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86. 바르무톤 아가씨(1)
2-33. 바르무톤 아가씨
점점 겨울이 다가오며 공기는 차가워졌다.
그런 탓인지 시장과 광장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적었는데, 이곳 부유층 거주지만큼은 다른 세상처럼 소란스러웠다.
쾅쾅대는 망치질 소리, 자제를 옮기는 달그락 소리, 욕설과 고함, 명령 등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겨울이 오기 전 최대한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였다.
“벽은 어떤 나무가 좋을까요?”
“좋은 나무는 많지만, 아가씨께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원한다면 ‘붉은 숲’의 ‘붉은 나무’를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그 오묘한 붉은 빛은 부와 품위를 상징합니다.”
건설조합의 간부 헤론이 대답했다. 그는 일리시아와 함께 재건축 중인 건물을 거닐며 이것저것 질문에 대답하고, 조언을 해줬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전문 교육을 받고, 사회적 명망도 있는 공화국의 남자가 일개 아녀자의 하인 노릇을 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냐고. 허나, 그 아녀자가 감히 추측한다면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터였다.
왜? 그 아녀자는 붉은 방패의 귀족인 바르무톤 가문의 ‘정식’ 딸이자, 한때, 총독의 애인이었으며, 상류층 거주지를 제외하고도 여섯 채의 상가와 다섯 채 인술라, 세 채의 저택, 열두 채의 창고를 소유한 거부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뒷골목 건달들의 실질적 후원자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는데, 그로 인해 헤론은 절대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터였다.
일리시아는 저택을 한 바퀴 쭉 돌며 어떤 대리석을 쓸지, 어떤 벽화를 그릴지, 천장에도 페인트칠할지, 말지 등 세세히 주문하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예, 전부 아가씨의 주문대로 하겠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 조심해야지!”
저택 밖을 나오자 자재를 옮기던 노예와 일리시아가 부딪힐 뻔하였다. 건설조합의 간부 헤론은 공사 일로 단련된 굵직한 팔로 노예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리곤 일리시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런, 죄송합니다. 아가씨. 라기아족은 태생이 소처럼 우둔한지라... 어디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일리시아는 이빨이 부러진 라기아족 노예를 보곤 자신의 부풀어 오른 배를 봤다.
“전혀요. 힘이 엄청나시군요.”
“아.... 원래 장사 집안입니다.”
라기아족을 때려눕힌 사내는 알통을 보여주며 아부하였다. 익숙해질 법했지만. 아직도 새롭고 즐거웠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굽신대는 게 말이다.
“물론 영리하시기도 할 거고요. 주문 한 대로 부탁드릴게요. 이 거주지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실 테니. 신분과 품격에 맞게... 아시죠?”
“물론입니다. 물론.”
“말씀해주신 날짜에 맞춰. 대금을 가져다드리죠. 그럼 이만, 기한 내까지 꼭 부탁드려요.”
“예.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건설조합의 간부 헤론은 순종적인 노예처럼 고개를 숙이곤, 노예와 마스터, 도제 일꾼들에게 호랑이처럼 일을 하달했다.
쾅쾅, 달그락거리던 소음이 아까 전보다 더 빨라졌다.
일리시아는 경호원을 이끌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번에 상류층 거주지가 아닌 일반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거주지였는데, 그곳에 눈여겨 봐둔 인술라(다세대 주택)가 몇 채 있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주인을 설득해 구매할 계획이었다.
상류층 거주지의 하나 입구를 빠져나왔다. 입구를 지키던 경비들이 인사를 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며 늘어난 도둑과 거지를 막기 위해, 상류층 주민들이 돈을 모아 고용한 용병들로, 이들 덕분에 상류층 거주지는 도둑과 거지로 해방되었다.
입구도 하나뿐이라, 상류층 거주지는 말 그대로 철통 방비를 자랑했다.
‘아마도 말이지.’
꺾인 골목에 들어섰다. 한 청년이 자연스레 접근했다. 늘 보던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호원은 일단 그의 접근을 막았다.
“괜찮아요. 내버려 두세요.”
그제야 경호원은 청년을 통과시켜주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만나는데 너무 빡빡하시군요.”
“미안해요, 하지만 이해하세요. 이분들의 일은 절 지키는 것.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고 불평할 순 없죠. 그보다 손에 든 건 뭐죠?”
“꽃입니다. 가을꽃. 신전에서 비싼 돈 주고 사 왔죠.”
“예, 알아요. 저도 눈이 있거든요. 제가 물은 건 당신이 왜 꽃을 들고 있냐는 거예요. 안 어울리게.”
“아가씨에게 드릴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받아주시죠.”
청년, 아니 뒷골목의 거물 ‘젊은 하노’가 꽃을 건넸다. 허나, 일리시아는 사양했다.
