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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강과 먼지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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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6.09.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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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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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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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2-100. 개와 쥐의 왕 (3)

DUMMY

바투가 홀로 나가자 그곳에 나무 거인처럼 거대한 길스인과 모피 망토를 두른 장발의 아키아족, 촌스러운 주황빛 머리의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공화국의 칼리지가 세상 전부인 줄 아는 도련님들처럼 깔끔한 토가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유행이 지난 야만인풍 헤어스타일과 수염, 그리고 잔근육과 자잘한 흉터가 섞인 팔뚝이 헛똑똑이 머저리가 아닌 사내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홀 안의 건달과 포주 등 각종 악당들은 갑작스러운 손님을 보고 묘한 긴장감을 느꼈는지, 다들 어정쩡한 자세로, 적대도, 호의도 보이지 않은 채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기야, 거구의 길스 군인, 아키아족, 거대한 하이에나를 거느린 남자를 보면 모두 저 반응일 터였다.


그런 긴장감이 가득한 공간에 다레온 저 혼자만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바투가 나타나 말했다. 모두 깜짝 놀라며 바투를 봤는데, 다들 눈빛으로 이 수상쩍은 손님이 누군지 묻고 있었다. 바투는 부하들에게 저분들이 누군지 설명해 주는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제법 익숙한 휘파람 소리였는데, 잠시 후, 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나운 개들이 으르릉 낮게 울며, 정체불명의 손님들을 에워쌌다.


“빌어먹을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장발의 아키아족 코바로스가 말했다. 그는 바투의 기억보다 머리를 더 길게 자랐는데, 어째서인지 수염은 깔끔하게 밀어버렸다.


바투는 코바로스의 날 선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레온을 바라봤다. 놈은 사나운 개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눈썹 하나도 말이다.


그는 앞으로 한 발자국 걸으며 가볍게 말했다.


“칸, 쿤, 란.”


그러자 칸, 쿤, 란이라는 거대한 하이에나가 열 마리가 되는 개들을 향해 각각 인상을 쓰며 다가갔다. 어찌나 덩치 차이가 심했는지, 바투의 개가 강아지로 보일 지경이었는데, 아까 전까지 사납게 으르렁 되던 개들이 어느새 하나둘 꼬리를 말고 점점 뒤로 물러섰다.


혹시나 싶어 말하지만, 결코, 이 개들이 약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 뒷골목에서 사람을 포함해 더 이상의 적수가 없을 정도로 사나운 놈들이었다.


돈을 빼돌린 부하나, 도망치는 창녀 등 수많은 인간들이 이 개들에게 물려 죽었으며, 길거리에 넘치던 들개조차 이 개들과 투견싸움을 해 하나둘씩 목이 뜯겨 죽었다.


겁쟁이처럼 구는 것은 모두가 보는 맞아 죽거나, 산채로 토막 나 죽었기에 이 개들은 이 뒷골목의 건달들 못지않게 성격이 사납고, 고약했다.


허나, 그런 개들조차 전쟁터에서 라기아족과 싸우고, 그 시체로 배를 채운 하이에나 앞에 꼬리를 말았다. 아니면, 태생적 한계를 못 뛰어넘던가.


그렇게 개들에게 둘러싸였던, 다레온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바투의 코앞까지 다가올 수 있었다. 다레온이 미소를 짓더니 양팔을 벌렸다. 바투가 싫다는 듯 말했다.


“아, 제발 하지 마.”


허나, 다레온을 그 말을 무시하고 바투를 형제처럼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그러니까 놔, 한 대 때리기 전에. 나 대신 저기 있는 동성애자들이나 안아주라고.”


다레온은 바투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오히려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바투의 어깨에 양손을 얹은 채 그를 훑어보았다.


“고작, 일 년 만인데, 정말 몰라보게 변했네?”


“너도 몰라보게 변했다. 도대체,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머리카락이랑 수염은 뭐야?”


