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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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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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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9. 라그나로크(3)

DUMMY

다섯 제자들은 정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이란 말에 어폐가 있긴 하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케론이 잔에 차를 따르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오랜만이라고 할 만하지 않겠냐.”


타스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타스. 너만 노인이니까 보기 힘들어. 젊었을 때로 돌아가지 않을래?”


쿨루스가 대화의 주제와 상관없는 엉뚱한 말을 뱉었다.


“너희들이 나처럼 사이좋게 늙어 주면 좋을 것 같다만.”

“그건 절대 싫어.”


이레인이 콧방귀를 끼며 팔짱을 꼈다.


“여성에게 노화는 적이야.”

“잘도 말하네. 인형에서 갓 나왔을 때는 완전-.”

“시끄러!”


이레인이 옆에 앉은 아르헨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허허. 개판이군.”


타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뱉는 자신의 친구들을 보며 웃었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케론의 말에 모두는 침묵했다. 그는 잔을 비우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비어버린 잔에 차를 따르지 않았다.


“우리 다 죽는다고?”


이레인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본 것은 내 죽음이다. 너희들의 미래는 보지 않았어.”

“그래? 너는 뭐 하다가 죽는데?”


아르헨이 머리 뒤쪽에서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너희들에게 쉴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마련해 주다가 천사들의 창에 맞고 죽는다.”


누구도 케론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농담이다.”


입을 다물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네 명에게 그는 웃어 주었다.


“내 죽음은 그 정도로 가볍지 않아. 애초에 너희들에게 쉴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건 그래.”


아르헨이 바보 같이 웃으며 맞장구쳐 주었다.


“솔직히 우리 다섯 명이서 뭉치면 천계나 마계 정도는 가볍게 접수-.”

“그래서는 안 돼.”


쿨루스가 하품하며 아르헨의 말을 끊었다.


“할 수는 있겠지만, 귀찮아. 우리 중에 몇 명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놈들의 신앙심 따위 받고 싶지도 않아.”

“그럼 안 하지 뭐.”


그렇게 말한 아르헨이 쿨루스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녀가 귀찮다는 듯 그를 노려봤지만, 그의 헤실거리는 웃음에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폐하와 함께 한다.”


타스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 끝에 죽음이 있든, 또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든. 폐하보다 늦게 맞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한 타스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너희들보다 내가 먼저 맞이할 것이지만.”

“죽을 날 앞둔 노인네가 앞장은 무슨. 뒤로 빠져 있어.”


이레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레인의 말이 맞아, 타스 형. 형한테는 보살펴야 할 귀여운 아이들이 있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타스의 말에 아르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쿨루스의 팔에 머리를 기대고 비볐다.


“어차피 걔들은 로키를 주인으로 인정했어. 내 손을 떠난 거지. 나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야.”


그렇게 말하는 아르헨의 눈빛에는 씁쓸함과 기쁨이 혼재되어 있었다.


“믿음직한 제자를 두어서 좋겠군.”


케론이 한숨을 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내 빌어먹을 제자 놈은 언제쯤 정신을 차릴지···.”

“그거 딱 네 사춘기 때 모습 아니냐?”

“···그게 무슨 개소리냐, 이레인.”


케론이 눈을 흘기며 이레인을 노려봤다.


“너 기억 안 나? 예전에, 언제였더라? 아, 폐하가 우리끼리 하프린을 상대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

“아하하하! 그때?”


그녀의 말을 들은 아르헨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때 진짜 가관이었지.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우쳤다는 것 마냥 진지하면서 오만한 얼굴로 ‘우리는 절대 그놈을 이길 수 없어. 무의미한 싸움이다.’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뱉었지.”

“그다음이 진짜라고. ‘폐하께서 미친 게 분명하다. 많은 서류 작업 때문에 잠시 이성을 잃으신 모양이군.’ 아하하하!”


아르헨 때문에 덩달아 신난 이레인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치며 웃었다.


“다들 닥쳐라.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면.”

“어이구, 무서워라. 근데 그 카드 네 거 맞아? 로키가 되찾아 주면서 바꿔치기했을 수도 있잖아.”


쿨루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하하. 그만들 해라. 그러다가 울겠다.”


그나마 점잖은 타스가 중재를 해주는 듯했으나, 케론은 선명하게 보았다. 억지로 참느라 파르르 떨리고 있는 입꼬리를.


