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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연재수 :
1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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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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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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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21. 종막(5)

DUMMY

갑작스러운 카오렌 루센트와 그의 제자들의 참전. 거기에 기간만 놓고 보자면 카오렌보다 훨씬 오래 신의 위치에 있던 니케까지.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겠군요.”


헤임달의 말에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습니까?”

“아직까지 큰 힘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두 정령왕이 한순간에 소멸하여 정령계로 역소환되었다. 그 충격의 일부는 당연히 소환자인 로키가 부담했다. 그로 인해 속에서 빛과 어둠이 들끓고 있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동료들에게 어리광부릴 때가 아니었으니까.


로키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검을 왼쪽 손목에 감아 두고,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빛과 어둠이 말썽이라면, 마나를 쓰면 그만이었다.


「버러지들이 모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혼돈은 가장 가까이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아르헨을 표적으로 삼았다. 아르헨은 그에게 붙여진 별명답게 곡예를 펼쳤다. 허공에 퍼트려 놓은 그의 소검과 혼돈의 공격조차 그에게는 허공을 자유롭게 누비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


“그런 버러지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입만 살았네.”


아르헨의 눈에 핏빛이 번뜩였다. 순간 그의 몸이 붉은 아우라로 휘감겼고 비릿한 미소를 남긴 그가 사라졌다.


「숨을 공간이 없게 만들면 그만!」


혼돈이 발을 굴렀다. 그러자 그의 주변 일대가 꿀렁이며 파도가 솟구쳤다.


“내가 언제 숨는다고 한 적 있어?”


핏빛 섬광이 파도를 갈랐다. 자연조차 베어 버리는 무자비한 핏빛 선은 우아하면서도 패도적이게 혼돈을 몇 번이고 베었다.


“이 정도면 되었으려나?”


아르헨이 숨을 돌리며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제야 그의 연이은 참격에 정지되어 있던 혼돈의 조각들이 흩어졌다.


“그 정도로 끝나면 우리가 나서기 전에 진작 끝났어.”


쿨루스가 으스대는 아르헨의 뒤통수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그런가? 에헤헤.”


아르헨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쿨루스에게 맞은 곳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헤실 웃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카오렌 루센트의 말에 아르헨이 금세 얼굴에서 표정을 없애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남았어?”

“3분.”


둘의 대화를 들으며 로키는 판단했다.


‘아무리 타스 님이라도 카오렌 폐하로 변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구나.’


그는 진작에 카오렌이 타스가 변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만 혼돈이 알아채지 못하게 조용히 하고 있었을 뿐이다.


혼돈이 타스를 카오렌으로 착각하고 있는 3분. 어떻게든 그 안에 결착을 지어야만 한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머리 위에 태양과 달이 떠 있었다. 서열이 두 자릿수에 달하는 상위 마족을 대번에 녹여 버렸던 태양과 달을 전력으로 사용한다면 혼돈이라도 없애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너, 진짜 카오렌이 아니구나?」


빌어먹을. 놈이 눈치를 챘다.


아르헨과 쿨루스를 뛰어넘어 타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혼돈은 타스의 손목을 잡고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커헉!”

“타스 형!”

“이 멍청아!”

“헉!”


쿨루스가 아르헨을 질책했지만, 이미 들킨 것이기에 의미는 없었다. 왼팔이 뜯겨 나간 타스는 저 멀리까지 날아가 나뒹굴었다.


“변장을 해제해!”

“이레인, 뒤를-.”


이레인의 뒤로 다가온 혼돈이 주먹을 휘둘러 그녀의 머리를 부쉈다.


펑!


「가짜?」

“환술이다.”


케론이 허공에 카드를 펼쳐 놓고 그중에 한 장을 골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다.


“너 같은 단순한 놈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지.”

「감히!」


공간을 격한 혼돈이 케론의 전신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꿰뚫었다.


「환술을 펼칠 시간도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목과 발목을 잡고 거칠게 잡아 뜯었다.


“언제부터 걸렸는지 모르는 너를 두고 멍청하다고 하는 거다.”