다레온이 바투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시리온 각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셔서. 썩 나쁘지 않아. 라기아족 상대할 때 좀 거부감이 줄어들거든.”


“네가 언젠가 이럴 줄 알았지. 돈 많은 귀족 나리 남창 노릇 할 때가 말이야. 공격이야? 수비야?”


그때, 툴리오가 끼어들었다.


“보스, 대화 중에 죄송하지만, 이분들은.....?”


바투가 툴리오와 주변의 부하들을 훑어보았다. 그런 다음 자연스레 다레온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아피투스 가문의 수장 디다레온. 현재 공화국의 군인이자, 우리 사업체의 첫 번째 투자자이기도 하지. 내 친구기도하고. 모두 인사하도록.”



가벼운 인사를 마친 후, 때 이른 만찬이 시작되었다. 투박한 식탁 위에 투박한 산해진미가 올라왔는데, 소스와 함께 졸인 미트볼과 갓구운 빵, 버터, 소시지, 햄 그리고 푸줏간에서 막 잡은 새끼돼지 통구이와 양 갈비 따위가 올라왔다.

건조한 식사에 시달린 코바로스는 졸인 미트볼 소스에 양갈비를 푹 찍어 우악스럽게 뜯어먹었고, 마커스는 덩치와 다르게 나름 품위를 지켜 천천히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레온은 말없이 식탁 위를 훑어보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바투가 새끼돼지 뒷다리를 뜯어 먹으며 물었다.


“왜 안 먹어?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다레온은 웃을 뿐이었다.


“아니, 그냥 기분 좋아서. 고작 일 년 만에 네가 이런 식사를 우리에게 대접하다니 놀라워서.”


바투가 으스대며 말했다.


“일 년이면 긴 시간이지. 이 거리와 이 건물이 그 증거고.”


“그래?”


“그렇고말고.....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남자 거시기나 자르던 미친 창녀들의 소굴이었고, 이 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어. 사방이 폐허에, 미친 창녀들투성이였지. 옳지 못했어, 신의 의지에 반하는......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또 신의 의지에 부합하는 성스러운 곳이 됐지.”


코바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비꼬는 어조로 물었다.


“신의 의지에 부합하고, 성스럽다고? 여기, 도대체 어디가?”


“남자가 여자를 때려 패고, 여자는 공포에 떨며 질질 울잖아? 그게, 바로 신의 의지에 부합한 거지. 그게 아니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센 이유가 뭐겠어?”


“오, 신이시여. 이놈을 지옥에 끌고 가 주소서.”


“나한테 강간당한 여자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동전을 하나씩 받았으면 부자가 됐을 텐데.... 아니지, 난 이미 부자잖아? 이 뒷골목의 왕이니 말이야. 안 그래 아키아족?”


바투는 그렇게 말하곤 킬킬 웃을 뿐이었다. 생리적 혐오감 탓에 코바로스는 고기를 뜯으면서도 인상을 찌푸렸고, 마커스의 얼굴도 굳어졌는데, 유일하게 다레온 만큼은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그래,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고생 많았겠어.”


“남자라면 열심히 살아야지....... 아, 맞다! 중요한 게 아니라 깜빡하고 말 안 할 뻔했네. 나 마누라들도 얻었어, 정확히는 애인들이지만. 일단, 알아 두라고.”


코바로스가 인상을 쓰며 다시 물었다.


“마누라.......들? 뭐?”


“설명하는 거보다 보는 게 빠르지. 야! 누가 내 여자들 좀 데려와!”


바투의 명령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주먹들이 한 무리의 여자들을 끌고 왔다. 스무 명이 넘었는데, 나이가 많은 것부터 어린것까지 전부 바투 취향의 옷을 입고 있었다. 벌거벗은 것보다 수치스러운 차림 말이다.


그 외에도 그녀들은 하나같이 세상이 끝난 듯 죽은 눈을 하고 있었으며, 목에는 금으로 도금한 쇠사슬을 노예처럼 둘렀는데, 눈 아래에는 피눈물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개중에 몇몇은 임신했는지 부푼 배를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코바로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째 다들 나이 차가 좀 나는 거 같은데, 그리고 좀 닮은 사람들도 있고. 혹시......”


