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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연재수 :
1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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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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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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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 라그나로크(5)

DUMMY

날씨가 좋은 날을 정해 장례를 진행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절차에 날씨가 우중충하게 바뀌었고, 습도가 높아 사람들에게 짜증을 유발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물을 떨어트릴 것 같았다.


“우리나라를 가장 앞에서 이끄신 훌륭한 기업가였습니다. 이렇게 돌아가시게 되어 정말 유감입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하윤은 내심 쓴웃음을 삼키며 빈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잠깐의 쉬는 시간, 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수북이 쌓인 흰색 꽃들이 보였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발전시킨 위인. 나라의 위상을 드높인 기업가. 사내 문화의 선진화를 이끈 인권 운동가.

그녀의 할아버지에게 붙은 별명은 수십 개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와닿는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영정사진 속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윤아. 피곤하지?”


어깨에 닿은 손길에 그녀는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재훈이 그녀에게 따듯한 미소를 지어 주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할게. 잠깐 쉬어.”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보이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남자는 공손하게 그녀의 할아버지에게 두 번 절을 올리고 합장했다.


“성훈 님···?”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온 성훈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래곤과 싸우고 있던 게 아니었나요?”


장례식장의 주요 이야깃거리는 두 개였다. 앞으로의 오성 그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리드마 대륙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 덕분에 그녀는 현실에 있어도 리드마 대륙의 상황을 자세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분노는 물리쳤습니다. 다음 분노가 다가오기 전에 잠깐 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 만남이죠? 우리.”


이재훈이 손을 내밀었다. 성훈은 그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리쳐. 슬픔을 극복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저은 그는 이하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나더 월드의 시간은 이곳보다 빠르게 흐르니까요.”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해요.”


그녀의 사과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재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대화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제 동료가 이렇게 의기소침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요.”

“제 쪽에서 부탁할 일이죠. 슬픔을 극복할 수 있게 힘을 빌려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훈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고, 그녀는 자신의 오빠를 바라봤다.


“갔다 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벌써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고 있는 성훈의 뒤를 황급히 쫓았다.


“저 남자 그 사람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뭐야, 누군데 그래?”

“너 어나더 월드 안 하냐? 어떻게 저 사람을 몰라?”


장례식장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앞만을 보며 걷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나온 둘은 그늘진 나무 밑의 벤치에 앉았다.


“···괜찮으십니까?”

“네.”


그가 사람들로 붐비는 장례식장의 입구를 보며 물었고, 그녀는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그녀를 빤히 쳐다봤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오해할지도 몰라요.”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무슨 오해인지도 모르겠고, 남들이 떠들어대는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는 굳건했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그 점이 그녀는 가장 부러웠다. 동시에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이 몇 번이나 도움을 주고,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음에도 머뭇거리는 자신이.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프레이··· 아니, 하윤 님을 위로해 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어서 말씀드리기 위해 온 겁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그는 아는 이들끼리 모여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고작 게임 속에서의 대화였습니다. 오성 그룹은 대한민국의 1위인 대기업이고. 그런데 회장의 후계자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겁니까?”

“···그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였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그 부분은 잊고 있었다. 시기가 리드마 대륙의 위기와 겹쳐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물론 저는 회사에 다닌 적도 없고, 높은 곳에 사는 재벌들과 어울린 경험도 없습니다. 어둠에서 남들이 손가락질할 일들을 했죠. 그렇기에 권력을 잡은 이들은 빛과 어둠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성향을 띄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카오렌 폐하의 다섯 제자 중 한 명인 암살의 인형술사 이레인이 이성을 잃었을 때 아이른 왕국의 왕을 인질로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음지에 활동하기에 알 수 있는 이야기. 그녀는 매혹적인 리드마 대륙의 비사에 순식간에 몰입했다.


“암살자가 버젓이 귀족들이 모여 있는 곳에 저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남부의 대국인 아이른의 왕이 암살자를 중용한 공포 정치로 정책을 펼친다는 것. 귀족들의 불만은 나날이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로키 사냥이라는 단어에 침울한 표정을 지었을 그녀는 침을 삼키며 이야기의 다음 내용을 기다렸다.


“귀족들의 불만은 로다인 왕국이 보낸 사절로 인해 불이 붙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자신들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는 치욕에 반역을 꾀했죠. 하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레인이 아이른 왕국에서 떠나기도 했고, 모든 귀족이 반역에 동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이야기가 끝나고,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오성 그룹은 아이른 왕국보다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을 테니,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하군요.”


···조용하다?


“중세 시대의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왕국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뭉친 기업이 갑작스럽게 기업의 회장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잡음도 들리지 않는군요.”


확실히. 그녀는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장례식장을 바라봤다. 평화로운 저곳이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 무섭게 다가왔다.


“저는 다양한 파벌들이 싸울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은 다른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적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를 따라 일어난 그녀는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았다.


