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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연재수 :
1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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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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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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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0. 혼돈(1)

DUMMY

어쩌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왕이 미카엘을 잡았고, 로키와 카슈테르가 라파엘을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 거기에 얼음의 신 시에까지 도망치게 했다. 분명 가시적인 성과였다.

하지만,


“다섯 명이 죽었네.”


그것은 어디까지나 라그나로크가 그들 주변에서 한정적으로 발생한 전쟁이었을 때의 경우였다.


“그린 한 명, 블랙 한 명, 블루 한 명, 레드 두 명이 죽었어.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


무덤덤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라스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대천사 한 명에 드래곤 다섯 명.”


단순히 죽은 주요 병력의 수만 따졌을 때 압도적인 패배. 거기에 이쪽은 천계와 마계를 둘 다 상대하기로 말을 뱉은 입장이었다. 아직 피해가 보고되지 않은 마족까지 더하면 인간의 완벽한 패배였다.


- 30분 후, 2차 라그나로크가 시작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프레이는 언제 말할지 고민했다.


“프레이 님.”

“아, 네. 그···.”


로키 덕분에 말할 타이밍을 잡은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메시지가 보여 주었던 대로 말했다.


“30분?”

“너무 촉박하군.”


오르딘이 눈썹을 찡그렸다.


“저희의 기본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습니다.”


로키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기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이길 수 있는 전투도 지는 법이다.


“모두 최선을 다해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기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그렇게 말한 로키는 라그나로크가 재개되기 전까지 휴식 및 정비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이름 모를 숲의 나무 위로 올라갔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헤임달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상심한 적이 없습니다.”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카드를 나누어 주었다고 해도, 찢을 시간조차 벌지 못하고 죽은 이들은 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라그나로크를 끝낼 방도를 찾아야 하니까.


그는 케론에게 받았던 빈 카드 뭉치를 꺼냈다. 프레이가 담겨 있는 카드 하나, 세 장을 하나로 합쳐 분신을 만드는 카드를 만들었으니 남은 카드는 17장.


“우선 이것들을 채워야겠습니다.”

“17장을 다 만들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지 않나요?”


촉박하다. 그렇기에 해야만 했다. 이 순백의 카드 17장을 남기고 진다면, 이것들을 제때 완성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있는 건 이 17장을 전부 제 분신으로 채우는 겁니다.”

“···시야를 담당시키려는 겁니까?”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카드를 찢으면 나타나는 분신. 그것들의 통제를 또 다른 분신에 맡긴다. 그렇게 되면 전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요.”


좋지도 않은 선택이다.

로키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뭐 하냐?”

“···니케 님?”


언제 왔는지 니케가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다 여기서 하는 거라니까.”


니케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매우 편한 자세로 앉았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카이로스 님은 괜찮으시죠?”

“내가 옆에 있는데 안 괜찮겠어?”


그녀의 말에 그는 웃었다.


“소원은 말이야.”

“네?”

“네 힘으로 이루기 힘든 것을 비는 거야.”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늘어놓는 그녀였지만, 왠지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소원으로 빌지는 않잖아. 그건 단순히 시간의 문제지. 그래서 제대로 된 소원은 항상 불가능한 것투성이야.”


내가 소원을 빌었던 적이 있었나? 있다면 언제, 누구에게 빌었지?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 달라고 했었지?


“근데 참 희한한 일이지. 분명히 불가능한 소원인데 그것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대부분은 자신보다 우월한 무언가에 계속 소원을 빌며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데.”


“카드가···.”


헤임달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한 인간의 의지에 반응해 저절로 움직이는 열일곱 개의 카드들이 보여주는 수려한 움직임을.


“물론 소원으로 가다가 다치거나 지칠 때도 있겠지.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바꾸는 것은 한 인간이 해내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할 테니까.”


카드들이 저마다 뭉쳐 하나의 명화를 창조한다.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삭월. 달의 일대기가 고작 한 인간의 손에서 빚어진다.

그렇게 소모된 카드는 모두 열 장. 열 장에서 태어난 한 장은 달의 일대기를 자신의 여백에 고이 간직했다.


“하지만 그 가혹하고 잔인한 시련을 뚫고 불가능의 영역에 도달한 인간은 주변을 둘러보고 깨닫는 거야. ‘아, 애초에 불가능이란 없었구나.’라고.”


나머지 일곱 장의 카드가 각기 네 장, 세 장으로 나뉘어 형태를 구성한다.


“신이 왜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 의문점은 거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거야. 인간의 불가능을 들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라는 면에서.”


네 장의 카드는 불게 빛나는 태양을, 세 장의 카드는 검은 그림자에 집어 삼켜진 태양을 만들어냈다. 그림자로 뒤덮인 태양의 고리에서 내뿜는 코로나가 영롱하게 빛났다.


“내가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긴 한데, 인간이 소원을 빌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평범한 태양과 일식 때의 태양이 한 장의 카드에 담겼다. 그렇게 인간의 손에 태양과 달의 일대기가 들어왔다.