“아마, 혹시가 맞을걸? 저 중 몇몇은 모녀, 자매간이니까.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도 있고.”


바투가 낄낄 웃으며 대답하자, 코바로스와 마커스는 음식을 먹다 말고 너무 놀라 바투를 봤다. 바투가 뻔뻔스럽고도 자랑스레 말했다.


“아, 왜? 난 승자의 권리를 행한 거뿐인데..... 오해하지 마. 어디 잘살고 있던 것들을 납치해 온 게 아니니까. 나한테 덤볐던 머저리들의 마누라와 자식, 그리고 며느리들이야.

저기 임신한 여자 셋은 기름자루라고 불리던 머저리 밀수업자의 아내와 딸들이고, 저기 가슴에 청동 고리를 단 것들은 피자노 노리의 아내와 딸, 며느리, 손녀 년들, 그리고 나머지는 퇴역 군인인 마르케 무소라는 노인의 딸과 조카들이고..... 지금은 전부 내 마누라지만.”


바투의 말에 코바로스는 물론,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마커스조차 혐오감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전쟁터에서 적군의 아내와 딸을 탐하는 경우는 적잖게 있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제아무리 폭력이 난무한다 해도 도시에는 일정한 질서란 게 있었는데, 바투는 그러한 규칙마저 비웃듯 적들의 가족을 우스꽝스럽게 장식해 트로피처럼 자랑하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잔인함이었다.


그때, 다레온이 더욱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바로, 산 시체나 다름없는 그녀들 앞으로가 정중히 인사한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부인들. 아피투스 가문의 디다레온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레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 광경은 뭐라고 빗대어 설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이면서도 뒤틀려있었다. 마커스는 물론, 코바로스 심지어 바투와 그 마누라들조차 당황케 하였는데. 허나, 다레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전 바투의 친구입니다. 혹여, 어려운 일이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마커스, 코바로스 너희도 뭐해? 인사드려야지.”


그 말에 마커스는 명령을 받은 군인처럼 바로 바투의 트로피 아내들에게 정중히 인사했고, 코바로스 역시 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인사하는 시늉을 했다.


그녀들은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다레온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물러나.”


바투가 실망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들은 곧장 물러났는데, 그녀들이 물러난 후 바투가 다레온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것들에게 그리 인사한 거야?”


다레온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왜 뭐가 문제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응....... 네 아내건, 애인이건, 내겐 제수씨들이니 예의를 갖춰 인사한 건데, 내가 혹시 무슨 실례라도 한 거야?”


바투는 물론 코바로스까지 따지려고 하였는데, 이내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바투가 맥이 빠진 듯 말했다.


“가끔씩 여기서 가장 미친놈은 내가 아니라 이 녀석 같다니까.”


“억울하군.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음.... 그건 그렇고 이 소시지 참 맛있네. 어디서 산 거야?”


다레온이 창자 소시지를 하나 집어 먹으며 말했다. 재료는 다르지만, 라기아식으로 만든 소시지는 속을 꽉꽉 채워, 한 입만 깨물어도 육즙과 고기가 터져 나왔다. 바투가 반갑게 말했다.


“그래? 다행이네. 다음에 투자할 사업이기도 하거든.”


“요리?”


“아니, 고기. 무식한 라기아족이랑 같이 지내더니, 감도 무뎌졌냐?”


마커스가 끼어들어 물었다.


“고기가 다음 사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지. 매춘, 음란공연, 도박, 자릿세 등등 이미 뒷골목 사업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개발했거든. 그래서 이번에 좀 밝은 사업에 투자해 보려고, 육류라던가 다행히 내가 익숙한 사업이지.”


“네가 푸줏간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내 부하랑 똑같이 말하네. 아니..... 하지만, 결국 고기잖아? 돼지고기, 여자고기. 그게 그거지. 공통점이라면 남녀노소 싫어하는 인간이 없다는 거고. 분명 돈이 될 거야.”


