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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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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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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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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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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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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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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8. 시뮬레이션 전투(2)

DUMMY

“...... 하하.”



내가, 이겼다.

그런데 문제는, 이기긴 이겼는데 이기기만 했다는 것뿐이다.



“아오......”



괴물이 몸부림을 멈추고 나 역시 자리에 멈추자 잠시 잊고 있던 고통이 몸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아프다는 걸 자각하니 계속 아파졌고.


승리를 쟁취했는데 얻은 게 고통뿐이다. 이기겠다는 집념 하나로 버티고 있던 몸이 그 집념을 이뤄내고 나니 말을 듣질 않았다.



“얌마. 좀, 좀 움직, 악......!”



잘 움직이지 않는 발을 애써 앞으로 내딛으려 하자 찌릿찌릿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더는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서 있기만 했는데도 온몸이 부들거렸다.


결국 바닥에 쓰러지듯 눕자 그나마 좀 나았다. 그렇지만 살 만하진 않았다. 거짓말로라도 괜찮다고는 할 수 없는 몸 상태라.



“아읍...... 흐악......”



개, 개아프네 진짜......


온몸이 쑤시고 화끈거렸다. 아오, 그런데 이 와중에 손은 기분 더럽게 왜 또 질척거려.


덜덜 떨리는 손을 힘겹게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댔다. 질척한 괴물의 체액과 내 피가 잘도 어우러져 있었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힘이 없는 미간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손이 쓰라렸다. 다 까진 걸 무시하고 계속 주먹질을 해대서 그런지 상처가 꽤 크다. 때릴 때는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별 느낌도 없었는데, 이기고 나니 아프다.


갈비뼈도 좋지가 않았다. 욱신욱신거리는 게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뼈가 완벽하게 부러져 장기를 찌를 것만 같았다.


가만히 보던 내 손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점차 몸에 힘이 빠졌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 어.”



저거, 저거. 저거 괴물 시체. 저거 뭐야. 저거 왜 갑자기......



“왜 사라져......?”



네가 왜 사라져. 내가 널 얼마나 열심히 죽였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면 내가 널 죽였다는 증거가 없어지잖아. 사진 한 장도 못 남기고 기록 하나도 못했는데 왜 갑자기 사라져. 야.


그러나 내 질문에도 흰빛에 둘러싸여 점차 줄어드는 괴물의 사체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을 끔뻑이다가, 문득 생각을 떠올려버렸다.


...... 잠시만. 그러니까, 이게. 이게 사실은 다...... 이거. 그냥 다...... 시뮬레이션이잖아.



“...... 시발.”



나는 왜 죽지도 않을 걸 이렇게나 열심히 했지.



“시이발......”



얼굴이 맞아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화끈해졌다. 몸은 아팠지만 부끄러운 게 더 커서 아픈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이야, 수치스러워서 뒤지겠다.


갑자기 과몰입의 끝판왕을 보인 내가 좀 많이 부끄러워졌다. 몸에 힘만 있었어도 땅 파고 들어갔을 거다. 주혜인은 이거 다 보고 있었으려나.



“아악......!”



이불킥 거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나는 전부 다 기억한다. 괴물한테 덤비라고 비장하게 소리치던 나도, 고작 그 프로그래밍 덩어리 이겼다고 하하 처웃던 나도, 죽을 것 같다고 궁상을 떨던 나도 다 기억이 난다. 진짜 왜 그러고 살아 주서현......?


이래서 주혜인이 처음에 모든 게 다 시뮬레이션인 걸 잘 기억하라고 했나 보다. 시뮬레이션이니까 과몰입할 필요 없다는 소리였는데, 그 말을 들어놓고 까먹었네......


그래도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정말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감각만은 진짜 같아서 정신이 없는 상태로는 믿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고통도, 감촉도, 다 사실 같아서 깜빡 속아버린 거다.


절대 내가 멍청해서 과몰입한 게 아닌 게 아니겠지...... 내가 멍청했던 거지......


이렇게나 멍청하게 살았는데 29년을 살아남았다니, 오래 살았다 주서현. 너는 네 주변 사람들의 훌륭한 인품이 아니었다면 길바닥에 나앉았을 거야.



“주혜인 씨...... 이거 보고 계시죠......? 이제 끝이죠......?”



아픈 것과 모든 게 현실적인 만큼 힘든 것도 진짜 같아서 딱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곤함에 말도 어눌하게 흘러나왔다. 졸리긴 한데...... 졸리다고 자면 진짜 뒤질 것 같단 말이지.


그냥 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심력 소모를 너무 많이 했다. 그래도 뭐, 시뮬레이션이었으니 나오면 아프진 않겠지. 쪽팔리긴 했지만 정신줄을 놓을 것 같은 고통이 아까부터 몸을 지배하고 있었던 탓에 빨리 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주혜인이 정신 괜찮아요......? 라고 물어도 원래 과몰입이 제 종특입니다, 하하. 하면서 넘기면 되지 뭐.



“내보내주세요...... 힘들어서 뒤지기 직전이니까......”



말이 또 곱게 나가질 못했다. 역시 인간은 힘들면 본성이 튀어나온다.