“후···.”


케론은 포기했다. 이들은 그토록 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바뀌었으나 예전으로 되돌아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그가 본 미래에 이렇게 화목하게 모두가 모이는 장면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분명히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있다.


‘감사를 표하지.’


그는 아직도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는 어느 이방인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달했다.


‘죽기 전에 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갈 수 있음에.’




드래곤의 목숨을 거두는 자에게 주어질 예정이었던 카덴 공국. 엄밀하게 따지면 이곳의 주인은 로키여야 되지만, 지금 이곳의 주인은 천족들이었다.


서쪽은 천계, 동쪽은 마계. 그론 산맥에 위치한 크로스 라인을 중심으로 좌우로 두 종족은 찢어졌다. 라그나로크의 날이 밝기 전까지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깨끗하군요.”


성역화가 완료된 카덴 공국의 수도, 대륙에 강림한 신들이 모여 있는 도시에 방문한 카오렌의 감상평은 단순했다.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가 어렵군요.”


먼지 하나 허용하지 않는 결벽증을 가진 태양에 의해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그림자조차 허용하지 않는 순백의 도시. 카오렌은 하늘에서 자유롭게 나다니는 천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도시에 입장했다.


“벌써 강림한 신이 네 명.”


이그니, 마르, 이카스, 에르데. 대륙의 4대 원소를 관장하는 신으로, 보편적인 만큼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강하다.


“저희가 걱정해야 하는 신은 고작 저런 것들이 아닙니다.”


오만한 베르단디의 말. 카오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대천사장 안젤루스. 다르드의 인정을 받았으니 그녀의 인정만 받게 되면, 다음 퀘스트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안젤루스!”


잠깐 도시를 걷던 그는 목소리를 높여 대천사장의 이름을 불렀다. 그림자가 없는 이 하얀 도시에서 방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왔소! 모습을 보여 주지 않겠소?”


라그나로크가 예정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를 찾는 것에만 라그나로크의 준비 기간 전부를 소모했을지도 몰랐다.


「···카오렌 루센트.」


순간 그림자가 없는 도시에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강렬한 섬광이 번쩍였다. 섬광이 그치고 그의 앞에는 여섯 쌍의 날개를 가진 대천사장이 그를 오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대는 마계의 편인 줄 알았는데?」

“다르드와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내가 마계의 편이라는 증거는 되지 않소.”

「모르겠나? 마계와 친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글러 먹었다는 것을.」


안젤루스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왼쪽 첫 번째 날개를 펄럭여 카오렌의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다.


“그와의 친분은 그가 아직 인간이었을 때 쌓은 것이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와의 연을 끊어라.」

“그러기는 힘들 것 같군.”


카오렌이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안젤루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내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이냐?」

“나는 신이 되려 하오.”

「···신?」


카오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안젤루스의 날개에 달린 깃털들이 부르르 떨렸다.


「카오렌. 마기에 오염이라도 된 게냐?」

“이미 다르드의 인정은 받았소.”

「쌍으로 아주 지랄을 하는군.」


그녀의 두 번째 날개가 펄럭였다. 강철보다 날카로운 깃털이 카오렌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깃털이 스친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꺼져라. 내가 죽지 않는 한 네놈의 신성모독을 허락할 수 없음이니.」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카오렌이 태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뭉쳐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억지로 인정을 받아내는 수밖에.”

「지옥에 사는 역겨운 종자와 나를 동일 선상에 두지 마라.」


안젤루스가 자신의 모든 날개를 활짝 펼쳤다. 수백 개의 깃털이 허공에 흩날렸고, 주인의 손짓에 따라 적을 섬멸하는 날카로운 비도가 되었다.


“다르드가 더 강한 거 같은데?”

「건방진 놈!」


그녀가 팔을 뻗자 모든 깃털이 카오렌을 향해 쇄도했다. 카오렌은 태양의 열기로 만든 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웃었다.


“쉽게 흥분하는 것부터 감점이야.”




프레이는 라그나로크 시작 전까지 접속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후 사정을 어림잡아 알고 있는 로키는 그러라고 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접속을 끊었다.


한가했다. 리드마 대륙이 결정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데 로키는 마땅히 준비할 것이 없었다.


“검이라도 한 자루 더 만들어 달라고 하죠.”

