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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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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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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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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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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 세상이 이상하다(2)

DUMMY

현실 부정의 시간이 꽤나 길고 길었다. 뭐, 당연하지. 자고 일어났더니 다른 세상인 것 같은 곳에 왔다면 누구든 놀라지 않겠는가?


알렉산더가 산산이 부서지기 전까진 나름 꿈이라 생각하며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희망보단 현실 도피와 부정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 소중한 알렉산더가 부서진 뒤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한 정신이 들었음에도 깨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곳이 아마 확실한 꿈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고.


나는 일단 다치지 않기 위해 산산이 흩뿌려진 알렉산더의 조각들을 한군데로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도 완벽하게 정신을 차린 건 아니라 그 날카로운 걸 다 맨손으로 주웠다.


그런데도 손은 다치지 않았다. 경황이 없어 실수로 알렉산더의 잔해를 밟기도 했는데, 피가 나긴커녕 알렉산더의 잔해만 더 잘게 부서질 뿐이었다.


나는 조각들을 주우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혹시...... 하루 아침에 세계 최강의 먼치킨이 된 걸까?


그때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알렉산더를 사용할 때 설정해두었던 소리와 똑같았다. 분명 작게 설정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들렸다. 가끔 가는 귀가 먹었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나에겐 좀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내가 일어났던 방 안이었다. 침대 옆 협탁에 어느 브랜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고 비싸 보이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딱 내 취향인 검은 몸체로.


취향은 아니었지만 혜택을 준다길래 선택했던 우리 용맹한 알렉산더의 붉은 몸체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남의 것을 집어 드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비싼 게 확실한지, 몇 년을 함께한 알렉산더보다 손에 더 착 감겼다.


미안해, 알렉산더. 너도 이제 하늘에서 좋은 주인 만나길 바랄게. 널 기리고 사죄하는 의미에서 이 친구는 알렉산데르라고 부르지.


핸드폰의 화면엔 이진영 1팀 에스퍼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만약 내가 저장하는 방식을 따랐다면 저 이진영은 이름이고, 회사는 적혀있지 않으니 우리 회사고, 1팀에 소속되어 있겠고, 직업이...... 에스퍼?


어...... 에스퍼라고? 나 그거 소설 같은 데에서나 보던 거였는데.


그러나 생각을 더 할 겨를이 없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 지는 한참 되었고, 우선은 전화가 끊어지지 않게 재빨리 통화를 연결했다.



-“주서현 에스퍼, 연락을 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


“아...... 죄송합니다.”



뭐야. 저 사람 왜 내 이름 알아?



-“현장에 주 에스퍼 곧 필요할 것 같아서요, 미리 연락했어요. 등급 높은 에스퍼들은 지금 다른 긴급 현장 투입됐거든요. 에휴, 요즘 다들 너무 바쁘고 사람도 없어. 아무튼 대기하고 있으라고요. 수고 많네요.”



전화가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저기! 이진영 에스퍼...... 님? 그, 제가 지금 실은 딱히 경황이 없거든요. 그게 그, 어. 그러니까요 이게 참...... 아하하...... 그......”



젠장. 불렀는데 막상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주서현은 맞지만 당신이 아는 주서현은 아니라고? 이게 뭔 미친 개소리야.



-“...... 주서현 에스퍼.”



이진영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바뀌었다.


괜히 말했나? 돌아가는 정황을 보니 나는 알 수 없는 세상에 떨어진 채로 초능력까지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튼튼해진 게 초능력인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내가 가졌을 것 같은 정체불명의 능력이 아니다. 정신병원에 끌려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판이라는 게 중요하지.



-“설마......”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였던 것 같다. 역시 소설이 문제야. 소설 속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다 대충 기억상실증이라고 때운 채 넘어갔다고. 물론 현실에선 정신병원에 들어갈 소리라는 걸 알지만 여기가 너무 현실성이 없는 것 같으니 말도 막 나온 모양이다.


아, 어떡하지. 진짜 나 어디 끌려가는 거야? 끌려가 본 건 학창시절 담 넘다가 걸린 게 전부인데?



-“주서현 에스퍼 설마 기억상실증이에요?”



...... 예?

뭐야. 왜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요?



-“아이고...... 이걸 어쩌면 좋담. 거기 가만히 있어요 주서현 에스퍼. 센터 사람들 보낼 테니까.”


“저, 그러니까 이진영 에스퍼님? 그게 무슨 말씀......”



나는 정말 당황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을 입에 쉽게 담는 거지?



-“기억상실증이라면서요. 살면서 다들 한 번쯤은 걸리는 거니까 크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고요, 센터로 와서 교육 과정 이수하면 돼요.”



아니 기억상실증을 뭐 이렇게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으로 다루는 거야.



-“아, 혹시 바닥이나 벽 같은 거 부숴 먹었어요?”


