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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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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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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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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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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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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 세상이 이상하다(4)

DUMMY

각오와는 달리 내부는 이상하지 않았다. 소규모 강의실처럼 생긴 내부는 평범했다. 굳이 이상한 점을 따져보자면, 내가 봤던 빛이 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의 아우라였던 것 같은 정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 역시 다 미친 비주얼을 자랑했다. 이젠 지나가는 사람마다 예쁘고 잘생겼다는 걸 설명하는 게 입이 아플 수준이었다.



“자, 반갑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첫 교육을 담당하게 된 에스퍼 진세희라고 합니다.”



진세희는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준비된 곳으로 가 익숙한 듯 입을 열었다. 나는 빈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기억상실자 분들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첫 시작은 가벼운 설명으로 열어보겠습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넘어갔다. 깔끔한 흰 바탕의 자료에는 지구가 있었다. 대륙들의 생김새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아 보이는 점만 빼면.



“이 사진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구입니다. 원래의 지구는 이 형태가 아닌, 이런 형태였다고 하지요.”



진세희가 말과 동시에 마우스를 달칵 눌렀다. 그러자 지구 그림 옆에 뭔가 익숙해보이는 또 다른 지구가 나타났다. 내 눈에는 두 번째 지구가 더 낯익었다.



“자세히 보시면 차이가 있을 겁니다. 왜일까요?”



진세희의 질문에 강의실 내부는 조용했다. 사람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대답하지 않는 법이다.


결국 내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답해보았다. 어디 나서는 건 딱 질색인데.



“...... 폭발과 파괴?”



오, 뭔가 내뱉고 보니 갑자기 중2병 걸린 것 같은 기분이다. 좀 부끄러워졌지만 젊게 산다고 치자 그냥.



“맞히셨어요. 정답입니다. 우리 세상은 파괴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흰 바탕에는 글이 딱 하나 나왔다. 게이트 출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발한 사태지요. 영상 하나 보고 가겠습니다. 게이트 출현일의 기록입니다.”



이윽고 재생된 영상의 초반은 평화로웠다. 화질은 좋진 않았지만 적당히 구별할 수는 있었다. CCTV가 바빠 보이는 도시를 비추었다. 다만 조금 이상한 걸 꼽자면, 군데군데 하늘을 수놓은 것마냥 있는 정체불명의 퍼런 것들?


하늘에 직사각형들이 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안 보이는 걸까, 익숙한 걸까.


그렇게 알 수 없는 사각형들의 정체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던 중, 갑자기 하늘에 떠 있는 정체불명의 직사각형의 세로로 선이 하나 그어졌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걸 대부분 무시했지만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길 왜 가......!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분명히 과거의 영상이란 걸 알고 있지만 불안해졌다. 누가 봐도 수상하고 위험해보이니까.


그러나 그 무식한 것 같은 용감한 사람들은 웃으며 직사각형에 돌진했다. 저거 저러다 깨지는 거 아니야?


그런데 아니었다. 깨지기는커녕, 닿지도 않았다. 그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통과해 길을 지나갔다. 저게 정말 뭐지? 형체는 있지만 닿을 수가 없어?


무식하게 용감한 사람들은 웃는 모습 그대로 떠나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정체불명의 직사각형이 마치 닫혀 있던 택배 상자의 포장을 뜯기라도 한 듯 양옆으로 벌컥 열렸다.


꼭, 창문처럼.



“...... 어?”


“저게, 저게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저게 말이 돼?”


“괴물......?”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두 눈을 의심했다. 게이트라는 말에 괴물이 나올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내 빈약한 상상력과 묘사 실력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도 없는 괴물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괴물은 정말, 정말로 끔찍하게 생겼다. 도대체 어떤 형용사를 붙여야 그 끔찍함과 괴악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든다.


약 2m 정도 될 것 같은 높이에 초록색 피부, 그리고 우락부락한 살덩어리들에는 눈이 전부 박혀 있었다. 검은 구멍도 중간중간 보였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에 순간적으로 잘 때 불편하지 않냐는 생각까지 들었다.


