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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연재수 :
1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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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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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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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라그나로크(11)

DUMMY

김덕배는 라그나로크에 참전하지 않았다. 레카 길드 시절부터 함께였던 놈들은 전부 참전을 선언할 때 그 혼자만 불참을 선언했다. 그 이유는 한 게임사가 특별 편성한 방송 때문이었다.


1부터 1,000, 10,000이 넘는 숫자의 채널이 일시적으로 개설되었다. 개중에 한 번호를 고르면 시청자는 한 사람의 처절한 싸움을 볼 수 있게 된다.


강렬한 마법? 화려한 검술? 로빈후드의 재림 같은 활 솜씨?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이 방송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모든 채널의 주인공은 한 명이다. 단 한 명도 다른 채널과 똑같이 생기지 않은 사람들이, 천사와 악마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만 개가 넘는 채널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가 놀란 것은 단순히 채널의 숫자나 치열한 전투 때문이 아니었다. 레벨이 제법 높은 편에 속하는 그의 눈에 방송의 주인들이 보여주는 전투는 그저 그랬으니까.


“이게 가능한 거야?”


그가 집중한 부분은 채널의 주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다. 천사와 악마를 죽이는 것보다는 자신이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 가족, 연인,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린 원수 등을 구출하는 쪽에 치중되어 있는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위기에 놓이면 망설임 없이 카드를 한 장 찢는다.


- “좌표는 알고 있죠?”

-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 “그 사람이 당신이 지켜야 할 사람인가요?”

- “애인인가요? 잘생겼네요.”


카드를 찢으면 한 남자가 나타난다. 카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상대해야 하는 적을 대신 맡고, 도망칠 시간을 벌어준다.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모른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간 것이 확인되면 채널이 종료되었으니까.


“로키···.”


모르는 게 더 이상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100억이라는 거금에, 사채업자 딱지를 떼고 싶다는 유혹에 휘둘려 잃어버린 소중한 인연. 그가 남을 구하려고 하는 자들을 전부 구하고 있었다.


“단순한 스킬이 아니야, 저건.”


대사나 행동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카드를 찢은 사람을 쳐다볼 때의 고개 각도, 뱉는 말, 표정, 몸짓, 전부 제각각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전부··· 컨트롤하고 있어.”


만 개가 넘는 채널의 사람들이 카드를 찢을 때마다 나타나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설정된 스킬 효과가 아니라 분신을 직접 조종하는 방향으로.


김덕배는 소름이 돋았다. 그의 전투 센스는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초창기부터 같이 사냥하러 다녔으니까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그의 실력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 “아기가 귀엽네요.”


그가 보고 있던 채널은 남편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데리고 도망치는 한 여인의 분투기였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몰리자 카드를 찢었고, 이번에도 로키가 나타났다. 그를 보자마자 여인의 눈빛에 안도감이 깃든다.


이제 나는 살았다고 순수하게 믿는다. 그 생각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 김덕배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영상에 몰입했다.


- “가세요.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로키의 적은 뿔이 세 개 달린 마족. 팔이 네 개였고, 약물을 복용한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 흉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는 누구냐?」

- “저 여인의 황제.”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는 탓에 간신히 들었다. 로키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로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 “저 남자는 누구셔?”

- “···우리의 황제.”


어딘지 감도 안 오는 장소로 마법진을 이용해 도착한 여인이 남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리고 그를 와락 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 “같이 죽기로 했는데, 내가 죽을 때 옆에 있어 주겠다고 하셨는데, 난 비겁자야.”


영문을 모를 그녀의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편. 하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준다.


- “황제의 명을 따르면 사형이야. 알지?”

- “···뭐야, 그게.”


남편의 말에 여인이 웃음을 터트리고, 아기도 꺄르륵 웃는다.

그것을 끝으로 7841번 채널은 종영되었다.


김덕배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로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마족을 쓰러트렸을까? 만약 패배했다면 본체에게 가해지는 페널티가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저런 마법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온갖 생각 때문에 채널을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검은 화면에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아직도 이곳이 게임으로 보이시나요?’


힘이 빠진 손에서 탈출한 리모콘이 바닥에 부딪혀 비명을 질렀다.


‘판단은 당신의 몫입니다.’


그 문장을 끝으로 채널은 소멸했다.


“···.”


김덕배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모콘이 발에 걸렸지만, 무시하고 걸은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캡슐의 버튼을 눌러 뚜껑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 어나더 월드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예.”


리드마 대륙에 도착한 머니는 곧바로 레카 길드원들에게 귓속말을 보내 소집 명령을 내렸다.


- 라울 님으로부터 : 갑자기 귓말 떠서 죽을 뻔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머니는 동시다발적으로 퍼붓는 길드원들의 반발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발송했다.


- 모두에게 : 로키가 혼자 싸우고 있어.




“휴식을 권장 드립니다.”


헤임달의 말을 무시하고 그는 몸을 움직였다. 날개 덕분에 몸을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다. 숲속의 나무들을 헤치고 나아가 도망치기 바쁜 천사들의 목을 베었다.


“로키.”


주변에 천사가 보이지 않은 것을 확인한 로키가 허공에 우뚝 멈췄다. 그리고 피를 토했다.


“우웁. 우웨엑.”