바투가 그렇게 말하며 검지와 엄지를 비볐다. 마커스가 추궁하듯 물었다.


“육류 쪽 사업이면 조합 쪽이 쥐고 있을 텐데, 그들이 널 받아줄까? 그들은 꽤 보수적인 집단인데.”


“보수적이고, 나발이고 결국 돈이 있어야 그따위 규칙 지킬 수 있지. 뭣보다 지금 그런 이야기는 무의미해, 이미 구두로 계약하고 왔거든.”


“뭐?”


“구두로 계약하고 왔다고. 너희가 오기 전에, 그쪽이랑 얼추 이야기하고 왔지. 잔대가리 굴리려고 했지만, 나한테는 어림도 없었지.”


그러자 마커스가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중요한 일은 다레온께 말씀 올린 다음 진행하는 게 순서 아닌가? 더욱이 전쟁터에 계시면 또 모를까. 지금 여기 계시는데..... 잊고 있나 본데, 이 사업의 주인은 엄연히 다레온이야. 넌 고용인이고.”


그 순간 공기가 순간 변했다. 주변에서 음식물 찌꺼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서성이던 개들이 대가리를 숙이며 끼잉끼잉거릴 정도였다. 바투는 양팔을 식탁 위에 올린 후, 뒷골목 협상 때 특유의 분위기로 말했다.


“아, 좋은 말이야. 나도 거기에 관해 할 말이 참 많았는데, 잘됐네. 이왕 이리된 거 확실히 하고 가자고. 야, 다레온.”


“응?”


다레온이 갓구운 빵을 찢어 미트볼 소스에 찍어 먹으며 답했다. 꽤 중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평온하게 그지없었다. 바투는 다레온의 그런 태도에 더욱 반발심을 느끼며 도발적으로 말했다.


“솔직히 인정할게. 네가 내게 엄청난 기회를 줬다는 거. 난 인정할 줄 아는 남자니까.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 붉은 방패에 어떻게 왔겠어? 이따위 시골 도시는 애당초 내 취향이 아닌데.”


“별말씀을 다 하는군.”


바투가 다레온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회를 잡은 건 나지. 넌 기회만 줬을 뿐이고.... 그 이후부터는 내가 다 했어. 이 뒷골목을 접수한 건 오로지 나의 힘이란 이 말이야. 넌 기껏해야 기회와 얼마 안 되는 푼돈만 줬을 뿐이고. 인정하지?”


그러자 마커스가 버럭 화를 내려고 했는데, 다레온이 손을 들어 막았다. 진정하라는 듯.


“인정하고말고. 맞는 말이야. 편하게 말해봐.”


바투가 다레온의 두 눈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1년 전과 똑같았다. 아니, 더욱 심했다. 더러울 정도로 잔잔해 얄팍한 뒷골목 인간들과 달리 도저히 속을 읽을 수 없었다.


“여기 사업 나한테 다 넘겨...... 넘기라는 말도 우습지. 애당초 내가 세운 곳이니까. 여긴 나의 왕국이야. 나의 소유지. 모든 게 내 소유. 그렇다고 오해는 마. 너랑 나 사이니까 일리시아 아가씨와 더불어 최대 투자자로서 내가 대우해 줄게. 배당금을 알아서 잘 챙겨줄 테니. 그냥 그거나 자 받아 챙겨.”


그 말에 마커스는 물론 코바로스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흥분한 그 둘을 진정시킨 것은 다름 아닌 다레온이었다.


“다들 진정해 아주 틀린 말도 아닌데.”


“다레온.”

“야, 다레온!”


마커스와 코바로스가 다레온 대신 화를 내줬지만, 다레온은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그들을 거듭 진정시켰다. 진심으로. 마커스가 흥분해 말했다.


“애당초 이 사업은 다레온 당신의 것입니다. 시작할 수 있는 토대와 후원자, 자금을 모두 다레온께서 마련하시지 않으셨잖습니까!”


