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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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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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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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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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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라그나로크(4)

DUMMY

“최근 들어 소집이 너무 잦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쩔 수 없지. 빌어먹을 천사와 악마 놈들이 라그나로크를 선언했으니.”


마나의 호수. 드래곤들은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장소에 몇 번이나 소집된 작금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래서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종족인 인간을 닮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우리의 로드께서는 왜 오지 않으시는 겐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라.”


레드 드래곤 카슈테르는 아직 500살밖에 먹지 않은 철부지 그린 드래곤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가 저 나이 때도 저런 상태였을지 상상만 해도 불쾌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라스 님은 이번 회의에 오지 않으십니다.”


로드가 회합을 주관하는 자리인 호수의 정중앙. 그곳에서 웬 인간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 인간이 감히···.”

“당장 그곳에서 비키지 않으면 죽이겠다!”


카슈테르는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꼈다. 저런 것들과 자신이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것이 부끄러워 지금 당장 레어로 돌아가 고개를 처박고 싶었다.


“모두 닥치세요.”


카슈테르와 이곳, 마나의 호수에서 가졌던 회의의 원로라고 볼 수 있는 블랙 드래곤 라우에르가 격조 있게 말했다.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면 이 회의에 참여할 자격이 없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레어에 처박혀서 회의의 결과가 전달되기를 기다리세요.”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저 음침하고 보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놈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그는 라스를 찾아가 한 대 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변화는 그 빌어먹을 인간 때문에 벌어졌으니까 마땅히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로키. 그대가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은 로드로부터 일시적인 권한의 양도를 받았다는 뜻으로 봐도 될까요?”

“그렇습니다. 라스 님께서 말씀하시길 ‘드래곤 로드’라는 존재는 앞에서 이끄는 자가 아닌 친구들의 의견을 종합하는 토론의 사회자와 같은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린 드래곤 로제니아가 로키에게 머리를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흥미가 있어요. 드래곤의 심장을 교체할 생각을 하는 용감한 인간이 어떤 존재일지 궁금했거든요.”

“드래곤에게 흥미를 느끼게 하다니, 영광입니다.”


로키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카슈테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로키가 누군지도 모르고 개소리를 지껄이던 어린아이들에 비하면 저 인간이 훨씬 드래곤이 갖춰야 할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인간. 아무리 로드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양도받았다고 하지만, 의견을 종합하는 것은 할 수 없겠죠.”


로키는 이곳에 모인 모든 드래곤과 한 번씩 눈을 맞췄다.


“그렇기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게 뭔가.”


카슈테르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자신이 먼저 말을 해주어야 어린놈들이 함부로 지랄을 떨지 않을 테니까.


“로다인 제국에 표출하고자 했던 분노의 대상을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흐음. 역시 당신은 흥미롭네요.”


로제니아가 눈을 빛냈다.


“라그나로크로 천계와 마계의 싸움이 결정된 상황. 그런데 대륙의 수호자들께서 인간에게 벌을 내리신다면 인간은 싸울 의지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 말은, 그대가 인간들을 이끌어 대적하겠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그럴 생각입니다.”


그렇게 말한 로키가 자신 없는 미소를 보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입니다.”

“그 의지는 기특하게 생각합니다.”


라우에르가 말했다.


“허나 우리의 분노는 결코 가볍지 않아요.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대 또한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이 있죠.”

“인정합니다.”

“로제니아, 카슈테르를 비롯해 그와 친하게 지냈던 ‘우리’는, 친우를 일찍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라우에르는 오른쪽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카슈테르는 소리 죽여 웃었다.


‘제대로 신난 모양이군.’


그 역시도 로키에게 미운 감정이 있기 때문에 굳이 말리지 않았다.


“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라우에르가 자신이 생각한 거래의 조건을 말했다. 로키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알겠습니다.”

“좋아요. 거래 성립이군요.”


인간형으로 변한 라우에르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그때 보도록 하죠.”

“예. 고귀한 존재들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라우에르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인 그는 다른 드래곤들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호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카슈테르가 묻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에게도 명분은 필요하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누가 먼저 시작하실래요?」

“당연히-.”

“저죠.”


카슈테르와 로제니아가 동시에 꼬리를 들었다. 둘은 서로를 잠깐 바라보다가 이빨을 드러냈다.


“죽고 싶나?”

“죽고 싶으세요?”




“자신의 비정상적인 성장세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분명 그랬죠.”


로다인 제국의 수도, 노트. 이제는 사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아셀 로다인의 궁전의 어느 첨탑 위. 로키는 태양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에서 어둠을 추출해 의자를 만들어 노트를 내려다봤다.


“그런 것치고는 벌이는 일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군요.”


어깨에 앉아 있는 헤임달이 뭐가 그리 신나는지 허공을 발로 차며 킥킥거렸다.


“개인적으로 아셀 로다인보다 당신이 더 미친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윤서훈 박사님 이후로 당신들의 관리자가 된다는 사실은 어떻습니까?”