케론이 로키의 뒤에서 나타나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만 들을 수 있게 작게 속삭였다.


“폐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가 시간을 벌 테니 기회를 기다려라.”

“기회···?”

“프레이!”

“예, 스승님.”


로키의 시야가 순간 멀어졌다. 프레이가 카드를 사용해 그의 위치를 바꾼 것이다. 케론은 원래 그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토끼 봉제 인형 하나와 함께 허리가 잘렸다.


‘무슨 기회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카오렌 루센트가 아직 죽지 않았다. 그와 함께 혼돈을 완전히 죽일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로키의 의무.


“저 좀 잠깐만 지켜 주시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프레이의 다부진 말과 다른 이들의 믿음직한 눈빛에 로키는 눈을 감고 아직 말썽을 부리는 어둠과 빛을 진정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잊었냐?”

「너는 길을 걷다가 만난 벌레에게 일일이 신경을 쓰나?」

“응. 나는 박애주의라.”


니케와 혼돈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타스와 아르헨을 비롯한 제자들이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촉박했다. 혼돈은 아직 본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카오렌과 함께 방어막을 펼쳤을 때 보였던 단 한 번의 폭발. 그것이 혼돈의 진정한 힘이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어둠과 빛을 안정시켜야만 했다.


‘가만히 있어.’


로키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한 번 흥분하기 시작한 둘은 쉽게 그의 명령에 순응하지 않았고, 그는 재차 얌전히 있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가 억압할수록 둘은 더욱더 세차게 날뛰었다.


‘날뛸 거면 모든 게 끝난 다음에 날뛰어. 지금은 그럴 시간 없어.’


그러자 조금은 얌전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거칠게 한 번 이빨을 드러내고는 곧 잠잠해졌다. 틈만 보이면 언제든 물어뜯겠다는 것처럼.


“···빛과 어둠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글쎄요. 끝나면 같이 고민해 보도록 하죠.”


임시조치를 끝낸 로키는 눈을 떴다. 전황은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니케와 아르헨, 타스가 근접전을 담당하고 이레인, 쿨루스, 케론이 그들을 보조하면서 틈틈이 공격해 혼돈의 시야를 거슬리게 만든다.


「흥미가 식었다.」


혼돈이 우뚝 섰다.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던 아까와는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무감정했다.


“다들 물러서!”


변장을 푼 타스가 고함을 질렀다.


「변신을 풀면 입었던 상처가 회복되는 모양이지?」


타스의 앞에 나타난 혼돈이 손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타스!”


타스를 밀쳐낸 쿨루스가 대신 혼돈의 일격을 맞았다. 그녀의 왼팔이 잘려 허공에 휘날렸고, 혼돈의 참격이 만들어낸 후폭풍에 휘말린 그녀가 허공에 붕 떴다.


“쿨루스!”


아르헨이 그녀를 받아냈다.


「숭고한 희생정신이군.」

“안 돼!”


등에 어둠으로 날개를 단 로키가 아르헨을 구하기 위해 날았다. 하지만 혼돈의 공격이 조금 더 빨랐다.


“···빌어먹을.”

「보기 좋은 한 쌍이군.」


아르헨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꽉 물고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가 허전했다.


“단장!”

“가면 죽어 병신아! 주제 파악 좀 해!”


뒤에서 흥분한 블러드 서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네이선을 비롯해 블랑, 프레이 같은 이들이 막고 있어서 그렇지,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면 혼돈에게 가서 장렬하게 자살했을 것이다.


로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카오렌의 직속 제자다. 이렇게 쉽게 팔을 잃고 순식간에 전멸 위기에 처한다고? 뭔가 이상했다. 분명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최대한 빠르게 온다고 했는데, 조금 늦은 모양이구나.」


카오렌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폐하? 그 모습은···.”


카오렌은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았다. 이그니처럼 정신체에 훨씬 가까운 모습이었다.


「신에게 죽음은 없다. 소멸만 있을 뿐이지.」

“그 말씀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입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부위에 곡선이 그려졌다.


