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567
추천수 :
403
글자수 :
116,722

작성
21.12.24 01:12
조회
107
추천
9
글자
11쪽

5. 사람들도 이상하다

DUMMY

이곳은 꿈과 희망도 없다. 방금 진세희의 말을 듣고 확실히 깨달았다.

진세희는 미간을 잠시 짚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벌써부터 깊게 설명하려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별 수 없지요. 모든 국가의 이능력자들은 국가에 의해 관리받습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억제입니다. 전기 충격이나 약물로 당신은 언제든 기절할 수 있어요. 이 워치로요.”



이능력자는 인권이 없는 세상인가요 여기?


물론 이능력자가 국가에 의해 통제가 된다고는 들었다. 그래도 이건 거의 목줄을 차고 있는 거랑 다름없는데?


교육실에 모인 사람들 역시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당연하지. 자유를 즐기던 내가 하루아침에 디스토피아 세상으로 떨어지게 되다니.



“물론 조건이 있긴 합니다.”



진세희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미 통제되고 있다는 것부터가 너무 심란한데요.



“폭주 직전의 상태, 임의로 착용 해제를 시도했을 경우에는 워치가 알아서 작동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위협을 가했을 경우 등등에는 상급자가 처벌을 결정합니다. 매우 주관적이긴 하지만.”



아하...... 인권이...... 없구나...... 우리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건 인권 침해잖습니까!”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듣던 사람들이 모두 반발하고 나섰다. 당연하긴 하지.



“맞습니다. 그래서 도입 초창기에는 아주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뭐, 아주 훌륭히 정착해버렸습니다. 모든 이능력자들은 이능력 신고와 동시에 워치를 착용하게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미신고자의 수도 늘고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모든 이능력자가 그걸 결국 받아들인다는 게 말이 되나, 라는 말을 더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어떻게 이딴 걸 받아들일 수 있어.



“이능력자는 월급도 다 워치로 받거든요.”



...... 그래서 반발이 더 없었던 거군. 돈 앞에서 다들 굴복하셨네.



“이능력자는 모두 국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합법적인 이능력자로 존재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국가의 재산인 겁니다.”


“나는, 나는 나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건 명백한 인권 침해입니다!”


“네, 그리고 이제는 국가도 함께 관리할 수 있게 되셨습니다. 슬프지만 에스퍼에게 인권은...... 하하.”



정말 슬프다. 이 세상 이능력자들은 왜 만족을 한 거야. 님들이 투쟁을 좀 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이 거지 같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 텐데.



“그럼 설명을 이제 더 이어나가겠습니다. 불의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교육은 마쳐야 되니까요.”


교육이고 나발이고 내 인권이 사라졌는데 이걸 뭐 어떻게 하냐......






그래도 결국 교육은 끝났다. 몇 시간이 꼬박 지나고 나서야 나는 강의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아...... 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뭐...... 죽진 않겠지......


진세희는 업무를 마친 뒤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숙소로 데려다주겠다고. 태의헌은 그런 진세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나에게 옥상에 예쁜 정원이 있으니 거기서 쉬어도 된디고 말했다.


남의 의견과 말에 착실하게 휘둘리는 훌륭한 어른인 나는 그 말을 듣고 당장에 옥상 정원으로 갔다. 아니 뭐, 추천해주는데 갈 수도 있지. 나이가 들수록 남이 결정해주길 바라는 법이다.


사실 아는 것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간 거다. 옥상 정원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태의헌이 진세희한테만 온 신경을 다 쓰는 것 같아서. 날 쫓아내려고 내뱉은 말 같았지만 속아준 거다.


그런데 생각 외로 풍경은 정말 좋았다. 노을이 지려 하는 하늘과, 풀과 꽃과 나무들로 가득한 공간. 정말 아름다웠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아름답지 않았지만. 이능력자 인권......


그래도 뭐, 예쁜 걸 보니 기분은 좀 더 나았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길가의 돌멩이처럼 잔뜩 보긴 했지만 풍경 예쁜 거랑 사람 예쁜 건 느낌이 다르니까. 둘 다 좋지만 휴식에는 전자가 훨씬 낫다. 내가 대놓고 쌍욕을 날려도 풍경이 예쁜 얼굴을 구길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잠시 머리를 식히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나는 아마, 차원 이동이든 뭐든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다. 그리고 이 세상의 나는 초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다. 능력은...... 뭐지. 제일 중요한 내 능력 알아보기를 안 했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거야 주서현.


