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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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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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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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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글자수 :
1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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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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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 시뮬레이션 전투(1)

DUMMY

시야가 바뀔 때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이유는 뭐, 딱히 큰 건 아니다. 그냥 모든 게 계속 눈을 감은 사이에 바뀌었으니 눈을 뜨면 적어도 상황은 알게 될 것 같아서.


그러나 눈을 채운 빛이 너무나 밝은 흰 빛이라 그런가, 눈물이 흐를 정도로 눈을 뜨고 있었는데도 얻는 소득은 딱히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빛이 너무 밝아서 그런지 계속 눈을 뜨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어 있더라.


그냥 눈만 아픈 사람 됐다. 아오, 다음엔 이런 멍청한 짓 안 저지른다.


어쨌든 아픈 눈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았다. 정말 현실 같은 공간이었다. 모든 감각이 전부 현실과 비슷했다.


현실과 너무 비슷해서 혹시 여기가 진짜 세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만큼 실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 향들마저.


푸르른 나무들과, 바닥을 소복하게 덮은 낙엽들과, 바람을 타고 나는 짐승의 냄새...... 가 왜 날까. 왜 나냐.


냄새를 맡은 뒤 바로 긴장해서 굳어버린 목을 애써 달래가며 뒤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괴물이 보였다.


시발! 시발! 저거 뭐야! 저 새끼 뭐냐고!


입 밖으로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소리들을 애써 목 너머로 삼켰다. 조용히 닥쳐야 한다 주서현. 뭐가 됐든, 최대한 소리 내지 마라.


내가 본 괴물은 정말 괴물처럼 생겼다. 우글쭈글한 피부 가죽과, 높게 박힌 두 눈과, 핏줄이 잔뜩 불거진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끔찍하다는 소리다.


분명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물인데도 이상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아마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너무 실재하는 것 같아 그런 듯했다.


그리고 너무 현실감 있는 세상을 보다 보니 혹시 여기가 현실이고 아까 그곳이 가상현실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버렸다. 그래서 이곳이 시뮬레이션이라는 것도 전부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여유도, 안전도, 생각도 모두 챙길 겨를이 없었다는 거다.


괴물에게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조심스럽게 바닥에 한 발을 내디뎠다 뺐다. 괴물은 둔하게 생긴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빨리 반응했다. 내가 발을 내디뎠다 뺀 자리에 바로 나뭇가지가 꽂혔다.


식은땀이 주륵 흐르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막막했다. 괴물에게 걸려서 죽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까.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이런 괴물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괴물은 눈이 두 개나 달렸지만 시력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이 희뿌옇게 생기기도 했고, 주변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나를 찾는 듯했다. 그 대신 청력은 아주 좋은 것 같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리는데. 괴물이 고개를 꺾으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람에 실리는 그 지독한 냄새도, 괴물의 발소리도 전부 느껴지는데.


숨을 죽였지만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모자란 숨이 간헐적으로 크게 몇 번 튀어 오르자 괴물이 괴성을 내질렀다. 소리가 들릴까 싶어 귀를 막을 수도 없어 더 돌아버릴 것 같았다.


괴물은 나에게 정말로 가까워져 있었다. 그 끔찍한 피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하나 다 보였다. 가죽이 너무 튼튼해 보여서 내가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꽂아봤자 흠집도 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도망치는 건 아마 바로 잡히거나 머리에 나뭇가지가 꽂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이왕 튼튼해졌는데, 몸으로 돌진해봐? 솔직히 주서현 네가 머리 써서 행동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 X발.”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그냥.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살겠지.


나는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팔꿈치로 정확히 괴물의 명치께를 조준한 채였다.



“키에엑-! 크엑!”



괴물의 그 큰 몸뚱아리가 잠시 크게 휘청거렸다. 소리를 치며 비틀대는 걸 보니, 거리가 짧아서 힘이 많이 들어가진 못했지만 나름 타격이 들어가긴 한 것 같다. 정말 나름일 뿐이지만.


괴물이 비틀대는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난 정말 죽을 거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가오자, 잘 움직이지 않던 몸이 그래도 어찌저찌 움직였다. 주먹을 꽉 쥐고 괴물의 약점일 것 같은 눈을 공격했고, 괴물의 반격은 피하거나 몸으로 때웠다.


싸워보니 아주 못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맞는다는 게 나에겐 흔한 일이 아니었어서 좀 아프긴 했는데, 내가 아픈 만큼의 두 배를 괴물에게 돌려준다는 느낌으로 개싸움을 벌였다. 정말 온 정성과 온 힘을 다해 괴물을 팼다. 괴물의 초록색 체액이 손에 한가득 묻어났다.


괴물의 몸부림이 어느 순간 극도로 거세졌다.



“크억, 아악......!”



시발, 진짜 뒤지는 거 아니야? 진짜, 진짜 너무 아픈데.


괴물의 주먹이 배에 꽂히자 심각한 고통이 나에게 찾아왔다. 아마 성치 못할 것이다. 그냥 이대로 기절해서 쓰러지고 싶었다.


괴물의 주먹은 온몸에 평등하게 꽂혀 들어왔다. 키가 커서 맞을 수 있는 면적이 크다는 사실이 짜증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하게 크는 거였는데.


얼굴에 주먹이 꽂히자 시야가 잠시 뿌예졌다. 이게 그...... 뇌진탕 뭐 그런 건가? 튼튼하게 산 덕에 뼈 한 번 부러진 적 없어서 이젠 아프다기보단 신기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반격해보려 팔과 다리를 움직였지만 그러는 족족 괴물의 주먹이 나에게 먼저 찾아와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정말, 처맞았다. 차라리 이대로 죽은 척을 하면 넘어가지 않을까. 그런 헛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쓰러지면, 괴물은 내 숨통을 끊어놓으면 끊어놓았지 나를 내버려 두진 않을 거라고.