「준비는 되었느냐?」

“예, 어떻게든.”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놀아 주고 싶다만, 이제는 끝낼 시간이다.」


카오렌을 쳐다본 혼돈이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보아하니 네게 허락된 시간도 많지 않은 듯하군.」

「그래.」


카오렌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모인 다섯 제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길을 뚫어 주어라.」

“폐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타스는 다시 한번 카오렌 루센트의 인간형으로 변신했고, 아르헨은 왼손으로 소검을 들었으며, 이레인은 손가락 하나당 인형 하나를 조종했고, 쿨루스는 전신에서 농도 짙은 마기를 뿜어냈고, 케론은 오망성 형태로 카드를 배열했다.


다섯 제자가 먼저 달렸다. 카오렌은 그들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로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마지막이다.」

“혼돈이 또 재생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놈은 재생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한 카오렌이 제자들의 뒤를 따라 달리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의 의지가 로키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로키는 자신의 전력을 준비했다. 위에 떠 있는 해와 달, 잠잠한 빛과 어둠, 그리고 마나를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엘프의 검을 오른쪽 손목에 차고, 왼쪽 손목의 팔찌를 검으로 만들었다.


“로키.”


헤임달의 반대편 어깨에 베르단디가 나타났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대화는 나누셨습니까?”


그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겠습니다.”


로키는 검에 무한대의 고리를 만들고 카오렌의 뒤를 따랐다.


「진정한 혼돈의 시간이 도래했다. 와라, 내 권속들이여!」


라그나로크에서 죽었던 천사와 마족들이 길을 막았다.


“언제나 선봉은 내 몫이지!”


로키는 아르헨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을 향해 미친 듯 달려가는 그의 얼굴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이번엔 나도 함께야.”


그의 곁에 쿨루스가 속도를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영광이네.”

“에스코트나 똑바로 해.”

“그러죠, 레이디.”


피와 마기가 한데 뒤섞여 몽환적인 아우라를 뿜어냈다. 천족과 마족들의 시체 사이로 좁은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가.”


카오렌의 뒤를 따라 뛰던 로키가 순간 아르헨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쿨루스의 곁에 있는 아르헨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쿨루스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즐거웠다.”

“그게 무슨-.”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천족과 마족에 뒤덮인 그녀는 그의 말을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왼쪽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로키는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대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둠과 빛이 반응해 거칠게 검을 흔들고 있었다.


「왜 너와 함께 싸워야 하는 건데?」

「내가 할 말이다. 빌어먹을 마왕이여.」


다음으로 나타난 장애물은 대천사장 안젤루스와 마왕 다르드.


“저 둘은-.”

“-우리가 맡지.”


이레인과 케론이 진형에서 이탈했다.


「괜찮겠나?」


다르드가 카오렌을 향해 물었다. 카오렌은 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혼돈을 향해 달렸다.


「그렇-.」


쾅!


다르드의 얼굴에 날아간 화염구가 폭발했다.


“숙녀를 앞에 두고 무시하는 건 예의가 없는 거지.”

「···이거 실례했군.」


천계와 마계를 대표하는 두 천사와 악마가 자신의 힘을 개방했다.


“고마웠어.”

“내 제자를 부탁하마.”


로키는 둘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젤루스와 다르드가 본격적으로 공세를 퍼붓는 탓에 이번에도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말았다.


무언가가 오른쪽 어깨를 꼬집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조그마한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세게 그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반드시.”

“고마워.”


순간 이레인의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고개를 홱 뒤로 돌렸지만, 다르드의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탓에 그녀가 말한 게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도 장난감에 불과했던가···.」


다음으로 나타난 이들은 이그니, 마르, 이카스, 에르데를 비롯한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의 신들이었다.


“폐하.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카오렌으로 변장한 타스가 속도를 낮췄다. 카오렌과 로키는 그를 금세 지나쳤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잠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한 타스는 곧 냉엄한 얼굴이 되어 신들을 향해 돌진했다.


“···저야말로.”


당신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내 뒤로는 아무도 못 지나간다!”