“강제로 듣게 해야죠.”


씩 웃은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떠났다. 어나더 월드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굳이 이곳까지 와 준 것에 그녀는 깊은 감사를 느꼈다.


“강제로 듣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복도를 걸으니 금세 할아버지의 빈소에 도착했다.


“왔니?”


이재훈이 반겨 주었다.


“오빠.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든지.”


그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그 전에, 우리 녹음은 끌까?”


그녀의 핸드폰을 뺏은 그가 눈을 번뜩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 새끼가 너한테 무슨 바람을 넣었어?”




두 번째 분노가 제국에 도착했다. 마나의 호수에서 그를 도와주었던 그린 드래곤 로제니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나타난 곳은 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파이론의 옛 수도였다.


「이번에도 그대 혼자인가요?」

“그렇습니다.”


좌우를 둘러본 로키는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태연하게 검을 뽑았다.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은, 그대를 외롭게 할 겁니다.」

“제 동료들은 개의치 않을 겁니다. 오히려 저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겠죠.”


로키는 빛과 어둠을 퍼트렸다. 카슈테르를 상대할 때 했던 것처럼, 땅과 하늘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다.


“그들만 제 곁에 남아 준다면, 대륙의 모두가 저를 외면해도 상관없습니다.”

「고독하군요.」

“원래 제 삶은 고독의 연속이었습니다.”


검의 고리가 옆으로 누이며 무한대를 그렸다.


“그런데, 언제 시작할 생각입니까?”

「오만방자함까지 갖췄군요. 라스보다 그대가 더 드래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로키는 선제공격을 가하기로 했다. 로제니아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 그녀에게 닿기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개였다. 계단을 만들어 저 높은 곳까지 뛰어가거나, 날아가는 것.


「카슈테르가 매우 즐거워하더군요. 저는 그처럼 무식하게 육체를 부딪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으니, 우아하게 가보도록 할까요.」


그녀의 말에 그는 날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의 등에서 솟아난 빛이 한 쌍의 날개가 되었다. 날개는 그의 의지에 반응해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그대는 마법에도 소질이 있었죠.」

“훌륭한 스승을 둔 덕분입니다.”

「제자가 뛰어나야 스승의 능력도 좋은 평가를 받는 법.」


그렇게 말한 그녀가 초록빛에 휘감겼다. 그리고 잔디밭을 연상시키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손을 뻗었다.


“지금 상황에는 엘프의 검이 더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헤임달의 말에 로키는 빠르게 대답했다.


“로제니아 님보다 제가 자연을 더 잘 다룬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때 들겠습니다.”


그리고 빛의 구체 열 개를 동시에 압축했다.


「불어라.」


공기가 나선의 형태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빨아들이며 급격하게 몸집을 불린 바람의 기둥이 도합 다섯 개. 그를 포위하듯 모습을 드러낸 그것들은 서서히 간격을 좁혀 왔다.


「얼어라.」


다섯 개의 소용돌이가 뿌리부터 얼기 시작했다. 5초도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다섯 개의 얼음 기둥이 로키를 가뒀다.


「내리쳐라.」


쿠르릉.


구름이 삽시간에 그의 머리 위에 모였고, 본격적인 공격을 하기 전에 이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로키는 어둠으로 구체를 만들고 그 안에 숨었다. 그리고 빛으로 한 겹 더 감싸 강도를 올렸다.


“옵니다.”


헤임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센 충격이 그를 강타했다. 번개에 타 죽기 싫었던 그는 계속 어둠과 빛으로 구체를 강화했다. 벼락은 그가 만든 구체를 계속해서 찢어발겼다.


로키는 압축해 놓았던 구체를 일시에 발사했다. 열 줄기의 레이가 로제니아를 향해 날아갔다.


「···흥미롭네요.」


아주 짧은 찰나, 벼락의 위력이 약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로키는 구체를 우산처럼 넓게 펴서 그녀가 내리치는 벼락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아직 끝나지 않은 벼락이 바다에 꽂혔다.


「순수한 빛을 이용한 공격이라. 공격력이 낮은 것 같지만, 터무니없는 속도가 그것을 보완해 주는군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급소에 맞으면 즉사하겠죠. 반응을 못 할 테니까.」

“···칭찬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그는 바다의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로제니아의 벼락이 주변의 물을 전부 증발시킨 탓이었다.


「자, 지금부터는 제대로 가겠습니다. 부디 저를 더 즐겁게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을 위로 살짝 들었다. 그러자 바다가 용솟음쳐 거대한 뱀이 되었다. 한 군데에 뭉친 바람은 날개로 태양을 가릴 수 있는 새가 되었고, 구름은 노란색 스파크를 숨기지 않았다.


“··명복을 빌겠습니다.”


헤임달의 웃음기 섞인 말을 들으며 로키는 두 번째 검을 뽑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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