괴물의 몸통 부근에는 눈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선이 공존했다. 살덩어리가 인위적으로 갈라진 것 같은 선이었다. 도대체 뭘까. 그러나 궁금함보다는 역겨움이 컸다. 굳이 알지 못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괴물의 몸에 박힌 눈동자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안 좋아지는 기분이었다. 눈알들이 너무 많아서 어지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해서.


사람들 역시 애써 토기를 참는 것 같았다. 하긴, 각오한 나도 이렇게 돌아버릴 것만 같은데 저 사람들은 어떻겠나. 거의 혼절 직전의 사람들도 몇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사실 아까부터 괴물보단 다른 쪽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화면 한구석에 얼핏 보이는 아이. 겨우 초등학생이나 되었을 것 같은 아이가 괴물의 가까이에 넘어져 있었다.


괴물의 눈은 온몸에 번져있었다. 그 말은 뒤통수에도, 등에도 눈이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그 괴물에게 사각지대란 없다.


데굴데굴 굴러가던 눈동자가 일제히 멈추었다. 도망하지 못한 어린아이를 겨누듯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다리에 힘이 풀리기라도 했는지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괴물이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출렁이는 살과, 그 충격으로 하나둘 투둑 빠져나오는 눈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내가 아까 본 괴물의 검은 구멍은, 전부 눈이 빠져나온 자리였다.


괴물은 자신의 눈을 밟으며, 끔찍한 체액을 흘리며, 온 사방을 어지럽히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내 지척에 다다랐을 무렵 괴물은 가만히 멈추어 섰다. 아이는 그저 덜덜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괴물의 몸통에 있던 검은 선이 벌어졌다. 나는 그것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입이었다! 입천장까지 뾰족한 이빨들로 빼곡히 채워진!


감히 입이라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입이 벌어졌다. 아이는 괴물을 바라보면서 울기만 했다. 괴물의 입은 더 크게 벌어졌고, 아이의 머리는 그 속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대부분이 눈을 감았다.



“자, 여기까지. 방금 보신 건 실제 상황입니다.”



다행히도 진세희가 괴물의 머리에 아이의 머리가 꽂히기 직전 영상을 끊었다. 아이가 죽는 모습을 보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사실 다행인 것 같지도 않았다.


교육실의 분위기가 차갑고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전부 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충격을 받은 사람에는 나도 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화질이 좋지 않은 영상이었음에도 아이의 울음 섞인 얼굴만은 또렷했다.



“저게 게이트입니다. 괴수의 출구죠. 방금 보신 괴수는 C급 괴수로 분류되는 빅마우스입니다. 고작 C급에 불과하죠. 그 위론 B, A, S, SS 등등...... 무수히 많은 괴수들이 있습니다.”



...... 여긴 진짜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이구나. 사람이 살 수는 있는 게 맞아?



“괴수가 나타나고, 고작 하루 만에 몇억 단위의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초기에 나타난 괴수는 단 한 개체도 B급보다 높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 말을 들으니 더 막막하다. 나는 안락한 내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괴수 출현 다음 날, 각성자들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이능력자라 명명했어요. 최초의 이능력자는 알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페이지가 다음으로 넘어가며 영상이 하나 재생되었다. 파도치는 바다와 해변가에 있는 노인 몇의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끔찍한 절규 소리가 들리더니 바다가 맹렬하게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영상이 멈추었다.



“어라.”


“엥.”


“어..”


“이 영상은 한국 최초 이능력자의 첫 괴수 처치 장면이 담겼습니다.”



진세희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아마 설명을 위해 영상을 멈춘 것 같았다.



“한국의 최초 이능력자는 강원도 동해시의 76세 최점례 씨입니다. 바닷가에 가셨다가 B급 괴수 해규를 처치하셨죠.”



괴물이 튀어나온 그 시점에 끊겨서 그런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처치하시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발현 능력은 A급의 신체 강화 능력이었습니다. 해규의 절규 소리로 인한 유인은 A급 이상에선 통하지 않았고, 최점례 씨는 돌을 던져 해규를 처치하셨습니다.”



