 희망을 버려라! 너희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유럽에서의 이야기였지. 기원전에 무려 100만 대군을 동원했던 동아시아에서는 20만은 그냥 군 집단에 불과했다. 그 예로. 지금 그들을 학살하고 있는 한국군의 병력은 200만이 넘었다. 200만. 20만이 아니고. 무려 200만이란 말이다.


"으아아악! 도망쳐! 도망쳐어어!"


"""대한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투두두두두두두두-!


"으갹!"


"커헉!"


"후퇴! 후퇴하라!"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기관총이 완숙한 21세기에 들어서도 20만대 200만이라는 숫적 차이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일진대. 한쪽에만 기관총이 있는 이 시대에서 200만의 병사들은 20만의 병사들을 마치 아이를 가지고 노는 거인들처럼 처참하게 유린했다.


"모조리 죽여라! 포로따위는 받지 않는다! 감히 대한에 맞선 나라의 최후를 온 세상에 알려야 하느니!"


"다시 한 번 타타르의 멍에를 씌우자! 병사들이여 앞으로! 나약한 백인들을 처부숴라!"


러시아인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단어인 '타타르의 멍에' 이 말은 1240년부터 1480년까지 루스 지역이 킵차크 칸국에게 지배를 받던 기간을 이르던 말인데. 이 당시에는 아직 제국이 아니었던 러시아의 대공들은 야르릭이라 불리는 임명장을 받기 위해 치졸하게 경쟁을 하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치욕이나 다름없는 시기였다.


지금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나폴레옹의 제국을 막아낸 러시아인들이 유일하게 막지 못한 외세가 바로 타타르족이었고. 그렇기에 대한제국은 치욕의 감정을 자극하여 러시아의 전의를 높이려 하였다.


어째서 적의 전의를 높이려 하냐면. 그 편이 더 많은 적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발견하는 마을은 모조리 불태워라. 아이들도 여자들도 노인들도 전부 총살해서 말살해라.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뱉을 때까지 우린 이 광활한 대지를 모조리 불태울 것이다!"


광신에 찬 사령관들은 마주치는 러시아군들을 족족 전멸시킨 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마을들과 도시의 거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약탈조차 없이. 그저 대포로 박살내고. 총으로 쏘고. 검을 찌르고 베는 살육만이 끝없는 설원에 걸쳐 계속되었다.


다른 열강들에게 야만인이라 불리어도 상관없다. 이 전쟁으로 인해 영국과의 관계가 틀어져도. 설령 세상에서 고립된 나라가 된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감히 제국에 맞선 죗값은 그들의 목숨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니.


*


상트페테르부르크.


해상 봉쇄가 풀린 항구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며 물품을 운반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2세가 예견한 것과 같이. 전쟁으로부터 동떨어진 유럽의 국가들은 전쟁특수를 누리며 열심히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물자난을 해결해주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군이 진군을 거듭할수록 러시아의 최서단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인구가 폭증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노숙자들과 거지. 병자들과 굶주린 자들의 온상이 되었다.


거리에는 묵을 곳이 없는 자들이 거적데기를 그러모아 추위를 견뎌내며 근근히 버텨오고 있었고. 폭증한 인구에 비해 물자의 유입은 적어 자연스럽게 물가는 급격한 상승 곡선을 이루었다.


"젠장! 이제 겨우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게 다 뭐야!? 전쟁에서는 이기지도 못하고 지기만 하고 있잖아!"


"신의 대리자는 얼어죽을! 차르는 사탄의 대리자다! 지금 당장 이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4000만 러시아 국민들은 모두 굶어죽고 말 거라고!"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자. 지금까지 탄탄해보였던 차리즘은 순식간에 지지 기반을 잃어버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고로 제정 국가가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빠른 길은 전쟁이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지금 러시아인들이 겪는 고난은 마치 중세가 시작될 시기. 즉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중앙정부는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농부들은 제 고향을 떠나 밭들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며. 호전적인 야만인들이 동쪽으로부터 쳐들어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중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러시아인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


"제발 한국군의 만행을 멈추어 주십시오! 같은 백인 국가로서 부탁드립니다!"


"흐으으음... 글쎄요. 러시아의 민족은 슬라브족이고. 저희는 앵글로색슨족인지라. 유감스럽지만 안 되겠습니다. 돌아가주세요."


"대사님! 저희를 이렇게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이번 주만 해도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국군에 의해 집과 가족을 잃고 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왔단 말입니다!"


"아니 거 참.. 그러게 누가 남의 전쟁에 끼어들랍니까? 그냥 패배를 인정하시고 알래스카를 한국에게 넘기시죠. 그러면 우리 영국도 러시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주재한 영국 대사관에서는 연일 실랑이가 벌어졌다. 전쟁에서의 승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러시아가 추잡하게 영국에게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것이다.


물론 이 시대의 영국이 어느 나라던가? 뒷통수가 보이면 찰지게 때려주는 것이 국룰이던 19세기의 패자 아닌가?


당연히 러시아 정부의 '정중한' 요청은 거절되었고. 영국 대사는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대사라는 작자들의 본래 역할이 그 권한이 있는 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열불이 날 노릇이었지만. 지금의 정세는 하염없이 러시아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만약 표트르 대제가 살아나 지금 광경을 본다면 알렉산드르 2세의 멱살을 잡고 짤짤짤 흔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러시아의 패기가 짙어지자.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우크라이나에 자유를! 압제자 차르는 물러나라!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유를 원한다!"


