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542
추천수 :
403
글자수 :
116,722

작성
21.12.20 03:00
조회
372
추천
80
글자
9쪽

1. 세상이 이상하다(1)

DUMMY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어언 29년. 또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덕후로 산 지...... 아마도 29년.


왜 내 덕질 경력을 이야기하냐 하면, 내가 지금 좀 이상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판타지 소설에서나 봤던 다른 세상으로 떨어진 것 같다.




그...... 내가 판타지 소설 같은 걸 좀 많이 읽긴 했다. 활자 중독자라서.


그래도 나는 엄연히 현실과 판타지를 구별할 줄 아는 멋진 어른이란 말이다! 물론 자고 일어났더니 창밖에 사람들을 물어뜯는 시체들이 있다면 단박에 좀비라고 생각하긴 하겠지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좀비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소설 속에서나 보던!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환생 트럭에 치인 것도 아니고, 맨홀 속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이상한 토끼를 따라간 적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 이딴 세상에 오게 된 것인가. 신이시여!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 아무튼 나는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 같다. 아마도.


현실에 있을 때의 마지막 기억은 퇴근을 하고 기력 없이 침대에 다이빙한 것이다. 자다가 돌연사를 했나. 사인은 과로일까, 스트레스일까. 아니면 뭐, 안 죽었을 수도 있으려나.


죽지 않은 거라면 돌아갈 방법이 있을까. 여러 빙의물 소설을 읽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거기서 주인공들은 어떻게 행동했더라. 제대로 돌아갔나.


...... 아니, 대부분 안 돌아가고 원래 있던 몸에서 계속 살던 것 같은데. 그게 좀 내 취향은 아니라서 빙의물 소설은 대부분 안 읽었고,


참고할 자료가 거의 없다. 빙의물 소설을 참고한다는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환생 트럭도, 이세계로 트립한 것도, 시계 토끼를 따라간 것도 아니고 지쳐 잠들었을 뿐인데 다른 세상으로 왔다는 건 좀 슬프다. 사놓고 안 읽은 내 책들이 얼마인데...... 물론 거의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게 취미였지만.



아까의 기억을 조금 떠올려보겠다.


술을 참 많이 퍼먹었지만 이상하게도 머리가 아프진 않았다. 피곤한 것도 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나 눈을 감고 싶은 건 나의 본능을 따라 살며시 눈을 떠보니 나는 푹신한 침구 위에 있었다. 많은 빙의물 소설의 초반부 시작과 동일했다.


일어났는데 눈앞에 보이는 천장엔 우리 집 천장과 달라 보이는 조명이 떡하니 붙어있었고, 날 덮고 있는 이불은 인터넷에 속아서 잘못 산 비닐 같은 이불이 아니라 호텔에서나 쓸 것 같은 이불이었지.


거기서부터 이상함을 느껴 눈을 조금 더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개판인 내 방과는 다르게 깔끔한 방이 보였다. 그때 제대로 이게 이럴 리가 없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방이 하루아침에 달라져 있으니 뭔가 이상해서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방은 정말 깨끗했고 햇볕도 따스히 들었다. 그래, 햇볕이 들었다. 내 방은 언제나 암막 커튼으로 어두운데.


암막 커튼을 거둔 채로 침대에 다이빙해 햇볕이 들 리는 없었다. 어제 아침에 너무 바빠서 커튼을 치기는커녕 불도 제대로 끄지 않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다이빙할 때 전기세 걱정을 했기 때문에 확실했다.


그러다 문득...... 나 빙의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왜 뭐. 빙의물 소설 열 편만 봐도 다 이렇게 생각할 거다. 아니라면 갓반인이니 박수 짝짝 치시고,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이 옳다.


아무튼 빙의라는 생각을 한 뒤 내 머리카락을 봤다. 나는 로판도 조금은 봤다. 로판 빙의의 첫 번째 조건, 한국인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특이한 머리색. 그런데 머리색은 여전히 검더라. 숙취는 없었지만 개기름도 있어서 황급히 손을 떼어냈고.


손을 봤더니 어렸을 때 생겼던 흉터도 똑같은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화장실을 찾아가 거울을 봤는데, 나는 나처럼 생긴 채였다. 떡진 머리와 화장을 지우지 못해 곧 썩을 것 같은 얼굴, 그 외에도 내 모습이 그저 그대로.


입은 옷도 똑같았다. 침대에 다이빙한 까닭에 펴질 시간이 없었던 싸구려 정장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래서 빙의라는 가능성은 지웠다. 나와 똑같은 모습에 빙의시켜주는 건 빙의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빙의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뒤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긴 아무리 봐도 현대의 공간인데 이곳에 갑자기 뚝 떨어진 나는 도대체 뭐지?


그 생각을 하고 나서 나는 집을 뒤졌다. 곳곳에 가구들과 책이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예쁘게 놓여 있었다. 그걸 보며 내가 여기 살았을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방을 개판으로 만드는 나를 잘 안다. 개띠라서 그런가.


어쨌든 가구들과 책들, 그 외에도 집에 놓인 다양한 것들에 써진 글을 나는 아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자동으로 언어 해석 능력이 주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 한국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긴 아무래도 한국일 것 같은데. 한국에서 모든 게 불분명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나......?


