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552
추천수 :
403
글자수 :
116,722

작성
21.12.28 01:30
조회
82
추천
10
글자
10쪽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DUMMY

“...... 그 아이가 나거든요.”



정신이 멍하다. 머리가 잘 굴러가질 않는다. 어, 그러니까 그 아이가...... 진세희?



“나예요, 그 아이. 질질 울면서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그 아이가 진세희예요.”



진세희가 쓰게 웃었다. 아니 이게 무슨...... 영상 속에 나왔던 그 아이는 정말 아이였다. 정말 어려 보였다고. 고작 대여섯 살쯤 됐을 것 같이 생겼었는데. 그 아이가 훌쩍 자라서 진세희가 되었다고?


그래 뭐, 있을 수도 있는 일이겠지. 정말 이게 도대체 뭔 우연인가 싶지만 여기가 로맨스 세상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그래. 가능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 이 기가 막힌 우연은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나는 좀 의문스러운 게 생겼다. 내가 받은 교육에서는 그 사건을 분명......



“그, 그거 분명...... 50년 전이라고......”


“맞아요. 올해로부터 딱 50년 전 일이죠?”



진세희는 부드럽게 웃었다. 예쁜 그 얼굴과 그 미소 그대로, 마치 내 또래 같은.



“그, 혹시 나이, 아니. 연세가......?”



나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절로 고쳐졌다.



“아, 나이를 안 밝혔네요? 57세예요. 그 일 있었을 때는 7살이었고.”



...... 네?


그렇게 말하는 진세희의 얼굴은 주름살 하나 없었다. 검은 머리카락도 숱이 많았다. 오히려...... 나보다 젊어 보이는데.


...... 뭐지? 나이를 나만 먹는 건가?



“놀랐어요? 조금 동안이라는 소리 듣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젊어보이진 않지 않나.”



이 사람이 기만을 이렇게......? 진세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에 잡은 뒤 그걸 나에게 보였다.



“이거 봐봐요. 머리카락 얇죠. 원래는 안 이랬는데 나이 들어서 이렇게나 얇아졌다니까요?”



혹시 그럼 젊으실 때는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아니라 0.7mm 샤프심이 자라나셨나요? 지금 머리카락이 얇다고 하시는 거면 원래 그 정도는 자라셨어야 될 것 같은데? 내가 지금 도대체 무슨 망언을 듣는 걸까?



“많이 놀랐어요? 의헌이도 쉰셋이에요. 우리 둘 다 등급 높은 신체강화형 에스퍼라서 그런지 노화가 잘 안 되더라고요.”



...... 예? 쉰셋이라고요? 쉰셋?


나는 진세희의 옆에 있던 태의헌을 황급히 바라보았다. 태의헌은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나를 삐딱하게 보았다. 눈가가 좀 찡그러지긴 했지만 잘생긴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그 모습은 전혀 중년 같지가 않았다.


빽빽하게 들이찬 머리카락과, 짙은 눈썹과, 잡티와 기미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피부. 솔직히 태의헌이 나보다 피부도 좋은 것 같다.


물론 나도 여기에 오고 나서 에스퍼가 되어서 그런지 몸이 좀 깨끗해지고 튼튼해진 것 같긴 하지만, 뭔가 차원이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되려나. 아무튼 다르다.


심지어 둘은 키도 크다. 진세희는 나보다 조금 작기는 하지만 내가 원체 큰 편인걸 감안하면 크다. 태의헌은 뭐, 말할 것도 없지. 윗 공기는 신선하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 얼굴과 키로 쉰일곱? 쉰셋? 아니 나이가 다들 무슨...... 여기 어디 나만 모르는 젊음의 샘물이라도 있는 건가.



“놀랐어?”



태의헌이 물었다. 아니 그럼 안 놀라겠냐고요. 생기신 건 누가 봐도 내 또래 정도인데!


진세희와 태의헌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그럼 평균 나이가...... 한 46세 정도인가요. 심지어 나 없으면 십의 자리 숫자는 금방 바뀌겠네.



“왜. 나이 많은 사람 처음 봐?”



태의헌이 또 물었다. 저 사람은 나한테 시비를 걸고 싶은 건가. 아까 나 삐딱하게 볼 때도 그렇고.