“미친 건 게임 한정이잖습니까. 당신이 게임의 강함에 취해 현실에서도 ‘나는 밤의 황제다!’ 이러는 게 아닌 이상, 상관없습니다.”


헤임달은 여태까지 말을 못 한 것이 한이었는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로키는 그의 말을 하나하나 다 들어 주었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감입니다.”


둘은 마치 하나의 몸인 것처럼 동시에 웃었다. 그와 동시에,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졌다.


“···오는군요.”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어떨까요?”


헤임달의 말에 로키는 피식 웃었다. 헤임달이 말을 하면 진지해야 할 부분에서 진지할 수가 없다.


「인간들이여. 우리의 분노를 받을 준비는 되었는가?」


레드 드래곤이 지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드, 드래곤···.”

“드래곤이 나타났다!”

“도망쳐!”


공황에 빠진 사람들이 도망치기 바쁘다. 드래곤은 아비규환이 된 수도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자신 있게 드래곤을 사냥하겠다고 나설 때는 언제고, 우습기 짝이 없구나.」

“오, 신이시여! 부디 저희를 구원하소서!”


사람들은 신을 찾았다. 대륙에 강림한 천사들을 찾았다. 하지만 수많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신은 물론, 천사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너희들이 믿는 그놈들은 마족과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럴 리가···.”


그들이 믿고 있던 최후의 보루마저 잃은 지금, 인간들은 삶을 포기했다. 그들은 도망치던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드래곤이 용언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수도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죽음이 저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왔다.


“···메테오?”


드래곤은 대기권에 불타 사라지지 않을 거대한 크기의 운석을 소환했다. 공기와의 마찰로 빚어진 뜨거운 불꽃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운석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을 내며 강하했다.


「누구라도 내게 생채기 하나를 낼 수 있다면, 저 운석을 도로 돌려보내겠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수도에 종말의 사신이 강림할 것이다.

도망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밀치고, 가족들을 챙기며 서둘러 움직이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멎었다. 수도를 그림자로 뒤덮은 저 거대한 운석에게서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깨달은 탓이었다.


“···약속을 잊으신 건가?”

“레드 드래곤은 호전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로키 당신과 싸우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군요.”


한숨을 쉬며 밑으로 내려가던 그때, 드래곤과 눈을 마주쳤다.


「너희 같은 나약한 것들이 내 비늘에 작은 흠집 하나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이쪽에서 친히 조건을 낮춰 주겠다.」


붉은빛에 휩싸인 드래곤은 작은 점이 되었다. 점이 서서히 강하하는 것을 본 로키는 자신에게 그래비티를 사용해 단숨에 땅에 착지하고, 점이 떨어진 방향으로 달렸다.


“아, 아아···.”

“폐하! 저희를 구원해 주십시오!”

“성스러운 불꽃의 주인인 이그니시여! 정녕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의지할 대상을 찾고, 누군가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드래곤에게 대적하려 들지 않았다.


“애초에 드래곤과 싸우는 것도 로키 님 정도는 돼야 비벼볼 수 있는 겁니다.”

“그분들이 제게 맞춰 주시는 거죠.”


헤임달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은 로키는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갔다. 폭이 좁은 길의 양쪽 건물을 번갈아 차서 옥상으로 올라간 그는 왼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에 빛을 주입했다.


「도전자는 그대 한 명인가?」

“그런 모양입니다.”


검에 어둠까지 흘려보내 무한대의 고리를 완성한 로키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미남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제가 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카슈테르 님.”

「이곳은 멸망한다.」


카슈테르의 말에 로키는 눈썹을 꿈틀했다.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내가 제시한 조건을 네가 충족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카슈테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꺾었다. 설마 이것도 못 하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


“시간의 여유는 얼마나 됩니까?”

「5분.」


그가 왼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그런데 네가 공격하는 대신 입만 놀려서 방금 막 4분이 되었다.」


그의 엄지가 접혔다.


로키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퍼트렸다. 여태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 어둠은 밑에서, 빛은 위에서 그의 의지에 따라 영역을 넓혀갔다.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마나가 그의 전신에 깃든다. 그 압도적인 충만감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콰직.


가볍게 내딛은 한걸음에 건물이 부서진다. 그의 감정에 반응해 어둠이 파도치고, 빛이 일렁거린다.


「오라.」


카슈테르가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어둠이 그와 카슈테르 사이에 길을 만들어 주었다.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직선의 길을.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카슈테르에게 향할수록 검이 진동한다. 고리에 담긴 빛과 어둠이 회전하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분명 뛰지 않았는데, 다섯 걸음도 채 걷지 않았을 때 그는 카슈테르의 앞에 서 있었다.


“피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로키는 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빛과 어둠이 한데 뒤섞였다. 그리고 폭발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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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8. 마계의 문(3) 21.06.01 20 0 13쪽
142 18. 마계의 문(2) 21.05.31 21 0 14쪽
141 18. 마계의 문(1) 21.05.30 25 0 12쪽
140 17. 신의 이름으로(4) 21.05.30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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