뭐, 어쨌든 나는 이능력자다. 또한 이 세상의 이능력자들은 인권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인권이 없다......?


아, 우울해진다. 너무 슬픈 이야기지 않은가. 원래 있던 세상에서도 인권을 그리 잘 챙김 받진 못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없는 것과 잘 챙김 받지 못하는 건 다르잖아.


머리를 정리해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머리가 아파서 그런 건 아니고, 뭐 아는 게 없어서.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되먹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휴식도 잠시였다. 센터의 옥상 정원의 벤치에 드러눕듯 앉아 있던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라, 주서현 에스퍼?”



키가 나보단 꽤 커 보이는 남자였다. 머리를 뒤로 완전히 넘겼는데 헤어라인과 이마가 정말 예뻤다. 생긴 것도 잘생기고 훤칠했다. 여기 이능력자 관리청이 아니라 연예인 관리청 뭐 그런 거라도 되나. 왜 다 예쁘고 잘생겼지.


목소리도 좋았다. 하긴, 진세희도 목소리가 참 좋았다. 목소리가 좋아서 그 끔찍한 교육 겨우겨우 다 들은 거지, 진세희가 아니라 내가 그런 교육 진행했으면 사람들 다 뭐든 들고 일어났을 거다.



“아...... 네, 안녕하세요.”



대충 인사했다. 좋은 생각이 없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주 에스퍼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지금 센터에 있을 때 아니잖아요. 오늘 뭔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네요?”



네, 그건 말이죠, 제가 아주 더럽기 때문일 겁니다. 찝찝해서 뒤질 것 같아요. 나 처음 왔었던 거기로는 언제 돌아가나. 언제 오세요 진세희 씨. 당신을 옥상 정원에서 간절히 기다립니다!



“음, 무슨 일 있어요?”



이 분은 내 이야기를 못 들으신 걸까. 기억상실증 걸렸다는 거. 하긴 뭐, 나도 소문에 밝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


사장이 탕비실에서 콩나물을 기른다는 이야기도 못 듣고 커튼 쫙 쳐서 푸른 콩나물을 만든 것도 나다. 하하.


근데 솔직히 지가 지 사장실 서랍에다가 잘 놓고 키웠으면......! 주서현, 주서현. 정신 차리자 임마. 그걸로 꼽 좀 먹었다고 빡칠 필요 없다. 사실 왜 그럴 일인지도 전혀 모르겠지만......!



“저, 주서현 에스퍼?”


“아, 제가 기억상실증에 걸려서요.”



말을 예쁘고 정중하게 포장할 기력이 없다. 물론 몸은 예전의 나보다 튼튼하고 건강한 것 같지만 정신이 아주 피로하다. 소설에서나 보던 차원 이동을 하고, 인권도 빼앗기고. 아주 새로워.



“아, 주 에스퍼도요? 센터 사람들 많이들 걸리네. 괜찮아요. 여기 센터 사람들 절반은 걸려봤으니까요.”



남자가 눈을 잠시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다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그 표정에 이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나 궁금해질 정도였다.


여긴 뭐 그렇게 기억상실증 걸린 사람들이 많냐. 전염병이라도 되나? 물론 다 기억을 잃어서 그런 것 같진 않고 변명한 것 같지만...... 의심도 안 가나.


나는 남자의 말에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최악의 인상을 남기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죄송하지만 제가 힘들어서 지금 좀 뒤질 것 같거든요.


그러나 남자는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가도 괜찮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한참을 힘겹게 기절하듯 있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진ᄍᆞ 왜 안 가냐. 뭐 할 말이라도 있나. 그러다 남자의 이름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쉿, 잠시만요. 저기 누구 있어서.”



남자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나도 무심결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그런데......



“...... 키스?”



이게 바로 그 말이랑 글로만 듣고 보던 사내연애라는 건가? 이뤄질 수 있는 거였어?



“저기만 있는 건 아니고 저쪽도 있어요.”



남자가 소곤거리며 다른 쪽을 가리켰다. 언제 있는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서로 입을 맞춰대고 있었다. 뭐지. 기분이 너무 더럽다. 신성한 직장에서 불결한 키스를 하다니. 일에 치여서 미친 건가 다들?