나이 많다고 해서 빡치셨나요? 근데 그렇게 생겼으면 빡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태의헌이 날 싫어한다고 해서 오는 정신적인 타격은 딱히 없다. 신체로 맞붙으면 내가 뒤질 수 있긴 하겠지만.


그렇게 생겼는데 나이 많은 사람은 처음 봐서 많이 놀랐습니다요 나으리. 아니 나이가 들었으면 보통 피부에 생기도 없고, 눈 밑도 좀 꺼지고, 안색도 탁하고, 흰 머리도 늘고 그러지 않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놀라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먹은 거야 이 세상은. 진짜 이상한 곳이다. 집 가고 싶어...... 보내줘......


그런데 그렇게 창밖을 보고 있으니,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나는 분명 이 자세를 전에도 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0분 전쯤?


그리고 내가 그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까닭은...... 아.



“미친.”



입에서 훅 내뱉어진 말을 주워 담을 정신도 없었다. 진세희와 태의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지만 나는 고개를 푹 숙이기만 했다.


그러니까, 내가. 내가 분명....... 아까......



‘와씨, 훅 들어오는 거 봐. 개설레.’


‘저거 저거, 연하남의 정석이네. 진짜 보는 사람까지 설레게 만드네......’


‘사랑을 해라 로맨스의 주인공들.’


‘태의헌은! 진세희를! 좋아해!’


‘이야 좋다! 좋다! 더 해라! 좋다! 내가 다 설레고 재밌다! 더 해봐! 제발!’



시발 닥쳐! 닥치라고! 닥쳐 이 새끼야! 제발!


갑자기 내가 아까 속으로 했던 생각들이 막을 수도 없이 하나둘 떠올랐다. 두더지 잡기 게임의 끝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한 놈을 잡을라치면 그건 가짜입니다만? 하고 튀어 오르는 다른 두더지를 멍하니 보게만 되는 그런 기분.


머리를 미친 듯이 탈탈 털었다. 머리를 흔들면 기억들도 떨어지지 않을까.

슬프지만 당연히도 효과는 없었다. 머리만 어지러웠지.


떠오른 그 속도에 맞게 빨리 꺼져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이 빌어먹을 기억들은 뭐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자. 그래도 생각을 정리해보자.


나는...... 거의 내 부모님 뻘 되는 분들을 가지고 재밌으니 더 사랑해보라고 한 꼴이네......? 하하......?


졸지에 패드립 만렙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천만다행으로 이 불결한 말을 입 밖에 내뱉진 않았지만 그래도 천하의 대역죄인이 된 기분이다. 그나마 조상신께서 나를 돌보아 내 입을 닫게 해주신 모양이다.


제가 만약 돌아가게 되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젯밥을 올리겠사옵니다 조상신이여. 돌아만 가면요.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앞을 힐끔 바라보았다. 진세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태의헌은 그런 진세희를 또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저분들을 가지고......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천하의 썩을 새끼입니다! 앞으로는 상대 잘 봐가면서 사랑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두 분 사랑 망하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잘 되셨으면 좋겠는데 제가 감히 주제를 넘진 않겠습니다! 진짜예요!


괜히 찔리는 기분에 속으로 열심히 변명했다. 아 뭐. 내가 입 밖에 내뱉진 않았으니까 속으로만 사과해도 되잖아. 물론 이게 개소리인 거 나도 안다.


사실 이제 나이를 알고 그 대화들을 생각해보니 사랑인지도 잘 모르겠다.


진세희 선생님을 빤히 바라보던 태의헌 선생님은...... 나이 많은 어르신이 혹시라도 넘어져 뼈 부러지시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게 아니었을까. 쉰일곱은 충분히 그런 염려를 받을 수 있는 나이다.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은...... 정말 무리가 되지 않나 싶으셔서 물어보시는 것 같고, 진세희 선생님이 무리하면 자신의 일이 많아진다는 말씀은...... 어쩌면 일을 덜 하려는 연륜에서 묻어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 그 모든 추측들과 생각은 어느 하나 들어맞는 것 없이 그저 불결하고 더럽기만 했을 뿐이라는 거다.