“죄송해요. 전 꽃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안타깝네요. 앞으로 다른 꽃을 사세요.”
“다른 꽃? 원하시는 꽃이 있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구해오겠습니다.”
“팔다리와 젖가슴, 다리 사이에 구멍이 있는 꽃을 사세요. 당신한테 필요해 보이니.”
일리시아는 그리 말하곤 발을 재촉했다. 배가 무거워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젊은 두목 하노는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쫓아왔다.
“절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전 이미 아가씨를 마음에 품고 있어. 그런 들꽃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경호원들의 눈이 번뜩였다. 사실 말이 경호원이었지, 이들은 아직까지 공화국과 시리온에게 충성을 한 군인.
그런 자신들 앞에서 뒷골목 쓰레기가 일리시아의 추파를 던지다니.... 당장 칼을 뽑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정말 그렇게 될까 봐 일리시아는 서둘러 선을 그었다.
“입조심 하세요. 하노. 전 엄연히 당신의 고용주. 혓바닥을 조심하지 않으면 다른 직원을 구하면 그만이에요. 이해했나요?”
일리시아의 경고에 젊은 하노는 고개를 숙였다. 낑낑대는 게 강아지를 연상시켰다.
“죄송합니다. 뒷골목 태생이라 예의를 잘...... 부디 내치지 말아 주십시오.”
“흥.” 일리시아는 경호원들을 의식해 일부러 콧방귀를 꼈다. 분명 믿음직한 존재이긴 했지만, 때때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실 말씀은 그게 전부인가요?”
그제야 본론이 나왔다.
“아뇨, 그럴 리가요. 미친개의 전언을 가져왔습니다. 아가씨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은행업과 부동산업에서 손 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짭짤한 건수가 있으면 가끔씩 끼어 달라고 하더군요.”
일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확실히 끔찍한 사내긴 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렇기에 믿을 수가 있었다.
“일이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 이상이죠. 퇴물과 늙은이는 ‘은퇴’했고, 그 부하들은 모두 미친개가 흡수했습니다.”
“돼지분은 어떻게 됐죠?”
“원하던 걸 얻었죠. 뒷골목의 술집과 음식점을 손에 넣고, 정육 사업도 시작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원하는 걸 이토록 쉽게 얻다니 운이 좋은 놈입니다.”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영리한 거죠.”
“영리하다고요? 그 돼지 같은 게요?”
“의외로 돼지는 영리하답니다. 과거 저랑 같이 지내던 할멈이 말해줬죠. 라기아족 돼지치기 출신인데, 그 할멈이 말하길 돼지는 사람도 알아보고, 말귀도 알아듣는다 하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아가씨 같은 분이 그런 천한 것과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여자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마세요. 실례거든요. 무엇보다.... 전 좀 헷갈리더군요. 천하다는 것과 귀하다는 거요. 차이가 구체적으로 뭐죠?”
하노는 수수께끼 같은 일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예..... 그보다 괜찮겠습니까? 명령하셔서 따르긴 했지만, 이로써 뒷골목은 미친개의 소굴이 됐습니다. 그나마 견제해주던 늙은이와 퇴물이 사라져버렸고, 돼지는 사실상 미친개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지요. 만약에 미친개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으나. 신경끄세요. 그가 미친개, 미친개 해도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예?”
“그는 미친개가 아니에요. 오히려 미친개로 위장한 똑똑한 개죠. 자기 밥그릇에 손을 대려고 하면 물겠지만, 그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짖기만 할 뿐 그 이상은 하지 않아요. 거기다 그와 저 사이에는 확실한 안전장치도 있거든요.”
“안전장치? 그게 뭐죠?”
“당신은 몰라도 돼요.”
“섭섭합니다. 아가씨.”
“어쩔 수 없죠. 비밀은 여자의 매력이거든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미친개의 사업과 제 사업이 겹치지 않는다는 거고. 그럼 저희는 평화를 유지할 거라는 거예요.”
젊은 하노는 수긍했다.
“뭐,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거면 맞는 거겠죠. 그런데 정말 그의 사업이 성공할까요? 그 뭐랄까... 약간 미친 것 같던데.”
일리시아도 동감했다. 붉은 방패를 휴양지로 만들겠다니. 도박과 여자가 넘치는 쾌락의 휴양지로, 대충 들었지만 성공할지는 의문이었다.
개와 원숭이, 말과 떡 치는 여자를 보기 위해....... 그 뒤틀리고 불명예스러운 성욕을 해소키 위해 이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의문이었다.
“글쎄요. 전 여자라 잘....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됐으면 좋겠네요. 그럼, 제 사업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물론, 바투 밑의 여자들은 괴롭겠지만.”
하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도 ‘창녀들의 반란’ 때 매춘부들을 살해한 전적이 있었지만, 바투의 그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일을 즐겼다.
