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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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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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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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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DUMMY

나는 눈을 떴다. 천장이 보인다. 숙소의 천장이 아니다. 옅은 미색의 벽지가 꼼꼼히 발라져 있는, 익숙한 우리 집의 천장.


역시나, 다른 세상에 툭 떨어진 건 그저 꿈이었나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빌어먹을 꿈이었다. 갑자기 일어나보니 전혀 모르는 세상에 나와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의 자리를 꿰차게 되다니. 정신없이 센터로 가서 교육을 듣고, 인권이 없다는 소식도 접하고, 부모님 뻘 되는 분들을...... 아악. 진짜 왜 그랬냐.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내가 떤 주접이 잊힐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입 다물고 했으니까 너만 잊으면 이 세상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 없다고! 그러니까 잊어 나의 뇌!


한참을 나의 뇌에게 잊으라 소리치다가, 문득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긴 그래도 9시 전까지 출근하라고 했는데 우리 회사는 8시 전까지네...... 갑자기 그곳이 조금 그리웠다.



“정신 차려 주서현.”



그립긴 뭐가 그리워. 여긴 퇴사하면 인권은 챙길 수 있지, 거긴 퇴사도 못 해.


아무튼 잡스러운 생각들을 떨쳐내려 노력하면서 침대에서 바닥으로 발을 내디뎠는데, 갑자기 몸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어라. 이게 뭐지.


정말 이상하게도 몸은 아프지 않았다. 아니,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나는 내 눈으로 전부 볼 수 있었다. 분명 일어났을 때는 내 몸 안에서 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마치 나를 제3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꿈은 이곳일 가능성도 크지 않을까.


흔한 클리셰지 않은가. 꿈일 거라 기대했지만 결국 꿈은 아니었던 현실. 내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 클리셰의 주인공이 된 걸까.


쓰러진 몸이 일어났다. 내 몸이 움직이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니 기분이 묘했다.

새삼...... 못생겼네. 좀 더 잘 씻고 살아라 주서현. 머리 개판 된 거 잘 정리하고.


그런데 일어난 나의 몸 뒤편에 있는 창 너머에 이상한 게 보였다. 하늘빛이 살짝 맴도는, 투명한 직사각형. 직육면체라 부르기엔 기이할 정도로 납작한 저것.


나는 저것의 정체를 안다. 윈도우다.


진세희의 교육으로 보게 된 저 윈도우가 왜 저기에 있는 걸까. 그리고 서 있는 내 몸은 왜 저걸 발견하지 못하는 걸까.


분명 투명한 판 그 상태였던 윈도우에 갑작스럽게 금이 가기 시작한다. 맹렬한 속도다. 내가 교육에서 본 자료는 저러지 않았는데. 교육에서 봤던 건 정말 유리창처럼 옆으로 열렸다. 이건 열리는 게 아니라 깨지는 거다.


깨지는 윈도우 안쪽으로 은청색의 비늘이 보인다. 비늘 하나도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비늘이라기보단 쇳덩어리 갑옷 같기도 하다.


윈도우가 맹렬한 속도로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윈도우의 크기는 너무 작아 저 괴물을 토해낼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윈도우가 부서지는 걸까. 아니면 그저 발악일까.


결국 윈도우는 전부 부서졌다. 더는 파란빛의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게이트가 된 것이다.


괴물은 윈도우에서 나오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올 수는 없었다. 1m 정도 되는 크기의 게이트는 괴물에게 너무나 작았으므로.


괴물의 노란 눈이 보였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을 가진 눈이 보석처럼 특이한 색으로 반짝였다. 눈알 하나가 게이트를 거의 꽉 채웠다. 그 몸체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클 게 분명했다.


이윽고 게이트에서는 괴물의 입이 튀어나왔다. 거의 재갈처럼 조금밖에 못 튀어나온 수준이지만, 그래도 나와는 있었다.


나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괴물이 게이트의 경계에 있던 세상을 부수는 것. 그리고 그 입 너머에서, 붉은빛이 밀려오는 것 역시.






나는 그 순간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익숙한 내 집 천장이 아니라 조금 낯선 천장이다. 꿨던 꿈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여기가 꿈은 아닌 게 맞는 것 같긴 하다.


하긴. 내가 인X션도 아니고 꿈속의 꿈까지 꾸긴 어려울 테니까.


아마도 부담감에 이상한 꿈을 꾼 것 같다. 돌아가고 싶다는 내 소망과, 교육에서 봤던 윈도우가 합쳐져서. 그런데 그 괴물은 뭐지. 내가 그 정도의 괴물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


내 옆에서 얌전히 충전되고 있는 내 새로운 핸드폰, 알렉산데르를 뒤집자 시간이 나타났다. 오전 6시 17분.


꽤 놀랐다. 원래는 악몽 비슷한 걸 꿔도 지각만 면할 시간에 일어났었는데, 악몽보단 약한 꿈에도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라서.


출근 시간은 9시 정도. 그러니 남은 시간은 3시간 가량. 할 게 뭐 딱히 없다. 내가 써본 기종이 아니라서 스마트폰 사용도 아직 서툴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바뀌었다는 걸 완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인정해야지. 그리고 인정하지 않기엔 너무나 현실 같으니까. 죽으면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나는 내 목숨 귀한 걸 잘 아니 함부로 죽진 않을 거다. 가상현실에서 죽으면 실제 현실에서 있는 몸도 죽는 영화 있지 않은가. 그것만 잘 생각하고 살아야지.


그런데 할 게 진짜 없다.