“역시, 사람들 다 로맨틱해요.”



가관의 정점은 내 옆에서 그 꼴들을 보는 남자의 반응이었다. 저렇게들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로맨틱하다니.


저건 로맨틱한 게 아니라 그냥 개또라이다. 어떻게 이능력자 센터라는 여기까지 와서 키스를 하고 이상한 걸 다 할 수가 있는 거지. 신성한 직장에서 이러지 맙시다 여러분!


그렇게 내가 속으로 빌어먹을 커플 타도를 울부짖고 있을 때, 남자는 옆에 가만히 앉아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다 미소가 슬며시 비쳤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이.



“아, 저도 여자친구가 부르네요. 선물 사왔다나 봐요. 먹을 거면 주 에스퍼도 나눠줄게요.”



아하, 여자친구가 있으시겠다......? 근데 그럴만해 보이긴 한다. 선물 좋겠네.



“감사합......”



어라, 그런데 먹을 거라고 해도 여자친구 선물이라면...... 그쪽한테 중요한 거 아닌가......? 왜 나를 챙겨주는 거야. 여기 내 이미지 도대체 어떤 거지.



“아, 기억상실증이니까 내 여자친구 모르죠? 사진 보여줄까요?”



채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는 싱긋 웃으며 제 핸드폰 안의 사진첩에서 사진을 골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보기 싫다고 했으면 어떻게든 보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제 여자친구 예쁘죠?”



와 근데, 정말 예뻤다. 현실에 있었으면 덕질하고 싶었을 정도로 정말 예쁘긴 한데...... 그걸 왜 나한테 자랑해.


그러고 보니 여기 사람들 다 이상하다.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것까진 내 오랜 판소 경력으로 이해한다고 쳐도, 왜 다 사랑을 하고 있지? 사랑 그거 현실에서 제대로 이룰 수 있긴 해?


사실 아까부터 이상했다. 진세희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태의헌도 그렇고, 이능력자 센터의 내부에서 서로를 끌어안던 사람들도 그렇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가설 하나를 세워보자.

...... 나는 혹시 모든 것이 로맨스로 가득 찬 K-로맨스 세계에 떨어지게 된 건 아닐까?


작가의말

작심 사일인지 오일인지 성공! 비축분이랄 것도 없긴 했지만...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네요... 과연 숨가쁜 추격전의 끝에 승리하는 것은 서체인가 탈락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26. 시뮬레이션 전투(10) 22.01.18 21 0 9쪽
26 25. 시뮬레이션 전투(9) 22.01.17 20 0 9쪽
25 24. 시뮬레이션 전투(8) +1 22.01.15 20 0 10쪽
24 23. 시뮬레이션 전투(7) +1 22.01.14 25 0 9쪽
23 22. 시뮬레이션 전투(6) +6 22.01.13 34 2 10쪽
22 21. 시뮬레이션 전투(5) +3 22.01.12 29 2 9쪽
21 20. 시뮬레이션 전투(4) +8 22.01.11 41 6 9쪽
20 19. 시뮬레이션 전투(3) +7 22.01.10 51 4 10쪽
19 18. 시뮬레이션 전투(2) +2 22.01.08 42 2 9쪽
18 17. 시뮬레이션 전투(1) +1 22.01.07 40 1 11쪽
17 16. 너무 힘들다(2) +1 22.01.06 52 9 9쪽
16 15. 너무 힘들다(1) +1 22.01.05 54 8 9쪽
15 14.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8) +1 22.01.04 53 4 9쪽
14 13.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7) +1 22.01.03 53 3 10쪽
13 12.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6) +2 22.01.01 62 5 9쪽
12 11.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5) +2 21.12.31 65 7 11쪽
11 1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4) +1 21.12.30 69 7 11쪽
10 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3) +1 21.12.29 83 14 11쪽
9 8.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2) +1 21.12.28 83 10 10쪽
8 7.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1) +1 21.12.27 86 9 12쪽
7 6. 그런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1 21.12.25 100 8 10쪽
»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8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7 10 13쪽
4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5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6 75 10쪽
2 1. 세상이 이상하다(1) +9 21.12.20 373 80 9쪽
1 프롤로그 +27 21.12.20 446 112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