“아, 이제 도착했네요. 이만 가보세요. 일도 있을 텐데.”
그 ‘일’이란 일리시아가 빌려준 사채 이자 회수로, 젊은 하노는 일정수수료를 받고 일리시아 수금 대행을 맡았다.
한동안 경기가 어려웠다가 다시 살아나니,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 갔는데, 바투와의 협약으로 한동안 이쪽 시장은 자신이 독점할 터였다.
‘꽤 짭짤하겠어..... 그래, 차라리 잘됐어. 노예무역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덕분에 부동산과 고리대금 쪽에 집중할 수 있잖아?’
젊은 하노가 대답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상처 입은 척 굴었다.
“슬픕니다. 절 이리 내쫓으시다니.... 절 데려가 주시죠. 들리는 말로 이쪽 늙은이들이 아가씨의 자비로운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던데, 제가 그들을 설득하겠습니다.”
“전 깨끗이 사업을 하고 싶은 거지, 피를 볼 생각이 없어요. 절 기쁘게 하고 싶으면 제가 맡긴 일이나 제대로 완수해 주세요. 요즘 도축장 쪽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고 하던데....”
“아, 그건 걱정마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 찾아뵙겠습니다.”
젊은 하노는 그렇게 말하며 일리시아의 손등에 키스하곤 떠났다. 그런 그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일리시아는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아버지와 파페머무스 가문이 보유한 공방 거리와 그 인근의 인술라, 빈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곧 자신의 왕국이 될 곳이었다.
“자... 그럼, 다시 일하러 가죠.”
방패 공방과 세탁소 사이에 위치한 인술라의 주인 푸풀리우스는 부랄 같은 사내였다.
주름지고 쭉 늘어진 뺨, 습기로 인해 어지럽혀진 머리는 말 그대로 부랄을 연상케 해 매우 불쾌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근방에서 꽤 힘을 주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렇게 이 근방에 인술라 3채와 상가를 보유한 자산가이자. 붉은 방패의 명망 높은 귀족 파페머무스 가문의 보호를 받는 피보호민이었기 때문인데, 소문에 의하면 그러한 배경을 내세워 못된 짓을 일삼는다고 하였다.
그가 일리시아에게 말했다.
“그 유명하신 바르무톤 아가씨가 저 같은 늙은이에게 어인 일로 찾아온 겁니까?”
말투는 겸손했으나, 태도는 아니었다. 늙은 건물주는 마늘 냄새를 풍기는 검투사를 거느린 채 자신을 훑어보았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고기를 고르는 듯한 음흉한 눈매. 아무래도 집세를 이용해 세입자의 몸을 탐하는 게 사실인 듯했다.
“저번에 말씀드린 것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죠. 이곳 인술라를 파세요.”
늙은이는 웃을 뿐이었다. 부랄 같은 뺨이 덜덜 떨려 보기 역겨웠다.
“아, 그러신 적이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늙어서 기억력이 영....”
노인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몹시 거슬렸다.
“하지만 이건 기억나는군요. 제 대답은 싫습니다.”
“왜죠? 시가보다 훨씬 얹어드렸는데.”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아가씨, 이 늙은이가 감히 가르침을 드리자면. 밭이 은보다 좋습니다. 은은 소유하고 있어봤자 사라질 뿐이지만, 밭은 아니죠. 밭은 계속해서 은을 만듭니다. 암탉이 알 낳듯이.”
“전 밭을 팔라는 게 아닙니다. 이곳 인술라와 사거리에 있는 인술라를 팔라는 거죠.”
노인은 비웃을 뿐이었다. 웃는 것마저 신경을 거슬렸다.
“아뇨, 아뇨. 같습니다. 같고 말고요. 도시에 밭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바로 이곳이 밭이죠. 보리나 밀을 만들 수 없지만, 은은 만들 수 있거든요. 도시에는 사람이 모이고, 사람은 잘 곳을 원하죠. 여기가 제 밭입니다. 계속 은을 수확할 수 있는 제 밭이요.”
“하지만 밭을 돌보는 건 너무 힘드시지 않겠어요? 이제 나이도 있으니 목돈을 챙겨 남은 여생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시는 게 어떨까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물론, 적은 금액은 아니죠. 하지만 전 아직 건장합니다. 건장하고말고요. 요즘 새로워진 뒷골목에서 제가 얼마나 즐겁게 지내는데 말입니다. 전 20년도 더 일할 수 있습니다. 아, 아가씨도 아시려나?”
“....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노인은 다시 한번 웃었다. 비웃는 듯한 비릿한 미소였다.
