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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블랑 님의 서재입니다.

역대급 무역천재가 사업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10.16 10:21
최근연재일 :
2023.12.18 19:02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3,510
추천수 :
2,170
글자수 :
417,030

작성
23.12.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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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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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7화 발없는 소문

DUMMY

오후 네 시가 좀 넘었을 때였다.


또다시 민하경 이사에게서 호출이 왔다.

회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때까지는 필요에 의해 어차피 자주 연락을 할 터.

하던 일을 멈추고 이사실로 걸음을 옮겼다.


탁자 위에 파일을 쌓아놓고 서류를 들여다보던 민하경 이사.

이사실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팀장마다 만나서 업무를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북아프리카 팀장이 공석이네요?”

“예.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되어서 지난주에 해직되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한쪽 눈꼬리가 올라간다.

의구심과 도전적인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북아프리카팀 윤 과장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더군요.”

“곧 새로운 팀장 발령이 있을 겁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죠? 그런데 윤 과장이 그러던데요? 자세한 내용은 비서실 차진구 실장에게 물어보라고요.”


눈동자에 이채를 띄며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현재 북아프리카 업무는 차 실장이 제일 잘 안다네요? 어떻게 현장에서 뛰는 전문 팀원이 비서실 실장에게 실무를 물어보라고 할 수가 있는지....”


묘하다는 눈빛과 표정.

잠시 그렇게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차 실장이 그 업무에 정통하고 뛰어난 전문가인가 하고 제가 인사과에 확인을 좀 했거든요. 그런데 너-어무 예외던데요?”


뭐, 새롭지도 않다.

내 이력서를 봤다고 하는 말을 이렇게 고상하게 돌려서 말하고 있네.


“북아프리카 쪽 업무에서 궁금하신 게 어떤 것인지요?”


자잘한 일들이야 그쪽 과장이 더 잘 알겠지만 큰 덩어리는 이미 내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있다. 그래서, 그녀를 만족시킬 만큼 묻는 대로 속 시원하게 모두 대답해 줄 수 있다.


“알제리의 수도가 알제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 거기가 몇 시죠?”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사장실의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흘끔 바라보았다.


“우리와 시차는 8시간입니다. 지금이 오후 4시 12분이니 거기는 오전 8시 12분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그쪽에 있는 Sole Agent(독점 판매점) 직원들 조금 있으면 출근하겠네요?”

“그럴 겁니다.”


설마 하면서도 어쨌든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럼 그쪽 담당자가 출근하는 대로 통화가 가능할까요? 이번 기회에 인사나 나누고 싶은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 그냥 전화 통화 말고요. 가능하면 화상회의를 하고 싶은데... 그쪽도 화상회의 가능한 시스템이 있나요?”

“예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전에 있던 팀장도 회의실에서 화상회의를 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럼 잘됐네요.”


마치 무슨 쾌재를 부르는 듯한 말투로 웃음을 띤 그녀.


“그럼 나하고 차 실장 둘이서 한번 그쪽 담당자와 인사 좀 하죠.”

“......”

“괜찮죠?”

“미리 약속된 것이 아니라서 조금 당혹스럽긴 하지만... 알겠습니다.”


솔직한 내 말에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금 내가 무슨 기싸움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기본 예의는 지키고 싶은데 말이다.


사내에서 돌아가는 내용을 철저하게 숙지하기보다 먼저 해외 독점 판매점 담당자와 회의를 하겠다니.

벌써 그녀의 속내가 눈앞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네.


기본적인 내 능력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그녀의 의도가 틀림없다.

역시 차진구의 이력서는 그 정도로 쇼킹 했겠지?


특히 이렇게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해외파 출신의 엘리트의 눈에는 더욱더 그렇지 않았겠는가?


사장이 나에 관해서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해 놓았든,

그녀가 눈으로 본 나의 객관적인 자료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하지 않겠는가.


여튼, 비서실로 돌아와 알제의 새로운 독점 판매점인 Oasis Car Detailing 으로 부지런히 이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갑작스럽게 화상회의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상대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쪽에서 더 서포트를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는 간결한 내용. 달콤한 꿀을 발라놓은 당근이면 그쪽도 좋은 기회라 여기고 달려들 터.


