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사의 이야기 Ep.7 - 지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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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대로 고양이가 보내온 의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면회를 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하루 두 번, 굳은 빵과 물로 때우던 식사가 세번으로 늘어나고 훨씬 질이 좋아졌다. 아마 고양이의 수완일 것이다.
" 후욱! 후욱! 후아아... "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이지만 아르모어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환각에 시달리지 않았다. 의사의 처방으로 매일 저녁마다 식사와 함께 들어오는 아리스 호수물을 복용하여 몸과 정신이 건강해진 덕이다.
제정신을 되찾은 그는 두려움에 미쳐 난동을 피우는 대신 자학에 가까운 강도 높은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신체를 단련하는데 투자했다.
간수는 사형을 선고받은 마당에 쓸모없는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아르모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정대로 감옥에서 죽거나 사형이 집행된다면 상관없지만 쓸데없이 질겨터진 명줄이 계속 이어질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목숨이 붙어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금 비극이 찾아올 것이 뻔했다. 객관적인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 아르모어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 불행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아르모어가 내놓은 해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 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게 무력이 되었건 권력이 되었건 충분한 힘만 있다면 더 이상 불행해질 필요는 없어. '
일례로, 여왕의 눈을 빌려간 공주는 그 무시무시한 화염 드래곤을 해치우지 않았던가. 그만한 힘을 다룰 수만 있다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날 사소한 불행 따위는 간단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 여왕의 눈을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두번 다시 시덥잖은 운명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
생각해보라. 만일 눈의 힘을 조금만 활용할 줄 알았다면 직접 성벽을 파괴하여 일을 끝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갔을게 아닌가!
뒤늦은 후회와 반성은 힘에 대한 갈망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하여 아르모어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취합한 끝에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되는 수련법을 만들어냈다. 오로지 효율만 추구한 나머지 안전 따윈 고려조차 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 후욱, 후욱! "
그는 먼저 과도한 운동으로 몸을 망가뜨렸다.
사람의 몸이란 손상된 부위를 한층 강하게 복구하는 식으로 단련이 되는데 아르모어는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의 몸이 가진 회복력은 고정되어 있어서 가령 회복력이 10이라치면 20의 손상을 입더라도 10밖에 치유되지 않는다. 따라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않고 무리하게 운동을 감행한다면 치유되지 못한 10만큼의 손상이 계속 누적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당연히 몸이 축나게 되며 운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허약해지게 된다. 그릇인 몸이 약해지면 자연스럽게 몸 속의 생명력도 점차 약해진다.
그러면 생명력과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던 여왕의 힘이 경계선을 부수고 넘쳐흐르기 시작한다. 일찍이 도서관장이 경고했듯이, 과도한 운동으로 인한 파국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일이 잘 수습되어 요정화가 진행되면 성공. 균형만 재정립되고 변이가 일어나지 않으면 실패. 균형이 완전히 깨져버리면 사망이다.
일단 한번 파국이 시작되면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모어는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고 거리낌없이 걸었다.
그에게는 운명을 극복할 만큼 강해지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았던 것이다.
***
" 크으으윽! "
제어되지 않는 에너지가 세포를 해집고 다니자 전신이 분해되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금방이라도 의식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아르모어는 놀라운 정신력으로 의식을 붙들고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미리 준비해둔 아리스 호수물을 입가로 가져갔다.
" 푸하! "
차가운 물이 몸 속을 돌아다니며 활기를 불어넣자 정신없이 밀리던 아르모어의 생명력이 거세게 일어나 반격을 개시했다. 그에 질세라 여왕의 눈에서 뿜어져나온 기운도 기세를 올려 내장에서 충돌했다.
" 쿨럭! "
충돌의 여파로 피를 토한 아르모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몸의 주인이 정신을 잃은 사이에도 두 기운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다투었다.
그러기를 몇 시간.
몸 속에서 벌어진 격렬한 전쟁도 마침내 종전을 맞이하고 새로운 국경이 성립되었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야 의식을 되찾은 아르모어는 힘겹게 눈을 활성화시켜 자신의 몸을 살폈다.
형편없이 망가졌던 몸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변이의 영향으로 그럭저럭 회복된 상태였다. 비록 신체적인 성능은 향상되지 않았지만 아르모어는 크게 만족했다.
' 요정화 30.1%! 성공이다. '
마침내 목표로 잡았던 수치에 도달한 것이다.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끝도 없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결과 간신히 달성한 수치에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 딱 1년만이구나. "
그 동안 매일같이 한계에 달할 정도로 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모어의 신체능력은 1년 전과 비교하여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요정화에 중점을 두고 오버 트레이닝을 감행한 결과였다.
반면, 요정화의 영향으로 눈의 안정도는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 결과, 단순히 보는데 국한되던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간 간섭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거기까지 활성화시키는 것만으로도 폭주의 위험이 있지만 아르모어는 개의치 않았다.
이전의 한계를 뛰어넘었듯이, 지금의 한계도 뛰어넘을 테니까.
한계를 넘고, 넘고, 또 넘어서 마침내 운명마저 뛰어넘는 그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위험해도, 아예 목숨을 잃어버린다 해도 상관없다.
삶에 미련이 없으니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뿐. 하지만 목숨이 붙어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있을 이유는 이제 그것밖에 없으니까.
- 작가의말
안됐다. 등장할 작품만 잘 골랐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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