덤비자. 쓰러지면 죽는다. 그건 아주 확실하다. 살아남으려면 죽여야 한다.


괴물의 주먹이 아주 잠시 느려진 틈을 타 뒤로 빠르게 빠져 나왔다. 이 몸이 정말 튼튼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처맞았는데 움직이는 게 가능은 하다.


괴물은 지금까지 아주 신나게 패던 사람이 사라져서 당황한 것인지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딱 저 상태일 때 원거리 공격기 쓰면 되는데. 왜 여긴 게임 속이 아닌 걸까. 다른 세상에 이동하는 것보단 게임 빙의가 차라리 더 낫겠다.


아마 괴물은 곧 있으면 나를 찾을 것이다. 계속 맞아서 아픈 다리와 몸이 떨렸다.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정말 쓰러질 거다. 쓰러지면 그 소리를 듣고 괴물이 올 거고, 난 정말 뒈지는 거고.


차라리 싸워서 아드레날린이 나를 덜 아프게 하길 바라는 게 나을 거다. 거기에 괴물이 달려드는 거면, 나보단 덜 무방비하겠지.


주위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괴물의 저 두터운 가죽을 뚫을 수는 없겠지만, 피해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주변을 샅샅이 뒤지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나무에 다가갔다. 괴물은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어느새 몸을 일으켜 허공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목표했던 나무에 닿았다. 내 근력으로 드는 게 가능할까 싶은 크기의 나무였는데, 의외로 가뿐했다. 몸 상태가 이 꼴만 아니었으면 더 가뿐하게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나자 괴물은 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걸어오는 괴물을 기다리기엔 내 다리가 성치 않았다.



“X발 덤벼 개새끼야!”



소리를 조금 크게 치자 턱이 뻐근했다. 머리도 더 울리는 것 같았다. 하하, 진짜 뒤질 것 같네.


소리에 민감한 괴물은 나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저 나무의 뿌리 부분을 괴물을 향하게 들었다.



“크에엑-! 크웨엡-!”



튼튼한 나무의 뿌리에 정통으로 돌진한 괴물이 잠시 바닥에 쓰러졌다. 괴물의 돌진 속도가 내 생각보다도 빨라서 나 역시 뒤로 잠시 휘청였다.


나무를 내려 놓았지만 온몸이 흔들렸다.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다리는 한 발짝 움직이는 것도 힘겨워했다. 가슴 쪽도 죽을 듯이 아픈 게, 늑골에 금이 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회복할 시간이 없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냥, 그냥 진짜 덤벼라 주서현.


괴물에게 달려들다 뛰어올라, 그 배에 착지했다. 갑작스레 배에 사람이 꽂힌 괴물은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뒤에는 괴물의 몸에 올라타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내가 맞아서 아픈 것만큼, 너도 아파라. 아파서 뒤질 것 같으면 좋겠다.


그런데도 괴물의 질긴 목숨은 끊어지질 않았다. 이대로 두면 빨리 회복해서 나를 정말 죽일 것 같았다.


시발. 내가 이렇게 공격하는데 왜 얘는 안 뒤져? 왜? 왜 안 뒤져? 나만 이렇게 아프고, 이 새끼는 하나도 안 아프고. 왜 그래야 해?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왜 얘는 안 죽어?


억울했다. 억울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내 주먹은 살이 다 까져 피가 흘렀다. 그 상태로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 하나 뒤지게 만들려고. 그거 하나로 이렇게 무턱대고 덤벼드는데.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무기력해진 걸까. 이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아서 그런 걸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얠 못 죽인다. 내가 약해서. 이렇게나 튼튼해졌는데도, 약해서.


억울함이 물밀 듯이 밀려올 때, 갑자기 심장 쪽이 아팠다.



“아윽......!”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강제로 뽑아져 나오는 느낌도 들고, 누군가 내 심장을 터지게 만들려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느껴보는 색다른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장은 계속 거세게 뛰는데, 아팠다. 이게 심부전인가.


그런데 갑자기 주먹에 무언가 덧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주먹에 점차 공격력이 생겼다. 괴물의 가죽이 점차 부어오르는 게 보였다.


희망이 생겼다. 이 새끼를 죽일 수 있다는 희망이.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심장이 아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멈추지 않고 계속 휘둘렀다. 주먹을 덧씌우는 힘은 점차 커지더니, 이내 주먹과 괴물의 얼굴 사이에 큰 간격이 생겼는데도 공격이 들어갔다.


그렇게 셀 수도 없이 많은 주먹을 휘두른 끝에, 괴물의 몸부림은 멈추고야 말았다.



“...... 하하.”



내가, 이겼다.


작가의말

개인 사정으로 글이 좀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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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8 0 9쪽
23 22. 시뮬레이션 전투(6) +6 22.01.13 37 2 10쪽
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32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3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6 4 10쪽
19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5 2 9쪽
» 17. 시뮬레이션 전투(1) +1 22.01.07 44 1 11쪽
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8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5 8 9쪽
15 14.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8) +1 22.01.04 61 4 9쪽
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9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4 5 9쪽
12 11.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5) +2 21.12.31 68 7 11쪽
11 1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4) +1 21.12.30 70 7 11쪽
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4 14 11쪽
9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1 21.12.28 86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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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9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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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9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4 8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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