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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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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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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글자수 :
1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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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5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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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DUMMY

아무래도...... 내가 세운 가설이 맞는 것 같다. 이곳은 온갖 종류의 로맨스가 전부 들어있는 세상이라고. 아마 나는 나중에 돗자리 깔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센터에 처음 들어갈 때 서로를 껴안고 있거나,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한둘 본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어도 서로 꽁냥꽁냥 대는 기류가 전부 느껴졌다.


그래도 그건 어떻게든 우정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남용해 카바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키스를 봐버렸다. 키스는 우정으로 카바 못 친다. 당연하지.


나는 옥상에서 한참을 벤치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사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분명 당신네들이 문명인이라면 키스 이상으로 가진 않을 게 분명하지만, 나는 정말 여기 사람들을 모르겠어. 혹시라도 내 안구를 썩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금세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작은 소란이 일었다. 대충...... 도망가는 것 같은 소린데.


고개를 휙 돌리니 진세희와 태의헌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붙어있던 커플들이 황급히 떨어져 도망쳤다. 이야, 사람 차별하네. 이거 약한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오래 기다렸어요? 미안하네요. 사죄의 의미로 제 차로 데려다줄게요. 되게 좋거든요.”



진세희가 멋쩍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언제나 진세희의 뒤에 있는 태의헌은 진세희와 내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봐요. 설마 진세희 손 아플까 봐 걱정하는 건가?



“그렇게 많이는 안 기다렸어요. 지금 내려가는 거예요?”



나는 태의헌을 조금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진세희에게 답했다. 저게 손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면...... 혹시 질투하나? 진세희의 손을 잡은 나한테?



“네. 저도 이제 퇴근하려고요. 숙소 못 간지가 너무 오래돼서 먼지라도 치워야 하거든요.”



나는 그렇게 진세희의 손을 잡은 채 옥상 정원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가자 태의헌의 눈은 자연스레 진세희의 발치를 향해 있었다. 이야, 이건 거의 과보호 수준인데? 근데 그래서 재밌었다.


센터를 빠져나올 때가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커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커플들을 도대체 얼마나 본 건지 수를 다 셀 수도 없었다. 솔직히 세고 싶지도 않았다.


서로 둘이 딱 붙어서 길막 비스무리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만 세어도 내 손가락이 모자랐다. 커플이 확실해보이는 사람들은 길가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마냥 넘쳐났다. 아니, 요즘 길가의 돌도 여기 있는 커플보단 적을 거다.


아무튼 여기는 로맨스 세상이 많다. 사내연애 같은 게 넘쳐나는 걸 봐도 그랬고, 커플에 준하는 것같은 사람들도 넘쳐났기 때문이다.


커플에 준하는 것 같은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여기, 내 앞의 진세희 씨와 태의헌 씨를 들 수 있다.


사실 원래는 진세희와 함께 갈 게 아니었다. 다른 일이 있었다는데, 그게 갑자기 취소돼서 나를 숙소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원래라면 버스를 타고 진작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냥 진세희의 말을 따랐다. 안전한 사람들 곁에 있는 게 가장 좋은 법이지. 그리고 솔직히...... 여기 이 사람들 좀 재밌다.


센터를 빠져나와 진세희의 편안한 자가용에 탑승했다. 처음 눈 뜬 곳에서 센터로 올 때 탔던 그거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도대체 돈이 얼마나 들어간 건지, 처음 타보는 교통수단임에도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다.


굳이 불편한 점을 찾아보자면 오늘은 3분 안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점 정도? 그런데 그것도 차와 진세희의 잘못은 아니다. 도로 이상으로 지연되는 거라.


태의헌은 실과 바늘처럼 진세희와 항상 함께하고 있다. 그건 차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넘쳐나는 자리들을 굳이 굳이 다 뒤로하고 태의헌은 진세희의 옆에 앉아 있다.


분명 퇴근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할 일이 많은 모양인지 진세희는 차에 타서도 종이뭉치들을 보았다. 초능력과 자율주행자동차가 공존하는 이런 세상이라면 전자기기로 할 것 같은데 진세희는 그 많은 것들을 다 종이에 프린트해서 보는 모양이었다.


진세희는 서류를 볼 때 집중을 하려는 건지 검은 뿔테안경을 쓴 채였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그렇게 검은 뿔테 안경을 잘 소화해내는 사람을 처음 봤다. 아마 연예인이었으면 팬들이 초마다 우수수 붙었을 거다.


그러다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모양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안경을 위로 올리고 서류를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분명 내 또래로 보이는데 하는 행동은 솔직히 우리 엄마나 할머니 같다.


진세희의 시선이 서류의 한 부분에 멈췄다. 진세희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가, 종이를 탈탈 흔들어보기까지 했다. 뭔가 좀 안 풀리나 보다.



“의헌아, 자료 이거가 이게 맞아?”


“네, 맞을걸요.”


“그래? 뭐지...... 내가 뭐 누락했나. 좀 이상한 것 같은데 한 번 봐줘.”


“네.”



분명 담백한 대화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태의헌이 진세희를 좋아한다는 것을. 내 오랜 소설 경력은 이 느낌이 확실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태의헌은! 진세희를! 좋아해!


태의헌의 눈에서 진세희가 떨어지는 꼴을 내가 본 적이 없다. 오늘 하루라는 그 짧은 시간에도 그 모습이 훤히 다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해 온 거야.


뭐, 관전하니 재밌긴 하다. 사실 안 재밌을 수가 없지.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우니까. 나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 현실 로맨스도 재밌다. 물론 옥상 정원의 그 커플들은...... 음, 내 휴식에 피해를 줬다. 공공장소에서 키스하는 건 너무했다 다들.