내가 아는 한국은 그럴 리가 없다. 무연고자면서 이런 번듯한 건물에 살 수 있을 리도. 그렇다면 나는 정말 뭘까. 이곳은 평행세계의 나이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내 정장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귀찮아서 빼지도 않았던 덕에 주머니 안에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내 게으름에 감사를 표하며 지갑을 급하게 열고, 그 안에 잘 자리하고 있을 내 주민등록증을 찾았다. 다행히도 주민등록증은 내가 넣어놓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다른 건 다 같으면서 색이 이상했다.


하늘색이었다. 모두가 익히 아는 주민등록증의 색이 아닌, 하늘.


나는 민증을 빤히 바라만 보았다. 왜 하늘색일까. 내가 전기차는 아닐 텐데 말이다.


주머니를 더듬거리다 핸드폰을 꺼낼 수 있었다. 고이 넣어놨던 게 참 다행이었다. 대충 검색하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옆면의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잠금화면을 풀고, 익숙한 검색 포털 아이콘을 눌렀다. 이제 익숙한 화면이 뜰 것이다.


검색창에 ‘주민등록증 하늘색’이라는 단어를 쳐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민증 사진 하늘색 배경화면에 관련된 글이 더 많이 나올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뭐 하나는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라.



“뭐야 이거.”



왜 안 터져. 너 나한테 왜 그래 알렉산더. 나의 소중한 동반자 알렉산더,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켜지질 않니.


알렉산더, 그러니까 나는 내 핸드폰을 우선 흔들어보았다. 알렉산더라 이름 붙인 이유는 내 친구가 뭐든 이름을 붙여주면 친근해진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걔는 지 자동차를 그냥 브랜드명으로 부르지만, 제대로 속은 나는 내 스마트폰에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흔들어보았지만 알렉산더는 제대로 돌아갈 낌새가 보이질 않았다. 여기 혹시 와이파이 안 되는 곳인가. 그래서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알렉산더가 제대로 작동하길 기다렸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이번에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답답했다. 원래 현대인들은 기계가 움직이지 못하면 좀 돌아버리는 법이다. 나는 결국 무심결에 친근하고 소중한 나의 알렉산더를 몇 대 퍽퍽 쳤다. 친근하고 소중하긴 하지만, 넌 기계고 난 사람이잖니.


원래 기계는 두드리면 고쳐지는 법이다. 내 손만 조금 아프면 알렉산더가 돌아오겠지, 라 생각하며 한 일이다. 그런데 친 내 손만 아프기는커녕,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퍼석-! 파삭-! 퍽-!


어, 어라...... 분명 낡았지만 그래도 튼튼하게 돌아가던 우리 알렉산더가...... 반으로 갈라졌......?



“뭐, 뭐야! 야! 알렉산더! 야! 야! 너 왜 부서져! 야!”



할부는 지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소중한 내 알렉산더가, 무심결에 몇 번 쳤다고 부서졌다. 그것도 아주 와장창.


나는 기계가 부서질 때 맥없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니, 내가 이상해서 소리가 그렇게 난 걸 수도 있다.


나는 내 왼손을 알렉산더에게서 멀리 떼어내 상세히 살폈다. 원래 내가 알던 커다란 모양 그대로다. 손가락을 굽혀도 보고, 꼬아도 보았다. 움직이는 데 이상한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뭘까. 내 손은 그대로인데, 알렉산더 네가 문제일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낡고 지쳐 있던 거야 알렉산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널 친 거고......?



“너 내가 게임 졌다고 빡쳐서 바닥에 던졌을 때도 멀쩡했었잖아...... 조카들이 너 하키 퍽으로 써서 놀았을 때도 멀쩡했었잖아...... 야......”



나의 알렉산더는 골로 갔습니다. 아아, 다사다난했던 삶을 훌륭하게 견뎌내었던 나의 알렉산더는 골로 갔습니다.


...... 여기까지가, 내 현실부정이었다.


작가의말

의식의 흐름으로 쓴 글은 참 신기합니다. 언제든 개판이 되어버리곤 하지요. 과연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저조차 궁금하네요. 완주는 할 수 있을런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26. 시뮬레이션 전투(10) 22.01.18 20 0 9쪽
26 25. 시뮬레이션 전투(9) 22.01.17 19 0 9쪽
25 24. 시뮬레이션 전투(8) +1 22.01.15 20 0 10쪽
24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4 0 9쪽
23 22. 시뮬레이션 전투(6) +6 22.01.13 32 2 10쪽
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29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0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0 4 10쪽
19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1 2 9쪽
18 17. 시뮬레이션 전투(1) +1 22.01.07 40 1 11쪽
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1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4 8 9쪽
15 14.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8) +1 22.01.04 52 4 9쪽
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2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1 5 9쪽
12 11.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5) +2 21.12.31 64 7 11쪽
11 1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4) +1 21.12.30 68 7 11쪽
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2 14 11쪽
9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1 21.12.28 82 10 10쪽
8 7.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1) +1 21.12.27 85 9 12쪽
7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99 8 10쪽
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7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5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5 75 10쪽
»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3 112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