...... 미친 척하고 벌써부터 출근을 해봐? 그러나 이 생각은 고이 접었다. 아니, 분명 접으려 했다. 접으려 했는데...... 나는 몰랐지. 내 몸이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출근 준비를 하게 될 거라는 걸.


모든 게 후딱후딱 진행되었다. 마치 나 혼자 1.2배속 세상 속에서 1배속으로 사는 기분도 들고.


버스는 일찍부터 운행되었다. 나는 얌전히 버스에 몸을 실었다. 피곤하지 않은 몸이 참 어색했다. 이능력자는 각성하면 몸도 튼튼해지나보다.


시계는 막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선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회사로 향하는 버스를 타니, 기분이 참 그렇게 짜증날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왜 벌써 출근을 하는 거냐. 출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버스는 중간 중간 불쌍한 직장인들을 싣기 위해 멈춰섰다. 나는 그때마다 바깥만을 보았다. 도시의 매연, 미세먼지, 불빛 대신 풀이 가득한 환경은 오랜만이었다.



“주서현!”



버스가 또 멈춰서 바깥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놀라는 건 내가 놀라야지.”



날 친 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안경을 쓴 여자였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예쁜 건 당연했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 사람은 이곳의 주서현과 친구였겠지.



“근데 너 왜 여기 있는 거야? 지금 시간 7시인데. 원래 더 늦게 출근하잖아.”



그러게요. 제가 뭔 정신으로 여기에 있는 걸까요. 나 되게 게으른 사람인데, 다른 사람 자리 차지했다고 갑자기 사람이 부지런 해지는 걸까요.



“아니, 그건 다 그렇다고 쳐도 너 휴가 아니었어? 일주일이라며. 오늘이 화요일이고 네 휴가 시작은 월요일 아니었나. 맞는 것 같은데. 너 왜 하루만에 출근해? 혹시...... 여기가 그렇게 좋아......?”



어? 뭐라고? 휴가를 받았었다고? 휴가를?


그럼 이 몸은...... 정말 끔찍하게도 휴가 기간에 기억을 잃고 센터에 또 끌려오게 된 거야? 너무 불쌍한데? 근데 그게 나네? 이런 미친?



“뭐야. 놀렸는데 반응이 왜 그래. 뭔 일이라도 있어?”



험악하게 일그러진 내 표정이 좀 심각해 보였는지 여자가 물어봤다. 그렇지만 표정을 쉬이 바꾸는 건 어려웠다. 정말 심란했다. 소중한 일주일의 휴가가...... 사라졌다!



“진짜 뭔 일 있어? 표정 심각한데.”


“그...... 기억상실증.”



하, 기억상실증을 또 내 입에 담게 될 줄은 몰랐다. 드라마나 소설의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다. 거기서 허구한 날 나오는 기억상실증을 또 내 입에 담게 되네.



“뭐? 너도? 이야...... 내 주변 사람들 다 걸리네. 이제 곧 내 차례인가.”



그러나 여자의 반응은 내가 여기 와서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반응하던 사람들과 비슷했다. 비웃지도, 장난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는 거다.


왜 여기 사람들은 누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하면 놀라기보단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일까. 도대체 기억상실증이라고 변명을 한 빙의자들이 얼마나 많았길래.



“그럼 너 나 기억 못하는 거지? 기억 언제까지 나는데?”


“어...... 초면인 것 같습니다.”


“에휴, 우리가 그래도 임마, 무려 9년을 함께 한 고등학교 절친인데.”



어라, 9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해졌다고 쳐도...... 그럼 저 사람은 스물여덟이라는 소리인데?


나는 다급하게 품을 뒤졌다. 젠장, 지갑을 안 챙겨봤다. 거기에 민증도 있는데. 왜 나는 민증이 하늘색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내용은 하나도 보지 않은 걸까.


...... 그래. 민증이 하늘색이라는 충격이 너무 커서 더 볼 생각이 안 난 것도 있지. 그래도 나는 혹시나 민증만 내 몸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어 온갖 주머니를 다 확인해봤다.



“왜. 뭐 찾아. 뭘 찾는데 그렇게 부산을 떠냐.”


“우리 동갑이야? 너 몇 살이야?”


“동갑이지. 그리고 어...... 우리가 아마 스물여섯 아닌가? 고1 때 처음 만났으니까.”



내 질문에 여자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하더니 답했다. 고1 때 처음 만난...... 9년지기 절친. 그러니까 내 나이도 스물여섯.


스물여섯? 스으무울여어섯? 무려 3년을 회춘한 셈이다. 물론 회춘이라기엔 좀 반대였지만 뭐, 나이 만큼은 혼자 회춘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 세상의 주서현이 가진 자리를 꿰찬 게 맞는 것 같다. 그 증거로 스물일곱 때 생겼던 흉터도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좀 속상하긴 하다. 우리 서현이, 언니 나이도 기억을 못하고 자기 나이도 기억을 못하네.”



예. 저 역시 속상합니다. 나는 돌아가고 싶거든요. 괴물도 이능력자도 뭣도 없는 내 세상으로!


나는 최대한 표정을 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창문에 얼핏 비치는 내 얼굴을 봐서는, 딱히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밝은 표정이라기보단 세상 풍파에 다 지친 표정 같아서.


진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냥 내 자리에 맞는 그 위치에 제발 돌려 보내줘.


조상신님들 가능하실까요? 제 입방정도 속으로만 하게끔 막아주셨으니까, 이것도 가능하지 않으실까요?


...... 여긴 아무래도 사람의 정신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거 아니다.


작가의말

라이브연재... 큰일입니다... 진짜 큰일이네요... 쓴 게 없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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