"발트 해는 우리의 것이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형제들이여! 단결하여 자유를 쟁취하자! 독립 만세!"


"러시아는 물러가라! 차르는 물러가라! 핀란드에 자유를!"


가장 먼저 러시아의 주막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체르노젬 지방을 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고. 그 뒤를 이어 발트 해의 지배자였던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해의 통로이던 핀란드마저 제국의 지배를 거절하자. 러시아 제국은 점점 파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다면 어찌저찌 진압할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은 당장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아사하기 직전인 상황. 독립의 열기를 시베리아의 추위로 식혀야 하는데. 막상 시베리아 행 열차가 없는 기막힌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차리즘은 실패했고. 이제는 맑시즘의 차례다! 러시아의 만민들이여! 단결하여 저 타락한 부르주아지들을 몰아내고 전쟁을 끝내 평화로운 삶을 되찾자!"


"러시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이제 빚의 사슬을 타파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킬 때다!"


그리고 때를 잘 만난 공산주의자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가혹한 지배에 치를 떨던 민족주의자들과 영합하면서. 한때 제국을 먹여살렸던 러시아 제국의 유럽 부분은 순식간에 뭉텅이로 떨어져나갔다.


진압하려고 해도 군대가 없고. 군대가 있어도 자원 부족으로 보내지를 못하는 상황이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차르는 이 모든 것을 눈을 댕그랗게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제국이. 러시아인의 제국이 무너져가고 있다. 제국은 전쟁에서 패했고. 전투에서 패했다. 선조들이 세워온.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영국과 일전을 불사할 정도로 강대했던 강대국이 너무나 어이없게 무너져가고 있다.


"하하...하하하..!"


차르는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본인도 대체 자신이 왜 웃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만한 인내심은 이제 바닥난지 오래였다.


알렉산드르 2세는 침대에 주저앉고서 한참동안 웃었다.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유럽과 전쟁을 한다면 도저히 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정작 무시하고 깔본 황인종들에게 제국이 멸망한다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패배한 그는 조용히 흐느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쳤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를 본다면 과연 현재의 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성 베드로가 그를 위해 천국의 열쇠를 줄 것인가? 아니면 수백만의 목숨을 천국으로 보낸 죄로 지옥행을 하사할 것인가.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수천만의 신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이제 그 크나큰 죄를 어떻게 갚아나간단 말인가?


*


이제 남은 러시아군의 숫자는 고작해 봐야 50만에 불과했다. 물론 4000만명에 불과한 나라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는 와중에 남긴 것이라 생각하면 큰 숫자이기는 했지만. 1000만명이 넘어가는 군대를 굴리고 있는 대한제국에 비하면야 그 숫자가 무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아무리 싸워보았자 승산이 없는 것을 모두가 안다. 말단 병사든. 사령부의 지휘관들이든. 이제 그들은 대한제국이란 외적에 맞설 의지와 여력을 모두 상실한 것이다.


게다가 이제 제국의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갔으니. 더 이상 유격전과 같은 형태로 저항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 결국 남은 50만을 이끄는 지휘관들은 최후의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각 병력을 10만 씩 나누어 5개의 군단으로 만들겠소. 1군단은 예비대로 둘 것이고. 나머지 4개 군단은 직접적인 전투를 맡을 것이오.


우리는 모두 옴스크로 후퇴해 시내를 진지화하고. 최후의 보급을 마친 다음 대한제국군을 맞이하여 싸울 것이며. 후퇴는 하지 않을 거요.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자. 또 그들이 받아들일 유일한 대화방식이니."


대화를 거부한다면. 어쩔 때는 싸움 자체가 대화일 때도 있는 법. 감히 대한제국에 맞서는 나라의 최후를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고 불태우며 진군하고 있는 대한제국군을 막아세우는 것만으로도 한국군과 소통을 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명예롭게. 의롭게 죽을 것이오. 차르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돌보시기를. 이 러시아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신의 가호가 있기를..!"""


작전 브리핑이 끝나자. 모두 일제히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외웠다. 사령관들이 할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제 곧 하느님께 가게 될 목숨이니. 미리 회개하고 반성한다 해도 비난할 이도 없을테니.


그리고 마침내. 1865년 7월 4일.


어느 나라에서는 기념일로 여길 날. 옴스크에는 300만명의 대한제국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말

이제 슬슬 엔딩이 다가오는군요. 전작에서 괜히 무리하게 이어나갔다가 폭망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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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857년 기준. 대한제국 영토 지도. +1 20.07.16 3,155 0 -
60 한(韓) 에포크(완) +3 20.10.05 1,114 20 12쪽
59 사후정리 +4 20.09.30 1,020 20 12쪽
58 마지막 결단 +2 20.09.29 950 19 12쪽
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3 20 12쪽
» 타타르의 멍에 +7 20.09.23 1,119 21 12쪽
55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59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79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29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0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38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8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0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4 17 12쪽
44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2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5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0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3 25 12쪽
39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3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4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08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2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6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2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3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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