다섯 시 반 경에 울리는 전화.

알제 거래처의 대표인 아메드 벤 살라(Ahmed Ben Salah)

역시 발광하는 무지갯빛 미끼를 향해 달려들어 덥석 물었다.



* * *




아담한 크기의 화상회의 실.

커다란 모니터 앞의 테이블에 민하경 이사와 내가 앉았다.


곧 화면에 나타난 아메드.

머리에 터번을 두른 그가 두 손을 모으고 우리를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아쌀라무 알레 쿰.”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이라는 인사를 건넨 화면 속의 사내.


“몇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화상회의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AutoSweep에 새로 오신 이사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첫말을 그렇게 꺼낸 내가 옆에 앉아 있는 민 이사를 가리켰다.


“총관리자이신 민하경 이사님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민하경입니다.”


그렇게 영어로 서로 인사한 후 내가 본격적으로 대화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아직 정확하게 비즈니스 파악도 안 된 것이 뻔한 민 이사.

비즈니스 대화를 하는 내 옆에서 뒷짐을 지고 대화의 흐름을 따라오기 바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번에 선적한 미니 더스터 5,000 피스는 오아시스사에서 요청한 대로 디자인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실물을 받아보시고 마음에 드셨는지요?”

“시장에서 반응이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손에 쥘 때 엄지 손가락에 걸리는 부분이...좀... 한국인과는 달리 알제리 성인의 엄지가 닿는 곳이 5-6밀리 정도 위쪽이다 보니...”


그렇게 말한 그가 자신의 주위를 살펴본다.

그런 그의 의도를 알아챈 내가 얼른 가방에서 준비해 온 미니 더스터를 꺼내 들었다.


“이렇게 5밀리 정도 위쪽에 매끄럽게 라운드 굴곡을 넣으면 되겠습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제가 급하게 화상회의를 준비하느라 샘플을 챙기지 못했네요.”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저희 측에서 항상 오아시스 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만은 기억해 주시고요.”


노란색과 초록색 빛깔의 미니더스터.

내 손에 쥐어진 미니 더스터가 올올이 흔들리는 것을 본 민 이사.

입꼬리가 올라가며 피식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화상회의는 삼십여 분 만에 끝이 났다.


“누구였죠 상대방이? 아메드 벤 살라. 라고 했나요?”


자리를 정리하는 나를 돌아본 민 이사가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름이 아메드고 미들네임이 벤이군요? 살라가 성이고요? 그럼 미스터 살라 라고 불러야 하는데 자꾸 대화 중에 미스터 아메드라고 하더군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마치 그런 쉬운 것도 구분하지 못하냐는 그런 표정.


“민하경 이사님?”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내가 입을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슬람 쪽에서 이름은 미국이나 다른 서양인들의 문화와는 좀 다릅니다.”

“......”

“벤 살라라는 것은 영어로 Son of Salah 라는 의미로 붙여진 겁니다. Salah 는 기도 또는 숭배라는 의미고요. 물론 민 이사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미스터 살라 라고 불러도 괜찮지만, 그냥 미스터 아메드라고 불러달라고 그분께서 처음부터 요청하셔서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겁니다.”

“아... 그래요?”

“예. 그리고 혹시 다른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다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서류와 미니 더스터를 가방에 넣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당장은 특별히 궁금한 것은 없군요.”

“알겠습니다.”


가방의 지퍼를 닫고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또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그럼 전 이만...“

”아! 그런데... 그 미니 더스터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발을 멈추고 돌아섰다.


”색깔이 좀 그렇지 않아요? 독특한 색과 밸런스를 모험적으로 실험해보는 건 괜찮겠지만 그래도 좀 더 세련된 색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한데요. 뭐 내가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美)적인 감각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녀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그 미니 더스터의 색을 본다면 대부분 그녀와 같은 평을 할 터.

수많은 아름다운 색 중에서 초록색의 손잡이에 황금색의 올이라니...