“하지만 그걸로 이만한 왕국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바투지. 이만한 공을 세웠다면, 그때부터는 만든 사람 거야.”


“다레온!”


“아, 그만해. 마커스...... 나 대신 화내주는 건 고맙지만, 이게 맞아. 혹시, 상인과 노예 셋이라는 이야기 알아?”


뜬금없는 옛날이야기에 마커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동쪽 무역지대에 있는 이야기야. 어릴 적 상인들 밑에서 일할 때 우연히 행상인에게서 듣게 됐지. 한 번 들어 볼래?”


바투가 대표로 말했다.


“재미없을 거 같으니, 안 들을래.”


“사실, 예의상 물어본 거야. 너희가 듣고 싶든, 안 듣고 싶든 난 이야기할 거야.”


다레온이 웃으며 말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 한 부유한 상인이 있었대. 상인 밑에는 노예가 셋 있었지.


어느 날 상인은 노예들에게 금화를 하나씩 하사했어. 그리고 말했지. 몇 달 후 돌려달라고 할 테니.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노예들 중 가장 똑똑한 첫 번째 노예는, 그 금화를 받자마자 물건을 싸게 구매해 다시 비싸게 팔아 금화를 열 배로 부풀렸지, 두 번째로 똑똑한 노예는 그 방식을 흉내 내 금화를 다섯 배로 부풀렸고. 하지만, 가장 멍청하고 게으른 노예는 그저 금화를 잃어버리지 않게 숨겨만 놨지.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주인은 노예들에게 금화를 돌려달라고 했어.


첫 번째 노예가 금화 열 개를 돌려주며 말했지. 주인님이 주신 금화를 굴려 열 배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두 번째 노예가 말했지. 주인님이 주신 금화를 굴려 다섯 배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노예가 말했지. 주인님이 주신 금화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뒀다가 돌려드립니다.....


자, 주인이 어떻게 반응했을 거 같아?”



바투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반응은 모르겠고, 왜 부자가 된 건지는 알 거 같은데, 그렇게 똑똑하고 멍청한 노예를 가졌으면 누구든 부자가 됐겠지.”


다레온이 그 말에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 노예들을 어떻게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 돈을 가장 많이 부풀린 노예에게는 금화 열 개와 자유를 준 다음, 알아서 행상일을 하라고 했어. 대신, 그중 수익을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나눠달라고 했지. 첫 번째 노예는 기꺼이 수락했어, 공짜로 자유와 사업 밑천이 생겼는데, 왜 거절하겠어. 두 번째 노예에게는 금화 다섯 개와 자유를 준 다음 자신 밑의 직원으로 고용했지. 두 번째 노예 역시 기꺼이 수락하여, 충실한 직원이 됐지. 자유와 돈, 일자리를 얻었으니.”


코바로스가 물었다.


“그럼, 게으르고 멍청한 세 번째 노예는?”


“금화를 빼앗기고, 광산 노예로 팔렸지. 주인은 어떻게든 이윤을 만들 줄 아는 사내였어. 결국, 이 이야기의 교훈은 그거야.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온다.”


바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내 귀에는 다르게 들리는데. 마치, 내가 네 노예라는 것처럼 들리거든.”


“진심으로?”


다레온이 빤히 바라보며 묻자, 바투가 입을 다물었다. 저놈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속을 읽을 수가 없으니.


다레온이 다시 말했다.


“만약, 그렇게 들렸다면 사과할게. 진심으로, 그저 이야기에 비유하려고 했던 것뿐이야. 은유법, 직유법. 뭐, 그런 거..... 마커스. 왜 상인이 가장 똑똑한 노예를 풀어줬겠어?”


마커스가 고민하다 말했다.


“유능한 자가 노예로 썩는 게 안타까워서가 아니겠습니까?”


“음... 그것도 맞는 말일 수 있겠다. 하지만, 상인은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자. 감상적인 이유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겠지. 아마, 그게 전체적으로 더 이익이라고 생각해서일 거야.”