거친 카오렌 루센트의 목소리와 함께 폭음이 울렸다. 검에서 빛과 어둠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카오렌 루센트!」

「집어삼켰던 것들은 모조리 뱉어냈나?」


혼돈이 카오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생각보다 쉽게 그는 카오렌의 목을 움켜쥐었고, 승자의 웃음을 터트렸다.


「너야말로 힘이 다 빠진 모양이구나! 그러면 그렇지, 그 폭발을 정면으로 맞고도 이렇게 형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겠지!」


카오렌은 빛의 결정이 되었다. 그 결정은 잘게 부서져 혼돈에게 모조리 흡수되었다.


“···폐하?”

「큭. 크하하하!」


갑작스러운 카오렌 루센트의 죽음. 혼돈의 웃음소리가 그의 귀를 어지럽혔다.


“지금이에요.”


베르단디의 울음을 참고 있는 목소리에도 로키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로키. 그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헤임달의 말에 그는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다.


“그는 절대 이유 없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어요.”


베르단디의 말에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카오렌 루센트다. 그가 저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계속 요동치고 있던 빛과 어둠의 목에 채우고 있던 고삐를 풀었다.


콰아아아!


두 줄기로 나뉜 빛과 어둠이 혼돈의 코앞에 도착해 하나로 융합했고, 폭발했다. 순간 빛이 번쩍였고, 다음은 어둠이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것에는 소리도 포함되었다.


고요한 폭발.

그 속에서 혼돈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멀쩡하지는 않았다.


“이, 이게 뭐냐?”


혼돈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키는 깨달았다. 저것이 카오렌이 자신을 희생해 만들어낸 변화라는 것을.


“다들 저놈들을 막아!”


천족과 마족들이 로키의 앞을 막았다.


“이 개새끼들아!”

“어서 가, 로키! 이 씹어 죽일 놈들은 우리가 맡는다!”


블러드 서커스가 거칠게 포효하며 천사와 악마들에게 달려들었다. 로키는 혼돈을 향해 날아갔고, 그의 앞을 안젤루스와 다르드가 막아섰다.


둘은 만신창이였다. 안젤루스의 순결했던 날개는 절반이 잘려져 있었고, 다르드는 왼팔과 오른 눈을 잃은 상태였다.


“···가라.”

“절대 편하게 죽게 하지 않을 거예요.”


깊은 분노가 담겨 있는 목소리. 로키는 그들이 감정을 분출하기 편하도록 혼돈을 향해 달렸다.


「훌륭한 남자였다.」

「하지만 결국 인간.」


이그니, 이카스가 그의 앞을 막았다. 마르와 에르데는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수많은 신은 절반이 넘게 보이지 않았다.


“패잔병들 주제 건방진 소리 지껄이지 마라.”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로키의 귀를 간지럽혔다.


“가.”


또 하나의 그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죽기 전에 끝내라.”

“···예.”


그로 변장한 블랑이 신들을 향해 빛과 어둠을 분출했고, 로키는 그를 지나 혼돈에게 도달했다.


“빌어먹을 카오렌 루센트!”


혼돈은 ‘인간화’가 진행 중이었다. 이것이 카오렌의 계획. 신이라서 죽일 수 없다면, 신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의 머리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제3의 길.


“마지막까지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로키는 빛과 어둠 전부를 검에 담았다. 그리고 휘둘렀다. 눈을 감았다 떠 세계를 흑백으로 만들고, 몇 번이고 휘둘렀다. 그의 시야에 닿는 모든 빛과 어둠을 혼돈에게 퍼부었다.


가지고 있던 빛과 어둠을 완전히 소진하자 자동으로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고, 검은 팔찌의 형태로 변해 그의 손목에 감겼다.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고, 그는 혀를 깨물었다. 그래도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자 엘프의 검을 뽑아 얼음을 두르고 팔을 찔렀다.


“정신 차려, 병신 같은 새끼야.”


뭐 하는 짓이야. 너는 곱게 뒤질 자격도 없어.


“내가, 이 내가 인간이 된다고? 세계의 시작인 나 ‘혼돈’이!”


그의 공격에도 혼돈은 살아남았다. 인간화가 덜 진행되었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몸의 절반이 인간에 가깝게 변한 상태. 거기에 힘을 많이 써서 그런지 키가 작아져 있었다.


