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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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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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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시뮬레이션 전투(10)

DUMMY

“...... 그래.”



나는 그저, 알겠다는 대답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말대로 나 역시 여길 나가면 아이들을 잊을 게 분명하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하게도 아이들을 기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 세상이 툭 떨어진 사람이긴 하지만, 그게 나 혼자는 아니니까.


나처럼 새로운 세상에 들어오거나 빙의해 기억상실자라는 변명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고작 나 혼자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안 와도 돼. 기대는 안 해.”



아이는 정말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괜찮다는 식으로 손사레를 쳤다. 그러나 나는 안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지 결코 정말 괜찮아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뭐라 더 이야기를 꺼내기가 참 애매했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 가만히 정적이 몇 초 흘렀다. 기억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지만...... 정말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달콤한 거짓말이 좋을까, 씁쓸한 현실이 좋을까. 나는 거짓말보단 현실을 선택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아이들은 다를까.


결국 입에 발린 소리라도 달콤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열려 했다.



“...... 이제는 너도 나가야지. 오래 붙잡아서 미안했어.”



그러나 소율이가 선수를 쳤다.



“진우가 여기 밖에 있는 사람들을 속이던 능력을 해제하면 넌 바로 문을 들고 싸우는 상태로 돌아갈 거야. 밖에서는 한창 싸우고 있던 걸로 보이는 중일 테니까 조금만 싸우다가 놓쳐. 괜히 힘 빼면 너만 손해니까.”


“맞아. 괜히 손해 보지 말고 조금만 버텨. 우리도 뭐, 오래 버티기 귀찮거든. 빨리 따돌리고 위로 올라가서 게임이라도 한 판 더 하는 게 낫지.”



진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소율이는 그걸 보며 허, 하고 웃었다.



“넌 질리지도 않냐. 업데이트도, 패치도, 스토리도 다 똑같은데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는 너는 나보다 더하지. 넌 상영관에 틀어지는 것만 보잖아. 조작하는 방법도 몰라서 첫 부분은 아예 못 보면서. 상영관 절반이 히어로 영화라서 매번 이해하지도 못하고 중간부터 보는 너보단 내가 낫지.”



하긴. 극장가엔 보통 흥행작들만 가득 널려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몇백 번이 넘게 돌아오는 동안에도 영화 몇 개만 봤겠네. 심지어 맨 앞부터 보는 것도 힘들었을 테고. 이야, 끔찍하다.



“...... 이게 사람을 참 짜증나게 만들어요.”


“짜증나줘서 참 고맙다?”


“이걸 확.”


“에헤이, 에헤이. 애 앞에서 뭔 소란이야. 너 진짜 어린이 같으니까 그만해라. 고작 20~30년 산 애가 여기 버젓이 있는데.”



진우가 날 가리키며 이건 애 정서에 좋지 않다고 외쳤다.

...... 내가 애라는 소리냐?



“됐다. 내가 너랑 뭔 이야길 나누겠니. 같이 반복되는 것만 아니었으면 난 게임 중독자랑 말도도 안 섞었어. 영광으로 여겨라.”


“예. 저는 영화 이해도 못 하면서 결국은 계속 보시는 영화광과 말 섞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아주 영예롭네요.”



진우가 과장스럽게 팔을 움직여 중세 귀족처럼 인사했다. 소율이는 짜증을 가라앉히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보니 진우 쟤 나만 까는 건 아닌 것 같다. 게임 닉네임 저 정도면 모두까기인형일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그럼 이제 헤어지자. 이렇게 오래 버틴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야. 이렇게까지 많이 이야기해본 건...... 거의 처음인 것 같고. 오랜만에 재밌었어.”


“곧 능력 해제한다. 주서현. 자연스럽게 행동해. 이상하게 굴면 안 된다.”



진우 쟨 나를 뭔...... 진짜 애로 보는 것 같다. 소율이도 묘하게 그런 눈빛이고. 그래 봤자 자기들은 고작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



진우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0.”


“사실 진짜 기대하진 않아.”



그와 동시에 소율이의 말도 시작되었다.



“9.”


“왜냐하면...... 널 보는 게 처음은 아니거든.”



...... 아, 그렇겠구나. 나는 이곳에 툭 떨어진 주서현이지, 이곳에 원래 있었던 주서현은 아니니까.


나 같은 기억상실자들도 또다시 검사를 받으러 왔다면 아이의 실망은 커질 대로 커졌을 게 분명하다.



“8.”


“그래도 뭐, 그때보단 지금이 좋아 보여.”



소율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7.”


“그때 너는 좀, 되게 이상한 사람 같았거든.”



뭐 먹을 거라도 내놓으라고 외쳤나. 나도 여기 주서현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짐작이 안 간다. 그렇지만 듣기엔 너무 짧은 시간인 것 같고.



“6.”


“뭐......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누긴 했지.”


“5.”


“그걸 보면 완전히 바뀐 건 아닌 것도 같고.”



아이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4.”


“아무튼, 오랜만에 또 봐서 반가웠어.”


“3.”


“나중에 괜찮으면 또 봐.”