그래서 그녀는 그것이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린다고 느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린(Green)은 이슬람국가에서 매우 중요한 색입니다. 민 이사님도 잘 아시겠지만요. 이슬람교도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만큼 중요해서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서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노란색과 황금색은 부(富)를 나타냅니다. 자신의 정체성 위에 쌓아 올려진 부(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콤비네이션이 있을까요?“

”......“

”서양의 세련됨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다른 문화에 적용하지 않으시는 것이 성공적인 비즈니스에서 기본적인 스탠스라고 생각합니다만...“

”......“


별것도 아닌 내용을 가지고 잘난 척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기초 중의 기초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과 북유럽 몇 나라와의 교역만을 해오던 업체에서 그 자리에 오른 민 이사였다.

어느 회의건 그녀의 생각이 중심에 서 있던 것이 익숙한 그녀.

그런 그녀의 자존심에 어쭙잖은 내가 엄청난 스크래치를 냈다는 걸 난 깨닫지 못했다.


속으로 얼마나 커다란 분노를 느꼈겠는가.

용암전문대라는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2년제 전문대를 나온 놈이 자신의 앞에서 아는 척을 하다니...

하지만 역시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완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대하는 그녀를 뒤에 남겨놓고 나는 비서실로 향했다.



* * *




살다 보면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기도 한다.

아니, 거의 그런 수준의 미스테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침 회의가 끝나고 외근을 준비 중이던 오 부장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차 부장, 진일홀딩스에서 스카웃 제안 받았었다면서?“


뜻밖의 말에 한참 들여다보던 모니터에서 오 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전혀 모른다는 투로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뭘 또 그렇게 오리발을 내밀고 있어? 이미 다 아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다니?

나는 사장에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진일홀딩스의 오장석 이사도 그런 말을 언급한 적이 없고.

그쪽에서 나 이외의 사람을 컨택 했을 거라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뜻밖에 마치 정말로 직접 듣기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오 부장.


”그래서 혹시 그리로 옮겨가는 거야?“


은근한 목소리로 슬쩍 물으며 오 부장의 나의 표정을 살핀다.

사장에게 자주 욕은 들어먹어도 영업으로 짬밥이 벌써 몇 년이야?

귀신같은 촉으로 그렇게 나를 떠보는 오 부장.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의 흐린 빛 속에 숨길 수 없는 걱정스러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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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발없는 소문 +2 23.12.18 335 17 12쪽
66 66화 다가오는 변화 +2 23.12.16 395 18 12쪽
65 65화 의외의 접촉 +2 23.12.16 390 19 12쪽
64 64화 우연인 듯 필연인 듯 +3 23.12.15 431 17 12쪽
63 63화 모든것은 계약대로 +2 23.12.15 427 19 13쪽
62 62화 설치된 시한폭탄 +3 23.12.14 432 20 14쪽
61 61화 줄다리기 +4 23.12.13 459 18 12쪽
60 60화 그림자속으로 +3 23.12.12 489 20 12쪽
59 59화 침묵의 맹세 +4 23.12.11 541 24 13쪽
58 58화 라이벌 사의 계략 +3 23.12.09 572 22 13쪽
57 57화 그 남자의 사정 +2 23.12.08 569 21 12쪽
56 56화 더스터 디자인의 비밀 +3 23.12.07 620 24 12쪽
55 55화 해결의 한걸음 +2 23.12.07 614 23 12쪽
54 54화 사건의 파장 +3 23.12.06 658 24 13쪽
53 53화 뜻밖의 제안 +5 23.12.06 649 23 12쪽
52 52화 무녀의 후손 +5 23.12.05 644 24 12쪽
51 51화 낯선 만남 +4 23.12.04 681 26 12쪽
50 50화 악마를 보았다 +3 23.12.03 743 24 12쪽
49 49화 소문 +4 23.12.02 728 26 12쪽
48 48화 몬스터 길들이기 +4 23.12.01 763 23 13쪽
47 47화 타석에 들어서다 +3 23.11.30 784 26 12쪽
46 46화 첫 번째 대화 +1 23.11.29 769 30 14쪽
45 45화 사장 아들의 등장 +5 23.11.28 809 28 12쪽
44 44화 찾아드는 행운 +3 23.11.27 842 27 13쪽
43 43화 앨리슨 드부아 +5 23.11.26 866 3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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