“인간이 신이 될 수도 있으니, 신이 인간이 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


로키는 태양과 달을 한층 가깝게 하고는 혼돈을 향해 달렸다.


“그래도 너만 죽는다면 이 세계의 멸망은 내 계획대로 진행될 터!”


정신을 차린 혼돈이 주먹을 휘둘렀다. 아직 절반은 태고의 신인 혼돈 그 자체. 엄청난 기운이 그의 손에서 뻗어 나왔고, 로키는 태양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끄아아악!”


혼돈은 재빨리 팔을 회수해 태양을 막았다. 하지만 열기까지는 완전히 차단하지 못했다.


“아직··· 멀었어.”


반작용으로 목이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로키는 달을 움직였다.


“이, 이···.”


혼돈의 절반이 달이 뿜어내는 한기에 얼어붙었다. 그와 동시에 로키의 심장과 폐도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혼돈의 인간화가 90% 진행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일시에 방출해 태양과 달을 깨부순 탓이었다. 무리하게 힘을 운용한 반작용으로 혼돈은 어린아이 수준의 키가 되었다.


「이제 끝이야.」


로키는 마나를 이용해 목소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힘인 마나로 혼돈을 공격했다.


헬 파이어, 아이스 스피어, 썬더 스톰, 어스퀘이크, 그래비티···.


그가 알고 있는, 상상할 수 있는 마법들이 총동원되었다. 쉴 틈 따위는 주지 않았다. 이름을 지을 필요도 없다. 그냥 불, 물, 바람, 땅을 만들어 혼돈에게 돌격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이, 이럴 수는 없어!”


혼돈은 완벽히 인간이 되었다. 로키의 마나 폭격을 견뎌낸 대가로 이루어진 완벽한 인간화.


“누구, 게 누구 없느냐!”


로키는 혼돈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검에 얼음을 둘러 혼돈의 심장을 노렸다.


푸욱.


로키의 심장을 안젤루스의 깃털과 다르드의 창이 꿰뚫었다.


“로키!”

“로키 님!”


사지 중 멀쩡한 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안젤루스와 다르드가 주인의 부름에 응한 것이다. 4대 원소 중 유일하게 남은 이그니가 로키의 몸을 불태웠고, 아직 살아남은 천족과 마족들이 신성력과 마기를 퍼부었다.


「다 했냐?」

“이, 이런 개 같은-.”


서걱.


혼돈의 목이 베였다. 로키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놈의 팔다리를 전부 베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심장을 찔렀다.


「인간의 승리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혼돈의 소멸로 사라지기 시작한 안젤루스와 다르드를 비롯한 천·마족들. 로키는 그들에게 피가 섞인 침을 뱉어 주었다.


로키는 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 땅에 쓰러졌다.


「혼돈은···.」

“죽었습니다, 로키. 죽었어요.”


베르단디가 그제야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았다.


“감사합니다, 로키.”


그녀처럼 대놓고 울지는 않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헤임달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입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그의 시야에 황급히 뛰어오는 동료들이 보였다. 프레이는 그가 누구인지 까먹은 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무도 죽지 않아서.


미안함과 안도감 속에,

그는 죽었다.


작가의말

길었던 여정이 드디어 끝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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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9. 라그나로크(7) 21.06.08 23 0 12쪽
149 19. 라그나로크(6) 21.06.07 21 0 12쪽
148 19. 라그나로크(5) 21.06.06 26 0 12쪽
147 19. 라그나로크(4) 21.06.05 29 0 12쪽
146 19. 라그나로크(3) 21.06.04 21 0 13쪽
145 19. 라그나로크(2) 21.06.03 18 0 12쪽
144 19. 라그나로크(1) 21.06.02 18 0 12쪽
143 18. 마계의 문(3) 21.06.01 21 0 13쪽
142 18. 마계의 문(2) 21.05.31 21 0 14쪽
141 18. 마계의 문(1) 21.05.30 26 0 12쪽
140 17. 신의 이름으로(4) 21.05.30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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