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560
추천수 :
403
글자수 :
116,722

작성
22.01.14 13:25
조회
24
추천
0
글자
9쪽

23. 시뮬레이션 전투(7)

DUMMY

예상대로 괴물이 다가오는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렸다. 하긴, 타이밍을 맞춰야 되겠지.


그래서 소율이가 날 정확히 이 자리로 부른 걸 수도 있겠다. 시뮬레이션은 시계의 태엽과도 같이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위치에서 시작해야 할 테니.


문 너머에서 괴물이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그리고 바로 지금.


쾅-!


예상대로 문짝이 시원하게 날아갔다. 너무 시원해서 창문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쇠로 된 문짝이 저렇게도 가볍게 날아가는 거 쉽지 않을 텐데.


문짝 역시 내가 던졌던 의자처럼 검은 물질에 닿자 바로 튕겨 나갔다. 괴물 네가 나갈 수 없게 만들었으면 네가 한 건 뚫어도 되지 않냐. 넌 어떻게 나가려고 그러냐.


검은 물질이 뚫리길 기대해보았지만 기대가 깨져 꽤 아쉬웠다. 뚫리면 나가려고 했는데.



“...... 언니, 저거......”


“저게 뭐야......”



아이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뭔가, 하고 아이들이 보는 쪽을 보았다.


문짝이 날아가고 잠시 풍기던 먼지가 가라앉자 괴물의 형체가 보였다. 질척하고 끔찍한 소리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털이 덮인 모습이었지만, 전부 정체 모를 액체에 푹 젖어 있었다.


내가 처음 시뮬레이션에서 본 괴물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그 괴물은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는데, 이 괴물은 정말 짐승처럼 사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크기 역시 꽤 컸다. 네 발로 바닥을 짚고 선 모습이 내 키와 얼추 비슷하니 유명한 시리얼 브랜드의 마스코트처럼 두 발로 선다면 아뜩하게 커질 게 분명했다. 호랑이 기운이 솟지 않길 바라야겠는데.



“크르르......”



괴물의 섬뜩한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그러고 보니, 맹수들은 저주파의 소리를 내어 피식자를 패닉에 빠뜨린다고 했던가. 그 상황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겪는다면 꼭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내가 무력한 한낱 미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 뭐, 사실 후자는 맞지. 내가 무력한 한낱 미물이 아니면 뭐냐.


그러나 때로는 그 미물도 감히 덤빌 때가 있다. 하룻강아지 같아서 멋모르고 덤비는 게 아니라, 너무나 잘 알지만 덤비는.



“크르륵......”



나를 이제야 알아챘는지 괴물의 울음소리가 조금 더 포악해졌다. 저 저. 지금 여기 온 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지금에서야 반응하는 건지. 생존력이 없다.


아이들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그리고 발로 바닥을 쾅 굴렀다. 돌로 된 바닥은 내 소리를 괴물에게 온전히 전해 주었다.



“크르라락!”



흉포한 괴물이 달려들었다.


좋아. 나 개싸움 잘해. 너도 짐승 같고 나도 짐승 같으니 어디 동물 같은 것끼리 잘 싸워보자고.






괴물의 첫 공격은 내 가슴팍을 노렸다. 자동차가 돌진하는 것마냥 빠른 속도에 아주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하게 되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빨이 내 몸에 박혔을 거다.


염력을 내 몸에 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에 불과했다. 실천하는 것보단 나에게 달려드는 괴물이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염력에 집중할라치면 괴물의 이빨이 내 앞에서 바로 지나갔다. 딱, 하고 맞물리는 치아의 소리에 소름이 좀 끼쳤다.


괴물은 내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노리고 달려들었다. 아마 이 후각이 예민한 모양이었다. 내가 한 곳에 몇 초만 있어도 괴물은 나를 금방 따라잡았다.


청각이라 생각하진 않은 이유가 아주 정확하게 나를 따라잡진 못해서였다. 내가 그래도 숨도 잘 쉬고 움직이며 소리도 내는데 바로 반응하진 못했다.


내가 풍기는 냄새가 조금이라도 덜 흥미로워지면 아이들에게 달려들 테니 잘 대처해야 했다. 그래도 뭐, 덕분에 방법을 하나 찾긴 했다.



“죄송합니다! 향수 좀 빌립니다!”



내가 있는 1층은 화장품과 시계 같은 것들이 즐비한 곳이다. 향수 역시, 넘쳐난다.


한 향수 전문 브랜드의 진열장에 있던 향수들을 모조리 꺼내 들었다. 도둑이 된 기분이었다.


훔친 향수를 들고 나에게 달려드는 괴물의 몸에 던졌다. 부드러운 털 안에 숨은 괴물의 피부는 딱딱한 모양인지 힘만 잘 주고 던지면 향수병이 퍽퍽 깨졌다.


향수병은 깨지며 제 안에 있던 향수를 괴물의 몸에 끼얹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바닥을 미끌거리게 만들어 괴물이 몇 번 미끄러질 뻔하게 만들기도 했다.


괴물은 급작스러운 향기에 혼란스러워진 모양이었다. 후각이 강점이자 약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부디 힘겹게 있어라. 솔직히 너는 너무 강하니까 나한테 이 정도는 양보해야지.



“크르륵! 크아앙-!”



괴물과 떨어져 괴물을 향해 향수병을 계속 던졌다. 내 몸이 튼튼해서 어찌나 다행인지. 메이저리그 투수에 빙의한 듯 향수병을 던지니 원하는 곳에 딱딱 맞아 신까지 날 정도였다.


괴물은 향기를 씻어내고 싶은 듯 몸을 계속 털었다. 그러나 향수가 향수인 만큼 몸을 흔들면 향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욱 퍼지고, 구석구석 들어갈 뿐이었다.