근처의 나무를 손으로 짚어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울렁거리는 속을 전부 게워냈다.


“···이 나무만 단풍이 일찍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흡수해서 말이지.


“이 나무에 대한 전설이 생기겠군요. 그렇게 퀘스트가 생성되고, 유저들은 당신의 무용담을 듣기 위해 탐험을 시작할 겁니다.”

“그러다가 또 천계나 마계의 문을 여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 가는 헤임달의 말에 로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숨을 길게 뱉었다. 라이터로 뇌를 지지는 듯한 통증이 조금은 가셨다.


“두 번은 못 할 짓이군요, 이거.”

“애초에 한 번도 불가능한 겁니다.”


나도 안다. 이게 미친 짓이라는 걸. 까딱하다가는 팬드래건 왕국의 남부행을 방관했던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걸.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죽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거 아십니까, 로키?”

“뭡니까.”


날개를 펄럭인 로키는 두꺼운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세계의 모든 천재는 한 분야에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입니다. 범재와 천재의 차이는 그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그게 정답이겠네요.”


AI가 분석해서 내놓은 답이 틀릴 리가 없으니까.


“로키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 죽는 것에 병적인 집착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천재가 아닌데요.”


집착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집착만 안 했어도 라그나로크를 훨씬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쩌면 라그나로크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게이머를 데려와도 로키의 백 분의 일도 못 따라갑니다. 내기할까요?”

“···아뇨. 그냥 천재 하겠습니다.”


통증이 조금은 줄었을 뿐, 아직도 카드를 찢는 이들은 많다. 그들에게 신경을 써야 했기에 로키는 순순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실을 수긍했다.


「여기 있었나.」


인간 형태의 카슈테르가 팔짱을 낀 상태로 드래곤답게 하늘에서 내려왔다.


“시에는 처리하셨습니까?”

「한 줌의 물이 되기 전에 도망쳤다. 종족의 우월함이니 뭐니, 개소리를 지껄이던 년이 눈을 휘날리며 도망가는 모습은 제법 볼만했다.」

“꼭 봤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이젤, 마르크가 도망갈 수 있게 분신을 조종하며 그는 카슈테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어이, 로키!”


카슈테르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블랑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다음 전투에서 보도록 하지.」

“예. 수고하셨습니다.”


카슈테르가 텔레포트로 사라졌고, 로키는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너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블랑의 눈이 자신의 입가를 빤히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로키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아까 토했을 때 미처 닦지 못한 피가 묻어 나왔다.


“진짜 괜찮습니다.”

“···너 말이야.”


한숨을 쉬며 빤히 쳐다보는 블랑이 왠지 카슈테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준 카드.”

“단순히 제 모습을 본뜬 마네킹을 소환하는 카드입니다.”


로키는 로이와 제르를 구하며 대답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죽는 순간에 같이 있어 주겠다고. 그것을 위한 카드입니다.”


라윤과 니자를 구하며 웃었다.


“···알았어.”


전혀 안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블랑은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장서 길을 안내했다.


“우선 팬드래건이 싸우고 있는 쪽으로 가자. 마계는 천족과는 달리 수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예.”


다행히 카드를 찢는 이들의 수가 많지 않아서 지금은 수십 개의 시야만 조종하면 됐다. 몬스터 군단을 이끌 때 한 번 경험해 봤던 일이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라파엘을 상대로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로키 님. 괜찮으세요?”


프레이가 옆의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한숨을 쉰 그녀는 그의 옆에 서서 같이 걸었다.


“천사는 상대할 만하던가요?”

“네, 뭐. 그럭저럭?”

“그럭저럭은 무슨. 잘만 싸우더만.”


앞에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기다리고 있던 네이선이 헛웃음을 뱉었다.


“저거 다 내숭이다, 로키. 알지? 저런 애랑 결혼하면 절대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거.”

“겨, 결혼이라뇨?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왜? 쟤 표정을 봐라. 결혼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얼굴인가.”


그의 말에 프레이가 고개를 돌려 로키를 쳐다봤다. 로키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고, 그녀는 또 시선을 땅으로 내렸다.


“애 가지고 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너. 인형술사 빼면 암살에 가장 뛰어난 게 마술사라는 거 알지?”

“알지, 알지. 그런데 말이 좀 이상하다? 내가 누구를 가지고 놀았다고 그래. 진지하게 상담해 주는 거지.”


네이선과 블랑이 씩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언제 왔는지 뒤에서 오르딘의 말이 들려왔다.


“저딴 저급한 놈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없다.”

“뭐? 저급해?”

“그 나이 처먹고 인형에 실 붙이면서 노는 새끼가 뭐라고 했냐?”


참 죽이 잘 맞았다. 눈을 치켜뜨고 으르렁거리는 블랑과 네이선의 위협적인 태도에도 오르딘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라스는 드래곤들을 통제하기 바쁜지 나타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며 평원으로 걸어간 그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시체가 수북했다. 인간, 마족, 천족을 가리지 않고 평원을 가득 채웠다. 세 종족이 쏟은 피가 뒤엉겨 탄생한 혼돈의 액체가 평원을 뒤덮었다.


띠링!


갑자기 들려오는 알림음에 프레이는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짧은 메시지를 확인한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 1차 라그나로크가 종료되었습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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