아이는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2초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선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2.”


“...... 또 잊어도,”


내가 입을 열었다.



“1.”


“다시 찾아올게.”


짝-!

진우가 손뼉을 쳤다.


그와 동시에, 시야는 바뀌었다.






나는 어느새 문을 들고 괴물을 내리치고 있었다. 손에 전해져오는 감각이 짜릿짜릿했다. 팔이 얼얼하다.


누군가 내 등을 만지는 느낌도 들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자 소율이가 엉엉 울며 나에게 능력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안 쓰러진 컨셉인가.



“언니! 언니! 이제 그냥 그만 해요! 언니 이러다가 진짜 죽어요!”


“누나, 그만해도 돼요. 저 괴물 안 사라지는 것 같아. 이건 그냥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야.”


...... 너무 연기를 잘하네. 조금만 싸우다가 놓치라며. 내가 저 밖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사람들한테 이 소리를 들었는데 진짜 안 싸울 사람으로 보였을 것 같냐.



“...... 언니, 진짜. 그냥, 그냥 그만 해요......”



아이가 꺼이꺼이 흐느꼈다. 저게 연기라는 걸 전부 알고 있는데도 왜 믿기지가 않냐. 얘네들은 솔직히 배우를 했어야 됐다.


그때, 진우가 지그시 내 다리를 깠다.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거리는 동시에 균형을 잃어버렸다.


...... 서진우 이 새......



“누나! 누나!”



진우가 나를 잡으려는 척을 했다. 그래 봤자 나와 한참을 비껴간 허공을 잡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다 보인다. 넘어지는 동시에 진우와 눈이 마주쳤다.


뭐 어쩌라는 식의 표정이 참 볼만했다. 연기 참 잘한다. 목소리는 그렇게 당황한 기색인데 얼굴엔 그게 하나도 안 나타난다.



“어, 언니! 언니! 서현 언니!”



소율이가 황급히 나를 잡으려 했다. 진짜, 정말 대단한 열연이다. 진우 쟤는 목소리만 연기하지 표정은 그대로던데, 소율이는 솔직히 좀 헷갈릴 정도다.


염력을 써서 아이들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이러면 괴물들을 멈추게 한 뒤에 위로 올라가는 것도 좀 수월하겠지. 다른 때와 비슷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버티면 좋겠다. 영화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N회차 관람을 뛰는 게 재밌지 않은가. 게임도 그렇고.


결국 내 몸은 괴물에게 던져졌다. 나에게 달려들려 하는 소율이를 염력으로 계속 밀어냈다. 열연 참 대단하다. 우리나라가 소중한 배우를 하나 잃었어.


괴물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내 몸을 씹었다. 팔이 씹히는 기분이 참 아프고 더러웠다. 정신이 차려지지 않아 아이들을 밀어내던 염력도 제대로 사용하질 못했다.


염력이 풀리자 소율이는 결국 나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잘 올라가라고 시간까지 벌어줬는데 왜 그러냐 진짜.



“언니! 언니!”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괴물 밭에 뛰어들었다. 가녀린 몸도 결국 괴물의 입에 무자비하게 먹혀 들어갔다. 내 몸이 먹히는 건 그냥저냥 봐줄 만했는데 아이가 죽는 건...... 보기가 꽤 힘들었다. 눈을 그냥 감았다.


왜 그래 진짜. 이거 캐릭터 붕괴야. 고작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 완벽한 설정 붕괴라고. 이러다 의심받으면 어쩌려고 이래.



“...... 언니.”



아이의 몸이 나와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두려워서 눈을 뜨진 못했다. 피 냄새가 너무 짙었다.


정신은 점차 혼미해져 간다. 이제 또, 다시 죽을 시간인 모양이다. 이 애들은 이런 기분 나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버틴 걸까. 나였다면 진작에 미쳤을 거다.


점차 흐려지는 정신 속에 한 마디가 귓가에 나직이 들어왔다.



“잘 죽어. 다음에 다시 또 보자.”


“...... 그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 역시 답했다.

잘 죽으라는 말은 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된 걸까.


아, 정말 끔찍한 세상이다.


작가의말

스토리아레나 마지막이네요. 완주 성공해서 기쁩니다. 잘 봐주신 독자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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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 시뮬레이션 전투(9) 22.01.17 19 0 9쪽
25 24. 시뮬레이션 전투(8) +1 22.01.15 20 0 10쪽
24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4 0 9쪽
23 22. 시뮬레이션 전투(6) +6 22.01.13 33 2 10쪽
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29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0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0 4 10쪽
19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1 2 9쪽
18 17. 시뮬레이션 전투(1) +1 22.01.07 40 1 11쪽
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1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4 8 9쪽
15 14.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8) +1 22.01.04 52 4 9쪽
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2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1 5 9쪽
12 11.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5) +2 21.12.31 64 7 11쪽
11 1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4) +1 21.12.30 68 7 11쪽
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2 14 11쪽
9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1 21.12.28 82 10 10쪽
8 7.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1) +1 21.12.27 85 9 12쪽
7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100 8 10쪽
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7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5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5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4 11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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