“아니요......”


-“그럼 됐어요. 수도관 같은 것도 안 건드렸죠?”


“넵......”


-“오케이.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에스퍼 이송 신청했어요. 몇 분 뒤로 센터 사람들 갈 거고 그때 문 열어주면 돼요. 일단은 센터 사람들만 믿고 다니고요. 아직은 기억 다 없으니까.”



기억이 없는 게 아니라 나는 그냥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인데요. 보내줘! 나의 안락하지는 않지만 나름 평온한 집으로!



-“센터로 오면 대부분의 궁금증은 해소될 거예요.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사람들의 경험을 모아서 만든 교육 과정이니까요, 다 괜찮아요.”



기억상실증이...... 유행할 수가 있나?



-“아무튼 그럼 센터에서 나중에 봬요 주서현 에스퍼. 기억상실증 잘 극복해내길 바랄게요.”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마지막 인사가 기억상실증의 극복을 바란다는 말이라니. 여긴 도대체 어떤 세상인 거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들었던 말만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에스퍼라는 거지.


내가 아는 에스퍼는 로맨스 소설 같은 곳에서 나오는 세계관 중 하나인 가이드버스에 나오는 직업명이다. 에스퍼는 초능력자고, 가이드는 가이딩으로 그런 에스퍼의 피로도를 낮춰준다.


보통은 그 가이딩 과정에서 서로의 신체 접촉이 필요하니...... 로맨스에 사용하기 딱 좋은 설정이긴 하지.


그렇지만 그건 정말 로맨스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지 않은가. 나는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굳이 살 생각도 없다. 가까워봤자 로맨스 장르의 매체들을 소비하는 정도지. 현실 로맨스는 남의 이야기면 설레도 내 이야기일 땐 그닥이다.


그런데 애초에 내가 에스퍼라는 게 말이 되기나 하는 상황인가?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도 말이 될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생각을 다시 해보자. 나는 여기가 현실일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알렉산더가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알렉산더가 박살이 났다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전제 조건 하나만 달라지면 모든 게 딱딱 들어맞는다. 내 알렉산더가 가루가 되긴 했어도...... 정말 끔찍한 꿈이라면 꿀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냥 모든 게 다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 주위를 감싼 모든 것들은 다 진짜 같다. 시력이 더 좋아지고, 몸이 더 튼튼해진 것 같고, 피곤함도 거의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환골탈태를 하면 딱 이런 기분일 것 같다.


모든 것은 진짜 같지만 나만 변해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내 생각대로 다른 세상에 툭하니 떨어진 게 아닐까. 툭하니 떨어진 것 치고는 내 주변의 모든 게 다 원주인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원 주인도 나와 거의 흡사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복잡한 머리를 쥐어뜯으려다가 머리카락에 개기름이 흐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뒀다. 우선 이 거지 같은 몰골을 좀 어떻게 처리해보자. 깨끗한 몸에 깨끗한 정신이 깃들 테니까.


그렇게 화장실이 있을 것 같은 자리를 찾아 나서는 때,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능력자 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이진영 에스퍼가 주서현 에스퍼의 기억상실자 교육 과정 이수를 신청하셨는데, 본인 맞으십니까?”



어라. 분명 이진영이 신청했다고 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채 십 분이 될까 말까 했다. 그러니까 거의 십 분만에 달려왔다는 건데.


뭐야. 뭐 이렇게 빨리 와. 역시 한국인인가?

아니, 이런 감탄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다급하게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현관문을 벌컥 여니 그 앞에 서 있던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는 여자를 보다가 놀라서 날 본 것 같고, 여자는 내 눈을 아주 당당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뭐 저렇게 예쁘고 잘생겼지. 연예인이기라도 하나.



“주서현 씨 맞으시죠?”



남자의 좋은 목소리에 감탄할 새도 없었다. 일단은 물음에 답했다.



“아, 예. 제가 주서현이 맞긴 한데요, 이게 다 뭔 상황인지......”


“네, 본인 확인했습니다. 센터로 가시죠. 저희 차량 타고 가시면 됩니다.”



이렇게 갑자기? 아무 준비도 안 했는데?



“저기, 제가 씻고는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예의라는 게 있는데.”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정말 급했다. 이 몰골을 세상에 내보일 수는 없어. 내가 그래도 사람인데.



“괜찮습니다. 저희 비위 좋은 사람들이에요.”



여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 그렇게 말하면 내가 진짜 미안해지는데.


작가의말

되는대로 달리는 연재는 무사히 작심이일을 성공했습니다. 과연... 작심삼십일이 가능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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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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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29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1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0 4 10쪽
19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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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1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4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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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2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1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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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2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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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1) +1 21.12.27 85 9 12쪽
7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100 8 10쪽
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7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6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6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5 11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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