“예? 그게 무슨......”


“자유와 사업 자금을 받은 유능한 노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일할 거야. 그리고 또 이런 기회를 준 주인에게 기꺼이 이익의 일부를 바치려고 할 테지. 만약, 어기면 다시 노예가 될지도 모르니. 즉, 상인은 채찍 한번 쓰지 않고 금을 가져다 바치는 노예를 얻은 셈이야.

또, 이후로 자기 휘하의 똑똑한 직원이나, 노예들은 상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일할 테고. 즉, 상인은 채찍이 아닌 호의를 베풂으로 누구보다 많은 이익을 얻었어. 즉,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채찍이 아닌, 이윤을 나누는 거라 할 수 있지.”


그 말에 마커스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바투는 식탁 위에 양발을 올리며 말했다.


“즉, 다레온 넌 관리할 수도 없는 사업장을 내게 넘겨, 차라리 배당금을 많이 받겠다 뭐 그런 이야기야?”


“응, 네가 말했다시피. 그게 차라리 낫겠더라고. 넌 앞으로 사업을 더 확장할 텐데, 거기서 받는 배당금이 내가 사업체 운영하는 거보다 훨씬 클 테니 말이야..... 안 넘겨줄 이유가 없지.”


바투는 킬킬 웃으며,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다레온 저 녀석..... 가끔식 속도 없는 머저리 같으면서도, 또 어떨 때 보면 파악할 수도 없게 교활한 놈인 거 같았다.


“그래, 그게 똑똑한 거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가 더 부자가 되어 있을 텐데. 괜찮겠어?”


바투의 도발에 다레온이 이리 답했다.


“진정한 친구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성공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거라 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네가 부자가 된다면, 난 아주 기쁠 거야....... 나중에 돈 빌릴 데가 있다는 거니.”


“누가 쉽게 빌려준대?”


그 말에 다레온과 바투가 킬킬킬 같이 웃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바투가 입을 열었다. 슬슬 피곤한 거 보니, 그만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된 거 같았다.


“좋아,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했으니. 이제 네가 온 용건을 이야기해 봐. 은화장군 님 수행원으로 일하는 놈이 그냥 한가해서 여기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그래도 널 보고 싶어 온 건 거짓이 아니야.”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말고, 빨리 용건만 말해. 남창을 원하면 내가 알아봐 줄게.”


다레온이 가볍게 웃고는 갑자기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


“페로스 각하께서 내게 새로운 임무를 주셨어. 길게 말하지 않을게. 요즘 도시에 떠도는 살인사건에 관해 알고 있지?”


“바르무톤이라는 시골 귀족 일가가 거의 몰살 당했다는 거?”


“그리고 그 배후로 일리시아 아가씨가 몰리고 있지. 참으로 억울하고 슬픈 일이지.”


바투가 슬며시 물었다.


“진실을 알고 싶어?”


“아니, 진실 따위는 관심 없어. 그저 억울하게 누명을 쓰신 일리시아 아가씨를 돕고 싶을 뿐이지. 우리 동업자고, 시리온 각하의 아이를 가졌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게, 혹시 도와드릴 방법이 있어? 이 도시에 막 온 나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다레온이 자기에게 도움을 청한 다라.....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바투가 씨익 웃고는 바깥에 대고 소리쳤다.


“쥐새끼들 데려와.”


“쥐새끼?”


“내가 이 거리에서 왕으로 불리기는 하는데, 정확히는 무슨 왕이라고 불리는지 알아? 왕이라면 응당 그 앞에 걸맞은 수식어가 하나씩 붙잖아? 정력왕이나, 미남왕 같은 거 말이야.”


모두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무슨 왕이라고 불리는데?”


바투가 자랑스레 말했다. 정말 자랑스러웠으니까.


“개와 쥐의 왕.”


“개와 쥐.....? 그게 무슨 왕인데?”