세상 모든 걸 사랑에 엮어서 생각하려는 쓰레기 같은 새끼, 아무래도 그게 나인가보다.


아악! 앞으로 몇 날 며칠은 이불킥 예정이다. 내 촉은 다 엉터리다.


나중에 돗자리 깔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그게 점을 치려고 돗자리를 까는 건 아니었던 듯하다. 그냥 도시락 먹으려고 돗자리 깔게 생겼다.



“많이 놀랐나 봐요. 그럴 줄은 몰랐는데......”



안 그러게 생겼습니까! 제가, 제가 다 설렌다고 온갖 주접을 다 떨고 그랬는데 제 부모님 뻘이라니요!


나는 내 서러움과 죄송함을 차마 입밖에 내뱉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하겠어. 선생님들께서 감히 사랑하신다고 제멋대로 상상하고 착각하려 온갖 주접을 떨었던 점 죄송합니다! 이렇게 외칠 수도 없고 말이야.



“아...... 너무 동안이셔서요. 주변에서 이런 동안은 처음 본 느낌이라...... 그리고 분위기도 되게, 되게 젊으셔서......”



나는 진세희 선생님이 내 또래 정도 되는 줄 알았다. 태의헌 선생님도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럴 줄은, 전혀! 전혀! 몰랐다! 내가 알았으면 그런 사특한 생각을 품었겠나!



“고마워요. 젊게 살려고 노력 중이거든요. 우리 센터에 다 젊은 사람들만 있어서 잘 맞추고 싶은 마음에.”



이미 얼굴부터가 젊으십니다...... 솔직히 저보다 젊어보이시는데......



“아, 다 왔네요. 내일부터는 출근하고요, 기억상실자 에스퍼 관리하는 친구가 워치로 중간중간 연락할 거예요. 걱정 말고 잘 받으면 돼요.”



진세희 선생님은 친절하고 예쁜 미소로 나를 배웅했다. 태의헌 선생님은 그런 진세희 선생님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차마 주접을 더 떨 용기도 생각도 없었다.


황혼의 로맨스! 응원합니다! 근데 주접은 안 떨게요! 제가 더 쓰레기가 되긴 싫어서!



“아하하...... 안녕히계세요!”



저는 사특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여기가 꿈이었으면 좋겠네요!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갔다. 찝찝했던 몸을 씻고 머리도 말리고 침대에 누웠는데, 정말 짜증나게도 생각이 계속 났다.



‘와씨, 훅 들어오는 거 봐. 개설레.’



“윽......”



‘태의헌은! 진세희를! 좋아해!’



“아악......”



‘이야 좋다! 좋다! 더 해라! 좋다! 내가 다 설레고 재밌다! 더 해봐! 제발!’



시발 그딴 생각은 왜 하는 거야 새끼야!


작가의말

보통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으로 글을 작성하는데, 거기서 작성할 때도 세 줄이 넘어가면 참 벽돌 같습니다. 예 뭔 말이냐면 넓게 설정해둔 작업 화면에서도 글이 그렇게나 벽돌 같은데 그걸 이겨내주시는 독자님들은 참 대단하다는 말입니다.

사실 지금 스토리아레나 완주가 불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쓴 게 없거든요. 이제 개판으로라도 써야죠... 고치는 건 미래의 제가 할 테니 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26. 시뮬레이션 전투(10) 22.01.18 21 0 9쪽
26 25. 시뮬레이션 전투(9) 22.01.17 19 0 9쪽
25 24. 시뮬레이션 전투(8) +1 22.01.15 20 0 10쪽
24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4 0 9쪽
23 22. 시뮬레이션 전투(6) +6 22.01.13 33 2 10쪽
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29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1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0 4 10쪽
19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1 2 9쪽
18 17. 시뮬레이션 전투(1) +1 22.01.07 40 1 11쪽
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1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4 8 9쪽
15 14.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8) +1 22.01.04 53 4 9쪽
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2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1 5 9쪽
12 11.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5) +2 21.12.31 64 7 11쪽
11 1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4) +1 21.12.30 68 7 11쪽
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2 14 11쪽
»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1 21.12.28 83 10 10쪽
8 7.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1) +1 21.12.27 85 9 12쪽
7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100 8 10쪽
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7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6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6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5 112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