...... 다윗과 골리앗?



“이건 그때 사용하신 돌입니다. 이능력자 관리청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죠.”



진세희가 자료화면이라며 사진을 보여줬다. 돌은 맞았다. 다만 그게 무식하게 크다는 게 문제였지.


저건 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크다. 전래동화에서나 나오던 집채만 한 바위가 딱 저 정도 같은데. 그냥 다윗과 골리앗보다는 돌팔매질을 즉사기 수준으로 쓸 수 있는 다윗과 골리앗 같다.



“자, 다음 설명...... 아, 영상이 궁금하실까요?”



당연하죠! 제일 궁금한 데서 끊었는데!


진세희는 슬라이드를 전으로 넘기더니, 멈춘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해규는 몸을 비틀며 물을 뿌렸고,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한 노인을 제외한 모든 노인들이 바닷가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홀로 남은 노인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곤 걸어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뒤로 당겼는데, 그 사람들은 거의 날아가듯 끌려와서 함께 넘어졌다.


노인은 더욱 당황했다. 그러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새도 없이 사람들은 바다에 들어가고 있었다.


노인은 결국 주변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아주 편안하게 내던졌다. 그걸 내던지는 본인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했지만 자세는 편안함의 정석이었다. 하도 편안해보여서 바위가 아니라 스티로폼을 던지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스티로폼이 아닌가 싶었던 바위는 해규의 머리통으로 보이는 곳을 뚫고 지나갔다. 그 끔찍한 절규 소리가 단박에 끊겼다. 거대했던 몸체 역시 수면으로 무너지며 물보라를 일으키다가 갑자기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바다 위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두둥실 떠올랐다. 파란빛과 보랏빛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는데...... 액체라기엔 또 애매했다. 저게 뭘까.



“마지막 장면에서 해수면에 떠오른 것은 해규의 핵입니다. 괴수들은 사망하면 핵을 남기고 소멸하고, 그 핵들은 생활 전반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지요. 저와 여러분이 지금 손목에 차고 있는 그 워치만 해도 핵으로 만든 기계고요.”



진세희가 자신의 손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목? 나도 있다고? 그럴 리가. 나 답답한 거 싫어해서, 어, 어라. 이게 뭐지.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손목에 이상한 게 채워져 있었다. 너무 편안해서 몰랐다. 꼭 내가 살던 곳에서 본 사과사의 워치처럼 생겼는데...... 뭐지. 표절인가.



“워치의 기능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능력자의 파장 수치를 보여주고, 몸 상태를 체크해주고, 호출과 문자 등의 기능도 사용 가능하고, 결제 수단도 가능하죠. 무엇보다 가장 큰 기능은......”


“..... 뭐 함부로 차는 걸 싫어해서, 빼고 싶은데요.”



진세희의 설명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한 사람이 제 손목에 채워진 워치를 끌렀다. 뭔가...... 느낌이 좋진 않은데.



“아, 빼지,”


“반납하겠, 아, 아, 아아아아악!”



진세희가 다급하게 말했으나 남자는 워치를 결국 다 풀어내었다. 그리고는 비명을 질렀다. 해규의 절규 소리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남자는 덜덜 떨며 쓰러졌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들것에 싣고 나갔다. 진세희는 그 광경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교육 때마다 매번 있는 일이긴 합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예요, 아마.”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데요.



“워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에스퍼 억제입니다. 괴수를 처리할 때를 제외한 여러분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면이 있다면...... 여러분은 방금 보신 그분처럼 기절하실 수 있습니다. 강제로 제거하려 하면 더 끔찍한 고통이 뒤따를 테고.”



...... 네?


작가의말

작심사일 성공했네요! 부가 설정이 꽤 많지만 다 정리되지 않기도 했고 구구절절하기도 해서 딱 필요한 것들만 본편에 넣어가 볼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래놓고 다 때려 붓겠지요. 예, 어차피 제가 재밌으려고 쓰는 거라서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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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6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5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5 11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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