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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한 곳이 어딘가 이상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서체
작품등록일 :
2021.12.19 22:59
최근연재일 :
2022.01.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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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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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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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2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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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 세상이 이상하다(3)

DUMMY

“주서현 에스퍼, 많은 혼란이 있을 겁니다. 괜찮아요. 주서현 에스퍼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음, 저도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건 잘 아는데요. 저는 세상 모든 걸 제 탓을 하고 사는 미련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게 살면 홧병으로 다들 죽지.


그러나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봐선 자기 잘못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진 않았던 모양이다.


음...... 다른 세상에 오게 된 잘못은 자기 자신보단 신에게 묻는 걸 추천한다. 그게 깔끔하고, 원망도 편하고, 다 괜찮다.


여자는 위로하듯 내 손을 턱하고 붙잡았다. 이 사람도 얼굴만큼 목소리가 참 고왔는데, 손 역시 고왔다. 크기만 한 내 손이랑은 너무 다르다. 나도 나름 사랑받으며 곱게 큰 사람인데. 물론 곱게 키웠다고 해서 곱게 자라진 않았다.


손을 붙잡힌 채로 얌전히 걸어 나갔다. 뭔가 연행되는 기분도 들었는데, 내 몰골이 너무 처참해서 기분이 더럽다기보다는 그냥 참 미안했다. 특히 내 손을 잡고있는 여자한테는 더.



“그...... 제가 지금 많이 더러워서요...... 놓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애써 돌려 말하지만 결국은 제발 놔달라는 소리다.



“에이, 괜찮아요. 저도 술 먹고 일어나면 서현 씨보다 더한 몰골인데요 뭐.”



그렇게 말씀하는 것치곤 너무 예쁘신데......? 전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내가 열심히 꾸민 얼굴이 화장 안 한 그쪽 민낯보다 별로일 것 같은데.


나는 슬쩍 내 손을 빼내려는 시도도 몇 번 했다. 그런데 나보다 키도 체구도 더 작은 여자가 나보다 더 셌다. 몇 번 손을 빼내려다가 내 손이 아예 납작한 호떡 꼴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포기했다.


나는 결국 몇 번을 내 손을 꽉 붙드는 여자에 의해 차에 탈 때까지 손을 붙잡히고 있었다.




차의 내부는 참 특이했다. 그러나 아주 이질적이진 않았다. 왜 이질적이지 않냐면,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본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조수석 머리 받침이 사라졌다는 건 아니다. 그건 아니고,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상 매체에서 주구장창 나오던 그 모습들을 딱 모아놓은 생김새였다.


운전사는 없고, 차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자율주행 자동차. 어렵다는 기술이라 들었는데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차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내 앞의 의자에 앉은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자, 반가워요 주서현 에스퍼. 저는 기억상실자 이송 및 교육을 담당하는 에스퍼 진세희라고 해요. 옆은 저랑 똑같이 기억상실자 이송 및 교육을 담당하는 태의헌 에스퍼.”


“반갑습니다. 태의헌이라고 합니다.”



진세희와 태의헌이 꾸벅 인사했다. 내가 흔히 본 성과 이름은 아니라 기억에 잘 남을 것 같았다.


근데 태의헌 저 사람은 진세희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설마 좋아하나? 상사가 좋을 수도 있긴 하나?



“아...... 넵......”



진세희는 주변에 있던 문서 받침대를 꺼내 들었다. 종이가 끼워져 있는 것 같은데, 내 상태라도 기록하려나.



“많이 혼란스럽죠? 갑자기 기억이 뚝 사라졌으니까요. 정확한 치료 및 교육을 위해서 주서현 에스퍼가 잃은 기억이 얼마만큼인지를 알아야 될 것 같아요. 마지막 기억은 언제인가요?”



내 마지막 기억은...... 술 먹고 침대에 다이빙한 게 끝인데...... 그건 여기가 아니었단 말이지.


내가 답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자 진세희는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물어왔다.



“음...... 아예 기억이 안 나나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마지막 기억이 아니라, 기억나는 가장 최신의 사건을 떠올려봅시다. 날짜를 알 수 있는 거라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요. 좋아하는 드라마의 9화 방영일이었다던가, 친구의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던가, 뭐 그런 것들이요.”



그것도...... 딱히......?



“이런...... 좋은 상황은 아니네요. 아,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기억상실자 분들도 대부분 주서현 에스퍼 같은 상황이거든요. 태어났을 때부터의 기억이 전부 사라진 사람들.”



진세희가 미간을 찌푸리고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저 사람 연예인이었으면 팬 엄청 많았을 것 같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을 것 같고.


내가 감히 추측해보자면 그건 정말 기억이 다 날아간 게 아니라 나처럼 다른 세상에 뚝 떨어졌거나 빙의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아주 가끔 1퍼센트의 가능성으로 진짜 기억 상실자가 있을 수도 있고.



“센터에서 받을 교육을 간단하게 설명해드릴게요. 다행히 오늘이 교육 시작일이라 바로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설명을 제일 처음 할 거예요. 이상하게 기억상실자 분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어떤 건지는 알아도 이곳은 모르시더라고요.”



그 사람들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여기에 빙의한 거네. 내 추측이 확실해지는 것 같다.



“주서현 에스퍼는 에스퍼라서 에스퍼 전용 교육으로 수강하실 거예요. 에스퍼 전용 교육은 민간인 교육이랑 다른 점은 크게 없는데...... 다들 들으면 조금 충격을 받으시더라고요. 에스퍼의 국가 통제에 대해서요.”


“네?”