괴물의 끔찍한 냄새와 향수의 향기로운 향이 섞이니 향기로운 끔찍한 냄새가 탄생했다.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은 냄새였다. 끔찍할 거면 끔찍하기만 하지, 왜 향기로워지는데.



“우우웁. 으웩.”


“진우 쉿.”


“이거 냄새가 너무......”


“코 막으면 돼. 쉿.”



아이들 역시 끔찍한 냄새가 느껴지는지 코를 막은 채였다. 염력으로 막아도 공기는 잘 통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걸 먼저 생각 못 한 내가 문제지. 모 아니면 도였을 수 있는 행동이었는데 다행이었다. 너희가 생각 없는 사람을 만나 고생이 참 많다......


아이들을 잠시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괴물도 어느새 제 향에 대충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처음 향수병에 맞았을 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 몸만 털던데, 이제는 나에게 달려들려 하고 있었다. 참 독하다 야......



“크르르악!”



목구멍 너머에서 깊게 울리는 울음소리가 섬뜩했다. 향수병이 안 통한다면 이젠 플랜2다.


내 자켓을 벗었다. 조금이라도 향이 더 많이 배도록 나름 시간을 끌었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자켓을 염력으로 조종해 내 반대편에 있게 하고, 1층 매장들 중 하나에 있던 포장된 새 옷을 꺼내 입었다. 이야, 이 정도면 진짜 도둑 맞는 것 같은데.


갑자기 사방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괴물이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그 틈에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자켓 역시 그 반대 방향에서 괴물에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강해진 신체 능력은 내 속도를 전부 감당해주었다. 쭉 뻗은 다리로 괴물의 목 부분을 조준했고, 체중과 속도를 실어 괴물의 목을 가격했다. 단단한 피부였지만 꽤 제대로 된 타격이 들어간 것 같았다.



“크르라락! 크르르!”


“아오...... 내 다리......”



괴물에게 타격을 넣은 만큼 내 다리에도 타격이 가서 다리가 좀 진동하는 것 같았지만 뭐, 일단은 한 방 먹였으니 됐다.


앞뒤도 분간하지 못하고 사방에 입질만 해대는 괴물이 이젠 좀 안쓰러워질 지경이었다. 물론 진짜 안쓰럽지는 않다. 저 이빨에 한 번만 걸리면 나는 분쇄될 게 뻔하니까.


미처 다 깨지 못한 향수병을 연 뒤 괴물의 머리에 그것들을 다 부었다. 많은 향수들이 한 번에 부어지자 내 머리도 띵해질 지경이었다. 나보다 후각이 좋은 저 괴물은 어떨까.


괴물은 결국 쓰러지고야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긴 하다. 나는 사실 제대로 맞지도 않았고, 좀 치졸한 방법으로 괴물을 처리한 거니까.


물론 한 대도 안 맞고 치졸하게 살아남는 게 정정당당하게 싸워 상처 입은 채 살아남는 것보단 훨씬 낫다. 난 치졸하게 살란다.



“후...... 진짜 개 같았다.”



애들 앞이라 지읒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괴물은 아직 살아있는 모양인지 가슴께가 들썩거렸다. 나는 그런 괴물을 확실하게 처지하기 위해 주변에 있던 의자 조각을 들었다. 산산이 부서져 날카로워진 면을 내가 냈던 목덜미의 상처에 내리쳤다.


기분이 끔찍했다.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내가 직접 죽이는 삶을 살진 않았어서. 의자 조각을 타고 느껴지는 감각이 어색했으며 징그러웠다. 내 손을 괴물 안에 넣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생생하고 끔찍한 걸까.


결국 의자 조각을 목덜미 안에 넣어 반대편으로 나오게 관통시키고 나서야 괴물의 호흡은 멈췄다. 내 손에는 괴물의 파란 피가 조금 튀어 있었다.


죽은 괴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빛으로 화하며 사라졌다. 그래, 이게 시뮬레이션이 맞긴 한 것 같다.


입었던 옷에 손을 스윽 닦은 뒤 버렸다. 그리고 내 자켓을 다시 입었다. 이젠 끝인가.



“...... 지하로 가볼까요?”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지친 상태라 텐션을 끌어올리는 게 버거워 말이 힘겹게 나왔다. 벌써 괴물을 두 번이나 죽여서 힘든 모양이었다.



“...... 괜찮아요?”



아니. 그런데 그걸 너한테 어떻게 말하겠니.

그렇지만 괜찮다고 말하기도 뭣해서, 그냥 살짝 웃어만 주었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시뮬레이션! 나의 원수에게 강력추천합니다!


작가의말

업로드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완주하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26. 시뮬레이션 전투(10) 22.01.18 21 0 9쪽
26 25. 시뮬레이션 전투(9) 22.01.17 19 0 9쪽
25 24. 시뮬레이션 전투(8) +1 22.01.15 20 0 10쪽
»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5 0 9쪽
23 22. 시뮬레이션 전투(6) +6 22.01.13 33 2 10쪽
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29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1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1 4 10쪽
19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2 2 9쪽
18 17. 시뮬레이션 전투(1) +1 22.01.07 40 1 11쪽
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1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4 8 9쪽
15 14.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8) +1 22.01.04 53 4 9쪽
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3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2 5 9쪽
12 11.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5) +2 21.12.31 65 7 11쪽
11 1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4) +1 21.12.30 69 7 11쪽
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2 14 11쪽
9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1 21.12.28 83 10 10쪽
8 7.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1) +1 21.12.27 86 9 12쪽
7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100 8 10쪽
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7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6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6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5 112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