“아,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여하튼 전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곧 짭짤한 수확을 걷을 텐데. 지금 팔순 없죠. 암요.”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예, 그럼요. 위대하신 각하.... 아니, 각하‘들’인가? 여하튼 다시 녹색 땅에서 노예들이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도시에 다시 돈이 돌고, 이 근방 공방은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죠. 저는 전쟁이 좋습니다. 젊은 시절 국가를 위해 봉사한 적도 있거든요. 제가 훈장을 받은 이야기 해드렸나요?”
물론 기억났다. 얼마나 지겨웠던지.
“다행이군요. 말씀 안 드려도 될 테니. 여하튼, 전 전쟁이 좋습니다. 필룸, 방패, 신발 등 엄청 많은 물자가 필요해지죠. 그 말은 즉, 일자리가 생긴다는 거고, 사람들이 몰린다는 거죠. 그럼 저 같은 사람도 돈을 법니다. 누구든 천장이 필요로 하니. 상황이 이러할 진 데, 제가 여길 팔아야 할까요? 아뇨, 당연히 안 되죠.”
일리시아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부랄같은 노인과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허나, 미래란 모르는 법 아니겠어요?”
“미래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경기는 더욱요. 제 행상인 친구가 말하길, 광산소왕국에서 또 전쟁이 터졌다더군요. 누구 거시기가 더 크냐는 문제로요. 수많은 난민이 생겼답니다. 당연히 그중 일부는 이 도시로 몰려들 테죠. 도시는 오갈 데 없는 촌뜨기를 끊임없이 삼키니까요. 그들은 제 건물을 찾을 겁니다. 정해진 수순이죠. 그러니 아가씨께선 저 같은 늙은이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제가 실례한 셈이네요.”
“사실, 그렇습니다. 파페머무스 가문의 보호를 받는 제겐 그런 배려가 다소 모욕적이거든요. 전 오히려 아가씨가 걱정됩니다.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데, 홀로 세상을 살아가신다니요.”
노인은 무례하게도 자신의 배를 봤다. 순간 목구멍까지 화가 올라왔다.
“.... 전 혼자가 아닙니다. 가족들이 있거든요.”
노인이 자신의 배를 탁 때렸다.
“아, 그렇지요. 제 기억력이 참....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아차 하는 순간 가족들 간의 관계도 먼지처럼 사라질 수 있거든요. 제가 봐서 압니다. 강철처럼 무거우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운 게 가족 아닙니까? 옛날에 한 세입자가 기억나는군요. 제가 말했습니까?”
“... 아니요.”
“아, 그럼 말씀드리죠. 한..... 열여덟 살 되는 소녀였는데. 아이가 있었죠. 한 네 살 정도 된. 그 둘은 저기 바로 윗층에 세를 들어 살았습니다. 참 열심히 살았죠. 하나뿐인 아들을 기르기 위해.... 허나, 집세 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죠. 전 그래서 도와줬습니다.”
“어떻게요?”
일리시아의 질문에 노인은 웃었다. 징그러운 웃음이었다.
“이것저것요. 음식을 나눠주거나, 소소한 일거리를 주는 거요. 그래도 힘들어하더군요..... 집세가 반년 치 밀리자 결국 소녀는 가진 걸 몽땅 들고 야반도주했습니다. 아무래도 집세를 못 내면 노예로 팔아 버리겠다고 한 게 문제였나 봅니다.”
“잔혹하고 흔해 빠진 일이네요.”
“예... 아!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 하나는 놔두고 갔습니다. 자기 아들요. 속옷 챙길 정신은 있어도, 아들 챙길 정신은 없었나 보더군요.... 하지만, 그건 못 배운 가난뱅이들 이야기겠죠? 아가씨의 가족분들처럼 명예로운 집안에서 설마 그럴 리가 없죠. 암요! 그분들이라면 세상의 온갖 악의로부터 아가씨를 지켜줄 테죠.”
일리시아는 피식거렸다.
“그렇지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바쁘신 분 시간을 너무 뺐었네요.”
“예,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예. 그럼.... 아, 참. 그 아이는 어떻게 됐나요? 야반도주한 여자의 아이.”
노인이 껄껄 웃었다.
“팔았지요. 노예로. 덕분에 1년치 집세를 얻었지요.”
-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이번주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지사항에 이미 올렸지만, 혹시 몰라 작가의 말에 한번 더 공지 합니다.
모자란 글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과 추천글 올려주시는 분들께,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 저번주 일요일 부터(1화를 시작으로) 하루에 한편 씩 글을 탈고하고 있습니다.
글만 다듬는 거지, 내용에는 변화가 없으니 그런 부분은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확실히 처음 쓰는 글이라, 너무 욕심을 내서 썼더군요.
(몇몇 군데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고, 글 문장과 순서만 다듬었습니다.)
탈고를 하며, 제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분들의 관심과 사랑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주말 잘 보내세요. 더 나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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