죄송합니다 주혜인 에스퍼. 그런데 내가 시발 그 개고생을 했으면 솔직히 저 정도 말은 할 수도 있지 않나? 당신 욕한 것도 아닌데!


...... 나 진짜 힘든가 보다. 생각에 불과하긴 했지만 급발진을 하고 있네. 에휴,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도 주혜인의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뭐지. 부르면 와 주는 거 아니었어요? 나 혼자만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야?



“주혜인 씨? 이거 끝 아니에요?”



답변을 주세요 혜인 씨......!


솔직히 내가 볼 때 지금 내 몸 상태는 최악이다. 속은 진탕이 된 게 분명하고, 주먹은 다 까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오래 맞아서 정신도 온전치 못하다. 이대로 조금만 방치되어있으면 진짜 뒤지는 거다. 그 괴물을 이겼는데 이렇게 뒤진다고? 그건 너무 개고생인데.



“이거 끝 아니에요? 뭐 더 있어요?”



제발,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끝이 아니야. 나는 끝이라고 믿고 싶어. 그 고생을 몇 번 더 해야 된다는 소리만 나오지 않길 바라요. 또 해야 된다고 하면 그냥 혀 깨물...... 기엔 치아에도 힘이 잘 안 들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가슴 졸이며 주혜인을 기다렸다. 답은 계속 오지 않았고, 정신 역시 몽롱해졌다. 시야가 흐려지고, 숨을 쉬는 것도 힘들다. 숨을 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숨을 쉬지 않으면 안 되나 싶은 이상한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 X발. 나 진짜 이대로 죽어? 이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그렇게 죽어라 싸우진 않았지. 그냥 얌전히 목 내밀고 날 베어가쇼, 하면서 진작에 죽었지.


이게 시뮬레이션인 걸 알고는 있지만 모든 게 다 사실적이라 그런가, 죽는 것 역시 두려웠다. 지금도 충분히 아프니 죽는 것도 사실적일 것 같다. 아픈 것도 싫고, 죽기는 더 싫다.



“...... 나 진짜 이대로 죽어요......?”



너무하네 정말......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눈이 점차 감기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진짜 죽어야 끝나는 건가 보다 이거.


그때, 갑자기 강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그건 감겨가는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을 찌르고 들어온 빛이 여기가 가상현실이라는 걸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가상현실이면 그냥 곱게 로그아웃이나 시켜달란 말이다.


시발, 죽어야 끝나는 게임 너무 싫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손을 확인했더니, 망가져서 제대로 쓸 순 있나 싶었던 손이 멀쩡한 상태였다. 핏자국 하나 없었다.


손을 굽혔다 펴보고, 이리저리 돌려도 보았다. 손깍지도 껴보고, 손을 조금 아프게 비틀어보기도 했다. 잘만 움직였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닿는 감각도 사실적이었다.


시뮬레이션에서 탈출한 모양이다. 에휴, 너무 잔인한 시뮬레이션이었어.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그 괴물을 겨우 죽였는데 이긴 나도 죽는 건 너무 잔인했지. 물론 져서 죽는 것도 잔인하긴 했겠지만.


확 센터 탈출해버릴까. 사람한테 너무 잔인한 일을 강요하고 있다.

나는 멍하니 몇 번이고 망가져 있었던 내 손을 다시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손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몇 시간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 전부 기억한다. 내가 시뮬레이션에 들어가기 위해 앉았던 갭슐은 안마의자 같은 상태였고, 심지어 벨트가 내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누군가 풀어주지 않는다면 뭘 어떻게 할 수 없을 게 분명한 상태였는데.


그런데 나는 내 손을 잘 들어서 잘 봤네. 심지어 몸도 움직일 수가 있네. 그리고 애초에 깨어난 곳이 캡슐 속이 아니었네.


나는 손을 다시금 이리저리 움직였다. 잘 움직였다. 공기에 닿는 촉감도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그 시뮬레이션 역시, 아주 사실적이었다. 너무 사실적이라 괴물과 싸울 때 온 힘을 다해 개싸움을 벌였을 정도로.


그러니 아마도 여긴 현실이 아니다. 또, 빌어먹을 시뮬레이션 속이지.


...... 내가 진짜 인X션이라도 찍는 거냐고.


작가의말

일이 좀 많아서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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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 시뮬레이션 전투(10) 22.01.18 21 0 9쪽
26 25. 시뮬레이션 전투(9) 22.01.17 19 0 9쪽
25 24. 시뮬레이션 전투(8) +1 22.01.15 20 0 10쪽
24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4 0 9쪽
23 22. 시뮬레이션 전투(6) +6 22.01.13 33 2 10쪽
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29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1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1 4 10쪽
»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2 2 9쪽
18 17. 시뮬레이션 전투(1) +1 22.01.07 40 1 11쪽
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1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4 8 9쪽
15 14.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8) +1 22.01.04 53 4 9쪽
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3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1 5 9쪽
12 11.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5) +2 21.12.31 65 7 11쪽
11 1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4) +1 21.12.30 69 7 11쪽
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2 14 11쪽
9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1 21.12.28 83 10 10쪽
8 7.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1) +1 21.12.27 86 9 12쪽
7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100 8 10쪽
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7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6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6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5 11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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