“에스퍼는 발현 즉시 국가에 통제되거든요. 거의 국가 자산이죠. 합법적인 이능력자로 존재하려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서요.”



아니 내가 지금 뭔 개소리를......



“그러니까 그 말은, 제가 에스퍼니까...... 제 인권이 없다는 소리인가요?”


“극단적이긴 한데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겠죠? 죽기 전까지는 계속 되니까. 그게 법이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뭐 그딴 쓰레기 같은 법안이......”



왜 민주주의는 꽃피우긴커녕 퇴화한 것인가!



“처음엔 많이들 그렇게 반응하세요.”


“나중은 달라진다는 건가요?”



그 말에 진세희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 예쁜 얼굴에 살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음, 어떤 곳이든 안 그런 곳은 없겠지만 이능력자 특히 심하거든요. 에스퍼 갈아 넣어서 겨우겨우 유지하는 곳이라. 동료가 한 명이라도 더 느는 게 좋죠.”



...... 무섭다, 여기. 나는 과연 잘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차가 이능력자 센터의 앞에 멈춰섰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건물인데 정말 컸다. 보안과 외부인 출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곤 하는데, 내가 보기엔 여기 들어온 에스퍼들의 탈주를 막기 위한 게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난 지금 탈주하고 싶거든.



“자, 들어가 보실까요?”



아니요...... 전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나 내 간절하고 소소한 소망과는 달리 진세희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센터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힘이 너무 셌다. 물리적으로 저 몸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닌데.


뒤에 있던 태의헌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해보았지만 가볍게 씹혔다. 근무태만 아니냐 저건!


내가 이렇게나 쉽게 끌려가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왔다. 쇳덩어리보다 강하진 않던 나조차 언제나 튼튼했던 알렉산더를 부숴먹었으니까. 거기에 진세희는 나보다 강할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에스퍼 하면 당연히 가이드가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왜 여기서 들은 내용에 가이드라곤 없지.



“저, 진세희 에스퍼님. 혹시 에스퍼가 능력을 많이 사용해서 파장이 불안정해지면 그걸 완화 시켜주는 그런 사람들은 없나요?”



질질 끌려가다가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다. 가이드의 역할을 풀어서 이야기했는데 나름...... 완벽한 오타쿠처럼은 안 보일 거라고 믿고 싶다.



“오, 안 그래도 기억상실자 분들은 그런 거 많이들 물어보세요.”


역시, 그 사람들 빙의자나 차원 이동자 맞다니까.


아무튼 나는 진세희의 답을 기다렸다. 가이드가 있다면...... 좀 끔찍할 것 같은데. 신체 접촉은 유쾌하진 않으니까.


진세희는 아까처럼 환히 웃으며 답했다.



“없어요. 그냥 약 먹고 폐쇄실에서 버텨야죠. 안 죽으려면.”


“네? 아니 그럼 에스퍼들은 그냥 죽는 거예요?”



초능력자는 에스퍼라고 부르면서 가이드버스는 아니야......? 이게 뭐야......?



“파장 조절 능력자 분들이 있기는 해요. 그런데 그분들도 다 에스퍼라서 능력을 많이 쓰면 파장이 불안정해지거든요. 고급 인력이라 정말 급할 때 아니면 그분들 못 부르죠.”



진세희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여긴 가이드버스 세계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궁극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럼, 그럼 왜 초능력자들은 에스퍼라고 부르는 거예요?”


“간지나잖아요.”


“..... 음......”



진심이신가.



“하하, 장난이고요, 구별을 위해서 사용해요. 한국어로 많이들 쓰는 단어는 영어 음차로 표기해 사용하고 있어요. 게이트도 특수 용어죠.”



게이트...... 그래. 네가 나올 때도 됐다 여기서라면. 근데 초능력자란 용어는 왜 구별해서 쓰는 걸까. 이 세상에선 많이들 쓰는 건가......?



“자, 다 왔네요. 들어가자마자 교육 시작할 거예요.”



내 의문이 채 해결되기도 전 진세희는 어느새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나를 질질 매달고는.



“어, 저 아직 씻지도 못했는데.”


“괜찮아요. 다들 급하게 나온 사람들이라 비슷비슷해요. 아, 저기도 한 명 오네요. 교육 시작 직전에도 기억상실자들은 많아서요.”



그러나 진세희가 가리킨 쪽에는 나같이 추레한 몰골의 사람이 있진 않았다. 나처럼 바로 교육 직전에 바로 도착한 탓에 앞에서 뭐라 간단한 안내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저게 추레하다면 세상의 절반은 추레한 게 아닐까.


얼굴은 당연히 제외했지만 입은 옷만 봐도 내가 제일 심각했다.



“...... 딱히, 비슷비슷한 것 같진 않은데요.”



떨떠름하게 답했다. 심지어 생긴 건 비교도 안 될 수준이다. 여기 왜 다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있지. 내가 정말 이상한 세상에 온 게 맞긴 하구나.



“에이, 뭐가요. 아무튼 들어가요. 이제 시작해야 되니까요.”



진세희가 문을 벌컥 열었다. 안에서 언뜻 빛이 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여긴 이상한 것 투성이다. 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래, 뭐가 와도 다 받아주겠다. 나는 할 수 있다! 다 와 봐라!


작가의말

작심삼일 성공했네요~ 과연 작심사일은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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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사람들도 이상하다 +1 21.12.24 108 9 11쪽
5 4. 세상이 이상하다(4) +3 21.12.23 127 10 13쪽
» 3. 세상이 이상하다(3) +1 21.12.22 156 16 11쪽
3 2. 세상이 이상하다(2) +6 21.12.21 276 7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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