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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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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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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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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강철의 시대

DUMMY

"참으로 웅장한 자태로구나. 실로 제국의 산업을 떠받칠 대들보로 부족하지 않도다."


철종. 아니 이제는 대한 태황제가 된 자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그의 눈 앞에는 이제 막 완공된 포항 제철소가 놓여 있었다.


이제 곧 코크스와 철을 제물로 강철을 연성해 낼 저 거대한 기물이 있다면. 대한제국이라는 허울뿐이었던 집에 드디어 대들보와 가구들을 채워넣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사오나. 다른 지역인 당진과 광양에도 제철소가 들어섰다 하옵니다. 이제 이 세 제철소에서 뜨거운 증기를 뿜어 강철을 빚어낼 것이니. 지금까지 서양 열강의 전유물이었던 증기선들도 능히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사실상 증기선. 그리고 그 기술을 응용한 전투함을 만드는 데에는 질 좋은 강철의 존재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장에 저 이역만리의 영국도 제철 산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대한제국이 사실상 아시아 최초로 근대적 제철소를 완공했다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제철소가 완공됨으로서 석탄의 수요가 늘어날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제철소를 운영하는 인원. 석탄을 당진과 광양. 포항으로 운송하는 운송업자들.


생산된 강철을 공장으로 옮겨 생산하는 제조업까지 합친다면. 이 세 제철소가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수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숫자에 달한다.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은 곧 사람들이 도시로. 공장으로. 광산으로 몰린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근대 문물들과 접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니.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전근대적 삶을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일반 인민들에게는 도시의 광경이 별천지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돈을 벌고 근대식 문물에 익숙해진 자들이 고향에 돌아가면 문명의 이기를 까맣게 잊을까? 그럴리가 있겠는가.


온갖 수를 써서든 전기를 끌어오고. 공장을 세우고. 철도를 부설하게 될 것이다.


서양인들이 그리하였듯. 누군가의 강압이 아니라 스스로. 더 나은 삶과 더 풍족한 삶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바로 근대화의 성공이 달려 있었다.


*


제철소가 어느새 강철판을 찍어내기 시작했을 무렵. 대한제국의 조정에서는 각 성의 성장으로 어느 가문을 부임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가장 안전한 것은 당연히 황실이 된 전주 이씨의 방계. 즉 종친들을 부임시키는 것이었지만. 그랬다가 반란이라도 일어난다면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가 된다.


당장 반란의 주동자가 황족이었으니 설령 찬탈자라는 오명을 쓰더라도 황위 계승권은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 안은 기각되었고. 그 다음 주장은 각 성의 유력자들을 성장으로 삼아 통치하게끔 하자는 안이었다.


이 안도 꽤나 그럴듯 했으나. 사실상 지금 만주에 거대한 성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가문들은 황후 다툼으로 씨가 마른 상태였고. 그나마 살아남은 지방의 유력자들도 대게 학자들이나 철학자들에 가까워 실질적인 통치능력은 0에 가까웠다.


따라서 이 안 또한 기각. 이렇게 되니 결국 남은 두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만주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를 성장으로 앉히는 것. 나머지 하나는 친대한제국파 인사를 성장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수많은 갑론을박과 기나긴 토론 끝에. 제국의 회의에서는 두 가지 중 후자의 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


1856년 3월 30일.


크림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결국 연합군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상실한 러시아군은 과거에 유럽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을 꺾은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나약해져 있었다.


연합군은 압도적인 기세로 크림 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지방으로 진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러시아로선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잃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크림 반도에서 무려 50만이 넘는 병사를 잃으면서 생긴 국방상의 공백과. 장기간의 전쟁에 걸친 재정 악화. 패전으로 인한 민심 이반과 해상 봉쇄로 인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물자난은 더 이상 러시아와 차르의 신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이 거대한 극지의 제국인 러시아를 파리의 회의장으로 힘없이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파리의 강화 회의장에서 러시아는 말 그대로 이가 갈릴 정도의 치욕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서 패한 대가는 결코 싸지도. 자비롭지도 않았던 것이다.


일단 국경선이 전쟁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은 물론이며. 흑해 함대를 해산하고 흑해 연안의 요새들도 철거해야 했다.


몰도바 및 왈라키아 공국은 세르비아와 함께 형식상으로 오스만 제국에 예속된 자치령이 되었고 러시아는 몰도바와 왈라키아 공국에 대한 영유권을 영구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도나우 강 유역의 자유 통행권을 내주었으며. 오스만 제국 내부의 기독교인에 대한 권리도 포기하였다.


말 그대로. 러시아에게는 이가 박박 갈리다 못해 잇몸끼리 부닥칠 정도의 충격이자 치욕이었다. 다른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오스만 제국 내의 기독교도들의 권리 포기와 흑해 함대와 요새 해체는 러시아가 서유럽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국가들에게는 지중해로 진출하려 하는 러시아를 저지할 수 있는 성전의 완수가 되었고. 그들은 러시아보다 훨씬 적은 병사들의 손실과 재정 손해만을 부담한 채 본국으로 돌아갔다.


표트르 대제 이후 패전을 모르던 러시아인들은 파리 강화의 내용을 듣게 되자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야심차게 전쟁을 추진하였던 니콜라이 1세의 강철같은 의지는 작열탄을 얻어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는 황태자가 자신과 제국을 대리해 연합국과 굴욕적인 강화를 하는 것을 보기도 전에 결국 폐렴이란 병을 얻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곁으로 떠나고야 말았고. 그의 장남인 황태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산드르 2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로마노프 왕조의 수호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는 현실적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국 그 노력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파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


"북방 경계를 강화하라니요? 저희가 주적은 청나라가 아니었습니까?"