“후우···.”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만들어 손에 쥔 로키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로키.”


헤임달의 진심 어린 축하가 옆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로키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두 카드를 바라봤다.


밝게 빛나는 태양의 밑에 온전한 일식의 상태인 태양. 무지개처럼 초승달부터 삭월까지의 달의 변화.


“느낌이 어떠십니까?”

“글쎄요.”


로키는 신의 도움으로 만들어낸 두 장의 카드를 주머니에 넣으며 웃었다.


“신은 역시 신이다, 라는 느낌이네요.”

“그런가요?”


헤임달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 님!”


고개를 돌리니 프레이가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시작됐어요!”

“벌써?”


체감상으로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과도한 몰입은 시간의 흐름을 왜곡하고는 하죠. 흔한 일입니다.”

“확실히.”


그는 사뿐히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프레이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라스 님은 드래곤들에게 갔고, 다른 사람들은 로키 님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가죠.”


로키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착각이겠지만, 방금 만들어낸 두 장의 카드가 부르르 떠는 것 같다고 느꼈다.




- 초목의 신, 그라스를 처치하셨습니다.

- 바람의 신, 스톰을 처치하셨습니다.

- 바위의 신, 록을 처치하셨습니다.


카오렌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 천계에서 당신의 악명이 증가합니다.

- 당신을 발견한 천족들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당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입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카오렌은 씩 웃었다. 일일이 도발하기도 지쳤는데, 이제는 알아서 덤벼 준다고 하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 쉬고 움직이는 게 어떨까요?”


베르단디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제안했다.


“30분 제공된 휴식 시간에도 계속 움직이셨잖아요.”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카오렌이 고개를 돌려 베르단디를 바라봤다. 그녀가 어깨를 움찔했고,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까 제가 한 말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다시 천사와 신들을 사냥하기 위해 이동하며 물었다.


“···누가 봐도 제 얘기였으니까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눈에 들어온 날개 네 쌍을 가진 천사를 향해 날아가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카오렌 루센트! 원수를 갚겠다!」


패기만 넘치는 천사를 두 조각으로 만들어 준 그는 계속 이동했다.


“그런데 그 역으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전지전능하기에 오히려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손을 댄다면 세상은 세상이 아니게 될 테니까.”


- 천사, 미구엘을 처치하셨습니다.

- 천사, 라구엘을 처치하셨습니다.

- 당신에 관한 전설이 대륙 어딘가에서 싹을 틔웁니다.


“그래서 아까 말했던 겁니다. 더는 당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은 없다고.”

“감사합니다.”


그제야 예전과 같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베르단디.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움직이며 천사들 서른 명, 신을 다섯 명 정도 추가로 잡았을 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 천계에서 당신의 악명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 천계에서 최초로 살신령(殺神令)을 발동했습니다. 당신이 죽기 전까지 살신령은 회수되지 않습니다.

- 칭호, ‘타락한 신’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움직일 셈인가?”


카오렌은 웃었다.

꿍쳐 놓은 병력이 얼마나 되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정말 지독한 놈들이었다. 하위 천사와 신들을 제물로 바쳐 힘을 소진시키는 극히 비효율적이며 잔혹한 전술.


“신 위의 신. 웃기지도 않는군.”


같은 신이라도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직도 여유를 부리고 있는 저 빌어먹을 놈들은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딴 머저리도 안 쓸 전술을 고집할 리가 없다.


「카오렌 루센트.」


점에 불과했던 빛이 크기를 키워 하늘을 가르니, 인간의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거룩한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너머의 성스러운 공간에서 고귀한 존재들이 강림했다.


「오만했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개미 떼처럼 몰려온 천사 중 한 여성 천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전에 너는 죽을 것 같군.”

「뭐?」


그녀의 날개가 검은 기운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그녀는 다급한 얼굴로 주변을 쳐다봤다.


「아니야, 나는 타락하지 않았-.」


변절자에게 꽂히는 수백 발의 창. 천계에서 내려온 병력의 대장 노릇을 하던 천사의 말로로는 비참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가 하품하며 그에게 핀잔을 준다.


“닥쳐, 아르헨. 그리고 하품하지 마. 나까지 졸리니까.”


그런 그를 매섭게 몰아붙이는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


“다들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 건지. 교양이 없어, 교양이.”

“인형에 들어갔던 네 정신 연령도 그렇게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뒤진다, 너.”


기품이 느껴지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경박한 대화 내용.


“다들 조용. 천계의 앞이다. 폐하의 이름에 먹을 칠하지 마라.”


늙었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믿음직스럽고 강인한 남자의 목소리.

카오렌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들은 항상 그의 뒤에 있었기에.


“자신은 있느냐?”


그는 물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거룩하신 그분의 이름으로. 저들을 죽여라.」


하늘이 그를 짓이기기 위해 내려왔다. 그는 검을 치켜세우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하늘을 부수러.”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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