“두 자루로도 충분합니다.”


엘프와 드워프. 두 종족이 만들어준 검이 있는데 더 욕심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한가롭네요.”


폭풍이 거세게 불기 전의 일시적인 평화. 의지를 확고히 다지는 것 말고는 준비할 게 마땅치 않았던 로키는 로다인 제국의 수도를 걷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퀘스트가 사라진 게 아니니까 피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아, 미치겠네.”


로다인 제국은 황제와 그의 부하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만백성이 두려움에 밤을 지새워야 했다.


“죄송하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습니다.”


황궁으로 들어가려 하니 경비병들이 창을 교차시키며 제지했다.


“폐하께 말씀드리세요. 드래곤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이 있다고.”

“···그게 정말입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경비의 말에 로키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 이름은 로키. 초대 밤의 황제 카오렌 루센트의 정식 후계자입니다. 가서 전하세요. 드래곤에게 제국이 멸망하기 싫으면 내 말을 들으라고.”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경비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갔다. 로키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어차피 속이 타는 쪽은 그가 아니었으니까.


“늘 있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말해 준 경비에게 고개를 숙인 로키는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황제는 언제나 그랬듯 여유로웠다. 의자에 누워 햇빛을 만끽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드래곤에 대한 걱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두렵지도 않습니까?”

“두려워? 뭐가?”


이 황제는 현실 감각이 없는 건가?


“나는 루센트의 뒤를 이은 로다인 제국의 황제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황제의 눈은 여전히 미쳐 있었다. 하지만 광기 속에 번뜩이던 날카로운 빛이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가만히 있었던 건가.”


의구심이 들긴 했다. 아셀 로다인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였을 텐데 로다인 제국은 지나치게 조용했으니까.


“드래곤이든, 라그나로크든! 나는 지지 않아. 내게는 바다를 지배하는 해적과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 용맹한 기사들이 있다! 로다인 제국은 무적이야! 남부의 떨거지들이 떼로 덤벼도 소용없어! 그론 산맥에 만들어 놓은 통로를 이용하면-.”

“로키. 그대의 말이 사실인가?”


크로엔 후작이 황제의 말을 끊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거짓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됐습니다.”


로키는 크로엔 후작의 말을 끊었다.


“이미 보상은 받은 것 같네요.”


로키는 아셀 로다인을 힐긋 쳐다봤다.


“로다인 제국은 루센트 제국을 뛰어넘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고 말겠어···.”


정원을 벗어나는 로키의 뒤에서 미쳐버린 황제의 중얼거림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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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22. 커튼 콜 21.06.22 36 1 26쪽
163 21. 종막(5) 21.06.21 15 0 20쪽
162 21. 종막(4) 21.06.20 14 0 13쪽
161 21. 종막(3) 21.06.19 13 0 11쪽
160 21. 종막(2) 21.06.18 28 0 12쪽
159 21. 종막(1) 21.06.17 19 0 12쪽
158 20. 혼돈(3) 21.06.17 20 0 12쪽
157 20. 혼돈(3) 21.06.16 18 0 11쪽
156 20. 혼돈(2) 21.06.14 18 0 12쪽
155 20. 혼돈(1) 21.06.13 27 0 12쪽
154 19. 라그나로크(11) 21.06.12 22 0 12쪽
153 19. 라그나로크(10) 21.06.11 26 0 12쪽
152 19. 라그나로크(9) 21.06.10 24 0 12쪽
151 19. 라그나로크(8) 21.06.09 20 0 12쪽
150 19. 라그나로크(7) 21.06.08 23 0 12쪽
149 19. 라그나로크(6) 21.06.07 21 0 12쪽
148 19. 라그나로크(5) 21.06.06 26 0 12쪽
147 19. 라그나로크(4) 21.06.05 29 0 12쪽
» 19. 라그나로크(3) 21.06.04 21 0 13쪽
145 19. 라그나로크(2) 21.06.03 18 0 12쪽
144 19. 라그나로크(1) 21.06.02 18 0 12쪽
143 18. 마계의 문(3) 21.06.01 20 0 13쪽
142 18. 마계의 문(2) 21.05.31 21 0 14쪽
141 18. 마계의 문(1) 21.05.30 25 0 12쪽
140 17. 신의 이름으로(4) 21.05.30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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