이제는 어느새 100만으로 불어난 진위대의 참령이 눈을 댕그랗게 뜨고 상관에게 물었다. 북설성의 최북단.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은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였다.


"노서아.. 그러니까 러시아가 서역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소식이다. 이제 곧 우리에게로 눈독을 들이겠지. 그러니까 북방 경계를 강화하는 거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쟁에 졌는데 또 전쟁을 하다니요? 노서아인들은 바보라도 되는 겁니까?"


"때로는 자존심에 입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 다른 자들의 자존심을 빼앗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


원 역사에서 러시아는 크림 전쟁으로 인해 훼손된 위신을 청을 압박해 얻어낸 연해주 지방과 북만주 일대의 할양으로 메꾸었다.


그러나 철종의 등장으로 역사가 크게 바뀌어버린 지금. 러시아가 위신을 회복할 방법은 하나였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동방의 제국을 압박해 영토나 이권. 혹은 금은을 뜯어내는 것.


"이제야 좀 이해가 되나? 알았으면 잠자코 모래주머니나 나르게. 오늘 안으로 포대를 완공해야 해."


참령의 상관인 참장이 이제 막 쌓기 시작한 모래주머니를 넘기면서 말하자. 참령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부하들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


북만주와 남만주. 그리고 연해주의 각지에서는 대한제국 조정의 주도로 대규모 철도망 조성 사업이 전개되고 있었다.


철도는 광궤로 지어졌는데. 딱히 크고 강한 기차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대한제국 자체 기술력과 연약한 지반들이 맞물린 탓이었다.


그 덕에 무려 2m에 달하는 광궤가 제국의 영토 곳곳에 박히게 되었는데. 대부분은 각 성의 최대도시를 관통하는 형태로 지어졌다.


애초에 철도를 부설하는 이유가 화물과 인력의 운송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제국 정부는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국경선의 끝까지 철도를 확장시키는 것에 골몰하였는데. 이는 당연히 장차 싸움을 걸어올 러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해 물자와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러시아와의 국경 분쟁을 애초부터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도 어느정도 깔려 있었는데.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 보았자 이미 이 땅에 철도를 깔았는데 그 누가 자신의 땅이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하려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비웃음만 살뿐이다. 하물며 지금 러시아가 전성기 때의 국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이니. 러시아가 뭐라뭐라 소리를 지른들 서유럽의 열강들이 귀담아 들을리 없다.


게다가 이곳이 어느 곳인가. 추위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동북아시아다. 시베리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추위의 땅인 이곳에서 과연 차르의 명령에 따라 죽으러 갈 병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


러시아가 패전으로 골골대고. 대한제국이 내부 관리로 쩔쩔매고 있을 무렵.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열강국들은 승전에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크림 반도를 둘러싼 흑해 일대의 군사적 긴장감이 폭발 후 해소되면서 다시 유럽은 안정을 되찾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자연스럽게 본국의 힘을 추슬러 다시 극동에 영향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는 극동의 새로운 별로 떠오른 대한제국에게 접근하였고. 사실상 서양을 대표하는 이 두 열강과 대한제국의 대립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세계를 양분하는 대국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극동에서 단단하게 입지를 다지고 있는 강국이었고. 군대의 수준도 '비문명국' 수준 치고는 유럽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전쟁을 해도 본전 뽑기는 글러먹었으니 좋은 외교적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대한 제국? Korean Empire~? 영토 늘어나고 국호 바뀌어봤자 결국 황인종들이지! 우리는 위대한 문명의 선구자! 대영제국이란 말씀이다!"


혐성.. 아니. 대영제국의 자존심 높은 백인들은 대한제국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근대성을 뿌리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고. 그 결과 대한제국의 신민들 사이에선 점차 낮아지고 있었던 서양인들에 대한 적대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청의 그것보다는 약했으나. 영어는 할 줄도 모르는 프랑스인들이 혹여나 제국인들에게 맞아 죽을까봐 조심조심 움직여야 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정도로 대한제국과 영국과의 관계는 점차 험악해져 갔다.


그리고 그 관계를 마침내 파탄으로 치닫게 한 것은. 영국이 만주에서 가지고 있었던 채굴권과 철도 부설권을 전부 무효화시킨다는 1856년 6월 2일. 대한 제국 행정부의 발표였다.


대한제국으로서는 만주에 잠들어있는 자원들을 결코 양이들에게 넘기고 싶어하지 않았고. 영국으로서도 피땀을 흘려 쟁취해낸 자국의 이권을 결코 극동의 야만인들에게 넘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하야 그 망할 놈의 자존심으로 시작된 사소한 분쟁은 어느새 영국이 원정군을 편성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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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한(韓) 에포크(완) +3 20.10.05 1,116 20 12쪽
59 사후정리 +4 20.09.30 1,022 20 12쪽
58 마지막 결단 +2 20.09.29 953 19 12쪽
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5 20 12쪽
56 타타르의 멍에 +7 20.09.23 1,121 21 12쪽
55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62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80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1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2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40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9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1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6 17 12쪽
44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4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7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1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1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5 25 12쪽
39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4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6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10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4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9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5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3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6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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