“말 그대로야. 거리의 사나운 개들과 작고 교활한 쥐들의 왕이라는 거지.”


그때, 두건을 뒤집어쓴 파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본래는 꽤 잘생긴 미남이지만, 저 두건만 쓰면 귀신처럼 소름 끼치게 이를 데가 없었다. 그는 바투와 다레온에게 정중히 인사한 다음 바깥에 대로 들어오라고 누군가를 불렀다.


“얘들아 들어오렴.”


잠시 후, 어른 허리 정도로 자란 아이들이 대거 들어왔다. 족히, 서른 명도 넘을 거 같았는데, 애들이라는 점만 빼면 각양각색이었다. 여자아이, 남자아이, 삐쩍 마른 아이, 뚱뚱한 아이, 겁많은 아이, 사나운 아이 모두 다양했다.


다레온이 애들을 보며 물었다.


“이 아이들은?”


“나의 쥐들이지. 이 거리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쥐들 말이야.”


작가의말

‘개와 쥐의 왕’ 편은 여기까지 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주말 잘 보내십시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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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먼지의 왕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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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2-107.7 하룻고양이 (2) +14 20.10.04 978 62 13쪽
120 2-107.5 하룻고양이 (1) +15 20.09.27 1,024 67 16쪽
119 2-107. 맞서 싸우는 자 (4) +26 20.09.20 1,006 66 22쪽
118 2-106. 맞서 싸우는 자 (3) +16 20.09.13 936 72 16쪽
117 2-105. 맞서 싸우는 자 (2) +21 20.09.06 1,038 69 16쪽
116 2-104. 맞서 싸우는 자 (1) +18 20.08.30 1,005 53 10쪽
115 2-103. 탄원자 (3) +8 20.08.23 946 63 13쪽
114 2-102. 탄원자 (2) +3 20.08.16 1,013 55 17쪽
113 2-101. 탄원자 (1) +14 20.08.07 1,134 59 15쪽
» 2-100. 개와 쥐의 왕 (3) +36 20.07.31 1,107 73 23쪽
111 2-99. 개와 쥐의 왕 (2) +23 20.07.24 1,050 71 17쪽
110 2-98. 개와 쥐의 왕 (1) +15 20.07.17 1,076 73 14쪽
109 2-97. 미운 오리 새끼 (4) +20 20.07.10 978 82 18쪽
108 2-96. 미운 오리 새끼 (3) +22 20.07.03 1,010 77 21쪽
107 2-95. 미운 오리 새끼 (2) +29 20.06.26 1,023 70 13쪽
106 2-94. 미운 오리 새끼 (1) +16 20.06.19 1,042 65 12쪽
105 2-93. 신의 후손 (3) +26 20.06.12 1,055 74 22쪽
104 2-92. 신의 후손 (2) +29 20.06.05 1,054 72 16쪽
103 2-91. 신의 후손 (1) +20 20.05.29 1,115 69 13쪽
102 2-90. 뿌리내린 가지(2) +19 20.05.22 1,081 75 17쪽
101 2-89. 뿌리내린 가지(1) +33 20.05.15 1,174 69 13쪽
100 2-88.6 시골 귀족(2) +35 20.05.08 1,152 78 29쪽
99 2-88.3 시골 귀족(1) +16 20.05.01 1,130 75 16쪽
98 시즌2-88. 바르무톤 아가씨(3) +17 20.04.24 1,089 63 18쪽
97 시즌2-87. 바르무톤 아가씨(2) +6 20.04.24 999 57 12쪽
96 시즌2-86. 바르무톤 아가씨(1) +22 20.04.17 1,204 80 17쪽
95 시즌2-85.8 퇴물(1) +23 20.04.10 1,141 77 21쪽
94 시즌2-85.4 짐승의 여인(2) +26 20.04.03 1,156 70 15쪽
93 시즌2-85.2 짐승의 여인(1) +18 20.03.27 1,190 69 19쪽
92 시즌2-85. 예비 신랑(2) +26 20.03.20 1,155 7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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