어쨌든 나는 현실 로맨스도 볼 수 있는데, 그 로맨스를 찍는 게 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니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왠지 팝콘 와작와작 씹어먹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팀장님, 누락 자료 없는데요. 혹시 이거 못 보신 거예요?”



태의헌이 서류의 구석 부분을 가리켰다. 진세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종이에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아니 진짜 왜 우리 할머니 같지.



“뭔데? 아, 그러네. 와, 나 어떡하냐. 그걸 못 봤네 내가. 나이가 나이라 이런가...... 미안.”



진세희의 표정이 충격받았다는 듯 변했다. 별로 나이 많아 보이진 않는데, 내가 짐작을 잘못했나. 얼굴만 보면 스물도 가능한 것 같지만 직책이 있으니 그건 아닐 것 같고,


설마 서른일까? 아니면 설마 마흔? 에이, 마흔은 너무 갔다. 이래놓고 의외로 처음 생각한 것처럼 서른이면 어쩌려고 이러냐. 물론 이러다가 스물일 수도 있고. 아닌가, 어쩌면 십 대?


아오, 로맨스 세상 주인공들은 다들 너무 젊어보여서 나이 짐작이 제일 어렵다.



“요즘에 좀 피곤한 일들 많아서 이러나 보다. 오늘은 숙소 가서 꼭 자야지. 의헌이 너도 숙소 못 들어간 지 오래됐지? 고생도 참 많다 우리 의헌이.”



진세희가 환히 웃으며 태의헌의 머리를 헝클이듯 쓰다듬었다. 솔직히 강도만 봐선 쓰다듬는 것보단 시골집 황구 털을 벅벅 긁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사람마다 느껴지는 건 다른 법이다.


당신이 무심코 한 시골 황구 쓰다듬기, 누군가에겐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드는 유죄 행동이 될 수도.


태의헌은 가만히 진세희의 손길을 받다가, 입을 열었다.



“......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와씨, 훅 들어오는 거 봐. 개설레.


저거 저거, 연하남의 정석이네. 진짜 보는 사람까지 설레게 만드네...... 그러니까 더 해봐. 이야, 재밌다.



“에이, 이게 뭐가 무리야. 남들 다 하는 만큼만 하는데.”


“...... 그래도요.”



이야 좋다! 좋다! 더 해라! 좋다! 내가 다 설레고 재밌다! 더 해봐! 제발!


태의헌이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하자 진세희가 눈을 잠시 깜빡였다.



“...... 아니 뭐, 나도, 나도 내가 다 알아서 조절하지. 무리하면 안 좋은 거 나도 잘 아니까. 내가 잘 아니까.”



진세희는 훅 들어온 말에 설렌 게 분명하다. 자각하지 못했더라도 분명 설렜다. 말을 그렇게나 조리 있게 잘하던 사람이 더듬거리는 것만 봐도 뻔하지.


아, 입꼬리 끌어내리기 힘들다. 어디 마스크라도 없나. 남의 사랑이 정말 너무 재밌다.

나는 히죽거리는 표정을 애써 숨기려 자연스럽게 입가에 손을 올린 채 창 너머를 바라보는 척했다. 흐음...... 창문 밖에 누군가 걸어가네요. 어떤 불쌍한 인간이 차를 타지 못했을까요. 저를 창문만 보는 돌멩이라 여기시고 더 해보세요. 제발요.


물론 창문을 봐도 내 신경은 둘에게 온통 집중되어 있었다. 아니 진짜 재밌어. 진짜로.



“...... 팀장님 무리하시면 일 못 하실 수도 있고, 그러면 저도 일 많아지고 힘들어질 테니까요. 저는 돈 받으면서 쉬엄쉬엄 일하고 싶지 갈려 나가고 싶진 않아요.”



저거 저거, 진심 아니다. 그냥 뒤늦게 포장하는 거다. 진심은 진세희가 걱정되는 게 확실해! 그냥 저건 아닌 척이라고! 척!



“아, 아하하. 그렇지? 알겠어. 우리 의헌이 일 많이 안 하게 내가 내 몸 잘 챙기면서 열심히 해야겠네.”



하, 진세희 씨. 당신은 정말 로맨스 소설 여주인공이 맞으시군요. 너무 쉽게 거짓말을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물론 적당한 고구마가 있어야 재밌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사람들 한 몇 달 뒤면 사귀고 있을 거다. 뭔가 느낌이 그렇다. 아니라면 뭐 어쩔 수 없고.


진세희는 그렇게 조금 어설픈 모습으로 있다가, 주변을 휙 둘러봤다. 그리고 입가를 가린 채 창문 너머를 구경하는 척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 주서현 에스퍼. 오늘 교육은 잘 들으셨어요? 어땠어요?”



사랑이나 더 하시지 왜 굳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의 관찰자에게 말을 거세요...... 물론 당신은 빠져나가려고 그러는 거겠지만, 나는 당신들의 사랑이 더 재밌단 말이야.


사랑을 해라 로맨스의 주인공들. 판타지의 주인공인 나는 그 모습을 전부 보면서 주접이나 떨겠다!


작가의말

작심... 오일인가? 모르겠네요 이젠 숫자도 못 세는 듯. 거의 라이브연재로 진행하고 있다보니 떡밥 뿌리는 것도 뿌릴 생각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하.

어느새 크리스마스입니다. 오늘 하루, 즐겁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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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100 8 10쪽
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7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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